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풀하우스
원제 : Full house
스티븐 제이 굴드 / 사이언스북스 / 2002.1.31
– 진보적 생각, 새로운 주장, 그 안의 탄탄한 이론 그리고 설득력
하버드대학 교수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진화론을 책 한권에 꼭꼭 다져넣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일견 너무 달라보이는 그의 이론은 금방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제목의 풀하우스는 포커게임의 그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끝까지만 읽어주면 자신이 얻었던 풀하우스보다 훨씬 값진 스트레이트플러시 패를 갖게 되리라 자신한다.
이 책의 두가지 중심주제는 <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와 <생명의 역사에서 진보란 무엇인가>이다.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질문들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 책에 담았다. 도전해 볼 만한 질문들인 것이다. 결국 미시적인 시각을 버리고 거시적이되 편견을 갖지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생명시스템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얘기인 셈이다.

– 목차
0장 작은 제안
1부 플라톤에서 다윈까지 우수성의 확산
1. 헉슬리의 체스판
2. 오해와 편견에 포위된 다윈
3. 경향에 대한 설명들
2부 죽음과 말 – 변이의 중요성에 대하여
4장 죽음, 개인적인 이야기
5장 말, 생명의 작은 농담
3부 4할 타자의 딜레마
6장 야구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
7장 4할 타자는 더 이상 없다
8장 야구 수준의 전반적 향상
9장 4할 타자와 오른쪽 꼬리
10장 4할 타자의 절멸
11장 새로운 가능성
4부 생명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
12장 자연선택의 핵심
13장 예비적 고찰
14장 박테리아의 힘
15장 인간의 문화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
194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안티오크 대학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 대학에서 196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버드 대학에서 지질학 및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로서 지질학과 과학사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일반인을 위한 대중과학서 저술에도 힘을 기울였다. 또한 야구를 주제로 쓴 글이 과학 논문만큼이나 많을 정도로 야구광이었다. 그는 박사과정 시절부터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후 과학의 남용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을 지속해나갔다. 1970년대 중반에 보스턴을 중심으로 급진적 성향의 과학자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 ‘민중을 위한 과학’에 참여했으며, 작고할 때까지 진보적인 생물학자들의 비영리단체 ‘책임 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의 자문위원직을 유지했다. 그는 과학 자체를 사회에서 분리된 절대적이고 균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이런 신념으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포함하여 과학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평생 모색했다. 발생반복이론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인 『개체발생과 계통발생』, 대중적인 에세이 모음집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다윈 이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판다의 엄지』, 과학도서상을 받은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등의 저서가 있다.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굴드는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그는 22권의 저서, 101편의 서평, 479편의 과학논문을 발간했고, 『내추럴 히스토리』 저널에 300편에 달하는 글을 연재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 책을 비롯해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 『개체발생과 계통발생(Ontogeny and Phylogeny)』 『판다의 엄지(The Panda’s Thumb)』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Bully for Brontosaurus)』 『플라밍고의 미소(The Flamingo’s Smile)』 『풀하우스(Full House)』 등이 있다.
.역자 : 이명희
연세대학교 생물학과 졸업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열린사이버대학교(OCU)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02학년도 과학고등학교 교재 『고급화학』과 『과학사』 집필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과학, 생명 그리고 인간}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진화의 미스터리』, 『악마 같은 남성』, 『성의 진화』, 『클릭 사이언스』가 있다.

– 책 속으로
첫문장 – 우주를 묘사하기 위해 선택하는 비유를 보면 그 사람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류는 스스로를 몹시 사랑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 전체를 대표하는 생물도, 가장 상징하는 생물도 아니다. 인간은 동물 종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곤충류의 대표도 아니고, 어떤 특수하거나 전형적인 생명체의 본보기도 아니다. 물론 인간은 의식이라는 진화의 기발한 발명품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오로지 인간만이 이 문제들을 반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세포 동물군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절지동물들이 신경의 복잡성을 향한 진화를 전혀 택하지 않고도 엄청난 진화적 성공을 거둔 것을 생각해 보라. 더군다나 그 정교한 신경망이 인류를 더 ‘고등하다’고 지칭하는 어떤 생명체로 불꽃처럼 튀어 오르게 하려다가 인류 자신을 멸망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발명품을 생명 진화의 가장 중요한 추진력이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류는 왜 아직도 척추동물의 역사에서 지극히 미미한 한 갈래에 지나지 않는 자신들을 모든 다세포 생물들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인류가 무성한 생명의 나무에 속한 아주 작은 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더욱이 그 가지가 돋아난 시기가 지질학적 연대에서 볼 때 바로 얼마 전이라면, 인류는 근본적으로 진보적 성질을 가진 생명 진화의 예정된 결과가 아닐 것이다.
인류가 이룬 영광과 성취가 아무리 눈부시다 하더라도, 인류의 탄생은 한순간 우연히 일어난 우주적 사건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의 씨앗이 다시 뿌려져 생명의 나무가 비슷한 조건에서 자라난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사건임을 의미한다.
지구 생물량의 대부분을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는 관념이 사람들 머릿속에 얼마나 깊이 박힌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지하 박테리아의 전체 무게가 나무의 생물량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통 생물학에 엄청난 수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최빈값 박테리아의 지배에 대한 내 이론에도 든든한 지원을 해준다. 지구상에는 다른 생물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박테리아의 크기를 고려할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더 다채로운 장소에서 살고 있으며, 훨씬 더 다양한 물질대사를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생명의 역사 전반부를 홀로 지켰고, 다른 생물이 등장한 후에도 다양성을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테리아는 지하에 사는 것들까지 합치면 그 생물량에서 숲의 나무를 포함해 다른 모든 생물을 합친 것보다도 더 무겁다(하나의 무게가 그렇게 미세함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사실이다. 박테리아가 그 중요성과 영향력에서 언제나 생명의 중심이었다는 주장에 더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관습적인 시각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광합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상 생물의 전형적인 생명 형태가 사실은 행성 지각의 표층에 사는 박테리아처럼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생명 현상에서 변형된 대단히 특수하고 기괴한 것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십 년 전만 해도 지구 내부에 그런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 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런 생명 형태가 오히려 전 우주의 보편적 현상일 가능성을 고려하는 정도까지 발전한 것은, 시행착오 개선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것이다!
골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광합성을 에너지 공급의 기초로 삼고 있는 지표면의 생명체는 생명의 특이한 곁가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명에 호의적인 대기,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 물과 암석의 적당한 배합 등,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 운 좋게 지구 표면에 형성되고 그 환경에 특수하게 적응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깊은 곳에서 화학적으로 유지되는 생명체야말로 이 우주의 보편적인 생명 형태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박테리아는 무게만으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우주의 보편적 생명 형태를 대표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윈적 진화와 문화적 변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명백한 것이다.
문화는 폭발적인 속도로 변화할 수 있고 어떤 방향성을 축적할 수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에는 이런 능력이 없다.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문화적 변화는 무수한 세대에 걸쳐 이루어졌던 자연적인 진화가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구의 표면을 변화시켰다. (유성의 충돌이 백악기 대멸종에 방아쇠를 당겼듯이, 물리적인 자연의 천재지변이 지질학적 의미로 순식간에 많은 생물을 싹 쓸어버릴 수 있으나, 인류의 문화적 변화와 같은 속도로 일어나는 자연의 진화적 변화 과정은 알려진게 없다.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났던 대규모 변화인 캄브리아기 종의 폭발도 500만 년이나 걸린 것이다.)
첫째,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둘째, 진화는 사다리 오르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다.
셋째, 진화에서 우연의 역할은 중요하다.
P. 19 – 1. 헉슬리의 체스판
우주를 묘사하기 위해 선택하는 비유를 보면 그 사람의 특성이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는 이 세계를 하나의 무대로, 모든 남녀는 단지 〈배우로 봤다. 늙고 추해진 말년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외적 현실은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7세기중반 영국의 의사이자 작가이던 토머스 브라운은 세계는 영원 속의 작은 괄호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유했으며, 셰익스피어는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에서 피스톨과 폴스타프가 나눈 대화 중에이 세상은 칼로 껍질을 열기만 하면 되는 굴이다〉(내가 맘껏 이익을빼낼 수 있는 곳이라는 뜻—— 옮긴이)라고 말했다.
P. 41 – <다른 생물>이 <인류보다 못하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더구나 그 기사가 다루고 있는 단순한 생물인 곤충류는 포유류와 5억 년 전에 진화적으로 갈라졌으며, 수많은 곤충들이놀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화학적 방어 체계를 유지하고 있음은 모든 과학자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또한 그 기사는 해면동물처럼 진화의 사다리 저 아래쪽에 있는 생물조차도 다른 생물들의조직을 인지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놀라워하고 있다. 이렇듯 전문 학술지까지 진화를 사다리로 형상화하는데…
P. 67 – 앞에서 우리는 다윈 혁명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지적대변혁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단순히 성스러운 창조대신 진화가 인정된 것이고(이것은 다윈 생존시에 이미 교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취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호모 사피엔스가 유구한역사를 가진 아름드리 계통수 한 구석에 최근에 돋아난 미미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적 인식이 생긴 것이다(이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다윈혁명은 자연의 참모습을 파악하는 중심 범주를 본질 대신 변이로 대치한 것이다 (마이어는 『동물 종과 진화 Animal species andEvolutions (1963)를 통해 플라톤적 본질론이 아니라 <집단 사고야말로 다윈 혁명의 핵심임을 온몸으로 옹호한 이 시대 최고의 진화학자다).
플라톤의 세계에서는 변이가 우연한 것이고 본질이 더 높은 현실이었지만, 다윈의 혁명에서는 오히려 변이가 확고한 현실로서 가치를갖고, 기술적으로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던 평균은 추상적인 것이 되었다. 현실에 대한 이해에서 이러한 〈전도〉보다 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있을까?
P. 74 – 첫째, 정신적 안정과 강인한 의지의 잠재적 힘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과학적 접근이 가능한 범위에 있는 문제임을확신한다 (결국 이 문제는 사고와 감정의 생화학이 면역 체계에 일으키는 반응의 문제로 좁혀질 것이다). 둘째, 긍정적인 태도를 갖자) 하는 운동이 생각지 않게 발휘하는 잔인성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이 운동은 개인적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면 깊은 곳에서 긍정적사고를 불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식으로 교활하게 변질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성격과 기질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것이기 때문에 성격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도 그렇게 쉽게 고치지 못한다. 우리의 심장에 긍정적 태도>라는 이름의단추는 없으며, 그것을 한번 누르기만 하면 당장 긍정적 사고가 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손가락도 없다. 개인의 습성과 기질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초대한 적도 없고 반갑지도 않은 사건에 휘말렸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대처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누가 감히 책망할 수 있겠는가?!
P. 93 – 진화는 한 집단이 한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전환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런 진화를 전문 용어로 <향상 진화 anagenesis>라고 하며 사다리, 연쇄, 선형성을 나타내는 비유들로 변화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진화는 정교하고 복잡하게 갈라지는 가지처럼 〈분지 진화cladogenesis>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향이란 하나의 길을 따라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 분화 사건에서 다음 종의 분화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복잡한 전환 또는 옆길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P. 108 – 따라서 어떤 존재 (집단, 사회 조직, 진화적 계통)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도, 모든 다양한 구성 요소들(풀하우스 전체)가 그대로 어떻게 변하는가를 추적해야 한다. 단선적인 경로를 따라 움직여 가는하나의 항목(평균값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나 전형적인 예 같은 것)을끄집어내 그것이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나타내서는 안 된다. 생명의 작은 농담에 대한 마지막 주석으로서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 말과 함께 전통적으로 진보의 사다리로 묘사되고 있는 종이 있다. 그 종 역시 과거엔 지금보다 풍성했던 계통수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종이 무엇인가 알고 싶으면 거울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리고 현재의 일시적 지배력을 행여나 인류의 근본적인 우월성 또는 미래의 영원한 생존 가능성과 동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하고 싶다.
P. 177 – 이 장의 길고 상세한 설명을 짧게 요약하자면, 타율의 변이의 대칭적인 축소는 두 가지 이유에서 경기의 향상을 (물론 타격도 포함하여) 나타낸다. 첫째, (시스템의 역사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최고의경쟁력을 갖춘 인원으로 구성되고 오랫동안 똑같은 규칙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은 서서히 가장 적절한 방식을 발견하며, 모든 구성원들이 최선의 방법을 익히고 터득함에 따라 변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둘째, (선수와 인간의 한계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평균이 오른쪽 벽으로 움직여 가고 이에 따라 변이가 확장될 공간이 축소되기때문이다. 4할 타율은 어떤 것이 아니라 타율의 변이 값들로 이루어진 풀하우스의 오른쪽 꼬리일 뿐이다. 경기의 일반적인 향상으로변이가 줄어든 결과, 즉 경기가 계속 세련되어져 간 결과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이다.
P. 193 – 자연선택은 국지적으로 변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이 시나리오에도 진보 같은 것에대한 언급은 없다. 자연선택의 원리로부터 그러한 주장을 끌어낼 수도 없다. 털이 난 매머드가 털 없는 코끼리보다 전우주적으로 더 낫거나 전반적으로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다. 매머드의 <향상>은 전적으로 기후가 추워진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이다(털이 거의 없는 코끼리조상은 따뜻한 지역에서 여전히 더 유리하다). 자연선택은 눈앞에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적응만을 낳을 수 있다.
그러한 국지적인 적응의 어떤 면도 일반적 진보(이 모호한 단어를어떻게 정의하든지)를 보장하지 않는다.
P. 229 – 〈비전문화의 원칙>은 …. 한 지질학적 연대에서 고도로 발달된또는 전문화된 형태들은 뒤에 오는 새로운 시대의 선조가 되지 못했고 오히려 후손들은 덜 전문화된 전 세대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설명한다. 이 법칙은 어느 시대에서나 전문화된 형태들은 새시대가 도래할 때의 특징인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그러한 영향은 특히 먹이 섭취량이 큰 대형종에서 심했다.
잡식성 동물은 특정 먹이를 필요로 하는 종들이 죽은 곳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몸집이 작은 종들은 먹이가 귀할 때에도살아남지만 큰 종들은 죽는다.
포유류 계통의 자손들은 작은크기에서 기원한 이래 계속 그 크기를 유지했다.이것은 다른 모든 척추동물도 마찬가지다.
P. 244 – 우리는 지금 <박테리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행성은 35억 년 전 화석으로 보존된 최초의 생물(물론 박테리아)이 출현한 이래 언제나 박테리아의 시대였다.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하고, 정당하게 평가를 할 때 박테리아야말로 지구 생물체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지배적 형태라는 것을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명백한 생물학적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지못하는 것은 우리의 오만이 시야를 협소하게 만드는 이유도 있지만대체로 그 미세한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척도 즉, 크기는미터 단위, 나이는 몇십 년 단위로 일어나는 현상을 가장 전형적인자연으로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박테리아들의 크기는 육안으로는보이지도 않으며, 그 수명은 내가 점심 먹는 시간, 또는 나의 할아버지께서 저녁에 시가 한 대 피우는 시간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의 몸은 광대하게 펼쳐진 그리고 사실상 영원하고 거대한 대륙이다.
P. 255 –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에 대한 증거는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거의박테리아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원핵세포는 진핵세포보다 훨씬작기 때문에 진핵세포 안에 여러 개의 원핵세포가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모양과 기능도 박테리아와 비슷하다. 또한 독자적인 유전 암호를 가지고 있다(진화 과정을 통해서 대부분의 유전물질을 핵으로 이전시켰기 때문에 현재는 최소의 양만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조상이 본래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광합성 박테리아에 의해 직접 방출된 것이든, 진핵세포 내부에있는 박테리아 후손에 의한 것이든, 대기 중의 산소는 오늘날까지도 박테리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 274 – 마찬가지로 생명의 종 모양 곡선에서 복잡성의 최대값을 증가시키는 오른쪽 꼬리는 두 가지 원인 중 어떤 것을 통해서든 형성될 수있다. 하나는 진화가 본질적으로 복잡성이 보다 높은 방향으로 생명을 밀어 올리기 때문에 오른쪽 꼬리가 생겼다는 것이고(전통적 이론의 주장), 또다른 하나는 생명이 복잡성의 최소값인 왼쪽 벽에서 기원해 그 뒤에는 변화하지 않는 박테리아 형태를 유지하면서 오른쪽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른쪽 꼬리가 우연하게 부산물로서 생겼다는 것이다(이 책의 핵심 주장)
…
앞의 주장은 복잡성의 증가를 생명 역사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고 있으며, 뒤의 주장은 오른쪽 꼬리를 주된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진화 원리의 수동적인 결과라고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도식에서 진보는 근본적인 원인의 주요결과이자 생명의 역사를 지배하고 형성해 가는 것이지만, 뒤의 도식에서 진보는 2차적이고, 드물게 발생하는 우연적인 부산물이며, 진보를 목적으로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없어도 형성되는 것이다.
P. 297 – 《디스커버》 (1993년 6월호)에 실린 로리 올리벤스타인의 글.
생물이 진화하면서 더 우수해져 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고등해지고, 더 현대적이 되면서 원시성에서 벗어나게 된다. 댄 맥시 (「복잡성과 진화 – 누구나 아는 것」이란 논문을 발표)에 의하면, 누구나 생물이 진화하면서 복잡해져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시 생명수프에서 합성된 최초의 세포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놀라운 복잡성까지 생명의 진화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더 큰 복잡성을 향한 장거리행진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문제는그것을 확인해 줄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명백백한 사실이라는 이유로 그 누구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진리. 누구나알고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진리만큼 폭력적인 지적 독단도 없다. 그리고 망치로 톡 하고 치면 힘없이 부서질 진리라는 이름의 이끼 낀 거대한 바위를 정보라는 망치로 톡톡 쳐보는 것보다 더 유익한 지적 활동은 없다. 나는 고생물학회의 모토를 사랑한다. 프랑고 우트 파테파치움(Frango utPatefacium, 발견을 위한 파괴), 이것은 수사적인 의미와 실제적 의미를 다 갖고 있는 모토다. 고생물학자들의 주요 연장이 망치이기때문이다.
P. 302 – 어느 이름 없는 작은 물고기 하나가 육상에서 몸무게를 지탱할만한 지느러미를(호수와 바다에서 적응하기 위한 용도로 진화된 것이지만) 진화시키지 못했더라면 아마 육상 척추동물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거대한 운석이 6,500만 년 전에 공룡을 멸종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포유류는 아직도 공룡 세계의 한구석 후미진 틈에 숨어사는 왜소한 생물에 불과했을 것이며 자의식을 가질 정도로 큰 뇌를가진 덩치 큰 생물을 진화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아주 작고 힘없는 인류의 선조들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잔혹한 운명의 화살(어쩌면 멸종)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출현은 복잡성을 향한 추진력 같은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예측 불가능한 과정에서 우연하게 발생한 영광스러운 사건이었다. 자신을 출현시킨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생물을 생산하고자 열망하는 진화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적 결과물이 결코 아니다.
P. 308 – 종 수준과 그 상위 수준에서 일어나는 다윈적 진화는 지속적이고 불가역적인 이야기이다. 일단 한 종이(서로 교배가되지 않을 때 다른 종으로 정의된다) 조상 종과 분리되면 영원히 다른상태로 남게 된다. 종은 다른 종과 융합되지 않는다. 종들은 다양한방법으로 생태학적 상호작용을 하지만 물리적으로 합쳐 하나의 생식 단위가 되지는 않는다. 자연의 진화란 끊임없이 갈라지고 달라져가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문화적 변화는 다른 전통의 융합과 접합을 통해 상승발전할 수 있다.
P. 312 – 태양계 밖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우리보다 진보된 문명들이 왜 지구에 접촉하려 하지 않는가? 하는 엉뚱한 질문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에 대한 여러 대답중 하나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렇게 행성간 또는 은하계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킨 사회는, 기술적 역량이 사회적 또는 도덕적 제약을 뛰어넘어 파괴를 부르는 위기의 시대를 잘 극복한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접촉해 오는 외계 문명이 없는 것을 볼 때 그런 위기를 아무런 상처 없이 극복할 수 있는 사회가 없는 것이다. 이 대답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P. 323 – 정해진 중력의 법칙을 따라 이 행성이 끝없이 회전하는 동안, 아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생물종들이 진화해 왔고, 진화하고 있고, 진화해 갈 것이다.
그는 이 마지막 구절을 최고의 요약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 출판사 서평
프롤로그 [0장 작은 제안]에서 굴드는 기존의 오해나 오류를 해결할 자신의 새로운 설명 방법을 <풀하우스>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경향이나 현상을 부분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 새로운 방법이 포커에서의 풀하우스처럼 기존의 낡은 설명들을 강력하게 누를 수 있다고 말한다.
1부 [플라톤에서 다윈까지 우수성의 확산]에서는 진화와 진화론 그리고 경향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오류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1장에서는 선사 시대의 자연사를 그리는 그림들이 얼마나 오류로 가득 차 있는지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삼엽충, 공룡, 크로마뇽인의 순서로 그려진 그림들이 생명의 역사 전체를 표현하는 그림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사실은 생물계 전체 중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장에서는 대중문화 스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창조론자, 교과서 저자, 저명한 생물학자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와 진보를 혼동하여 다윈 이론을 잘못 이해하는 오류에 빠져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리고 3장에서 이 오해와 오류들이 경향을 잘못 읽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경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유와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간단한 예를 통해 설명한다.
2부 [죽음과 말-변이의 중요성에 대하여]에서는 진화에 대한 오래된 오해에 대해 개인적 사례와 말의 진화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간단한 통계학적 개념과 새로운 발견들을 토대로 생명 진화와 경향 분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4장에서 굴드는, 한때 복부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렸던 자신에게 경향을 <시스템 전체의 변이>로 보는 풀하우스라는 관점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말하면서, 이 새로운 관점을 자신의 생사에 적용하고 있다.
5장은 말의 진화에 대한 오해를 다룬다. 그래서 말이 몸집이 커지고 어금니가 변하면서 진보한 것이라고 보는 종래의 주장이 수많은 종으로 분화한 말의 계통수(系統樹) 중 가지 하나에 근거한 빈약한 농담 같은 주장임을 보여준다. 이 예비적 논의를 통해 이 책 전체 논리의 기둥이 될 <기울어진 분포>, <중심 경향성 측정 방법>, <벽 또는 변이의 확산 한계> 등의 개념을 제시한다.
3부 [4할 타자의 딜레마]는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가 사라져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미국 야구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와 이 수수께끼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굴드는 그 현상을 타자의 실력 저하나, 투수 또는 수비수의 향상 때문이라고 말하는 기존의 모든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더 향상되었음을 실제 자료를 기초로 증명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굴드는 야구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어 야구 <시스템 전체의 변이폭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즉 타율의 변이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정규 분포 곡선의 오른쪽 꼬리이자 예외적 존재인 4할 타자가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4부 [생명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에서는 <한때에는 박테리아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피튜니아 그리고 사람까지 존재하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생명의 역사에 진보를 향한 전반적인 또는 예정된 추진력 같은 것이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12장에서 굴드는 수동적인 진화 메커니즘으로서의 <자연선택>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다윈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한다.
13장에서는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플랑크톤 유공충의 크기 변화 연구를 소개하면서 생명의 진화에서 진보에 대한 증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음을 논증한다.
14장에서는 암모나이트 봉합선의 프랙털 차원 변화, 척추동물 추골의 복잡성 변화, 박테리아에 대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그저 다양해지기만 하는 <무작위적>인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생긴 종에 불과한 것이지 <진보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거나 <생명의 역사 자체를 이해할 존재로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종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최빈값 위치에 있는 박테리아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은 박테리아를 그저 하등생물로 취급해온 인류의 오만한 편견을 뒤집기에 충분하다.
굴드는 에필로그인 15장 [인간의 문화에 대하여]에서, 자신의 새로운 설명 도구인 <풀하우스>를 과학, 공연 예술, 창작 예술 등에 가볍게 적용하면서 이 책이 제공하는 아이디어의 가치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찍이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리처드 르원틴(『3중 나선』, 『DNA 독트린』)과 함께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ㆍ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의 <적응주의 진화론> 아성에 맞서온 스티븐 제이 굴드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동물학 강의와 달팽이 유전학 연구 중 틈틈이 대중 과학서를 집필하고 있다.
굴드가 말하는 진화론의 가장 큰 특징은 진화의 우발성과 무작위적인 자연선택을 강조하는 데 있다. 그는 동물의 행동을 포함한 모든 자연 구성물들을 적응의 직접적 효과로 설명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나 사회생물학의 에드워드 윌슨 등을 <적응주의자>라는 개념으로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언어 능력 같은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획득하기 위한 적응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뇌가 커진 것에 따른 <부작용> 혹은 <부산물>이라는 것이 굴드의 입장이다.
굴드는 1972년 선배 학자인 엘드리지 Niles Eldredge와 함께 <단속평형설>을 발표함으로써 진화론 해석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단속평형설>이란 어떤 종이 오랜 기간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그 평형 기간이 단속되면서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진화 이전 종과 이후 종 사이의 중간 단계 종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서 논란이 된 <미싱 링크missing link>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다.
굴드의 『풀하우스』는 <진보>라고 하는 19세기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리게 할 뿐만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역사적이고도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주의적 편견과 오만을 교정해 주고, <과학하기>의 표본과 지식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비단 생물학 관련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화>에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을 위한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 하버드 대학교의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밝혀낸 진화론의 진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이 출간된 지 약 1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과 세계관의 뿌리에서부터 학문, 문화, 예술에 이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화론>을 논하고 있다. 한마디로 진화론은 창조론 이후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침투력을 발휘해온 이론이자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들이 <진화>가 곧 <진보>이자 <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와 쌍벽을 이루는 진화생물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가 말하는 <진화>는 결코 <진보>가 아니다. <선>도 아니다. 그는 이 책 『풀하우스Full House』 를 통해 <진화>는 곧 <다양성의 증가>라고 단언한다. 굴드는 인간같이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고등한 생물들 역시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임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에 따르면 <진화>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점 전체를 완전히 재구성한 <마스터키>이다. 일찍이 다윈은 <진보>와 <진화>가 혼동되어 파생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막기 위해 『종의 기원』 초판에서 진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윈조차도 그것을 막지 못했고, 자신도 진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말았다. 결국 다윈 이론의 <진화>는 <진보>와 혼동되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끌어올리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말았다. 오만한 인간 중심주의자들은 대중을 호도하여 진화론을 <진보주의 세계관>으로 바꾸어 버렸다.
굴드는 이 책에서 그러한 그릇된 해석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있다. 그는 그런 오해가 부분과 전체의 혼동에서 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런 오해는, 어떤 변화나 경향을 시스템 전체의 변화로 이해하지 않고 피상적인 부분으로 시스템 전체를 설명하려는 <플라톤적 사고 방식>과 진보주의 시대 풍조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굴드는 그런 사고 방식을 향해 <개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 조롱하면서, 변화나 경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야구에서 4할 타자의 실종>이라든가 <말의 진화에 대한 농담 같은 오해> 같은 구체적인 예와 통계 자료를 들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4부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생물의 진화와 경향에 대한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그 오해를 불식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들을 굴드 자신의 체험과 말의 진화에 대한 오래된 오류들에 시험적으로 적용한다.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야구에서 4할 타자의 실종에 대한 낡은 설명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문제를 어떻게 다시 봐야 할지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생물학의 새롭고 충격적인 발견들을 소개하면서 진화와 인간의 지위에 대해 철저하게 재검토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