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철학적 인간학 (哲學的 人間學)
막스 셸러 / 정음문고 / 1987.3.1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인 독일 철학자 막스 셸러 (Max Scheler : 1874~1928)는 1928년 그의 저서인 ‘우주에서의 인간의 지위’ (Die Stellung des Menschen im Kosmos)를 출간하며 현대적인 철학적 인간학을 말했다.
‘철학적 인간학’ (哲學的人間學)은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철학적 사고와 경험적 조사에서 대답하려는 학문으로, 일반적으로 철학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민족학, 문화 인류학, 생물학적 인간학 등 다른 여러 학문 분야와 연관성이 있다.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sche Anthropologie)’의 창시자인 막스 셸러의 사상을 매우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작자의“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종래의 이성처럼 새로운 철학적 물음을 형성하는 근본 전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전문 과학에서 말하는 ‘인간’이라는 말의 보편적 의미와 존재 성격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종래의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철학과 과학을 인간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매개로 해서 오늘날 새롭게 종합하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철학적 인간학이란 의미상 ‘인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가리킨다. 인간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근본 특징에 대한 것이며, 역사적으로 볼 때 철학은 이러한 인간의 근본 특징을 전제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셸러는 오늘날 문제 제기되는 철학적 인간학이 종래의 ‘인간론(Menschenslehre)’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종래의 철학에서 설명된 인간의 근본 특징이란 인간의 다른 문제(예를 들어 ‘인식’이나 ‘실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청된 근본 전제였다. 철학적 인간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학적’이라는 말과 ‘인간학’이라는 말을 분리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학이란 본래 ‘동물학(Zoologie)’의 한 갈래인 사실과학의 분과를 가리키는 말이고, 종래의 철학적으로 다뤄져 온 인간론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인간이 철학과 과학을 매개하는 새로운 종합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셸러는 현대인이 인간에 관한 개별 과학적 지식과 부분적 이해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에 관한 종합적인 이해, 즉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통찰은 결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전체적 통찰이 결여된 원인을 셸러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즉 오늘날 인간 지성을 대변하는 실증과학은 모든 것을 ‘감각적 소여(sense-data)’로 환원해 봄으로써 인간조차도 한갓 육체에 갇힌 존재로 파악할 따름이다. 여기서 종래의 절대자로 취급되어 온 ‘신’은 공허한 반향(反響)일 뿐이고, 오히려 실증과학은 유한한 사물과 선을 절대자의 위치로 고양시킴으로써 이로부터 물신숭배 또는 우상숭배가 나타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물신숭배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실증과학의 한계에서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셸러가 지향하는 철학적 인간학의 당면 목표이고, 이 목표를 수행해 가는 가운데 인간 그 자체의 전체성도 회복된다는 것이 철학적 인간학의 주요 쟁점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이란 단순히 육체적 존재도, 신의 피조물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존재는 세계와 신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세계와 인간, 신의 3자 관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인간의 전체성도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셸러는 세계·인간·신의 3자 관계의 해명을 통해 철학적 인간학을 구축하려 했다.
셸러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철학적 인간학’에 관한 종합적인 고찰을 담은 저서의 출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1928년 돌연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죽기 3주일 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가 그의 철학적 인간학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이 책은 본래 1927년 카이절링(Keyserling) 백작이 주관하는 ‘지혜 학교(Schule der Weisheit)’에서 행한 강연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런 만큼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모두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사전 지식 없이 읽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책이다. 칸트 철학과 후설의 현상학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셸러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셸러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셸러의 저작 속에는 윤리학과 종교철학, 세계관학, 지식사회학, 철학적 인간학 등에 관한 그의 방대한 철학적 관심이 서로 교차하면서 또한 박학다식한 필치로 아무 여과 없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는 1928년에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라이흘(O. Reichl) 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1929년에 재판, 1930년에 3판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출판 금지되었다가 1947년에 뮌헨(Munchen)의 님펜부르거(Nymphenburger) 출판사에 의해 4판과 5판이 나왔고, 다시 1962년에는 스위스 베른(Bern)의 프랑케(Francke) 출판사에서 6판과 7판이 나왔다. 특히 7판은 셸러의 세 번째 부인인 마리아 셸러(Maria Scheler)와 프링스(Manfred S. Frings)가 교정하고 보완한 책이다. 그리고 8판은 1975년에 출간된 셸러 전집 제9권(7∼71쪽)에 수록되어 있는데, 셸러의 다른 저서에 비해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되었는데, ‘철학적 인간학’ (신상호 역, 정음사, 1975), ‘인간의 지위’ (최재희 역, 박영사, 1976), ‘교육학과 인간학’ (하영석·허재윤 역, 형설출판사, 1977),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진교훈 역, 아카넷, 2001) 등 네 종류가 있다.

○ 저자소개 : 막스 셸러 (Max Scheler, 1874 ~ 1928)
막스 셸러는 독일 남부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 예나대학교에서 의학, 천문학,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1902년에 예나대학교 강사 시절에 후설 (E. Husserl)을 만나 현상학적 방법론에 관해 연구했다.
그 후 쾰른대학교와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셸러는 사회학과 철학,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적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현상학적 방법에 의한 ‘실질적 가치윤리학’의 정립과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만하임 (K. Mannheim)과 더불어 ‘지식사회학’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 (1916)과 『가치들의 전도에 관해(Vom Umsturz der Werte)』 (1919), 『공감의 본질과 형식』 (1923), 『사회학과 세계관학에 관한 저작집』 (1923), 『지식의 형태와 사회』 (1926),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 (1928) 등이 있고, 1980년에는 셸러 전집이 스위스 베른의 프랑케 출판사에서 15권으로 간행되었으며, 이후에도 계속 유고집이 발간되고 있다.
– 역자 : 신상호

○ 독자의 평 1
철학적 인간학이란 종래의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철학과 과학을 인간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매개로 해서 오늘날 새롭게 종합해보려는 시도이다. 철학과 과학을 매개하려는 이러한 종합이 요구 되는 까닭을 셸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근세이후 자연과학의 발달은 인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20세기 초에 와서 우리는 인간 이해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양차대전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대인의 정신적 상황을 셸러는 인간이 “그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동시에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한 잘 알고 있는” 자못 심각한 상태로 파악한다. 이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통찰이 결여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원인은 모든 것을 감각적 소여로 환원해 봄으로써 인간조차도 육체에 갇힌 존재로 파악한 실증과학에 있다. 실증과학은 유한한 사물을 절대자의 위치로 고양시킴으로써 이로부터 물신숭배가 나타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물신숭배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실증과학의 한계에서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셸러가 지향하는 철학적 인간학의 목표이다.
셸러는 다른 유기체가 환경세계umwelt에 구속되어 있는데 반해, 고유의 환경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인간학을 시작한다. 셸러는 세계 – 인간 – 신의 3자 관계의 해명을 통해 철학적 인간학을 구축하려 했다. 철학적 인간학은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물음에서 해명의 과정을 걸친다. 첫째 인간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란 무엇인가? 둘째로 인간의 본질 징표는 무엇인가? 셋째로 정신의 작용 중심으로서의 인격을 묻는다. 넷째로 인격과 세계의 상관성을 해명하며 다섯째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고 있다. 이중 가장 핵심인 세계 개방성 문제를 살펴보자면, 세계 개방성이란 인간의 정신 작용을 통해 환경을 사고의 상관태인 세계로 고양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환경이 세계로 고양됨으로써 우리 인간은 sosein에 따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쉘러에 있어서의 인간학의 목적은 우주 전체와 관련해서 인간의 본질과 위치를 규정하는 것이다.

○ 독자의 평 2
‘철학적 인간학’ (哲學的 人間學)이란 인간에 관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학’이라는 용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596년에 최초로 ‘인간학’이라는 제목 아래 저서를 내놓은 자는 프로테스탄트 인문주의자인 카스만 (O. Casmann)이다. 이것이 18, 19세기부터 생물학, 인종학, 민속학의 분야로 발전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인류학이 첨가되어 오늘 날에 이르러 이와 같은 분야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과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장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종교적 인간학 혹은 철학적 인간학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적 인간학은 이전의 생물학적, 물리적 인간학과 구분된다.
- 철학적 인간학의 시조(始祖), 막스 셸러 (M. Scheler, 1874 ~ 1928)
20세기의 철학적 인간학의 시조(始祖)로서 지속적이고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자는 막스 셸러 (M. Scheler, 1874-1928년)이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니체, 베르그송, 딜타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의 철학에 큰 영향을 준 자는 현상학 (現象學)의 대변자요 그의 스승이기도 한 훗썰 (E. Husserl,1895-1938년)이다. 그의 철학적 인간학의 기본사상을 보여주는 책은 사망 몇 주 전에 쓰여진 소책자 ‘우주 안의 인간의 위치’ (Die Stellung des Menschen im Kosmos, 1928년)인데, 비록 이 책은 100 페이지에도 미달하는 작은 책자이지만, 그의 유일한 철학적 인간학의 저서로서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을 탄생시켰고, 그 이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기념비적 명저가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의 인간론의 바탕을 이루는 세 가지의 이념으로서 유대교적, 기독교적 인간이념 (하나님의 피조물, 죄인,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상)과 고대 그리스적 인간이념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상) 그리고 현대의 인간이념 (진화론에 근거한 자연과학적 인간상)을 들고, 이 세 가지 유형의 인간학이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나 상호보완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인간에 관한 통일된 관념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새롭게 규명하기 위한 야심찬 시도를 감행했다. 그는 한 편으로는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비교함으로써 자연체계적 개념에서 본 인간상을 규정하려고 시도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인간에게만 특수한 위치를 부여하는 본질적,철학적 개념에서 본 인간상을 규정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생명체의 심적인 세계의 여러 단계를 나누었다. 즉 그는 외적인 관찰의 대상으로서는 객관적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내적으로는 마음 (정신, 영혼)으로서 표현되는 생명체의 주관적, 자각적 현상의 단계를 네 단계로 나누었다.

1) 최하의 첫 심적인 단계로는 식물의 본질을 이루는 무의식적,무감각적,무관념적 ‘감정충동’ (感情衝動)이 있다. 이 단계에서는 감정과 (영양적, 성적) 경향성, 목표성이 아직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를 들면 광선에 대한 식물의 반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반응은 항상 동일한 것이지만, 아무런 감각, 연상작용, 조건반사도 없다. 그래서 식물은 기억능력, 학습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동물의 감정충동은 식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장과 생식을 위한 일반적 충동이다. 감정충동은 인간에게도 존재하고 있다. 모든 충동과 일시적 감정의 통일체를 의미하는 인간의 충동은 뇌수 계통에 자리잡고 있고, 일차적으로는 저항의 체험으로 나타난다.
2) 둘째의 심적인 단계는 ‘본능’ (本能)이다. 이것은 무의식적,무감각적,무관념적 감정충동에 뒤따르는 두 번째의 심적인 본질의 형식으로서 하등동물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본능의 특징은 의미-목적 지향성 (자신이나 남의 완전함과 유익, 특정 목적에 합당함), 주기성 (週期性), 반복성 (유형적으로 반복하는 상황들만을 향해 관여하면서 언제나 종에 유용한 구실을 함), 유전성 (경험과 학습에 의해 습득되거나 전문화될 수 없음)에 있다.
3) 셋째의 심적인 단계는 ‘연상기억’ (聯想記憶)이다. 이것은 동일한 행동의 횟수에 의존하여 이전의 행동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개변하여 가는 능력으로서 모든 동물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행동개변 (行動改變)은 생활에 적합한 방식으로, 기교적으로, 서서히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런 능력은 습관에 의해 획득되고 전문화될 수 있으며, 파블로프 (I. P. Pavlov)가 발견한 ‘조건반사’ (條件反射)라는 기억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기억의 원리와 모방과 모사 (模寫)라는 두 현상들 간의 연관에 의하여 전통 (傳統)이라고 일컫는 것이 비로소 생겨나는데, 일회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의 사건을 자각적으로 상기하고 다수의 상기작용들을 상호 간에 동일한 것으로 끊임없이 확인해 나가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그리고 연상의 원리는 본능과는 달리 개체의 생명체를 종적 예속성 (種的 隸屬性)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생명을 풍요하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즉 본능으로부터 해방된 충동은 쾌락의 원천이 된다 (자위행위의 예). 그러나 생명의 기쁨이나 정신적 기쁨보다 순전히 기능적, 상태적, 감정적 쾌락을 더 지향하는 생활태도는 개인과 민족의 노후현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적 쾌락과 기능적 쾌락을 구분하는 가능성을 동물보다 더 크게 갖고 있기 때문에, 비록 동물 이하의 상태로 떨어질 순 있어도 결코 하나의 동물일 수는 없다.
4) 넷째의 심적인 단계는 ‘실천적 지능’ (實踐的 知能)이다. 이것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이전의 행동의 횟수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의미있는 행동을 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연상기억과 구분된다. 이것은 선이나 복리를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 선택하는 능력, 생식의 과정에서 동족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능력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지능은 갑적스럽게 솟아오르는 통찰, 생산적,창조적 사유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동물 (침팬지)에게도 아주 단순한 지능적 행동이 있다고 보는 자가 있는 반면에 (W. Köhler), 동물에게는 기억과 본능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지능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보는 자들도 있지만, 몇 개의 경우에는 동물에게도 부정할 수 없는 지능적 행동이 있다 (동물들의 매장행위, 쾌적한 것보다 유용한 것을 택하는 우선적 선택능력, 선물, 융화, 우애와 같은 요소들).

이처럼 생명체의 심적인 현상의 제 단계를 구분한 쉘러는 이제 ‘우주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탐색한다. 동물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인간도 다만 양적으로만 동물과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질적으로는 동물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물과 차이점을 갖는가? 쉘러에 의하면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점은 단지 지능과 선택능력에 있지는 않다. 인간의 본질과 특수한 위치는 그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다. 즉 인간이 동물과 본질적으로 차이점을 갖도록 하는 새로운 원리 즉 미지수 X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쉘러는 정신 (Geist) 혹은 인격 (Person)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신 혹은 인격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쉘러에 의하면 모든 종류의 명령, 압박, 의존성, 구속성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쉘러는 이것을 ‘세계개방성’ (世界開放性)이라고 부른다. 동물은 충동과 환경 즉 세계에 고착되어 있는 반면에, 인간은 무제한적으로 세계로부터 벗어나 개방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는 환경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식물과 동물은 자기의식이 없고 자기를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못한다. 그 반면에 인간은 정신집중, 자기의식, 대상화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쉘러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집중, 대상화의 능력은 세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세계 밖에 있다. 정신 혹은 인격은 생명의 진화에 근거해 있지 않고, 오로지 만물의 최고 원인인 신 (神) 자체에 근거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이 세계를 초월할 수가 있는 것이다.
쉘러는 자연과학적 인간상과 그리스적 인간상과 기독교적 인간상을 통일시키고 종합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이 세 가지 인간상을 생명체의 심적인 현상의 도식 안에서 다같이 수용하면서도, 자연주의적, 동물적 인간이해로부터 시작하여 합리주의적, 이성적 인간이해를 거쳐 초이성적, 신앙적 인간이해로 진화하는 인간상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는 충동적인 존재 (식물)로부터 시작하여 본능적인 존재 (하등동물)와 연상기억의 능력과 실천적 지능을 갖는 존재 (고등동물)를 거쳐 이 모든 것을 지니면서도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정신적, 인격적 존재(인간)로 진화하는 인간상을 대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적 인간상에 도달한 것 같다. 그리하여 그는 전통적인 제 인간이해를 상호 보완하고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의미있는 인간상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가 실증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초실증적 영역 즉 인격과 정신의 영역에까지 이르는 폭넓은 인간상을 제시한 점은 인간학의 분야에서 그가 남긴 독특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도 결국에는 인간을 무한히 ‘열려 있는’ 존재로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의 ‘세계개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해’는 앞 장에서 설명한 ‘진화론적 인간이해’와 ‘과정신학적 인간이해’와 함께 ‘열려 있는 인간’을 지원하고, 그래서 기독교의 인간이해를 지원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인간이해를 선교를 위한 ‘접촉점’을 설정하는 단초만이 아니라 질문 (열림)과 대답 (계시)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단초로서도 수용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철학적 인간학은 기독교적 인간이해의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데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시 부연해서 말하자면, 열린 정신적,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기독교적 인간이해와 접촉하고 질문-대답의 구조 안에서 후자와 관련맺으며, 또 후자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해석학적 패러다임으로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쉘러는 때로는 식물과 동물을 과대평가하거나 인간을 과소평가한 점 외에도, 인격의 개념을 너무 추상적으로 설명하거나 인격을 신적인 본성을 갖는 것으로까지 지나치게 절대화한 점은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가 최종적으로 신의 영역 안으로까지 인간이해를 확장시킴으로써, 인간의 특수성과 존엄성을 한없이 높여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해한 신은 초기와는 달리 사물 이전이나 그 후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물과 함께 있는 신이다. 즉 이 신은 영원히 세계를 현실화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신, 미완성의 신, 생성되어 가는 신이다. 그리고 신이 생성되는 유일한 장소는 인간, 인간의 자기의식이다. 그러므로 이 신은 대상화할 수 없는 신이다. 따라서 여기서 유대교적, 기독교적 인격신론은 무너지고 신비주의적 범신론 (汎神論) 혹은 만유유심론 (萬有唯心論)만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무로부터의 창조’ 신앙도 무너진다. 신의 생성은 인간에 의존하고 인간은 신의 생성에 의존한다는 쉘러의 사상은 헤겔의 사상보다 더 철저히 세계내재적이다. 여기서 신도 결국에는 시간의 생성물이 되고 말며, 신을 생성시키는 시간 외에는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