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풍요한 사회 : 존 갤브레이스
(The Affluent Society)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06.8.30
20세기 경제학의 명저 ‘풍요한 사회’는 1958년 출간되어 전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세기의 100대 명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양서로서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존 갤브레이스 박사의 서거(2006년 4월)을 기념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출간 40주년 기념판이다.
– 대량소비 시대의 미국을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
1958년 출간된 이래 전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면서, ‘세기의 100대 명저’에 선정되기도 한 장기 베스트셀러’풍요한 사회’.
이 책은 저자인 존 갤브레이스 박사의 서거(2004년 4월)를 기념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는 ‘출간 40주년 기념판(수정판)’의 번역서이다.
저자는 ‘미국은 부자들만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실제 경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제학 정설들, 일부 기득권층에만 적용되는 절름발이 경제정책들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리고 주류경제학이 가장 핵심적 내용으로 삼고 있는 생산과 소비의 이론이 일정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현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 수립을 촉구한다.
책이 세상에 나온 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갤브레이스 박사의 따끔한 충고는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여 일상성에 묻혀 있던 해결책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그 동안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구해 왔던 우리에게 되돌아보고 또한 앞으로 나갈 방향을 설정해준다.
○ 목차

1장 풍요한 사회
2장 통념의 개념
3장 경제학, 그리고 절망의 역사
4장 불확실한 위안
5장 미국의 사조
6장 마르크스주의의 장막
7장 불평등
8장 경제적 보장
9장 생산, 그 난공불락의 위상
10장 소비자 수요라는 지상과제
11장 의존효과
12장 생산의 기득권
13장 수금원의 행차
14장 인플레이션
15장 금융정책의 환상
16장 생산과 물가안정
17장 사회균형론
18장 투자균형
19장 이행
20장 생산과 보장의 분리
21장 사회균형 회복
22장 빈곤의 위상
23장 노동과 여가, 그리고 새로운 계급
24장 보장과 생존에 대해
○ 저자소개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John Kenneth Galbraith, 1908 ~ 2006)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1908년 10월 15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에서 태어났다. 토론토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과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34년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정부의 물가청에서 근무하다 전후에는 대학에 복귀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이었던 1961~1963년 인도 대사를 지냈으며, 미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까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 자문역으로 일하는 등 민주당 지도자들의 사고와 노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케네디 대통령 취임연설문을 쓰는 등 명문장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경영학, 역사학, 사회학에도 밝았다.
정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트라이엄프’ (1968) 등 소설 3편을 포함해 모두 33권의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풍요로운 사회 : The Affluent Society’ (1958), ‘새로운 산업국가 : The New Industrial State’ (1967), ‘불확실성의 시대 : The Age of Uncertainty’ (1977) 등이 있다.
2006년 4월 29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마운트 오번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 감수 : 신상민
경북 문경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합동통신>, <신아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한국경제신문사에 입사하여 경제부, 산업부 등을 거쳐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역임했다.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히 의원, 세제발전심의위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 건교부 민자서업심의위원이자 <한국경제신문>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역자 : 노택선
청주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학문에 대한 목마름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University of Illinois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통계와 함께 배우는 경제학』『전쟁, 산업혁명 그리고 경제성장』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익숙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중이 공감하는 개념들은 부동(不動)의 성향이 강하며 예측하기도 쉽다. 언제든 쉽게 받아들여지는 개념들에는 이름을 붙여두는 것이 편리하고, 그 이름에는 예측하기 쉬운 특성이 잘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이런 개념들을 ‘통념(conventional wisdom)’이라고 부를 것이다. — p.23
나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남긴다. 하나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요구를 제한하거나 기각할 사회적 이념을 찾으려는 최근의 경향에 저항해 달라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빈곤의 제거를 이 풍요한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의제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호소컨대, 이 지구를 잿더미로 만들려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풍요를 지키자. 풍요한 사회에도 결함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풍요한 사회 속에 있는 적대적, 파괴적인 경향으로부터 이 사회를 지킬 가치는 충분히 있다. — p.321 ‘저자후기’
○ 출판사 서평
– ‘세기의 100대 명저’에 선정된, 경제학 역사상 최고의 명작!
좋은 책은 시대를 그려내고 대중이 믿고 따라갈 미래를 창조한다. 시대와 독자의 입맛에 부합한 책들은 그렇게 하여 ‘한 권 책’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두고두고 회자되며 회고된다. 이 책 《풍요한 사회》가 바로 그런 책이다. 20세기 경제학의 명저 《풍요한 사회》는 1958년 출간되어 전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세기의 100대 명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양서로서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존 갤브레이스 박사의 서거(2006년 4월)를 기념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출간 40주년 기념판’이다.
비록 이 책이 세상에 태어난 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갤브레이스 박사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혜안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적용되며, 귀 기울여 경청해 볼 가치들을 곳곳에서 쏟아내고 있다. 특별히 초판 이후 40주년을 기념하여 저자가 직접 수정판을 작업하면서 ‘고칠 것이 많지 않다’는 점에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꼈다는 사실은, 그의 탁월한 통찰과 예지력을 방증함과 동시에 21세기에도 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다.
고서(古書), 그 중에서도 명저의 반열에 오른 책들은 후세에 물려줄 인류의 유산이다. 경제학도라면 필독 리스트에 올려놓고 밑줄을 그으며 반드시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며, 정책입안자라면 풍요한 사회에 걸맞은 풍요한 정책을 세우기 위해 먼저 보아야 할 참고서라 할 수 있다.
–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 토니 블레어…, 전세계 리더들은 왜 그를 경제교사로 선택했는가?
명지대 강규형 교수는 이 책을 두고 “아마도 한 권의 책이 한 시대에 영향을 미친 정도로는 갤브레이스 자신이 큰 영향을 받았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과 같은 책들을 제외하고는 이 책을 능가할 만한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다.”고 했다. 한 예로 이 책은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가난과의 전쟁’, 그리고 린든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의 기본 철학을 닦은 역저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그는 대량소비 시대의 미국을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면서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생산과 소비의 이론이 일정한 한계에 봉착했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사회의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공공선의 증진보다는 개인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그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높은 세금과 큰 정부, 정부의 개입, 그리고 사회복지 강화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초기 경제학 사상들이 풍요한 사회로 접어들기 이전에 나왔고, 일부 기득권자들에 의해 교묘하게 이용되면서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난 현대에는 이러한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 보다 풍요한 사회를 꿈꾸는 대한민국이 읽어야 할 참고서!
과거에 비해 우리의 경제생활은 안정되었고, 노동에 대한 대가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대적 빈곤은 여전히 수리되지 않은 채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가진 자는 더욱 높고 견고한 철옹성을, 가지지 못한 자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마음의 벽을 구축해 가고 있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래서 언제나 부조리하고 불확실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은 부자들만의 민주주의 국가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경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제학의 정설들, 일부 기득권층에만 적용되는 절름발이 경제정책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동시대와 맞는 정책, 풍요한 사회에 걸맞은 정책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풍요한 사회에 진입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풍요한 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들과 그 치유책을 논의하는 것이 결코 이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일상성에 묻혀 있던 해결책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논의를 위한 단초역할을 할 것이며, ‘풍요한 사회, 빈곤한 국민’이 아닌 ‘누구나 풍요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이 읽어야 할 양서라 할 수 있다.
○ 추천사
비록 이 책이 처음 세상에 태어난 지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글은 아직도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고 매장마다 읽을 만한 가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더 많은 재화를 갖기 원하고 보다 풍요한 삶의 질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변함이 없기 때문일까. 진정으로 ‘풍요한 사회’란 절대적 빈곤을 넘어 상대적 빈곤도 존재하지 않으며 불평등이 없는 사회, 일하고 싶을 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며 갤브레이스의 《풍요한 사회》는 대량소비 시대의 미국을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한 책으로 미국 제도학파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새뮤얼슨의 말대로 주류 경제학계에서 그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경제를 균형 있는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홍기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살아 생전 존 갤브레이스 박사가 인류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언제 읽어도 그 깊은 혜안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 <보스턴 글로브>
풍성한 사회에 걸맞은 풍요한 정책을 예리한 필체로 지적한다.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는 오래된 미래다. – <뉴욕 타임스>
○ 독자의 평 1
리카도와 멜서스 이래로 ‘우울한 학문’이라 불린 고전경제학은 대중의 빈곤과 불평등을 불가피한 기본전제로 삼았다. 다시말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때 생산이 늘고 전반적인 복지도 향상되며, 빈곤은 개인 탓이므로 정부의 온정적 개입은 당사자의 의지를 꺽게 되어서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주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주의가 경쟁을 지지하는 논리는 불평등이 불가피하다는 우울한 전제하에서, 시장에 간섭하면 개인의 노력과 기업가 정신을 꺾고, 그리하여 투자와 생산이 줄고 시장경제체제가 손상되서 모든 사람의 몫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공을 하나님의 은사로 보는 일부 개신교의 가치관이 결합해서 적자생존은 악덕이 아니며 하나님의 섭리라고 정당화 한다. 이러한 통념이 지배하는 미국을 보면, 가장 부유한 미국의 빈곤층이 보다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보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하게 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의 통념과 달리,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은 시장의 불안정이고 불안정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경쟁이다. 시장경쟁은 불안정을 동반하고 불안정은 불평등과 빈곤을 초래한다.
물론 경제성장은 복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에만 집중한다면 풍요속의 빈곤은 불가피 하다. 생산은 인간을 위해 사회를 위해 존재하여야 한다.
갤브레이스는 “노동자와 경영자의 의욕을 높이려면 경쟁이라는 채찍보다는 비자발적실업의 위험을 없애고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생산증대에도 보다 큰 보탬이 되며, 온정과 합리성을 모두 갖춘 풍요한 사회가 최저소득을 확보해준다면 빈곤의 대물림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성장과 경제안정화 모두를 달성하기 위해서 “물적투자의 효율성보다는 인적투자의 효율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예측처럼 인적투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21세기의 발전은 인적자산의 성장이어야 한다. 상품생산이 사회진보의 기준이며 ‘생산에 공헌한 만큼 분배”되는 세상에서, 교육과 같은 공공재에 대한 투자만이 사회연대라는 인간적 가치를 일깨우고, 동시에 건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이라는 미명아래 불평등이라는 차별이 존속하는 한 다른 중요한 인간적인 가치들을 고려할 여유는 없다.
○ 독자의 평 2
요즘의 세상은 분명 ‘풍요한 사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만큼 모든 것을 가진 돈만 있으면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이다. 모든 국민들이 이 ‘풍요한 사회’에서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간은 물론이고, 남북문제 등 지역간의 빈부의 격차 등의 생활의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든 이 지구상의 국가들은 당연히 ‘풍요한 사회’를 꿈꾸고 있고, 그 ‘풍요한 사회’를 위하여 각종 경제 정책 및 국가 사회복지 정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 국가 정책의 원천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 100대 명저에 선정되었으며, 경제학 역사상 최고의 명작의 하나인 존 갤브레이스 교수의 ‘풍요한 사회’의 저술에 대해 40여년의 격차가 있은 후에 나온 개정판에도 대부분의 내용들을 그대로 살려놓았다는 것은 그 만큼 높은 혜안과 함께 깊은 지식을 갖춘 확실한 세계적인 학자라는 점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경제학자들 그리고 일반적인 국민들까지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이론이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 반영하고 참조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저자가 서문 끝 부분에 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낙후된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극심한 기아와 높은 사망률 같은 문제를 다루지 못했지만 많은 연구를 했으나 결국은 명쾌한 해결책을 보지 못하여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어린 나이에 굶어 죽는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가장 충격적인 문제로 남아 있어서 ‘풍요하지 못한 사회’라는 책을 썼더라면 하는 저자의 아쉬움 표현에 정말 진정한 경제학자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결국 이 지구상의 모든 국가 모든 사람들은 공생과 상생의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이론이라면 정말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너무 풍요로움과 건강한 삶만을 쫓다가 결국 쉽게 놓칠 수 있는 빈곤과 질병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인식아래 한 마음으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그런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회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금도 미국 등 일부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너무 큼과 동시에 그 힘에 눌려서 아직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세계의 여러 지역과 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정말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경제적인 문제점들을 과감히 혁신시켜 나가면서 균형적인 정책들 시행으로 하여 이 지구상의 빈곤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데 모든 힘 있는 국가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정책의 배려가 중요한 것 같으며, 또 하나의 바람은 제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 종 분쟁들과 전쟁들의 예방과 함께 무기 개발과 구입, 군대 육성과 전쟁 준비 비용들을 과감히 제거하거나 대폭적으로 줄여서 그 비용들을 바로 전 세계 빈곤 퇴치 운동에 투자해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학적인 여러 지식의 나열에 대한 느낌 보다는 이 책을 통해서 정말 온 세계가 인 지구상의 모든 국가 국민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같이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멋진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싶다.
○ 독자의 평 3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낙관적, 또 하나는 비관적 시각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이론을 세우고, 해석을 하고, 적용을 하지만 두 가지 관점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낙관적 시각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도록, 비관적 시각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이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그에 적합한 이론을 만들어낸다. 결국 경제학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저자는 먼저 주류경제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경제학자의 이론과 그를 따르는 경제학자들, 또 반대의 이론을 내세우는 경제학자와 그의 무리들의 주장을 쉽게 이야기한다. 경제이론과 정책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어서 밝은 부분을 경계하는 이론이 나오면, 그것을 경계하는 이론이 또 나온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향으로 경제이론이 진화를 한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에서 내놓는 경제이론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은 생산과 소비의 이론인데, 저자는 이것이 어느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수요가 생산을 이끌었다면,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도 일단 생산하면 필요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생산을 하고 그에 맞는 소비를 조장하는 일은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소비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생산자가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광고)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학의 근간을 복잡하게 흔든다.
우리들은 –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로 –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풍요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풍요한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 도대체 풍요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경제학은 우리 사회를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풍요한 사회를 명확히 정의하고 우리가 거기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 그것이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예전이든 지금이든 –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다.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마련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격차를 줄이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경제활동으로 부를 얻기도 하고 상대적 빈곤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는 부유해지지만 빈부의 격차는 커진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계급(또는 계층)을 형성한다. 비록 경제가 활발해지고 국가가 부유해지더라도, 이러한 사회구성원간의 불평등은 그 사회를 빈곤하게 만든다. 사회가 빈곤하면 그 구성원들도 빈곤한 삶을 사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활동으로 생긴 국가의 부, 지역사회의 부가 정당하고 고르게 분배되는 사회를 풍요한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경제활동으로 생겨나는 빈부의 격차를 직접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간접적으로 사회가 쌓은 부를 개개인에게 분배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공부문의 투자다. 공공부문의 투자로 인해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부유함이 빈곤층에게도 골고루 전해지면 곧 풍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경제현상이나 사회현상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과 그렇지 않은 현상을 확실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공감하는 이론(널리 수용된 생각)을 펼쳐야 한다. 이것을 통념이라고 하는데, 대중은 편하고 익숙한 것에 머물려고 하는 반면, 세상은 계속 진보하기 때문에 통념(경제적 통념)은 늘 ‘퇴화’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주류경제학이 늘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통념과 경제이론과 정책의 관계 때문이다. 통념에 사로잡힌 경제학자가 내놓는 해결법은 시대에 뒤쳐져있거나 문제의 본질을 비껴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책입안자들도 경제이론보다는 사회통념에 입각한 정책을 더 많이 내놓는다. 경제학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부족한 뭔가를 찾아나서야 한다.
저자는 우리 시대에 퍼져 있는 통념과 그것이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설명한다. 수요와 생산의 문제로 다시 가서, 수요가 생기면 생산이 증가하는 것이 통념이지만, 현실에서는 생산이 증대하면 기업과 국가는 부유해지지만 그만큼 빈부의 격차는 커진다. 모든 문제를 생산성 증대로 풀려고 하지만, 생산증대는 쉽지만 빈곤의 해결책이 아니다. 이와 비슷하게 동시대의 대중(현실)과 맞지 않는 경제정책들이 얼마나 많은 빈부의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낳는지, 증명되지 않았거나 실제 경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제학의 정설들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야기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나타나는 돈과 서비스의 불균형문제(상대적 빈곤, 박탈감)이고 또 하나는 환경문제이다. 개개인의 부가 증대하고, 공공의 부가 공공투자형식으로 개개인에게 분배된다며, 거기에 쾌적한 환경까지 갖추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풍요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빈곤의 문제는 더 커진다. 국가가 풍요해져도 국민과 근로자의 삶에는 변화가 없고, 오히려 빈부의 격차가 낳은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진다. 부유층의 남는 재물을 빈곤층의 부족한 곳을 메우는 데 사용하는 것은 산술적으로 맞지 않는다. 부유층의 부는 적고 빈곤층의 부족함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공공부문의 투자다.
빈곤이 되풀이 되는 것은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빈곤을 제거해줄 (공공)서비스가 가장 빈약하기 때문이다. 빈곤을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에게 그 이상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시설 좋은 학교와 탄탄한 보건 서비스, 충분한 영양 및 오락거리 공급 등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이런 극빈지역이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도시와 농촌, 부유층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과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은 공공서비스의 양과 질이 다르다. 특히 교육,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해서 물적 자본이 아닌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국가 차원의 빈곤퇴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또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 올바른 기업윤리를 지닌 기업이 생산증대를 통해 부를 쌓고, 그것을 구성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풍요한 사회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정부의 투명한 공공부문 투자가 더해지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기업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냉정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기업윤리,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기업은 소비자가 과감히 처단을 해야 한다.
이 책이 출판된 지 40년이 넘었다. 지금도 이 책이 꾸준히 읽히는 것은 인간사회의 문제가 늘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한 문제가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도 말했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 상황과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서 인간이 어떤 자세로, 어떤 이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진정으로 풍요한 사회인지 묻고 싶다. 공공서비스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심화되고 있고, 환경오염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풍요한 사회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는 여전하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 성과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독자의 평 4
난 경제학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완전 젬병이다. 내 전공은 경제학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자연계였던지라 수학, 과학 과목만 7과목이었으니 경제학은 커녕 사회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게다가 난 암기 과목이라고 하면 치를 떨던 학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쪽의 내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본격적으로 공부는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독서를 하면서 가볍게라도 접근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게 이 책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경제학의 거장이라고 하니, 게다가 100대 도서로 뽑혔다고 하지도 않는가.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계속 후회가 됐다.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 몰라서 겁이 없었던 탓일까. 어쩌면 책이 얇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보고 달려들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책 두께에 대한 선입견을 빨리 버려야 할텐데…)
책은 읽었지만, 머리가 하얗게 빌 정도로 머리속에 남는게 없다. 비록 저자가 자세하게 개념 설명부터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아는게 있어야 이해를 하지, 읽으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는데 대강의 흐름만 파악했을 뿐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답답하다.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익숙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중이 공감하는 개념들은 부동(不動)의 성향이 강하며 예측하기도 쉽다. 언제든 쉽게 받아들여지는 개념들에는 이름을 붙여두는 것이 편리하고, 그 이름에는 예측하기 쉬운 특성이 잘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이런 개념들을 ‘통념(conventional wisdom)’이라고 부를 것이다. <본문, 23>
이 책에서 존 갤브레이스는 여느 사람들이 통념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경제학 이론들을 뒤집어서 살펴보며 비판하고 있다. ‘통념’이라는 말에는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통념’이라는 것이 당시의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기 때문에, 훗날 대중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통념으로써의 가치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론 과거의 경제학 이론을 가져와서 현대 사회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변했으면 통념도 바껴야 하는게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존 갤브레이스, 그의 생각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아마도 그에겐 미래를 내려다 보는 통찰력이 있었는가보다.
과거도 그러했고,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부를 얻기를 갈망한다. 과거에는 부(富)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힘에 대한 만족감이며, 둘째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자들에게 돌아가는 명예와 존경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부(富)의 논리이다.
여전히 부의 논리는 건재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부(富)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먹고 살 것이 없어서 부를 추구했다면, 오늘날은 더 좋은 것을 먹으며 살기 위해 부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더이상 잘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물자들이 넘쳐나는 풍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분명 풍요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뭔가를 잊어버린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더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숲은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여 울창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큰 나무들 밑에서 충분한 햇볕과 영양분을 얻지 못해 말라죽어가고 있는 작은 나무들과 풀들이 있다. 그런 숲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지금 이 사회는.
나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남긴다. 하나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요구를 제한하거나 기각할 사회적 이념을 찾으려는 최근의 경향에 저항해 달라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빈곤의 제거를 이 풍요한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의제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호소컨대, 이 지구를 잿더미로 만들려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풍요를 지키자. 풍요한 사회에도 결함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풍요한 사회 속에 있는 적대적, 파괴적인 경향으로부터 이 사회를 지킬 가치는 충분히 있다. <저자 후기, p321>
○ 독자의 평 5
큰 맘 먹고 읽게 된 책, 역시 쉽지는 않았다.
1958년 나온 초판을 1998년에 개정해 발간한 책의 번역본이다 .
40년전 책의 개정판을 내다니, 그것도 경제학 책을.
The Affluent Society 풍요한 사회,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 생활수준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데, 여전히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한 현실에 대한 경제학자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다.
더불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맞지만 생산의 중요성이 너무나 강조되고, 소비자의 수요나 욕구는 스스로가 아니라 광고나 다른 소비자와의 경쟁에 의해서 형성되면서 과연 물질적 풍요에 걸맞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통렬하다.
경제학 역사상 중요한 학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가 흥미롭고, 경제학 자체에 대한 반성이 그지 없이 진지하다.
그리고, 경제학에서의 통념에 대해 반박하면서, 주류 경제학들이 주력해 왔던 논리와 주제들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아주 포괄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개탄으로 책을 시작한다
“미국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사실을 더 강조해야겠다. 지금은 있는 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치세력이 나날이 힘을 얻고 있으며, 이는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국의 상황을 주시해 왔을 노경제학자의 심려가 엿보인다.
그가 40년전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이 문명의 척도로 여겨진다는 점을 지적했었고, 여전히 그렇다고 한다.
“국내총생산은 지금도 단순한 경제지표를 넘어 그 사회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로 쓰인다”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 않던 물건도 일단 생산되면 필요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 실제로 소비 수요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공급자에 의한 광고와 판매기술이다. … 이는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경제행위를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경제이론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가 제기했던 인플레이션 문제는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져 이번 개정에서 삭제했지만, 정확히 예측했던 두 가지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에서 나타나는 돈과 서비스의 불균형 문제와 환경 문제였다고 한다.
”우리는 비싼 라디오나 TV를 사는데는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학교에 투자될 교육세는 아끼려 든다. 자기 집은 깨끗하게 단장하지만, 거리는 지저분하다. 정부가 예산을 낭비하지는 않는지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본다. 개인의 소비는 건전한 경제행위지만, 공공지출은 악이고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가 공공시설은 그 사회의 얼굴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노력만하면 누구든지 풍요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빈곤은 오직 개인의 탓이고, 정부가 개입해서 빈곤층을 보조하면 개인의 노력과 의지를 꺽게 돼서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인식이 이토록 널리 확산될 줄은 몰랐다. 부유층의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이런 사회적 인식 때문에 부유한 나라의 빈곤층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보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로 전락하기도 한다”
역사가 토니 주트가 얘기했듯,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사고로의 전환은 참으로 놀랍다.
인류는 역사를 거의 통틀어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최근에야 일상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풍부한 음식과 오락, 자가용차, 전기, 수도, 석유 등, 한 세기 전에는 부자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편리함을 보통 사람들도 누릴 수 있게 된 사회에서는 가난에 시달리던 세계에서 중요했던 쟁점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는 법이다. 변화가 너무 급격하다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광고와 판매전략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제와 관련된 우리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과거의 빈곤, 불평등, 경제위기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경제학의 핵심개념이나 통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학의 결함은 그 개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개념을 수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일종의 퇴화현상 때문. 편리한 것은 절대 침범해선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이런 퇴화현상을 가져왔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기존의 주류경제학의 통념에 대한 문제 제기이지만 저자는 2장에서 따로 통념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통념은 대중의 공감속에서 확고히 자리잡고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통념의 적은 사상이 아니라 세상이 계속 변해간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자유주의 국가관이라는 통념은 극복되어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불경기 시기의 균형예산이라는 통념에 대해서
”통념은 계속해서 균형예산을 강조했으며,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 이 때 경제공황이 일어나 사태를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미국에서는 경제대공황 때문에 연방정부의 세입이 크게 줄었고, 실업구제와 복지사업에 필요한 지출을 늘리라는 압력은 강해졌다. 이런 시기의 균형예산이란 세율을 높이고 세출을 삭감하는 것을 뜻한다. 돌이켜보면 재화에 대한 민간 및 공공의 수요를 줄이고,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키며, 실업을 늘리고, 대중의 고통을 더 악화시키는데 균혀예산보다 효과적인 정책은 없었다. 그런데도 통념은 여전히 균형예산을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할 경제정책이라고 여겼다”
아담 스미스를 비롯해 중요한 경제학자들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아주 흥미롭다.
아담 스미스는 총체적 국가의 부가 증대되겠지만 노동자 계층에게 큰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는 경제권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의회는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낮추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지만 그것을 올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를 취한다”
그는 임금에 대해서는 사람은 언제나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 가정이 대를 이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즉, 일하는 사람이 대를 잇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을 웃돌 정도로 임금이 인상될 수 없다는 것이며, 이것이 이후 임금에 대한 불멸의 철직으롤 작용했다고 한다.
주류 가운데 애덤 스미스의 훌륭한 계승자 두명을 꼽으라면 리카도와 맬서스이며, 카알라일이 우울한 학문 (dismal science)에 종사하는 교수라고 지칭한 것도 이들이라고 한다.
19세기 경제사조의 특징인 우울하고 비관적인 어조는 대부분 맬서스의 영향이라고 한다.
애덤 스미스와 맬서는 국가의 부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분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반면, 리카도는 “나는 생상물을 그 생산활동에 참여한 여러 계층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경제학”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리카도의 초창기 세계관과 마르크스의 세계관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어떤 근원적인 힘이 끊임 없이 작용함으로써 가능성과 위험, 절망이 뒤섞이게 되었다고 보았다. 리카도와 직계 학자들은 그런 체제가 존속하리하고 보는 데 반해, 마르크스는 이것을 부정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리카도 역시 이 제도가 대중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 분명히 아니었다. 다만, 다른 명백한 대안이 없으며, 더 나은 제도도 없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리카도와 멜서스는 경제가 성장해도 근로자 등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임금에 대해 한계생산성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지만 부자가 점점 더 부자가 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몇몇 학자들은 불평등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마셜은 “거대한 부가 있는 한편 극도의 빈곤이 있다는 사실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라고 했고, 미국의 터식 교수는 “그 어떤 것도 명백하고 심각한, 그리고 영구적인 불평등이 인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는 보편적인 확신을 제압하지는 못한다고” 했단다.
주류경제학은 경쟁을 전제조건으로 삼아 왔으며, 그러나 그 경쟁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쟁모형의 예언자들은 이 체제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면 체제 자체가 손상된다고 다소 냉혹한 논리로 단언했다. 효율성 경쟁에서 패자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인센티브를 손상시켜, 시스템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통념과 관련해 미국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사회진화론에 대해 얘기한다. 비참한 약자에 대한 배려는 자연이 보장해준 진보의 기본적인 장치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생활의 기본법칙을 깨뜨림으로써 사회생활을 개선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20세기 초 미국에서 이런 사상이 유행할 때 부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의 특권으로 여겨졌으며, 미국 사람들의 인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가장 혜택을 받은 나라(미국)에서조차 빈곤과 불안정성은 경제생활이 지닌 고유의 본성으로 굳어졌다”
”시장이 이렇게까지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된 데는 사회진화론자들의 공헌이 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을 빈곤에서 구하고 경제생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정책의 범위는 눈에 띄게 좁아졌다”
이러한 흐름의 한 켠에는 마르크스가 있었다.
”대중의 빈곤은 피할 수 없고, 자연적인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이 점점 더 부유해지기 마련이며, 임금과 이윤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있지만 진보를 위해서는 이윤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등의 리카도의 주장이 분개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혁명을 호소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근로자들의 구매력 결핍의 문제에 주목했다.
“만일 노동자의 구매력이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불경기를 피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 혁명 대신에 재정적자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예리한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그 위험성을 예견했고, 그렇게 쉬운 탈출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는 완고한 보수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힘을 합쳤다. 경제학에서는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묘하게도 서로 동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좋은 예이다”
다음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
“보수주의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불평등을 옹호했지만, 그 저변에 깔린 생각은 단 하나였다. 즉, 도둑질로 얻은 것이 아닌 이상 일단 취득한 것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공평하다는 것이다. 리카도와 그의 직계 후계자들이 보기에 지주들과 자본가들이 취하는 풍부한 소득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것에 간섭하면 결국 체제 자체가 파괴될 뿐 아니라 가난한 자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몫이 더욱 악화되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1920년대 등에 비해 생산의 증대로 인한 격차 감소로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경쟁과 불안이 불가피하고, 사회안전망 등을 통한 경제적 보장에 대한 욕구가 생산의 증대를 방해하는 적이라는 생각이 있어 왔지만, 경제적 불안요소들이 효율을 높이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큰 오산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것이 “경제사상의 역사에서 최대의 오산”이라고 까지 이야기 한다.
“미국과 기타 서방국가들에서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생산증대는 사람들이 경쟁체제에 따르는 불안요소를 줄이기 위해 조치를 취한 이후에 나타났다”
다음 생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물자가 귀하던 리카도 시대에는 생산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음에도 여전히 생산이 너무 높은 위상을 경제학에서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생산에 대한 비합리적 편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민간생산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민간생산은 국가의 복지수준을 높이고 민간생산의 증가는 국부증가의 척도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공공서비스는 일종의 부담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 집을 청소하는 진공청소기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거리를 청소하는 도로 청소차를 위해 국비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미국 경제처럼 여가가 부도덕한 것으로 취급되는 체제에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사람들의 욕구가 생산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만성화될 수 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경제학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할 것이다.”
베커먼 이라는 사람의 말이라고 한다.
다음은 그의 유명한 의존효과(Dependence effect)에 대한 이야기.
“욕구가 광고나 마케팅 기법이나 교묘한 수법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욕구가 그리 긴요하지 않다는 점을 시시한다. 정말 굶주린 사람은 자신에게 음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
“사회가 점점 부유해지면서 욕구는 점점 그것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그 과정은 수동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즉 입소문이나 소비자들의 경쟁심리를 통해 욕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는 생산자가 광고나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적극적으로 욕구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
욕구가 그것을 충족시키는 과정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의존효과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기업가들의 위신은 매우 높으며,이들은 국가나 정부에 대해 회의한다고 한다.
“비즈니스는 부를 만들어내고 개인은 사상을 만들거나 발명을 하지만, 정부는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한다.” “이 주장은 교육은 비생산적이고 학교용 책상을 제조하는 것은 생산적이라는 식의 억지논리를 수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들의 낡은 사상 속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주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총수요 수준을 조작하면서 생산증대를 통해 실업을 해소하는데 성공했지만(뉴딜 정책 등), 생산증대에 너무 고착되어 대량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생산증대와 이미 풍부한 것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생산증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저질렀으며, 결과적으로 케인스적인 시각이 새로운 통념이 돼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현대의 우리는 빈곤하고 배고팠덪 리카도 시대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중요한 신념은 반드시 지키려고 드는 인간의 능력은 진정 놀라운 특징이어서 오늘날에도 생산의 막강한 힘을 의심하는 것이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신화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인위적으로 욕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에 대해서도 말한다.
욕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두 가지 원천인 광고와 소비자들의 경쟁심리는 사회 전반에서 효력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불능력 있는 사람의 소비는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비를 위해 돈을 빌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을 각오가 된 사회에서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금을 조달해 줄 수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나아가 이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은 바람직하며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당연하다”
“자동차를 사거나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빌리라고 부추기면서, 학교를 세우려고 돈을 빌리려는 지방정부는 불신의 눈초리로 경계한다”
얼마나 날카롭고, 통렬한가?
“어떤 기준으로 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부 부채는 매우 장려되는 반면, 정말 중요한 부채는 엄격히 통제되고 인색한 눈초리로 본다.이렇게 민간의 재화생산에는 배려를 아까지 않으면서 공공부문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는 심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 풍요한 사회의 가장 기묘한 특징이다.”
통념에서 경쟁이라는 미덕을 제외하고 물가안정의 중요성만큼 의견일치를 보는 것도 없다고 한다.
“과거 인플레이션 통제 전략에 관해 수요의 수준으로 다뤄야 하는지, 임금-물가상승의 악순환을 다뤄야 하는지를 놓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수요수준을 강조했고, 비전문가들은 임금-물가상승의 악순환 문제에 대해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답은 양쪽 모두의 중요성을 다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명백한 모순과 갈등이 생긴다고 한다.
”경제활동을 상당히 둔화시켜 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경제적 안녕, 즉 생산이라는 최우선 과제와 상충한다. 그리고 통제수단을 사용하면 자원을 그 용도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돼야 하고, 그 배분을 위해서는 자유시장만이 가장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운 수단이라는 믿음과 상충한다.”
이런한 경제조종과 관련해 저자는 먼저 금융정책의 환상에 대해 논의한다.
금융정책은 대공황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2차 대전후 중흥기를 맞았다고 한다.
통념에서 금융정책은 비할 바 없는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해결책이 돼주지 못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실험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한다.
“금융정책은 경제활동 중에서도 가장 변덕이 심한 측면(기업투자)에 작용한다. 이 점이 금융정책을 무익하다고 보는 마지막 이유이며, 경우에 따라 큰 위험도 가져올 수 있다.” 금융정책은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심각한 불경기를 불러올 만큼 투자를 위축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한다.
금융정책이 경제를 조종하는 도구치고는 둔하고 믿을 수 없고 차별적이고 위험하지만, 존속하는 이유는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융긴축정책의 억압 때문에 가장 무거운 부담을 져야 하는 건설업자와 재고융자가 필요한 중소기업가와 농민들 가운데 금융정책의 실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이것이 존속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적극적인 금융정책이 때때로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빌려줄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되니 말이다”
재정정책은 완전경쟁시장과 독과점시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별 없이 완전히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정책에 비하면 그 차이가 아주 작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2차 대전후 미국에서는 재정정책도 인플레이션 대책으로서는 효력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재정정책 자체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재정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이 정책을 최대한 이용할 것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활동은 낭비가 심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불만은 미국의 정치평론에만 국한된 것일뿐더러, 미국에서도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근거 없는 불평이 논점을 흐리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이책의 17장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한 “사회균형론”이다.
리처드 헨리 토니라는 사람의 인용구로 시작한다.
“개인의 소득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돈으로 인류가 전염병이나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만들 수 없고, 대중이 교육 받을 기회를 얻거나 경제적 보장을 받는다는 적극적인 보장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사회는 도덕적 타락과 경제적 재앙에 대한 예언이 횡행하는 가운데 천천히, 그리고 마지못해 보통의 개인이 평생 초과근무를 해도 혼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필요를 집단적으로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생산력을 가진 사회의 최종적인 문제는 무엇을 생산하느냐다. 이는 그 사회가 어떤 물품의 공급은 풍부하지만 다른 물품의 공급은 빈약하다는 해결할 수 없는 경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불균형은 결국 사회적 불안과 병폐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공급이 충분한 부문과 불충분한 부문은 결국 민간과 공공 부문과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저자는 양자의 균형을 social balance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건전한 학교제도 및 바람직한 오락수단, 그리고 탄탄한 경찰력이 갖춰지고 운영과 규제가 잘 되는 사회, 요컨대 공공 서비스가 민간 생산과 보조를 맞추는 사회라면 현대의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락들도 그리 큰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학교들은 낡고 좁으며, 경찰력은 충분하지 못하다. 공원과 놀이터가 부족하고 거리와 공지가 불결하며, 위생당국의 장비와 인력도 부족하다”
사회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민간 생산이 늘어나면 젊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영화나 텔레비젼, 자동차 심지어 마약과 만화책, 포르노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상품들까지 모두 국내 총생산 증가분에 포함된다”
“민간재화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공공 서비스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 속에서는 민간재화가 지배권을 장악한다. 학교는 감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대적하지 못하고, 교사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괴상한 영웅이 청소년들의 우상이 된다”
“물자가 부족한 사회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공공 서비스가 부족해도 괜찮지만 풍요한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생산을 중시하고 개인의 욕구를 부추기는 장치가 매우 발달한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소득을 벌어들이는 사람의 수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강력한 압력이 작용한다. 부모가 모두 민간생산에 종사하면 아이들을 사회에 맡기는 시간이 매우 길어지기 때문에 공공 서비스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
“좀더 값비싼 자동차를 구매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듯, 더 좋은 학교나 더 나은 공원을 매입해도 그에 못지 않은 이익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학교나 공원보다 자동차에 더 치중하면서 만족을 최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통념에서는 공공 서비스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할 것인지는 사회가 결정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자의 소비자 주권은 작동하지 않으며 의존효과에 따라 소비자는 결코 스스로 선탟하지 못한다고 한다.
“민간부문에서는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대중의 심리를 구석구석 파헤쳐서 매매할 상품에 대한 욕망을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해 보고 있지만, 국가의 공공서비스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
“새로운 공공서비스를 생각해 내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쓸모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저자는 경제와 관련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 기본적인 규칙 한 가지를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합리화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는 점이다. 논리는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심지어는 무질서를 예방하기 위한 공공 서비스조차 저항에 부딪히지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욕구를 인위적으로 끌어낼 비책을 고안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매우 숭고한 인물로 대우를 받는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는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에 대한 투자의 불균형 문제이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물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중요했지만, 현대에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중요함에도 적절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에 대한 투자는 거의 모두 공공부문이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기술을 육성하는 것이 좀더 높은 이윤을 낸다고 해서 정유공장 건설자본이 과학자 육성비로 이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러한 자원배분의 장애요인에 대해서는,
“과거 관세나 독점처럼 자본의 이동을 막는 고전적인 장벽이 아니었기에 19세기 경제학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따라서 경제학에서 지배적인 입지를 굳힌 논의들 속에 묻혀 지금은 설 자리를 잃은 상태이다.”
인간개발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외부경제에 해당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공적인 욕구는 대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인 수요창출의 실패를 겪지 않는다. 할부로 판매하는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이 빚을 지고 싶지 않도록, 또는 빚을 질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들 때문에 판매부진을 겪을 우려도 없다. 따라서 사회균형이 개선될수록 경제는 민간수요의 변동을 피할 수 있다”
사회균형이 개선되어 교육이 나아지면 인위적인 수요조성이나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지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은 취향의 폭을 넓히고 좀더 독립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유발함으로써 현대 경제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욕구조성 능력의 토대를 침식한다.”
우리의 생산 에너지가 전혀 시급하지 않은 물건, 즉 엄청난 노력을 쏟아서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을 물건들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지만, 생산과정 자체은 아직도 중요한 소득의 원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부분적인 해결책은 생산 이외에 소득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적절한 대체물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생산과 소득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으며, 사회구성원들이 고통을 받지 않고 생산에 대해 좀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생산과 소득보장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분명한 수단은 바로 실업수당제도다.”
하지만, 실업수당의 지급기간이 제한적이어서, 생산만 소득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줄이기 위해, 우선 실업수당의 액수를 평균소득에 훨씬 더 가깝게 올리고 지급기간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그는 오늘날 직업을 갖기에 부적합한 사람들에게 생산과 관계 없는 대체소득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어찌보면 기본소득의 개념과 유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민간재화는 날로 화려해지는 광고 덕에 고용증대와 성장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 공공서비스는 그 기회를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경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가치들 가운데 가장 시급하지 않은 가치를 중심으로 작동되고 있다. 만약 경제가 모든 필요에 골고루 토대를 두고 발전했더라면 훨씬 더 안정적인 성장이 이뤄졌을 것이다.”
“학교와 도로, 치안, 공공주택, 기타 목적을 위해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을 결정했다고 해서 자원이 자동으로 정부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정부 지출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출을 제안하는 자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마다 그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면 자동차 소비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세우려면 그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
저자는 사회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판매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민간재화의 가격을 올려서 공공재를 좀더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이 늘면 판매세 징수액도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민간재에 대한 욕구가 늘어날수록 공공목적을 위한 수입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미국에서 빈곤은 치욕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후기에서 저자는 그가 강조하는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하나의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가난과 궁핍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부가 만들어내는 차별을 인식하는 데는 인색했다.”
“풍요 속에 살게된 우리는 그 혜택과 문화로부터 배제된 이들을 쉽게 잊어버리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과거에 종종 그랬듯 우리가 그들을 방치하는 것을 합리화할 이론을 개발해 낼 가능성도 있다. … 정부의 비효율성을 강조하고 그 비용과 세금(국방은 제외)을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번 더 강조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요구를 제한하거나 기각할 사회적 이념을 찾으려는 최근의 경향에 저항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대신 우리는 빈곤의 제거를 이 풍요한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의제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이다.”
정말이지 대학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와 고뇌를 느낄 수 있는 명저중 명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보야 할 듯.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