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 : 베른/프랑크푸르트 시기
G. W. F. 헤겔 / 그린비 / 2018.11.15
– 헤겔이 청년기에 쓴 종교 관련 단편을 묶은 책
베른 (1793 ~ 1796년)과 프랑크푸르트 (1797 ~ 1800년) 시기에 쓰인 단편을 모았다. 당대의 주류 사상인 기독교에 대한 청년 헤겔의 통렬한 비판과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역사의식은 이후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의 원형을 이룬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것은 곧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 그의 후기 철학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단상들’이 추가되었고,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옮긴이 해제를 보완하였다.
○ 목차

옮긴이 해제
민중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들
예수의 생애
기독교의 실정성
엘레우시스 – 횔더린에 부쳐
독일 관념론에 대한 최초의 체계 계획
종교와 사랑에 대한 단편들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1800년 체계 단편
역사와 정치에 대한 단상들 – 베른/프랑크푸르트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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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이상주의 (理想主義, Idealismus) 철학의 이론을 완성한 거장. 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1793년에 스위스로 가서 당시 베른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인 폰 슈타이거 (von Steiger)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이 가문이 소장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폭넓고 심오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훗날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1801년 독일 동부 예나 (Jena) 대학교의 강사직에 임명된 후 불후의 명저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 1807년)을 썼고, 이어서 두 번째 저서인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1812년)을 출간하였다.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로, 1818년에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세 번째 명저인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년)를 출간하였다. 대학 강사 시절인 1802년에 당시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을 비롯해, 1822년 브뤼셀, 1824년 빈, 1827년 파리와 프라하, 칼스바트로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시, 공연, 오페라 등을 관람하였고, 특유의 독창적이고 진지한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 (Ästhetik oder Philosophie der Kunst) 강의를 하였으며, 이 내용을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 (Heinrich Gustav Hotho)가 정리하여 그의 사후 출간한 것이 바로 ‘미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이다.
일찍이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열아홉 살에 직접 겪은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루소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웠다.
근대철학과 문화, 사회 안에서 주체와 지식의 대상인 객체,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현상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던 헤겔은 1831년 병으로 사망했지만, 182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헤겔학파’를 통해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역자 : 정대성
196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보쿰 대학에서 ‘주체성에서 상호주체성으로’ (Von der Subjektivitaet zur Intersubjektivitaet: Die Auseinandersetzung von Habermas mit der Subjektivitaetsphilosophie)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관념론 시기의 철학 및 현대 사회정치철학과 관련한 논문들을 썼으며, 근대 한국철학의 담론 양상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반성문화에 대한 청년헤겔의 비판」, 「평등 자유주의적 정의이념의 철학적 함의와 그 한계에 대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넘어서」, 「서양철학의 수용과 언어의 문제: 이규호의 언어철학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저서로 『세상을 바꾼 철학자들』(공저, 동녘 2015), 『교육독립선언』(공저, 현암사, 2017)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청년헤겔의 신학론집』(헤겔, 인간사랑, 2005 / 그린비, 2018), 『비판, 규범, 유토피아』 (세일라 벤하비브, 울력, 2007), 『헤겔』(찰스 테일러, 그린비, 2014), 『언어, 의미 그리고 철학』(게오르크 W. 베르트람, 박이정, 2015),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2, 3, 4』(게오르크 루카치, 공역, 아카넷, 2018) 등이 있다.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교수로 있다.
○ 책 속으로
삶과 교리 사이에 장벽이 생기자마자, 혹은 삶과 교리가 분리되어 둘 사이에 아주 먼 거리가 생겨나게 되자마자 종교의 형식에 오류가 생겨난다. 즉 이 종교는 너무 많은 말잔치로 이뤄져 있다는, 혹은 인간에게 너무 과도한 경건함을 요구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적 욕구에, 잘 정돈된 인류의 욕망에 역행한다는, 아니면 이 종교에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혐의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한 종교에 대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면, 그리고 공공 축제에서는 아주 유쾌하게 즐기는 사람이 성전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면, 이 종교의 형식은 너무 황량한 외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종교 자체의 필요를 위해 삶의 기쁨이 희생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민중중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들」, 72~73쪽)
실정적인 가르침, 역사에 근거한 가르침들에 필연성의 성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 이성의 특징이다. 그리고 또한 이성은 그 가르침들에서 이성적 진리의 또 다른 특징인 보편성을 부과하거나 발견해 낼 수조차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신 존재 증명들 중 소위 인종학적 신 존재 증명 (ex consensu gentium)은 항상 하나의 위치를 가졌으며, 그 증명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지옥에서조차 거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종종 어떤 위안을 얻지 않는가. (「기독교의 실정성」, 284쪽)
순수한 심정은 사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심정은 사랑이 완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사랑은 완성을 방해하는 어떤 힘, 즉 어떤 적대적인 것이 여전히 존립한다는 사실에 대해 질책한다. 수치는 육체를 회상함으로써만, 즉 개인적인 현재에 의해서만, 개별성을 느낄 때 출현한다. 수치는 죽은 것을 산출하기 위한, 즉 재산을 산출하기 위한 두려움이 아니라 바로 그것들 자체에 대한 공포이다. 그런데 사랑이 분리 가능한 것을 약화시키자마자 이 공포는 이 분리 가능한 것과 더불어 소멸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공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수치에 대한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이 공포에 이끌려 확고한 대립물이 자신에 대립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분리들을 지양한다. (「종교와 사랑에 대한 단편들」, 447쪽)
예수는 자신의 민족정신 전체와 투쟁하였고, 또 자신의 세계와 철저히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그의 운명의 끝은 적대적인 민족정신에 의해서 압살당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파멸해 버린 사람의 아들을 예찬하는 이유는 그가 세계와의 모든 관계 자체를 지양해 버렸다는 부정적 측면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본성이 의식적으로 타락의 발 아래에 굴복하거나 무의식적으로 타락에 물들어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하지 않고, 비자연적인 세계를 거부했다는, 즉 차라리 투쟁과 몰락 속에서 그 세계를 구원하고자 했다는 긍정적 측면 때문이다. 그는 자기 한 사람의 몰락이 필연적임을 의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제자들에게 그 필연성을 설득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본질과 예수의 인격체를 분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단지 신자로만 남아 있었다.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610쪽)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청년기 기독교 비판에서 읽는 헤겔 철학의 단초들!
「민중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들」, 「예수의 생애」,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등 헤겔의 신학 관련 글 9편 수록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 철학자 헤겔 (G. W. F. Hegel, 1770~1831), 그러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는 청년기 저작,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비판의식과 역사의식을 잘 보여 주는 종교 관련 단편들을 묶은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이 그린비출판사 프리즘총서로 재출간되었다. 2005년 첫 출간 이후 국내 헤겔 연구의 주요 자료 중 하나로 손꼽혔으나 절판되었다가, 책의 가치와 중요성에 공감한 번역자, 총서 기획자, 출판사의 노력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국경 너머로부터 불어오는 프랑스혁명 (1789)의 자유풍 속에서 헤겔은 그 어떤 때보다도 시대의 경직된 제도와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역동적으로 대항했다. 그리고 그 억압성의 정점에 있었던 것이 바로 기독교이다. 헤겔에게 독일 사회의 파편적 개인주의를 생산해 내는 기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기독교 문화였으며, 그는 독일 사회의 후진성을 기독교 문화가 가진 억압적 성격에서 찾았다. 이런 이유로 헤겔은 이 시기에 주로 종교 문제에 천착하였는데, 종교의 개혁이 없이는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른 (1793~1796년)과 프랑크푸르트 (1797~1800년)에서 지내는 동안 그가 쓴 여러 글들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 책은 「민중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들」, 「예수의 생애」, 「기독교의 실정성」,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등의 중요한 논문들 이외에도 다섯 편의 논문이 더 실려 있다.
특히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단상들」이 추가되었고,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옮긴이 해제를 보완하였다.
– ‘청년’ 헤겔, 헤겔 사상의 독해를 위한 중요한 지침
유럽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다 간 헤겔은 최초의 체계적인 저서로 1807년 ‘정신현상학’을 출판하였다. 청년기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저작은 그 사상적 함의는 두고라도 해독 자체가 문제가 될 만큼 난해한 철학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저작 이전의 청년기 수고들에 주목하여 헤겔 사상의 발전사를 연구하게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헤르만 놀 (Herman Nohl)은 1907년, 흩어져 있던 청년기 헤겔의 수고를 모아 ‘헤겔의 청년기 신학 저술들'(Hegels theologische Jugendschriften)로 편집했는데, 이는 헤겔 후기 철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그리스의 비극, 도덕성, 계몽, 사랑, 삶, 반성 등에 대한 그의 평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난해한 후기 저작들의 해석을 위한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초기 사유에는 후기의 도식적 사유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독특한 사상이 함유되어 있다는 데서도 청년 헤겔은 주목을 받는다. 청년 헤겔 연구의 선구자인 딜타이가 20세기 초에 자신의 생철학의 단초를 청년 헤겔의 ‘삶’ 개념에서 이끌어 낸 것이나, 하버마스가 청년기의 단편들에서 후기의 체계화된 주관주의 대신 상호주관성 이론의 단초들을 발견해 낸 것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청년 헤겔은 자기 시대의 경직된 제도와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그 어느 시기보다 비판적이었다. 그의 비판의식은 ‘실정성’ (율법성 혹은 경직성), ‘운명’ 등의 개념으로 요약된다. 실정성은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사회의, 특히 종교의 경직된 속성을 표현하는 개념이며, ‘운명’은 현실체제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가 종교, 특히 기독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당시 유럽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 문화 등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유럽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의 자유의 이념은 그의 비판의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독일 사회의 분열과 후진성의 뿌리를 기독교 문화에서 찾았기 때문에 사회개혁을 위한 종교개혁의 필연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 시기의 커다란 네 개의 수고 모음집인 ‘민중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 (1794/94), ‘예수의 생애’ (1795), ‘기독교의 실정성’ (1795/96),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1798/1800)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쓰였다.
– 화석화된 물신신앙을 넘어 민중종교를 꿈꾸다
사회에서의 종교의 근원적 힘을 인정했던 청년 헤겔은 ‘민중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에서 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민중종교’를 기획한다. 기독교가 민중종교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 사적인 기복신앙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의 현실적인 삶과는 유리된 추상적인 율법성, 즉 오성적인 객관성 때문이다. 헤겔이 ‘물신신앙’ 혹은 ‘객관종교’라고 부르는 이 종교는 상상력이 살아 있는 주관종교와는 구분된다. 헤겔은 객관종교를 박제된 생물에, 주관종교를 자연에 놓여 있는 생물에 비교하였다. 객관종교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화석화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 환상의 무가치와 차가운 오성의 추론만을 내세우는 당시의 시대정신인 계몽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헤겔의 관심은 점차 기독교의 창시자와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예수의 생애’에서 그는 칸트의 도덕성 개념에 의지하여 예수의 행위를 인간의 실천이성을 일깨우기 위한 가르침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여기서 기적이나 부활과 같은 초현실적인 것이 거론되지 않는 이유이다. ‘기독교의 실정성’ 역시 종교를 주관성, 도덕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가 근원적으로 도덕적인 종교였음을 보이고자 한 ‘예수의 생애’와는 달리 여기서는 기독교의 실정성, 특히 역사적·현실적 기독교의 경직성을 보여 주고자 한다. 실정적 신앙이란 어떤 권위에 의해 주어진 교리 체계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신자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의 명령에서 온 것이며,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며,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니라 죽은 신앙이다.
베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한 후 헤겔은 실천이성의 도덕적 명령 역시 살아 있는 전체를 존재와 당위로 구별하고 당위가 존재를 지배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에 주의한다. 이 말은 그가 도덕성을 더 이상 주관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 단편들의 모음인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은 이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여기에서 도덕성이란 개별자의 보편자에의 종속, 개별자에 대한 보편자의 승리를 의미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도덕법 역시 권위를 본질로 하는 유태교적인 지배 구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 글에서 칸트의 윤리학은 칸트 자신이 극복하고자 했던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보다 더 열등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글에서 헤겔은 기독교의 원리인 사랑이 유태의 율법이나 칸트의 도덕성보다 뛰어난 인간의 살아 있는 능력이긴 하지만, 삶의 총체성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는 직접성의 원리임을 보인다. 사랑에 기반을 둔 예수의 종교는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한 소규모 공동체, 예컨대 가족이나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삶은 그 규모의 크기 때문에 매개의 원리가 도입되어야 하고, 그런 한에서 직접성의 원리인 사랑이 국가나 사회의 총체성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의 기계론적 필연성을 설명하는 ‘운명’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근대 세계의 분열은 삶을 전체로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의 정신을 국가와 사회에 확대하여 적용한 기독교 정신의 운명적 결과라는 것이다. 사랑은 헤겔이 체계를 고려하기 시작한 예나 시대 이후 가족에서의 통일의 원리로 자리 매김한다.
– 종교, 통일성을 향한 염원이자 갈구
청년 헤겔은 절대적 삶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는 것이 종교라고 하는데 주저 없이 동의한다. 왜냐하면 종교에 대한 충동은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한 욕구로서 필연적으로 분리되어야 했던 것을 신속에서 다시 통일하고자 갈구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종교적 행위들을 가장 정신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이는 종교에서가 아니라 철학에서 절대자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하는 그의 후기 사상과 확실히 구별된다. 청년 헤겔의 이러한 생각은 유물론적인 경향을 보인 프랑스 계몽주의와는 달리 종교 속에서 인간의 전인적 형태를 발견하고자 한 레싱 등 독일 계몽주의자들의 영향 아래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찢겨진 운명을 치유하고 삶의 총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종교의 역사적 모범을 이 시기 헤겔은 그리스의 자유로운 종교에서 봤다. 그의 ‘미적 종교’, ‘민중종교’ 등의 이름은 그리스의 종교를 예술적으로 채색한 종교상이었다. 현실적 분석이 아닌 예술적 상상에 의한 그의 그리스상은 예나 시기 이후 역사와 경제 등 실증학문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그 힘을 상실하게 된다. 역사적 진행의 필연성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성숙기 헤겔은 소위 변증법적 필연성에 기초한 체계를 그려 나간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