서적소개
지식인의 책무 : 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노암 촘스키 / 황소걸음 / 2005.7.15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 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글은 냉전 종식이후, 그리고 동티모르 사건을 빗대어 지식인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하며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역설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신문의 기사를 비판의 근거로 삼는다. 그것만큼 중요한 중요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언급하는 지식인은 기자만이 아닌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평론가, 이른바 전문가들까지 포함한다.
촘스키는 냉전 종식 후 미사여구로 포장된 미국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인 수사인지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이러한 사실은 냉전 종식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미연방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어왔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일관된 정책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요컨대 미국은 상당히 비민주적인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면서, 종전의 정치•경제 질서를 전복시키고 ‘좌편향’적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민중중심의 변화를 피하려고 애쓴 사례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 목차
1. 지식인의 책무
2. 목표와 비전
목표 대 비전
인도주의적 관점
새로운 시대정신
저항의 목소리
모진 사랑
3.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
변하지 않는 진실
실물 세계에서 시장
민주주의 : 국민을 억압하는 민주주의
자유시장 보수주의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 주인들의 유토피아
– 저자소개 :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인지과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 정치운동가, 아나키스트, 저술가이자 비판적 지식인. 현대 언어학을 혁명적으로 뒤바꾼 공로를 널리 인정받았으며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언어학·철학과 명예교수이다.

1967년 2월 《지성인의 의무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라는 에세이를 통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반전운동에 참여했으며, 지금까지 세계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전쟁,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많은 글을 발표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와 전쟁에 소리 높여 비판하고 관련 저서를 출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신자유주의와 세계적인 불평등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으로서만이 아닌 행동하는 세계적인 석학의 상징이기도하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촘스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다》, 《불량 국가》, 《숙명의 트라이앵글》 등 수많은 책을 집필했다.
– 역자 :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영어와 불어 번역으로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키스 해링 저널』, 『문명의 붕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우리는 지식인의 책무란 절박한 문제에 대해 따져보았다.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우리지만 새삼스레 말할 것이 많고 대답할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들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살아가고 일하는 공동체에 달가운 소리여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속한 학교와 언론계와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에 대해 숨김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문명 세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p.43
– 독자의 평 1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분의 책을 읽었다면 당연히 감동의 밀물 때문에 가슴이 미어터질 지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출간당시(1995년)라면 정말 그랬을 것 같다. 또는 이 책 말고 다른 책은 전혀 보지 않았다면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이, 촘스키 박사의 노력 덕분이기는 하겠지만, 이미 대중들에게 대부분 알려진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G7이 경제학적 종교로 맹신하면서 포교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내용을 축약해 놓은 것 같다. 또 기득권을 위한 정책입안-복지예산을 삭감하고 군사비 등을 확충하는 것-은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에서 이미 신물나게 들었다. 금융재벌 및 군산복합체의 대통령만들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좋은 책이긴 하지만, 너무 늦게 읽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겠다는 포부는 품어볼 수도 없는 일이겠고 하루에 몇 권씩 읽어 내기도 불가능한 인간적 한계를 감안한다면, 이제라도 촘스키 박사의 명저를 조금씩 따라가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그런데,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일까? 원제는 ‘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이므로 ‘작가와 지성의 책무’라고 해야겠으나, 여기서 Writers는 비단 작가 뿐만 아니라 기자등과 같이 언론매체 등에 글을 쓰는 사람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역자는 그것들을 전부 뭉뚱그려서 ‘지식인의 책무’라고 했나보다.
본문에는 언급이 없으나, 우리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사실 ‘책무’가 아니라 ‘지식인’ 또는 ‘지식’이다. 즉 무엇인가를 알고있는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지식인의 책무라고 한다면, 그가 무엇을 알고있는가를 아는 것이 먼저다. 촘스키 박사는 그 지식이란, 쉽게 말해서 가진자가 못 가진자를 착취하기 위해서 어떻게 세상을 이용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우리편에 유리하다면 인류의 보편적인 원칙이 대의를 위해 무시당한다 해도 지식인은 침묵하거나 간과해도 될 것인가이다.
첫째, 기득권층이 세상을 이용하는 방법은 언론조작, 극우 보수주의, 가상의 적 만들기, 불안감 조성 등이다.
둘째, 보편적인 원칙과 동아리의 이익이 상충했을 때 지식인은 당연히 보편적 원칙을 준수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에 의하여 동아리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경우 그래도 보편적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하지는 아니한다. 다만 그런 상황에 처한 지식인 개인의 선택을 언급하는 듯 하다가 흐지부지하고 만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이란, 끊임없는 문제제기 및 진실의 규명, 그리고 민중을 개도하여 조직화하고 세상을 변혁시키도록 행동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눈을 의심한 대목이 있다.
“…개발도상국으로 식민지화에 저항한 나라가 특히 눈에 띈다. 일본이었다. 그후 일본은 산업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자체의 식민지를 개척했다. 일본은 점령군으로서 야만적 권력을 휘둘렀지만 서유럽국들과 달리 식민지들을 산업화시키고 발전시켰다…”(115p)
이게 무슨 개 풀 뜯는 소린가! 이게 과연 세계최고의 지성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일본 극우보수주의 똘마니들의 개소리를 그대로 읊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경부선을 건설한 것이 식민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 일인가? 군수공장을 건설하여 여염집 숫가락까지 빼앗아가 무기를 생산한 것이 산업화시킨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또다른 수탈과 제국주의 야욕을 확장시키기 위한 정책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정녕 촘스키 형은 몰랐단 말인가? 나는 촘스키 형이 비록 최고의 지성이긴 하지만 신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 실수를 한 것이라고 자위하며 책을 덮었다.
지식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미래와 결정의 불확실성을 줄여 줄 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