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 고대 이집트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상•하)
존 줄리어스 노리치 / 뿌리와이파리 / 2009.4.27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 문명에서 현재의 지중해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반만년의 역사를 종횡으로 누비며 문화, 교역, 정치적 동맹과 대립, 종교운동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추적해나가는 책이다. 흑백과 컬러 화보 80컷 외에도 왕가 가계도와 당시 지도를 상, 하권에 모두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꾸몄다.
이 책은 생동감 있는 필치로 이집트 문명의 찬란함, 유럽과 아시아 일대에 물품과 더불어 지식도 전해준 위대한 해상교역국 페니키아가 거둔 놀라운 성과, 그리스인들이 행한 지대한 공헌, 강대한 로마의 부상을 논한다. 또한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양대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비잔티움과 이슬람이 제4차 십자군의 거창한 모험으로 정점을 맞이한 데 이어 유럽이 힘차게 재도약하는 과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나아가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중세 유럽의 왕가들과 황제-교황 간의 대립으로부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전쟁들, 이사벨 여왕 치세하의 에스파냐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투쟁과 오늘날 지중해 삶의 특징이 된 현대적 감각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눈부신 지중해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 목차

- 상권
서론 6
- 시초 15
- 고대 그리스 38
- 공화정 시대의 로마 58
- 제정 초기의 로마 86
- 이슬람 131
- 중세 이탈리아 154
- 기독교의 반격 195
- 두 종류의 이산 241
- 스투포르 문디 260
- 우트르메르의 종말 296
- 중세의 끝 324
- 콘스탄티노플 함락 360
- 가톨릭 부부 왕과 그들의 이탈리아 모험 393
- 왕, 황제, 술탄 429
- 바르바리 해적과 바르바로사 459
- 몰타 섬과 키프로스 섬 492
왕가 가계도 522
지도 530

- 하권
- 레판토 해전과 에스파냐의 음모 7
- 크레타 섬과 펠로폰네소스 반도 39
-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 72
- 지브롤터 공방전 118
- 청년 나폴레옹 145
- 나폴리 간주곡 179
- 나폴레옹 이후의 이집트 190
- 유럽의 재편 209
- 그리스 독립전쟁 228
- 무함마드 알리와 북아프리카 279
- 콰란토토 291
- 리소르지멘토 307
- 이사벨 여왕과 카를로스파 352
-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 372
- 발칸 전쟁 382
- 제1차 세계대전 410
- 파리평화회의 440
옮긴이의 말 448
왕가 가계도 452
지도 460
참고문헌 470
찾아보기 477

○ 저자소개 : 존 줄리어스 노리치
영국의 작가이자 역사가. 《비잔티움 연대기》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노리치는 호쾌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역사를 생동감 있게 서술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29년에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고, 1952년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베오그라드와 베이루트의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제네바 군축회담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었지만, 1964년에 외교관으로서의 탄탄대로를 박차고 나와 문화 연구와 역사 저술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뒤 왕립 빅토리아회, 왕립예술협회, 왕립 문학회, 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18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교황 연대기》는 25년 동안 구상하고 집필한 것으로, 81세 되던 해에 탈고된 노리치 말년의 최근작이기도 하다.
특히 노리치가 교황 비오 12세, 바오로 6세, 요한 23세 등과 맺은 개인적 인연들은 이 책의 서술을 더욱 생생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황직을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는 완전한 군주제”라고 정의하는 노리치는 베드로에서 지금의 교황인 프란치스코까지, 교황들의 삶과 행동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복원해 내고 있다.
노리치의 저술로는 《비잔티움 연대기》 외에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베네치아의 역사》 《시칠리아의 노르만인들》 《아토스 산》 등이 있다.
– 역자: 이순호
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 주립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타타르로 가는 길』,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발칸의 역사』, 『제국의 최전선』,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바다의 제국들』, 『인류의 역사』, 『비잔티움』, 『위대한 바다』, 『발칸의 역사』, 『현대 중동의 탄생』, 『이슬람 제국의 탄생』, 『지리의 복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870~1945』(공역), 『코드걸스』 등을 번역했다.

○ 책 속으로
트로이 전쟁에 관해서는 역사적 증거, 아니 역사적 증거라 할 만한 것들도 남아 있다.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족이 남겨놓은 기록에 기원전 13세기 무렵 미케네가 소아시아에 대규모 원정대를 파견한 사실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히사를리크 유적지에서 발견된 아홉 개 유적층 가운데 여섯 번째 층에서 드러난 도시(일반적으로 호메로스가 말하는 트로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곳이다)에도 처참한 종말을 맞았음을 보여주는 갖가지 징표가 나타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슐리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적층을 계속 파내려가 발굴이 끝나기 이틀 전 두 번째 층에서 다량의 황금보물을 발견하는 횡재를 만났다. 그는 나중에 그것을 트로이의 헬레네가 썼던 장신구라고 세상에 공표했다. 그것도 모자라 용모가 빼어난 그의 그리스인 아내-실물도 보지 않고 아테네에서 우편주문으로 구한 아내였다-의 몸에 그것들을 걸치도록 한 뒤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알다시피 프리아모스 왕 시대보다 1,000년이나 앞선 시대의 것이었다. 딱한 슐리만, 그것도 모르고. – 상권 p.32~33 중에서
로마인들 사이에 카이사르는 교양 있는 지식인, 원로원의 뛰어난 웅변가, 빚을 내서라도 후하게 선심 쓰는 인물, 남녀를 가리지 않는 소문난 바람둥이, 그럼에도 로마의 대신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에 뽑힐 만큼 정치수완이 능란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간단히 말해 그는 유능하고 매혹적이었으나 신뢰감은 없는 인물이었다. 기원전 60년 카이사르는 에스파냐에서 로마로 돌아왔다. 에스파냐에 총독으로 있는 동안 몇 차례 소소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어 개선식을 거행하기로 약속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졌다. 카이사르는 집정관이 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정관에 입후보하려면 개선식이 치러지기 오래전에 로마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고 그러자면 [속주 총독 사임과 함께 군사지휘권도 내놓아야 했으므로] 개선식의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는 집정관 입후보를 대리인이 할 수 있도록 요청하여 그 문제를 돌파하려 해보았으나 그 요청은 기각되었다. 그러자 그는 개선식의 권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로마로 직행했다. 카이사르에게는 영광보다 권력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 상권 p.71 중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726년 초대 도제가 취임하여 1797년 마지막 도제가 사임할 때까지 1,071년 동안 존속했다. 그것은 비잔티움 제국의 존속기간보다 50년 짧은 기나긴 기간이었다.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베네치아는 정치적?입헌적?상업적?예술적?건축학적으로 세계의 불가사의가 되어 지중해의 안주인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그런 나라 국민들답게 천년의 사직이 무너져 내리려 할 때 투르크족에 맞서 식민지를 방어하며 곧잘 보여주던 용기와 인내라든가 50여 년 뒤 그들 자손이 오스트리아군에 대항하며 보여주던 투혼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었다면 멸망이 그처럼 치욕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성벽에서 보여준 비잔티움 시민들의 영웅적 저항까지는 아니더라도 옛 베네치아의 기상을 조금이라도 펼쳐 보였다면 세레니시마는 명예로운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베네치아가 맞은 최후의 비극은 멸망이 아닌 멸망한 방식에 있었다. – 하권 p.164~165 중에서
메테르니히가 ‘이탈리아’를 ‘지리적 표현’이라고 한 말은 진실이었다. 역사상 이탈리아 반도에는 단 한 번도 단일국가가 들어서 본 적이 없었다. 로마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탈리아는 단지 로마의 일부-그것도 언제나 아주 조그만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중세 초 (아니 어쩌면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부터 이탈리아라는 국가적 개념은 아득한 이상으로나마 존재하게 되었다. 단테와 페트라르카, 나중에는 마키아벨리도 이탈리아를 꿈꾸었다. 지리적.언어적으로 볼 때 그것은 이치에 닿는 말이었다. 그러나 중세의 이탈리아 반도는 도시들 간의 불화와 경쟁, 구엘프파와 기벨린파 간의 정파투쟁, 황제와 교황 간의 세력다툼으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통일은 비로소 실현 가능한 무엇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 그때 콰란토토 [1848년]가 도래했던 것이고 그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꿈이 돌연 실현 가능한 목적이 된 것이었다. – 하권 p.307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반만년 역사를 종횡으로 누비는 다채로운 지중해 문명의 흥망성쇠사!
선명한 삽화로 책의 묘미를 더해주는 이 책은 존 줄리어스 노리치라는 위대한 역사가의 재능, 안목, 학식이 녹아든 최고의 역작으로, 그가 이 시대의 가장 권위 있고 인기 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집약된 완결판이다. 위트 넘치는 문장, 철저한 자료조사, 깊이 있는 역사적 안목이 뒷받침된 탁월한 해석은 드라마틱한 사건, 다종다양한 인물군, 강렬한 내용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노리치는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 문명에서 현재의 지중해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반만년의 역사를 종횡으로 누비며 문화, 교역, 정치적 동맹과 대립, 종교운동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추적해간다.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페르시아 전쟁』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역사 전문 번역가 이순호가 번역을 맡았으며, 흑백과 컬러 화보 80컷 외에도 왕가 가계도와 당시 지도를 상, 하권에 모두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꾸몄다.
- 대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최고의 지중해 관련 역사서
『베네치아의 역사』 『비잔티움』 3부작(국내에는 『비잔티움 연대기』로 출간) 등 걸출한 작품을 쓴 명망 있는 저술가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야심작! 노리치는 이 책에서 40년 내공이 느껴지는 탁월한 필력과 시종일관 잃지 않는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필치로 이집트 문명의 찬란함, 유럽과 아시아 일대에 물품과 더불어 지식도 전해준 위대한 해상교역국 페니키아가 거둔 놀라운 성과, 그리스인들이 행한 지대한 공헌, 강대한 로마의 부상을 논하고,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양대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비잔티움과 이슬람이 제4차 십자군의 거창한 모험으로 정점을 맞이한 데 이어 유럽이 힘차게 재도약하는 과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나아가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중세 유럽의 왕가들과 황제-교황 간의 대립으로부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전쟁들, 이사벨 여왕 치세하의 에스파냐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투쟁과 오늘날 지중해 삶의 특징이 된 현대적 감각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눈부신 지중해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오천년의 장엄한 대서사시이자 흥미 만점의 서양판 삼국지
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역사적 안목으로 취사선택한 갖가지 드라마 같은 사건, 다채로운 인간, 명쾌한 논리가 어우러져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인 죽은 사실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발군의 필치와 위트 있는 서술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역사서로 가히 서양판 삼국지라 할 만하다. 반만년 묵은 무채색의 바다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살아 움직이고 피가 튀고 논쟁이 벌어지는 유채색의 바다로 만든 것이다. 이집트인,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비잔티움인, 아랍인, 교황, 프랑스인, 베네치아인, 에스파냐인, 해적들이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지중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유혈 낭자한 전쟁을 벌이고, 숨 막히는 외교전을 펼치고, 섬뜩한 음모를 꾸미고, 수지맞는 장사를 하는 한편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다. 그리하여 때로 지중해는 피로 물들고, 해적의 천국이 되고,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바다가 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주연과 조연은 수시로 바뀌고 나라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오천년의 장엄한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 문명의 요람 지중해에 담긴 역사적 가치 환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지중해는 유럽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 무게중심이 대서양으로 이동하여 지중해의 위상도 이제는 예전과 같지 않지만 동서양 격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트로이 전쟁과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나고, 기독교가 보편적 세계 제국의 품 안에서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여 로마 제국 멸망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유럽이 태동할 수 있는 창조적 힘으로 작용하고, 르네상스가 꽃핀 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중해의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제 그 문명의 요람 속으로 풍덩 빠져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어떻게 직조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알아보는 지적인 역사기행에 나서보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