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케테 콜비츠
카테리네 크라머 / 실천문학사 / 2004.9.15
- 독일이 낳은 천재 여류판화가의 삶의 행적, 20세기 전반의 격동기를 뜨겁게 살다 간 독일의 여류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삶과 작품세계를 재조명한 책

콜비츠는 소외받는 계층을 끌어안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만의 예술로 표현하며, 민중과 함께 시련과 고통의 길을 걸어가려 했다.
판화의 세계를 독보적인 위치로 끌어올린 판화가, 프롤레타리아 미술의 선구자, 미술의 기능과 역할을 사회 속으로 제고시킨 작가 등의 찬사를 받는 케테 콜비츠의 행적과 작품을 살펴본다.
생전에 남긴 편지와 일기를 함께 수록하여 그녀의 작품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 목차
케테 콜비츠 예술의 본질과 영향력ㆍ007
유년기와 초기의 명성ㆍ035
행복한 시절ㆍ073
1914년 이전ㆍ115
전쟁일기ㆍ153
1920년대ㆍ169
1933년 이후ㆍ241
인간과 작품ㆍ289
연보ㆍ326
해설ㆍ333
찾아보기ㆍ350

○ 저자소개 : 카테리네 크라머
카테리네 크라머(Catherine Krahmer)는 1937년 동프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으며, 옥스퍼드, 뮌헨, 파리에서 사회학, 문학, 예술사를 공부했다.
파리에 살면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리하르트 데멜과 앙리 알베르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과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의 편지 모음 등 두 권의 서한본을 준비 중이다.
– 역자: 이순례
– 역자: 최영진
○ 책 속으로
케테 콜비츠의 작품과 그 영향은 역사적 맥락을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흔히 ‘유행에 맞지 않는’것이라고 불려왔던 것들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는 저 유명한 논문「예술의 탈인간화」(1925)에서 현대예술은 점점 대중을 잃고 있다고, 즉 본질상 대중적이지 못하며, 반대중적이기까지 하다고 힘주어 주장한 바 있다. 확증되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인 예술상황에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 스페인 철학자의 확신에 찬 주장에 대해 바로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그 반증 혹은 부정인 것이다. — p.291

○ 출판사 서평
- 케테 콜비츠, 20세기 전반의 격동기를 뜨겁게 살다 간 독일의 여류 화가! 판화의 세계를 독보적인 위치로 끌어올린 판화가! 혹은 프롤레타리아 미술의 선구자! 그리고 미술의 기능과 역할을 사회 속으로 제고시킨 작가!
20세기 현대미술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세계적인 판화가 콜비츠의 평전이 1991년 초판이 발행된 지 13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출간되었다.
그 명성에 비해 콜비츠에 대한 제대로 된 작품집이나 서적이 전무하던 때,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케테 콜비츠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 책은, 쇄를 거듭할수록 수많은 독자들에게 그녀와 그녀의 작품세계를 알리며 사랑을 받아왔다.
아쉽게도 당시의 조악한 도판, 편집 상태 등으로 끊임없이 재출간의 요구를 받아왔던 이 책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도판의 질을 최대한 높이는 한편 초판에서의 미숙한 오류를 바로잡고 빠져 있었던 주까지 완전히 보완해 혁명적인 그녀의 예술세계를 드러내는 데 손색이 없는 책으로 다시 선을 보인다.
- 독일이 낳은 천재 여류판화가의 사랑과 분노의 자화상
20세기 초반부터 그녀의 작품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이래 그녀에 대한 논평은 아직도 멈춰지지 않고 있다. ‘콜비츠야말로 위대한 판화가다’,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신예술 판화가다’, ‘사회민주주의 선전가다’, ‘비탄과 고난을 형상화한 화가다’, ‘종교적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등 모두 제 나름대로 취향과 감각과 지성을 동원하여 그녀를 논평하고 있으나, 누구나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을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예술세계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단 한 번이라도 콜비츠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그녀의 그림을 다시 보는 것처럼 눈앞에 생생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있는 그 감동의 이유를, 우리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이 작품의 중심인 예술의 위력
1867년,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자유주의적 기질을 지닌 가문의 딸로 태어나 26세에 첫 판화 연작 〈직조공 봉기〉를 발표한 이래, 콜비츠의 작품에는 언제나 ‘인간’이 중심이었다. 그녀는 ‘예술을 위한 예술’에는 철저히 반대했다. 가난한 노동자, 농민, 빈민, 핍박받고 수탈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함께 느끼며, 함께 싸우면서 그들과 공감상태에 되어서야만, 그녀는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자칫 건조하고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이러한 ‘현실예술’의 분야를, 그녀는 자기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결연한 움직임과 강인한 힘의 집결로써 개척하였으며, 그 예술의 극치는 ‘통일된 힘’으로써 우리에게 강렬히 육박해온다.
훗날 그 자신도 ‘의외였다’고 말한 바 있는 그녀의 성공은, 자기 내부로부터 무언가를 끌어내야 할 필연성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수없이 반복하여 자신의 작품을 검토하였는데, 그 이유는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작품이 반드시 지녀야 하는 필연성을 고심했기 때문이었다.
묘사된 대상에 자기를 동일화시키려는 노력, 해체되지 않은 인간의 형상을 보존해 예술적 감정과 인간적 감정이 일치되도록 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치열한 성실성으로부터 비롯된 예술의 위력을 한껏 발휘한다.

- 케테 콜비츠의 삶과 예술세계
그녀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직조공 봉기〉 연작부터 초기작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농민전쟁〉 연작에서, 우리는 생동감 있게 묘사된 민중의 삶과 그 속에 녹아든 뛰어난 상상력, 섬세한 필치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민중계급에의 복무를 목표로 치열하게 활동했던 작가에는 하인리히 만, 안나 제거스, 아르놀트 츠바이크 등을 비롯해 여러 명을 꼽을 수 있지만, 케테 콜비츠만큼 노동계급 내의 민중성을 포괄하였던 사람은 없었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에 종군한 아들 페터의 죽음은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작용하여, 저 유명한 목판화 시리즈 〈전쟁〉 연작을 탄생시킨다. 격정적인 몸짓, 상징적으로 과장된 파토스가 깜박거리는 양각으로 처리된 이 시리즈에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합리한 현실에 수긍할 수 없는 단호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더불어 공포에 마비되었던 힘과 충동이 새로이 솟아나고 있다.
콜비츠는 살아생전 숱한 반전 평화운동 작품을 제작하였다. 전쟁은 늘상 구체적으로 그의 삶에 고통으로 다가왔는데, 베를린 폭격으로 피난 생활을 감수해야 했으며, 50년 살던 집이 파괴되고, 숱한 작품이 파괴되는 피해도 피할 도리가 없었다. “하늘이여,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이 땅 위에 또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실린 작품 〈전쟁은 이제 그만!〉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반전 포스터이다.
이후 〈프롤레타리아트〉 연작부터 노년에 이르러 완성한〈죽음〉연작까지, 그녀의 예술에서 현실참여의 정신은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무엇인가 박탈당하고 억울한 사람들, 전쟁과 가난 같은 사회적인 문제로부터 평등세상을 염원하는 이상세계까지, 그녀의 조형적 발언의 폭과 깊이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녀는 자기 시대에 가장 깊숙이 뿌리박고 작품을 통해 이를 발언했으나, 나중에는 그녀를 통해 역사가 말을 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녀의 예술이 매우 감각적이라는 사실인데, 그녀는 흰색과 검은색만을 사용하는 판화에서 딱딱한 선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광선에 의한 명암의 대비만으로 완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콜비츠의 판화는 비할 바 없이 풍부하고 투명한 내면의 빛으로 비추어져 있고, 어떤 색채 그림보다 다채롭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노동자 빈민층의 현실묘사라든가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소재가 많았으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특히 1백 점도 넘는 자화상을 통해 콜비츠는 자신의 얼굴 모습을 빗대어 내면풍경을 형상화했는데, 이 자화상들은 그 시대에 대한 답변이자 증언으로써,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드러내는 기둥으로 우뚝 서 있다.
- 지구상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판화
그녀가 개척한 ‘현실예술’ 양식은 중국에서 신흥목판화운동을 불러일으켰으며 1980년대 한국의 민중판화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예술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녀는 삶과 작품이 분리되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즉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전통과 특정한 사회적 출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겪었던 것들을 형상화했다는 의미에서 자전적이며, 거기에는 예술과 삶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
이 세계에 가장 탁월하고 아름다운 판화를 남겨놓은 케테 콜비츠의 삶은, 지구상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판화이다.
지은이 카테리네 크라머는 그녀가 남긴 일기, 서한집, 작품집, 그밖에 카탈로그에 실려 있는 논평들과 논문들까지 모두 집대성하여 가장 훌륭한 케테 콜비츠의 평전을 완성했다.
이 책에는 그녀의 육성을 비롯해 작품의 동기가 되었던 내면풍경과 세계관,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자세가 밀도 높게 녹아들어 있으며, 〈직조공 봉기〉, 〈농민전쟁〉, 〈전쟁〉, 〈프롤레타리아트〉, 〈죽음〉에 이르는 연작 시리즈의 주요 작품을 비롯한 그녀의 대표작 70여 점이 수록되어 있다.

○ 독자의 평 1
나는 케테 콜비츠를 서경식의 ‘청춘의 사신’을 통해 알게되었다. 서경식은 ‘소년 시절에 읽은 루쉰의 글을 읽고 케테 콜비츠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된다.” 케테가 1941년 일기에 쓴 글이다. 케테의 작품을 보고, 이 글을 읽으면, 그녀의 예술 세계, 의식 세계의 단면을 알 수 있다.
케테는 너무나도 유명한, 독일 태생의 여류 판화가다. 판화뿐 아니라 중년 이후에는 많은 조각 작품을 남겼다. 그녀를 부르는 수식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케테 콜비츠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이 책은 그녀와 그녀가 살아가야 했던 시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세계(관), 예술가와 시대상, 예술 작품의 시대적 의미 등. 정말 격동의 20세기를 격동처럼 살아간 인물이 케테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만약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라는 의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케테는 항상 농민, 노동자, 여성, 아이 등 주변의 약자를 대변하고, 반체제 인사들의 편에 서 있었다. 케체는 어느 한 순간도 이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케테는 큰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고, 말년에는 손자를 일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가장 애절하고, 숙연해지는 곳은 바로 아이와 어머니를 주제로한 작품을 대면할 때다. 나는 케테가 누구를 대변하고, 누구의 편에서서 예술활동을 했는가라는, 그녀의 비판 정신과 양심을 존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시대의 비판 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숙연해한다. 저 외침,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라는 외침은 절규인 것이다. 분노인 것이다. 자신의 삶과 예술 양면에서 시대에 대한 성찰과 양심을 온전히 지켜낸 예술가가 케테 콜비츠다.
- 서경식의 다음 인용을 덧붙인다.
미술사가인 와까구와 미도리는 ‘케테 콜비츠가 아무리 비참한 장면을 묘사해도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세계 미술 사상 처음으로 콜비츠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서’ 전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청춘의 사신, 35쪽)

○ 독자의 평 2
생각
- 케테 콜비츠는 미술사에서 괄목할 만한 여성 미술가 중에 하나이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로써 맞닿아 있다. 그녀의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보면 마치 그녀의 자서전을 그림으로 읽는 것 같다. 케테 콜비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란 불행을 겪기 전에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순전히 자기 의지에 의해서 변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변화란 더디게 일어나는 것인가 보다.” 그녀의 책을 보며, 그녀의 말에 밑줄을 그으며 생각한다. 불행이란 단어가 삶에 들어왔을 때, 당황하지 말고 기회로 삼아 보는건 어떨까. 그 변화의 형태가 어떠하든, 언제나 나는 무언가의 변화를 항상 갈망하지 않았던가.
밑줄
- 어떠한 대작이든 그 작품의 가치는 역시 그 작품이 담고 있어 그로부터 뻗어나와 말하게 되는 정신이 결정한다. (아르트루쇼펜하위)
- 힘. 인생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살아가면서 꺾이지 않아-비탄도 눈물도 없이-강인하게 자신의 일을 꾸려가는 힘. 자신을 부정하지 말며, 도리어 일단 형성된 자신의 인간성을 더욱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 그것을 개선해나갈 것. 기독교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니체적인 의미에서의 개선 말이다. 요행심, 사악함, 어리석음을 퇴치하고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 내부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강화하라. ‘본질적인 인간이 될 것!” (일기, 1971.2)
- ‘아틀리에 예술’에 대해 그녀(케테 콜비츠)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왜 그런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관객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일반 관객을 위한 예술이 평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가벼운 작품도 그들의 마음에 들기는 하겠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소박하고 참된 예술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와 민중 사이에 이해가 성립되어야 하며, 그 가장 적절한 시기는 늘상 존재해왔다고 생각한다. 천재가 된다면 훨씬 앞서가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겠지만 좋은 예술가는 -나도 여기에 속한다고 자부하는데- 천재의 뒤를 쫓으면서 그동안 사라진 연결의 끈을 복구시켜야 한다. 순수한 아틀리에 예술은 비생산적이고 무력하다. 살아서 뿌리내리지 못하였기 떄문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일기, 1916.2.21)
- 정말로 어렵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내용이 삶 전반에 관계된 것이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정식화시킬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이다. (카프카)
- 예술가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인간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다. (조르주 브라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