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 근대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
(카를 카우츠키의 사회주의 역사 탐색 시리즈-03)
칼 카우츠키 / 동연출판사 / 2020.6.12
- 카를 카우츠키가 되살려낸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
카를 카우츠키의 ‘사회주의 역사 탐색’ 시리즈 전3권이 완간됐다. 시리즈의 첫 책이며 국역으로는 마지막으로 출간된 도서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는 『그리스도교의 기원』(2011, 동연), 『사회주의의 선구자들』(2018, 동연) 두 도서의 토대가 되는 책으로 1887년 첫 판본이 발행됐다.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 번역본은 국내에서 여러 판본으로 번역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제대로 된 전기나 평전 없이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어 있다. 헨리 8세의 스승이었고 대법관이나 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로마 교황으로부터 종교적 독립에 반대해 참수되었으며 그 후 가톨릭교의 성인으로 시성 (1935년)된 인물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그 자신이 역사가 된 인물인 카를 카우츠키는 성실하고도 치밀한 문헌 탐색을 통해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을 재발견한다.
카를 카우츠키는 34세에 이 책을 출간했다. 1883년 [새시대] (Die Neue Zeit)라는 잡지를 발행하며 사회주의의 역사를 근원에서 탐색하는 연구를 과제로 삼았던 청년 카우츠키는 토마스 모어와 토마스 뮌쩌 두 사람에게서 사회주의의 원류를 발견했다. 카우츠키는 특히 토마스 모어에게서 사회주의의 이상이 내재화된 것을 발견하고 영국 런던에서 지내며 (1885~1890년) 토마스 모어의 발자취를 무수히 되밟고 고증을 거쳐 토마스 모어 평전인 이 책을 펴냈다.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대표 이론가가 바라본 토마스 모어는 단지 헨리 8세의 개혁 (국교회 설립)을 반대했다는 단편적인 이유로 처형된 인물이 아니다. 카우츠키는 모어 당시의 사회 체제의 부조리와 영국의 경제 상황을 다각도로 재구성하여 자료의 부족으로, 때로는 과도한 찬양으로 얼룩진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치열한 지식인 토마스 모어의 삶은 레닌으로부터 ‘배신자 (개량주의자) 카우츠키’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을 비판했던 학자 카를 카우츠키의 삶과 겹치며 130여 년을 건너서야 우리 글로 번역된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근대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 (始原)을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려낸 이 책은 『유토피아』를 읽었던 독자들에게, 또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카를 카우츠키가 제시한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궤적이 현시대에도 이어지는 흐름을 읽어내고 있는 이들에게 사회주의의 발자취를 되짚어 새로운 전망을 세울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된다.
○ 목차

역자 서문 및 해제
초판 머리말
제2판 머리말
제1부 |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시대
서론
제1장 자본주의와 현대국가의 시초
- 봉건제
- 도시
- 세계 무역과 절대주의
제2장 토지 소유
- 봉건적 토지 기갈과 자본주의적 토지 기갈
- 프롤레타리아 계급
- 인신 소유와 상품 생산
- 새로운 귀족의 경제적 무용성
- 기사 집단
제3장 모어와 가톨릭교
- 중세에서 교회의 필요성과 세력
- 교황청 세력의 토대
- 교황 세력의 추락
제4장 인문주의
- 이교도와 가톨릭교
- 이교와 프로테스탄트교
- 불신앙과 미신
제2부 | 토마스 모어
제1장 토마스 모어의 전기
- 윌리엄 로퍼
- 스테이플턴
- 크레사커 모어와 기타
-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제2장 인문주의자로서 모어
- 모어의 청년 시절
- 인문주의 문필가로서 모어
- 여성의 학습에 관한 모어의 견해 ― 그의 교육학
- 모어의 예술과 자연과학에 대한 관계
제3장 모어와 가톨릭교
- 모어의 종교성
- 교황 지배체제의 적 모어
- 모어의 종교적 관용
제4장 정치가로서 모어
- 16세기 초 영국의 정치 사정
- 군주론자이면서 폭군 혐오자인 모어
- 런던 시민 계층의 대표 모어
- 『유토피아』의 정치적 비판
- 국왕의 신하가 된 폭군 증오자 모어
- 루터파와 투쟁을 벌인 모어
- 왕실과 불화하는 모어
- 모어의 몰락
제3부 | 유토피아
제1장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로서 모어
- 모어의 사회주의의 뿌리
- 『유토피아』의 경제적 비판
- 영국에서 종교개혁의 경제적 경향
제2장 『유토피아』의 간행과 번역 ― 그 구성
제3장 유토피아인들의 생산양식 - 묘사
- 비판
제4장 유토피아인들의 가정 - 묘사
- 비판
제5장 유토피아에서의 정치와 과학과 종교 - 정치
- 학문
- 종교
제6장 『유토피아』의 목적
부록 사회주의 역사에서 유토피아의 위치

○ 저자소개 : 칼 카우츠키 (Karl Johann Kautsky)
독일 마르크스주의 학자·역사가·사상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지도자. 프라하 출생. 빈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중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초기에는 다윈주의 영향이 강했으나 1879년경 E. 베른슈타인과 알게 되면서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81년 런던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찾아갔으며 1883년에는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기관지誌가 된 『노이에 차이트(Die Neue Zeit, 신시대)》를 창간해 편집을 맡았다. 1885년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옮겨 엥겔스의 보호를 받으면서 편집을 계속했으며, 사회주의자 진압법이 폐지된 뒤 1891년에는 독일 사회민주당 에르푸르트대회에서 〈에르푸르트 강령〉의 기초자가 되어 이론적 지도자로서 지위를 확립하였다.
1890년대 중반 이후 당내에 대두한 베른슈타인 등의 수정주의에 대해 『농업문제』『베른슈타인과 사회민주주의 강령』등 저작으로 맞서 정통파를 대표하는 이론가가 되었다. 1917년 사회민주당을 떠나 후고 하제 등과 함께 독립사회민주당을 창립한 그는, 레닌이 지도하는 러시아 혁명에 대해 볼셰비즘을 반마르크스주의라 하여 비난했는데 그 때문에 레닌으로부터 배교자背敎者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박학다재함과 왕성한 문필활동으로 마르크스 사상 보급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 『자본론 해설』『윤리와 유물사관』『권력으로의 길』『경제학 비평서설』등이 있다.
- 역자 : 이승무
서울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석사학위 논문 주제는 “레옹 발라의 사회경제사상”이었다. 이후 19세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서유럽 경제사상사, 경제학에서 확률적 방법론의 발달, 사회보험 등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LG환경연구원 등에서 환경 분야 정책 연구를 했으며, 폐기물과 자원 순환 정책 연구, 그리고 순환형 경제, 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연구를 위해 순환경제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해 오고 있으며, 사회자본연구원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순환경제의 미시경제적 조건으로서의 기업과 노동 형태, 지역 단위의 물질 순환적 경제 모델, 이를 위한 사회적 제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과 평화적 통일의 경제 모델을 찾아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가 믿는 세상』(에른스트 슈마허, 문예출판사, 2003), 『그리스도교의 기원』(카를 카우츠키, 동연, 2011), 『일본의 순환형사회 만들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구마모토 가즈키, 순환경제연구소, 2012), 『농촌 문제』(카를 카우츠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프리드리히 리스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카를 카우츠키, 동연, 2018), 『경제적 모순들의 체계 혹은 곤궁의 철학』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철학의 곤궁』(카를 마르크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등이 있으며, 『순환경제학 첫걸음』(사회자본연구원, 2015)과 『일터민주주의 100』(밥북, 2017)을 썼다.
○ 책 속으로

나는 이 책을 번역하기 전에 같은 저자의 《그리스도교의 기원》(2011, 동연)과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2018, 동연)을 번역해 출간했다. 세 권을 완역하여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데 10년이 흘렀다. 남들은 참 지난했을 것이라며 위로 섞인 말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대학생 시절에 흥미롭게 공부했던 사회경제사를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을 정립한 장본인인 카우츠키의 언어로 다시 대면하게 되는 데 따른 기쁨이 컸다.
10년. 카우츠키와 그의 시대를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로 소환하려고 고민했기에 세 번째 책이자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을 완간하는 이 시점에서 다른 의미가 생겼다. 공부를 하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번역이었지만, 모어의 시대-카우츠키의 시대-그리고 우리 시대로 이어지는 사회의 흐름을 사유하게 된 것이다. 과연 카우츠키의 사회주의는 절멸되었는가? 모어의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인가? 나의 이런 의문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시리즈의 첫 책이자 마지막에 출간되는 이 책을 내면서 옮긴이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
카우츠키는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출신 계층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다수 민중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고 사회문제의 원인을 지적하는 역할은 어느 사회에서나 지식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러한 굽히지 않는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 어쩌면 카우츠키에게는 카를 마르크스와 토마스 모어였다고도 할 수 있다.
토마스 모어가 살았던 시대를 우리 역사에 마주 대보면 조선시대 중종 무렵이다. 영국과 비슷하게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까지 우리 땅에서도 굉장한 사회경제적 변혁이 일어났다. ‘선비 유(儒)’ 자를 앞세운 유교를 정신적 지주로 삼은 조선 사회. 거대한 변혁의 시기에 적지 않은 선비, 곧 지식인들이 권력과 경제적인 이익을 초월하여 기득권층과 충돌했고, 경세의 도의를 내세우며 목숨을 버렸다. 이런 점에서 토마스 모어와 공통점을 지닌 선비들을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시대의 문제를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자신의 문제로 품고 그 시대를 초월하려 했던 지식인들에 대하여 더 진지한 관심과 연구가 이어져야 하겠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나는 “국제문고” (Internationale Bibliothek)를 위해 사회주의의 시초를 서술하려는 계획을 세웠을 때, 모어와 뮌쩌를 한 책자에서 함께 다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언급한 사람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해갈수록 그 공부가 점점 더 나를 잡아끌었고 《유토피아》의 저자가 나에게는 더욱더 중요하고 매력이 있게 다가왔다. 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날의 사회주의 운동은 모어에 관한 호의적인 판단을 통해 얻는 것도 없고 그에 관한 비호의적인 판단을 통해 잃을 것도 없다. 이처럼 결국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열성이 내 안에서 형성되었다면 이는 그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이론적 입장이 아닌 그의 인품 전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하여 비판자로서의 임무를 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에게 나의 모어 묘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호의적이라고 여겨진다면, 나는 이것이 그래도 결코 같은 당파 동지들이 쓴 것이 아닌 다른 거의 모든 모어 전기에 비해서는 냉정하다는 것을 말해 두고자 한다. 모어를 좋아하게 되지 않고서 그에 관한 일에 몰두할 수 없다.
영국에는 토마스 모어에 관한 방대한 문헌이 존재한다. 그는 참으로 일종의 국민영웅이 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전문지식인 집단 밖에서는 그 실체가 조금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를 지금까지 단지 실천적 정치인과 인문적인 지식인으로만 보았다. 그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그들은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모어를 상세히 다루고, 역사적, 전기적 장면에 내가 처음에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지면을 배정하게 했다. 그 일을 하는 데서 나는 대영박물관에 모어에 관계된 약간의 중요성이라도 있는 전체 문헌이 구비되어 있다는 사정에 힘을 얻었다. 나는 작업의 확장을 통해서 독일의 사회주의 문헌만이 아닌 역사 문헌에서도 존재하는 빈틈을 채우는 데 기여했기를 바란다. —「초판 머리말」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유토피아에 대한 흔한 오해

유토피아 (Utopia)를 흔히 ‘어디에도 없는 곳’, 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오히려 ‘아무 것도 없는 곳’, 황무지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잿더미 위에 세운 새로운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카우츠키의 견해에 따르자면, ‘유토피아’는 처음에 황량하고 무가치한 땅을 지칭하던 단어였다가 나중에 그 위에 이상적인 나라를 세운 뒤 그 나라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즉, 유토피아는 궁극적인 목표로서 낙원을 뜻하는 게 아니라 황무지에 낙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내포된 의미다.
카우츠키는 이 책에서 모어의 삶을 당시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모든 자료를 분석하고 15세기 영국의 역사적 상황을 대입하여 한 사람이 허황된 꿈으로, 재미있는 소설로 치부되었던 『유토피아』에 대한 오해를 허문다. 모어는 한 나라의 재상으로 국왕 바로 아래서 국정을 운영했다. 그렇기에 당시 영국 사회의 모순과 권력 체제의 부조리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모어 시대의 영국은 양모 무역 발전으로 무수한 농지가 목초지로 뒤엎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농민들은 농지를 잃고 삶의 토대가 허물어져갔다. 농민들이 농노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게 된 당시 실정을 토마스 모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양’이라는 소름끼치는 은유의 말로 해체해낸다. 이런 정곡을 찌르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기에 『유토피아』는 출간되자마자, 라틴어로 쓰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재판을 거듭하여 발간되었고 당시 런던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토마스 모어는 무엇보다도 애민(愛民) 정신이 강한 지식인이었고, 불합리한 권력과 종교의 기득권 체제를 비판하는 인문주의자였다. 모어는 당시 런던에서 우리 시대로 치면 ‘민변’에 해당할 만한 변호사로 활동했다. 시민들에게 변호사 비용을 최소로 받기도 했고 시민들이 당하는 불합리를 없애려고 무던히 애썼다. 또한 가정에서 식솔들을 대하는 태도와 친구들과의 교우 등 카우츠키가 고증을 거쳐 묘사하는 모어는 성현의 삶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카우츠키는 이 책에서 모어가 죽음으로 지켜낸 사상만이 아니라 삶으로 이뤄낸 철학까지도 재생한다. 저자가 되살려낸 모어는 가히 유토피아에서 살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아도 족하다. 모어의 인간 됨됨이와 그가 꾸려낸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유토피아』는 가히 모어가 온 삶으로 써내려간 삶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모어의 삶과 그의 작품을 연계하며 구성한 이런 점이 기존에 『유토피아』를 다뤘던 도서들과 이 책의 차별되는 지점이다. 카우츠키는 모어라는 인물과 그가 발 딛고 살았던 시대 배경을 역사적 추적을 통한 개연성 확보로 유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회주의 사상의 뿌리 찾기’라는 필요에 아전인수격으로 토마스 모어를 끌어들였다고 혹자들은 비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가 카우츠키의 냉철하고 논리적이며 근거가 분명한 분석 앞에서 이런 비판은 힘을 잃는다. 카우츠키가 사회주의의 시원으로 여겼던 토마스 모어와 그의 ‘유토피아’는 실체의 힘을 얻는다.
-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에서 다시 생각하는 우리의 공동체
토마스 모어가 그려낸 ‘유토피아’라는 가상 국가는 이 시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현대성을 지녔다. 아니 오히려 미래적이라 할 부분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물론 봉건국가의 사고 체계가 명맥을 유지하던 15세기의 역사적 한계를 고려해야 할 지점도 없지 않다. 카우츠키는 생산의 물적 토대가 구비되지 않았던 15세기 상황에서 모어가 그려낸 이상 사회의 구조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한다. 이 책의 미덕은 선행자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근대 사회주의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과 방법을 비교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카우츠키는 유토피아의 법과 질서, 결혼 제도, 가족 구성과 여성에 대한 우대, 도시와 농촌의 자급 체계, 범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종교관, 미래적일 정도의 열린 교육관, 철학 등에 방점을 찍어 근대 사회주의가 도달해야 할 지평을 발견한다.
가톨릭에서 시성된 모어는 종교에 관용적인 사회를 이상 사회의 모델로 제시한다. 그가 그려낸 유토피아의 종교에 대해 본문 한 구절을 보자. “그들 가운데 극히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모두는 신적 존재의 숭배에서는 합의에 도달하며, 그에 따라 성당 안에서는 모든 종파가 일치를 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종파에 독특한 예배 관습을 자기 집 안에서 이행합니다. 공적인 예배는 어떤 점에서도 개별 예배와 상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신앙에 맞게 신성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성당 안에는 어떠한 신의 그림도 없습니다.”(본문 360-361쪽)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카우츠키의 표현을 빌리면 “모어는 18세기의 관용정신에 가까웠는가 하면, 또한 그의 이상적인 교회 조직을 가지고서 종교개혁을 선취했다. 아니 ‘가톨릭 순교자’인 그는 다분히 이 종교개혁을 넘어섰다.”
이렇듯 종교 간 분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모어가 그려낸 이상 국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을 그려준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었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국가들의 사회공동체 실험이나 작은 공동체들의 지역공동체 시도에 모어의 ‘유토피아’를 대입하더라도 적잖은 부분을 맞대어 비교해볼 수 있다. 그만큼 모어의 유토피아는 현대적이고 카우츠키가 해설한 유토피아는 실체를 획득했다.
카를 카우츠키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 근대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독일사회민주당의 하이델베르크 강령을 공동 기초했으며 레닌의 강력한 반대자로 멘셰비키파에 동조하는 입장에 선 인물이다.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에 이른다’는 그의 사상은 레닌에게서 ‘개량주의’로 비판을 받았지만 현대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의 원류로 이해될 만큼 그 위상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카우츠키는 한국 사회의 1970~1990년대 노동운동가들의 연구에서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1990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함께 소멸하는 듯 보였지만 사회주의의 물꼬가 완전히 막힌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뒷모습을 목도하며 여러 형태의 공동체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문주의의 긴 역사에서 카우츠키가 근대 사회주의의 원천으로 여겼던 토마스 모어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가 그려낸 유토피아는 우리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거울로 사용하기에도 넘치는 샘물을 공급하는 수원으로 삼을 만하다. 유토피아주의, 곧 이상주의는 결코 공허한 상상만이 아니고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유럽에서 중세의 봉건제가 해체되고 상품경제가 시작되는 큰 흐름을 일반 경제사적 과정으로 서술한 것이다. 카우츠키의 설명은 대단히 쉽고 명확하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카우츠키가 중시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사상과 문화 측면의 발전을 서술할 때 기초가 된다. 카우츠키는 이런 역사관을 기조로 삼아 모어 시대의 가톨릭교와 인문주의 그리고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벌어진 종교개혁이 역사적으로 어떤 흐름에 있었는지 맥을 짚어가며 설명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교 신학과 교회사에서 바라보는 것과 차이가 많다. 특히 로만계 나라들의 지식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인문주의자들은 독일의 종교개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개혁을 문화적으로 낙후한 곳에서 벌어진 민중 봉기로 폄하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유럽의 종교적, 정신적 판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 준다. 특히 종교 관련 서술을 할 때 카우츠키는 상당히 신랄하다. 성직자들의 행동이 물질적 이해관계를 철저히 따른 것으로 보고 이를 직설적으로 설명해 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2부에서는 토마스 모어라는 인물에 대해 다룬다.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인문주의자이고 학자이며, 반골 기질을 지닌 개혁파 정치인이었다.
구체적으로 1500년대 초에 영국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토마스 모어가 인문주의자로서, 가톨릭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영국의 대외관계와 재정을 담당한 현실정치인으로서 취한 태도를 시대 배경과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토마스 모어가 영국 런던의 대외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취했던 태도의 개연성을 추적한다.
카우츠키는 모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헨리 8세와 까따리나 왕비의 이혼 문제를 왕실 안에서 발생한 치정(癡情) 문제나 가톨릭 교리에 대한 신앙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면밀한 정황을 근거로 당시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서 벌어졌던 유럽 정치무대에서의 패권 다툼 그리고 영국 내에서 유럽의 평화와 통합을 원하는 상인 세력과 절대군주를 중심으로 한 패권 세력 간의 투쟁, 교회 재산을 탐내는 절대왕권과 농촌 민중의 버팀목이던 수도원 재산을 지켜 민중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막으려는 모어의 사회주의적 지향 간의 대립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해낸다.
토마스 모어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 (Reformation)과 농민전쟁 시기에 살았으며, 다른 인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개혁운동에 동조하지 않았다. 인문주의자들은 신앙적으로 훨씬 더 인간중심적이었고 자유주의적이었으며, 학문 수준이 더 높았고 교황의 절대성에 대해서도 더욱 비판적이었다. 신앙적으로 더 진보적이었던 인문주의자들은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 로만계 국가들에서 활동하면서 교황을 자신들의 인문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에 비로만계 국가들은 교황 체제하에서 심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가톨릭 세력들의 인문주의는 개혁운동을 거친 뒤에 예수회의 교리와 활동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가톨릭의 교리를 목숨을 바쳐 고수한 가톨릭 순교자로 시성되었다. 하지만 그의 종교관은 시대를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이상적 사회질서 속에서 그가 구현한 종교는 가톨릭교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 관용과 다양성 인정을 핵심으로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예배당에서 행하는 공적 예배는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만을 가지고 거행해야 하며, 각자 상상하는 신의 모습에 따른 신앙 행위는 개인의 집에서 거행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대사회의 종교관으로 비춰 보더라도 획기적이다.
카우츠키는 종교에 대하여 다른 어떤 사회주의자보다도 많은 글을 남겼다. 이는 과거의 사회사상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여 현대의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을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어가 루터에게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퍼부었는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직설적인 성격과 조롱어린 유머를 카우츠키는 중세 가톨릭교의 원시 공산주의적인 소박한 민중적 건강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관습과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 신랄한 언어, 전복적 성격을 가진 유머, 성직자 계층에 대한 조롱의 언사는 상당히 인상 깊다. 카우츠키가 유물사관에 따라 역사를 서술할 때도 물질적 탐욕을 채우는 행태들을 직설적으로 명확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모어와 비슷한 에토스를 보여준다.
책의 제3부에서 카우츠키는 『유토피아』에 기술된 이상적 공화국 질서를 주제별로 소개하고 자신의 비판과 논평을 덧붙인다. 그 주제는 생산양식 내지 경제 형태, 정치 제도, 가족 ? 혼인 ? 인구 문제, 학문 ? 철학 ? 종교 문제 등으로 장별로 나뉘었다. 이러한 서술로 『유토피아』를 읽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에서의 삶을 뚜렷하게 그려낼 수 있다. 카우츠키는 모어의 『유토피아』를 되살려 분석하며 자신이 품은 사회주의적 견해의 중요 내용들을 피력한다.
이번 한글판에 추가된 부록 [사회주의 역사에서의 유토피아의 위치]는 1895년에 나온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 제1권 제2부 〈토마스 모어에서부터 프랑스 혁명 전야까지〉의 카우츠키가 맡은 제1장 〈토마스 모어〉의 제5절을 옮긴 것으로서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의 역사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갖는 중요성을 밝혀주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