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킬링 타임 :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철학적 자서전
파울 파이어아벤트 / 한겨레출판사 / 2009.4.30
- 지성적 작업으로 일생을 보낸 악동 철학자의 인생 고백록!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철학적 자서전 『킬링 타임』
파울의 개인적인 삶의 역정과 따뜻하고 정직한 그의 즐거운 이야기들을 엮었다. 중하류계층으로 살았던 빈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국제적으로 최고의 학문적 성공을 거두기까지 삶을 추적한다. 그는 자신의 삶의 기록들과 자신이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던 논쟁과 늘 고통 받았던 자신에 대한 의구심등을 풀어낸다. 이 책은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지성인 파울의 자화상으로 그가 1994년 사망하기 몇 주 전에 완성되었다.
조숙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희곡과 철학에 탐닉하던 고등학교 시절, 성악과 물리학을 전공한 배경. 나치시대의 군대 생활, 러시아 전선에서 부상해 일생 동안 육체적 장애와 성불구 통증에 시달린 일. 오페라 테너 가수로서 재능과 음악에 대한 집념, 비트겐슈타인과 브레히트 등과 운명적 만남. 무수한 연애와 네 번의 결혼 등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장에 가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뇌종양으로 죽는 순간까지 그와 함께 했던 그라지아에 대한 지고한 사랑과 신뢰는 감동을 전한다. 파울 파이어아벤트가 진정 바란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닌 사랑의 생존’으로 마지막 장에 이르러 냉정하고 비판적이었던 그의 전혀 다른 일면을 보인다. 이 책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솔직하고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회고록이다.

○ 목차
- 가족
- 성장기
- 고등학교에서
- 점령과 전쟁
- 아폴다와 바이마르
- 대학교와 초기의 여행들
- 섹스, 노래, 그리고 전기역학
- 런던, 그리고 그 이후
- 브리스틀
- 버클리의 첫 20년
- 런던, 베를린, 뉴질랜드
- 방법에의 도전
- 브라이튼, 카셀, 취리히
- 결혼과 은퇴
- 기억에서 사라짐
후기
출판의 변
옮긴이 후기

○ 저자소개 : 파울 파이어아벤트 (Paul Feyerabend, 1924 ~ 1993)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비엔나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 역사와 사회학 등을 공부하였으며, 성악과 연극 활동에도 꾸준히 매진하였다.
비엔나학파의 일원이었던 빅터 크라프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철학 클럽인 크라프트학파의 리더로 활약하였다.
비엔나대학에서 ‘기초진술’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영국 런던대학 경제학부로 건너가 칼 포퍼 아래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영국의 브리스톨대학을 시작으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 캘리포니아 – 버클리대학,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쳤다.
1990년 버클리를 퇴임하였고, 1994년 타계하였다.
토머스 쿤, 임레 라카토스, N.R. 핸슨, 스티븐 툴민 등과 더불어 1960년 초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새로운 과학철학의 전성기에 활약한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1962년 「설명, 환원, 그리고 경험주의」를 발표한 이래, 『방법에 반대한다』(1975), 『자유사회에서의 과학』(1987), 『이성이여 안녕!』(1987) 등을 출간하였다.
유고로 『킬링타임』(1995), 『풍요로움의 정복』(1999)이 출간되었다.

– 역자: 정병훈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박사)을 졸업하였고, 현재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을 번역하였다.
– 역자: 김성이
김성이는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였고 미국 위스콘신주 웨슬리 언어연구원의 TESOL과정을 졸업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 책 속으로
나는 종종 어머니를 따라 미용실에 갔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미용실에 있는 여자들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 “전 은퇴하고 싶어요.” 하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는 이유가 있었다. 공원에서 모래성을 쌓으면서 가방을 들고 혼잡한 전차 뒤를 쫓아 뛰어가는, 초조한 남자들을 본 적이 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어머니께 묻자 “일하러 가는 거야.” 하고 대답했다. 공원에는 벤치에 조용히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는 늙은 신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은퇴했거든.” 그 이후 내게 은퇴라는 말은 아주 매력적인 말로 생각되었다. pp. 44~45
수업은 반복적인 학습과 시험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특별한 날의 시간표를 잊어버리고 당황해하면서 겁에 질려 교실에 들어가는 꿈을 자주 꾸기는 했지만 그런 게임을 잘 해냈다. 나중에 열여섯 살 때는 물리학과 수학 선생님보다 물리학과 수학에 대해서 더 아는 게 많다는 평판을 얻었다. 선생님들도 그런 소문을 사실로 믿어서 나를 혼자 내버려두었다. 생물학 선생님과 화학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물리학을 두려워했고, 따라서 나도 두려워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숙제로 내준 책도 읽지 않았고, 교실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질문 시간이면 그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체하면서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하찮은 것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귀찮은 일이 생길 때도 있었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pp. 56~57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사건들은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종종 꿈속에 나타났다. 전투 장면이나 위험한 상황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다. 다만 징병당하는 꿈을 꾼다. 장면은 늘 똑같다. 나는 징집영장을 받고 이렇게 말한다. “아, 저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절름발이거든요.” (1946년 이후 목발을 짚고 있으므로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병영에 들어가 병사들 틈에 끼어 줄을 선다. 그러고는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걸을 수 있었다. ‘무슨 이런 지독한 농담이 있담! 몇 년 동안이나 발을 질질 끌고 다녔는데, 이제는 내 발이 갑자기 움직일 필요가 없는데.’ 하고 혼자 생각한다. pp. 104~105
나는 철학 세미나를 이끌었던 카를 포퍼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나는 그가 쓴 《탐구의 논리》를 대충 훑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마음속에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두고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홀쭉하며, 진지하고, 말을 천천히 신중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그는 청중들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들이 철학자를 독일에서와 같이 철학교수직을 차지한 신사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분명히 철학자가 아닙니다.” … 토론이 끝나고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나갔을 때 어느 순간 포퍼가 내 옆에 와 있었다. “산보나 하지.” 그가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떠나 마을로부터 숲으로 이어지는 여러 산책로 중 하나를 따라 걸었다. 포퍼는 음악, 베토벤의 위험, 바그너주의자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다. 그는 내가 라이헨바흐의 ‘간현상’을 언급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서로 친숙하게 ’너‘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pp. 135~137
비트겐슈타인은 한 시간 이상 늦게 왔다. ‘얼굴이 말린 사과 같군.’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리에 앉아서 몇 분 동안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중간에 끼어들었다. “잠깐, 그것은 그런 식으로 얘기해서는 안 돼!”라고 외치면서 현미경을 통해 사물을 관찰할 때 보이는 것에 대해 상세히 논의했다. ‘기본언명’과 ‘이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추상적인 고찰이 아닌 이러한 문제야말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과제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현미경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의 그 정확한 방식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방해도 있었고 건방진 질문도 날아갔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우리의 무례한 태도를 그가 다른 곳에서 받았던 아부성 짙은 환호보다 더 좋아했음이 분명하다. 다음 날, 나는 하루 종일 황달 때문에 자리에 누워 있어야 했다. 전날 먹은 설파아미드제가 과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전해 들었다. pp. 144~145
나는 거의 일 년 동안 강의와 성악 레슨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세코날을 복용하고 밤낮없이 잤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시간 죽이기’였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자신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일까, 다음 주일까, 아니면 내년일까? 나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출판사 서평
-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진기한 인생 기록, 기지 넘치고 감동 가득한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인생 고백록 《킬링 타임》
이 책은 과학철학과 심리철학 분야에서 특히 영향력을 발휘한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파울 파이어아벤트가 1994년 사망하기 불과 몇 주 전에야 완성되었다. 파울 파이어아벤트라는 한 과학철학자의 진기한 인생 기록이 담긴 《킬링 타임》은 파이어아벤트의 극적인 삶의 역정을 잘 보여준다.
독자들은 오스트리아 빈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철학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통해 매우 솔직한 그의 인생담을 만날 수 있다. 조숙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희곡과 철학에 탐닉하던 고등학교 시절, 성악과 물리학을 전공한 배경, 나치시대의 군대 생활, 러시아 전선에서 부상해 일생 동안 육체적 장애와 성불구, 통증에 시달린 일, 오페라 테너 가수로서의 재능과 음악에 대한 집념, 비트겐슈타인과 브레이트 등과의 운명적 만남, 그의 선생이었던 칼 포퍼와의 만남과 절연, 동료였던 이므레 라카토슈와 나눈 우정 어린 논쟁, 그리고 무수한 연애와 네 번의 결혼, 마지막 사랑 그라지아와의 추억 등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게 없는 삶이었다. 또한 브리스틀 대학을 시작으로 버클리, 오클랜드, 서섹스, 예일, 런던, 베를린, 취리히 대학 등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동시에 네 대학에서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은 일 등을 소상하게 접할 수 있다. 앞쪽 16페이지 사진으로 이루어진 화보와 200여 개에 가까운 옮긴이 주는 파울 파이어아벤트를 이해하는 데 또다른 도움을 줄 것이다.
- 1960년대 과학철학의 전성기에 활약한 주역들
파이어아벤트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과학철학의 전성기에 활약한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와 더불어 활약한 철학자로 토마스 쿤, N.R. 핸슨, 이므레 라카토슈, 스티븐 툴민 등이 있다. 파이어아벤트가 〈설명, 환원, 경험주의〉(1962) 등의 과학철학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 핸슨의 《발견의 유형》(1958), 툴민의 《예견과 이해》(1961) 등도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되었다. 당시 그들은 ‘새로운 과학철학자’라고 불렸다. 그들의 주장은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였지만, 종래의 과학철학이 제시해온 과학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 과학철학이 과학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토대로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주장해오던 것과 달리, 과학사에 대한 동태적 분석을 시도하여 과학의 합리적 이미지가 실제의 과학과 일치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파이어아벤트는 가장 과격한 견해를 펼쳤다.
비판자들은 파이어아벤트를 상대주의자, 회의주의자, 비합리주의자로 몰아붙였고, 그를 ‘과학의 최악의 적’이라고 낙인찍기도 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방법에의 도전》을 두고 전개된 매도성 비판과 오해에 대한 파이어아벤트의 당당하고 진솔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과학의 최악의 적’이라는 과학자들의 세평에 대해서, 그는 과학이 대중적 통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그가 보기에 과학은 이해관계로부터 그다지 자유롭거나 개방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합리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비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권위적이고 경직된 이성이라고 반박한다. 철학자들에게는 과학과 상식의 영역이 철학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단순한 이론과 규칙에 의해서 복잡한 과학의 세계를 포착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이다.
- 그의 마지막 언명 ‘지적인 생존이 아닌 사랑의 생존’
파이어아벤트는 전문적인 학문 내부의 지식 재생산장치와 그것에 편승한 지식활동을 혐오하고 거부했다. 이성과 감성을 가리지 않고, 전인격적인 자세로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행동한 학자였다. 그는 기존의 모든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가장 순수하고 진지한 의미의 ‘비판’ 정신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온갖 지적인 허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킬링 타임》은 파이어아벤트의 비범한 삶에 대한 따뜻하고 정직하고 즐거운 이야기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뇌종양으로 죽는 순간까지 그와 함께 했던 그라지아에 대한 지고한 사랑과 신뢰는 감동적이다. 자신이 진정 바란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닌 사랑의 생존’이라는 그의 마지막 언명에서 냉정하고 비판적인 파이어아벤트와 전혀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20세기를 살아온 한 비범한 인물이 자신의 개인사를 진술하면서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나치 태동기에 자랐고, 독-오 합병을 체험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으며, 패전과 전후 민주화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형성해간 인간이 가족, 지인, 친구, 선생, 정사의 상대 등 극히 미시적인 한 개인의 연관을 자기변명 없이 적나라하게 써내려간 글이다. 또한 문학, 음악, 연극, 학문 등과 관련한 개인사를 솔직히 밝히며 거시적인 시대와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이면서, 철학적 관심을 떠나서 20세기를 살아온 한 인생을 추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