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프로이트를 위하여 : 작가 츠바이크, 프로이트를 말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그문트 프로이트 / 책세상 / 2016.10.31
“그대, 너무도 소중한 친구. 그대, 너무도 사랑하는 스승. 지그문트 프로이트” –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작가 츠바이크의 사랑과 존경 어린 헌사
– 시대와 불화한 위대한 사상가와 작가가 이어온 30여 년 우정의 궤적… 평전·서한집·기록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한 독일어권 작가로, 평전과 심리소설의 대가라 일컬어지는 슈테판 츠바이크. 19세기 말 유럽 문화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나 문학과 철학,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벨 에포크’의 풍요 속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고 “정신의 모든 대담한 건축물과 윤리의 모든 사원을 일거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던 1차대전을 경험하며 참담함을 맛보아야만 했다. 이후 나치가 득세하면서 전쟁의 암운이 또다시 드리워지자 영국과 미국 등지를 떠돌던 츠바이크는 결국 마지막 망명지 브라질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렇듯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좌절하고 만 비운의 인물이지만 살아생전에 로맹 롤랑,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유수의 예술가 및 학자들과 왕래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같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그보다 스물다섯 살이 많아 아버지뻘이었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는 30년 넘게 교류하며 연령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다.
‘무의식’에 주목하여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정신분석의 창시자, 20세기의 지적 패러다임을 뒤바꾼 혁명적인 사상가 프로이트. 1891년 이래로 빈 9구 베르크가세 19번지의 개인 병원에서 신경질환 전문의로 활동하며 연구와 집필을 병행해온 그는 1908년부터 츠바이크와 알고 지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관계는 프로이트가 사망한 1939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책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그 30여 년 교류의 값진 결과물로, 츠바이크가 쓴 프로이트 평전, 프로이트와 관련된 서평과 일기, 추모 연설문, 회고록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따라서 츠바이크가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정신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했는지 다각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서한집은 저작만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서로의 작품에 관해 나눈 내밀한 감상과 의견, 집필 과정, 당시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물론,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비극으로 두 인물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 목차
추천의 말 작가의 언어로, 철학자의 눈으로
프로이트와 그의 사상을 그려내다 _이창재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들어가는 말
세기말의 상황
성격 초상
출발
무의식의 세계
꿈의 해석
정신분석의 기술
성性의 세계
먼 곳을 향한 황혼의 시선
시대에 통하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서평 프로이트의 신간 《문명 속의 불만》(1930)
일기 〈2차대전 일기〉(1939) 중에서
연설 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
회고 《어제의 세계》(1941) 중에서
출처
주
지그문트 프로이트 연보 / 슈테판 츠바이크 연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인명 / 찾아보기-용어, 작품
○ 저자소개 : 슈테판 츠바이크, 지그문트 프로이트
– 저자 :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Sigmund Schlomo Freud, 지기시문트 술로모 프로이트)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 저자 :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 아버지와 이름난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빈에서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과 예술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섬세한 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수많은 고전작품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쌓았고, 청소년기에는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의 시집을 탐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불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으며,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으로 스무 살의 나이에 첫 시집 『은빛 현』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드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은빛 현』을 필두로 수많은 소설 및 전기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유태인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다.또한 2차 세계대전 이전 백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대중적인 작가이자 다른 나라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 독일/오스트리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벨 에포크’라 일컬어지는 유럽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다. 예술과 문화가 최고조로 발달했던 그 시기를 그는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유럽이 한방의 총성으로 촉발된 세계대전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황금 시대의 빛과 영광을 박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구축한 그들 유럽인들이었다. 이 때의 심경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잘 드러나 있다.
극심한 상승과 하강을 삶을 통해 모두 경험한 이후, 섬세한 그의 심성은 더 이상 부조리한 세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난의 망명생활 속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42년 2월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부인과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종종 ‘평화주의자’ 또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평을 받던 그는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쓴 수많은 소설과 평전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상당부분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예술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가 천재 감독 웨스 앤더슨의 2014년 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이다. 앤더슨은 이 영화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츠바이크의 소설 ‘초초한 마음’의 첫 단락을 차용해서 시작하며, 엔딩 크레딧에서 “inspired by the writings of Stefan Zweig”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그 사실을 확고히 했다.
– 역자 : 양진호 (YANG,JIN-HO)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연구·실행하는 ‘인문학교육연구소’(www. paideia. re. kr)의 소장직을 맡고 있다. ‘교육공간 오름’ 등에서 청소년들과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하고, 대학에도 출강하면서 고전 번역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중세 말과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적 문제의식이 어떻게 근대의 합리주의자들에게 이어졌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며, 이런 생각들의 단초들을 고대 헬라스인들 사이에서 발견하기를 즐긴다. 최근에는 서양미술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프로이트를 위하여》, 르네 데카르트의 《성찰》을 옮겼으며, 〈스피노자의 《데카르트 철학원리》(1663) 연구(1)-〈서론〉에서 ‘신 증명’과 ‘순환논증’의 문제〉, 〈방법적 회의는 어떻게 가능한가-데카르트의 판단-의지 이론에 관한 연구〉, 〈칸트의 이론철학과 형이상학의 문제-개념의 분석론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의 시도〉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 출판사 서평
– ‘공감’과 ‘전이 (轉移)’로 맺어진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운명
“제가 쓴 모든 것은 교수님에게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제 책들의 본질적인 것은 어쩌면 교수님에게 물려받은, 진실을 향한 용기라는 것을 교수님은 알아채셨겠지요. 교수님은 한 세대 전체에 하나의 본보기를 제시하셨습니다.”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호의적인 감상을 전한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1932년 10월 21일)’에서 츠바이크는 이렇게 답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감화되어 인간의 내면에 스스럼없이 다가갈 용기를 얻었고, 이 용기가 창작의 동인이 되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인물의 마음속 깊은 곳을 파헤치고 심리의 추이를 섬세하게 추적하는 한편, 유년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인물이 태어나서부터 성장해가는 과정을 면밀히 탐색하는 츠바이크 특유의 서술 방식은 과연 프로이트의 이론에 힘입은 바 크다. 또한 프로이트는 일로 바쁜 와중에도 츠바이크의 작품을 즐겨 탐독했고 열광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견은 어떤지 소상히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경의를 표해온 두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 생활을 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프로이트는 1923년에 처음으로 구강암 수술을 받은 이래 32차례의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끔찍한 과정을 강인한 의지로 버텨내던 그이지만 말년에 암이 악화되어 고통이 극심해지자 주치의에게 모르핀을 치사량까지 투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자신의 ‘정신적 고향’ 유럽의 붕괴와 몰락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던 츠바이크는 “자유로운 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죽기로 마음먹고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줄곧 편지에서 “존경하는 프로이트 교수님”이라며 공적인 호칭을 사용하던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1939년 9월 14일)에서 처음으로 “나의 소중한 벗이자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허물없이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지도 못하고 9일 후 숨을 거두었다. 곧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지 못한 채 프로이트의 안위를 걱정하는 츠바이크의 목소리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바라옵건대 당신께서도 우리 모두처럼 이 시대만을 아파하시고 신체적 고통은 더하지 않기를. 이제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 진심을 다하여 건강하시기를!”
– “니체가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다면,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메스를 들고 철학을 했다”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_ 츠바이크가 바라본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류가 자신에 관해 더 명백하게 알게 해주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위대한 업적이다. 나는 더 명백하게라고 말하지, 더 행복하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 세대 전체의 세계상을 심화했다. 나는 심화했다고 말하지, 미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과격한 것은 행복을 주지 않고 결단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동심을 언제까지나 꿈결 속에서 달래어 재우는 일은 학문의 과제가 아니다. 학문의 과제는 이 무정한 대지 위에서 올곧게 걸어갈 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불가결한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몫을 모범적으로 행했다._‘세기말의 상황’에서
현재 우리는 프로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모든 인간 영혼의 대체 불가능한 일회적 가치를 새롭고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서 예술, 연구, 생명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찬성하든 반대하든 프로이트의 사상 체계로부터, 그의 견해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창조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_‘시대에 통하다’에서
이 책의 1부는 현대 심리학의 개척자 3인을 다룬 『정신에 의한 치유』에서 ‘들어가는 말’과 프로이트에 온전히 할애한 3부를 발췌한 것이다. (『정신에 의한 치유』는 『정신의 탐험가들』〔푸른숲, 2000〕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츠바이크는 『정신에 의한 치유』를 통해, 질병 치료에서 정신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세 인물로, 근대적 최면술의 창시자 프란츠 안톤 메스머, 종교단체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립자 메리 베이커 에디와 함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츠바이크는 이 평전에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기 이전의 시대 상황, 프로이트의 성격적 특징과 이력, 정신분석의 주요 개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한편, 프로이트가 “정신적·도덕적 세계상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공정성을 잃지 않은 자세로 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지배받는다고 보고 감정과 본능의 영향력에 주목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대표적인 산물인 꿈을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성 충동은 어린이의 몸속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가 훗날 깨어날 뿐이며 신경증은 주로 성적인 억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이성에 의해 진보하리라는 낙관이 지배적인데다 성과 관련해 보수적인 분위기가 여전했던 당시에 그의 이론은 불온하게 여겨져 배척당했고, 프로이트는 긴 세월 몰이해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도 더해져서 1902년이 되어서야 겨우 빈 의과 대학 비정규 교수직을 얻을 정도였다. 프로이트를 거듭 좌절케 하고 결국 인정받기를 체념하게 만든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츠바이크는 평전에서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혁명적인 학문인지, 어떤 점에서 창조적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작가 특유의 감성적 언어와 철학자의 냉철한 분별력으로 서술한다.
츠바이크는 마젤란, 에라스무스,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발자크, 횔덜린 등 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을 평전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당사자가 살아 있을 당시에, 그러니까 사후에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평전을 썼다. 그런 만큼 츠바이크가 프로이트를 얼마나 존경했고 그의 업적에 얼마나 경의를 표했는지,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남긴 방대한 저작들을 일일이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독자에게 이 평전은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정신분석학을 개괄해주는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해준다. 정신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꿰뚫어보는 츠바이크의 통찰, 탁월한 비유와 유려한 문장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도취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 “나 역시 당신〔츠바이크〕처럼 이 시대를 아파하고, 당신처럼 몇몇 타인과의 공속감에서 유일한 위로를 찾습니다. 확신하건대, 우리는 똑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똑같은 가치에 동의합니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_ 두 지성이 나눈 내밀한 우정과 공감의 기록
당신에게 한번은 말해야겠습니다. 내가 아는 한, 당신은 다른 누구도 구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언어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표현을 대상에 접근시킬 줄 압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대상에 대한 가장 세부적인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이제까지 도무지 말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관계들과 특성들을 파악했다고 믿게 됩니다.
_‘프로이트가 츠바이크에게 보내는 편지(1925년 4월 14일)’에서
교수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물들에 다가갈 용기를, ‘두려움 없이’ 그리고 모든 그릇된 수치심 없이 가장 내면적인 감정은 물론이고 가장 극단적인 감정에 다가갈 용기를 말입니다. 또한 진실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오직 교수님의 저서만이 그런 용기를 보여줍니다. _‘츠바이크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1925년 4월 15일)’에서
이 책의 2부는 두 사람이 3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 74통을 모은 것이다.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담긴 이 편지들을 통해 주요 저작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 출간 후의 반응은 물론이고, 츠바이크의 주선으로 로맹 롤랑, 쥘 로맹, 허버트 조지 웰스,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작가들이 프로이트와 만나게 된 경위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서한집에는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평전을 집필한 의도와 그 과정, 이 평전을 읽은 프로이트의 호평과 오류에 대한 지적, 이 지적을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츠바이크의 반응도 담겨 있다. 한편, 애연가이자 골동품 수집광임을 자인하거나 80세 생일 축하에 감사하며 늙어감에 대한 서글픈 심정을 드러내는 프로이트의 모습에서, 불안한 망명 생활 중에 “빙빙 도는 소포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스승을 안심시키는 츠바이크의 모습에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와 츠바이크의 관계가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29년 프로이트의 비방자 찰스 메일런이 반反 프로이트 강연을 알리는 벽보에 츠바이크가 보낸 편지의 구절을 따서 악용함으로써 빚어진, 일명 ‘메일런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사과한 츠바이크를 프로이트가 너그러이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히 지속될 수 있었다. 요제프 브로이어, 빌헬름 플리스를 위시한 동료들뿐만 아니라 카를 구스타프 융, 알프레트 아들러 같은 제자들과도 견해 차이로 결별하고 만 프로이트에게 츠바이크는 평생을 두고 이어간 흔치 않은 인연인 셈이다.
“그의 관을 영국 땅에 묻었을 때, 우리는 조국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그곳에 바쳤음을 깨달았다”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 변치 않는 애정과 존경심의 증표… 서평·일기·추모 연설·회고
친애하고 존경하는 친구여, 그대의 위대하고 창조적인 생에 감사합니다. 그대의 업적과 저서 하나하나에 감사합니다. 그대가 있었다는 것과 그대가 우리에게 선사해준 그대의 것에 감사합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열어준 세계, 이제는 안내자 없이 우리 홀로 여행해야 하는 그 세계에 대해 감사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대를 따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대를 우러르며 기억하겠습니다. 그대, 너무도 소중한 친구. 그대, 너무도 사랑하는 스승. 지그문트 프로이트.
_‘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년 9월 26일)’에서
이 책의 3부에는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추모 연설문과 함께 『문명 속의 불만』(1930) 출간 당시 신문 『베를리너 타게블라트』에 기고한 서평, 프로이트의 마지막 나날들을 기록한 일기,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서 발췌한 프로이트와 관련된 대목들을 발췌해 실었다. 동향의 다정한 친구, 정신적인 스승이자 아버지 프로이트에 대한 츠바이크의 변치 않는 존경과 애정이 묻어나는 글들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프로이트 관련 기록들을 한데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츠바이크는 서평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에서 사회적 무의식으로 분석 대상의 폭을 넓혀가며 자신의 세계관을 전환 및 확장하던(『환상의 미래』, 1927)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 이르러 철학적 세계상을 완성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저작을 프로이트의 업적에서 정신적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호평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장차 “지적 생산 활동의 모든 영역에 창조적 활기를 불어넣으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 한편, 『어제의 세계』에서 프로이트 사후 그를 회고하고 있는 대목들을 발췌하여 시간 순으로 재배열한 ‘회고’에서 츠바이크는 프로이트가 나치에 점령된 빈을 탈출해 런던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날을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고 기록했다. 하마터면 잃을 뻔한 존경하는 친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가슴 벅찬 안도감을 토로한 그는 이후 1년 동안 온화한 동시에 냉철했던 말년의 프로이트와 나눈 우정을 담담히 술회하고 있다.
○ 독자의 평 1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에 정신분석의 메시지는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좀처럼 수용하기 힘든 헛소리로 여겨진 반면, 예술가들에게는 영혼을 공명시키는 구원의 소리로 지각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분석의 근본 주제인 ‘무의식’과 관련된다. 무의식은 항상 그 시대와 사회의 중심 자아의식이 제공해온 상식과 구조적 긴장관계에 놓인다. 그 결과, 그 시대의 제도권에서 인정된 위치를 차지한 집단과 개인의 영혼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무의식에 진정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p.10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일곱가지 주제로 정리한다.
첫째, 정신분석은 당대 의학이 치료하지 못해 당황하던 ‘히스테리’신경증에 대한 새로운 치료 이론과 기법으로서 시작되었다.
둘째, 정신의학이 치료하지 못한 신경증을 치료하려면 신경생리학적 병인론이 아닌 ‘심리적 병인론’을 가정하고 정신의 영역에 의식과 대비되는 무의식이 존재함을 가정해야 한다.
셋째, 19세기 말 유럽의 정신의학자들은 프로이트가 역설한 ‘무의식’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들만의 특성이라고 평가했다.
넷째, 꿈의 잠재된 의미를 해석해내는 이론과 기법에 근거해 예술작품을 꿈꿀 때 지각하는 일종의 외현몽으로 간주하고, 그 꿈의 숨겨진 의미(잠재몽)를 해석해내듯 작품의 심층적 의미를 분석해낸다.
다섯째, 신경증의 원인은 다양한데, 프로이트는 19세기 말 유럽 사회에서 유독 심했던 ‘억압된 性’을 핵심요인으로 지목한다.
여섯째, 프로이트는 신경증 치료론, 꿈 해석론, 작품 분석론, 성이론 이후 문명화된 삶이 인간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일곱째,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프로이트는 말년에 인간 정신을 ‘이드-자아-초자아’사이의 역동적 관계 구성체로 보는 새로운 정신구조 모델을 만들어 냈다.
○ 독자의 평 2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정신에 의한 치유>에서 발췌하여 1부 ‘프로이트 평전’을 쓰고, 2부는 츠바이크와 프로이트가 주고받은 74통의 편지를 실었으며, 3부는 프로이트에 대한 기록들로 서평, 일기, 회고, 연설문 등으로 되어 있다. 프로이트와 30여 년간 교류하며 그를 존경하던 독일인 철학자 이자 작가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정신분석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 ‘프로이트 평전’에서 츠바이크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통합되어 있다가 어떻게 분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영혼 치유나 심리학의 흔적들을 면밀히 추적한다. 그리고는 프로이트 이전에 심리 치료 영역에서 주목할 만 한 두 인물인 에디 베이커와 메스머를 통해 프로이트 직전 시대의 상황을 형상화한다. 이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서구 3,000년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혁명적인 학문인지를 밝히고 있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에 정신분석의 메시지는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좀처럼 수용하기 힘든 헛소리로 여겨진 반면, 예술가들에게는 영혼을 공명시키는 구원의 소리로 지각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분석의 근본 주제인 ‘무의식’과 관련된다. 무의식은 항상 그 시대와 사회의 중심 자아의식이 제공해온 상식과 구조적 긴장관계에 놓인다. “프로이트의 심층심리학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더듬어 내려가고자 하는 다이빙 벨이었다. 그는 이 신선한 시선과 색다른 방법론적 장치를 가지고 심리현상들의 표면뿐 아니라 그 근저까지도 밝혀내고자 하는 놀라운 도전을 감행했다. 그 덕분에 강단 심리학은 결국 다시 참된 심리학이 되었고 실용적인 학문, 심지어 치유력을 지닌 삶의 학문이 되었다.(p.99)” 프로이트는 어떤 성적 충동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억제와 울혈로 변화하여 정신생활을 압박하는 경우에 신경증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는 길, 자기만의 심연에 이르는 위험한 길을 가르쳐주었다.
감정이 억압된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을 억누르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 억압되는가? 어떤 법칙에 따라 정신에서 나온 힘이 신체적 힘으로 전환되며, 그 끊임없는 변화들은 어떤 공간에서 작동하는가? 깨어 있는 인간은 이런 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그것들에 관해 알기를 강요받으면 곧바로 알게 된다. 지금까지 감히 탐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 그의 눈앞에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새로운 세계의 윤곽을 알아차렸다. 바로 무의식이었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주장함으로써 깨끗한 동심의 세계를 더럽혔다고 사람들은 비난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성장 과정의 중요성이나 아동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결국에는 인간의 다양한 정신질환을 ‘성’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환원했다고 비난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그로부터 변이된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우리는 각각의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무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해놓고 결국은 다시 의식으로 복귀했다고 비난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우린 무의식의 존재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분석은 풀고 나누고 가른다. 각각의 인생에게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보여주지만, 수천 개의 부분으로 갈라진 것을 하나로 다시 묶고 공통된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을 정말 창조적으로 보충하려면 그것의 사유 형식, 해체하고 해명하는 것에 다른 사유 형식, 즉 결합하고 융합하는 것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정신분석에 정신종합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이런 통합은 어쩌면 내일의 학문이 될 것이다.’ 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스트리아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츠바이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철저한 신봉자였으며 그의 정신분석학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창작의 방법론으로 적극 활용했다. 인물의 내면을 파헤치는 예리한 심리 분석과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 풍부한 자료 수집과 해석을 바탕으로 인물을 통해 시대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평전으로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 <체스이야기> 및 소설집 <감정의 혼란>, 평전 <세 거장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엡스키> 등과 회고록 <어제의 세계> 등이 있다.
○ 독자의 평 3
누군가의 평전을 남긴다면, 적어도 평전을 남겨야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가 시대를 거슬렀다는 사실이다. 순응하고 동화되고 남들처럼 하는 이들이 세상에 남겨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시대를 압도하는 정신과 문화에 꼿꼿이 대항하는 이만이 이름을 남길 자격이 있다. ‘본성이 궁핍해지는 것은 언제나 더 높은 고향을 상기하기 때문’이라는 노발리스의 말처럼,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는 이상을 꿈꾸는 자에게만 허락된다. 때문에 프로이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살았던 시대정신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츠바이크는 꽤 많은 면을 할애하여 그때가 어떤 시대였는지 설명한다.
모든 공동체가 그러하듯 ‘사회’ 역시 스스로 유기체가 되어 그를 공격하려는 성향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과 공격성을 규칙과 관습의 틀에 가두고 표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은 모든 공동체의 일차적인 목표이다. 19세기는 그런 경향이 지나치게 증폭되었는데, 그 근원에는 ‘이성’에 대한 맹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성에 대한 도취는 머지않아 인간이 모든 삼라만상의 이유를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무질서가 합리적 정신 의지에로 치환되고 나자, 본능적으로 잠재해 있던 욕망과 충동은 이성의 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성 이외의 것은 이미 소멸 직전에 도달했음을 알았고, 설사 그것들이 존재하더라도 더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19세기의 도덕 원칙이었다.
때문에, 프로이트가 처음 의사 동료 모임에서 ‘모든 신경증은 성적 욕망을 억압한 데서 시작되었다.'(p.55)는 표현을 발표했을 때, 의사 집단이 느꼈던 공포와 전율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p.88)는 그의 보고는 웃음거리가 되었고, 일흔 번째 생일까지도 비정규직 교수였던 그는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했다. 그는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심리적 활동이 애초에 무의식의 산물'(p.98)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정신분석입문을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장의 제목은 ‘잘못’이다. 처음 이 장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는데 츠바이크는 이 개념의 탄생부터 설명해준다. 무의식을 분석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최면 등의 방법으로 강제적 유도를 하는 것, 둘째는 그것이 드러날 때의 자료들을 토대로 나머지를 유추하는 것,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경계가 느슨해져서 표출되는 것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실수’는 이때 매우 유효한 단서가 된다. 실수는 무의식을 왜곡하려는 당사자의 감정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쏟아져 나오는 행위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못된 단어를 내뱉었거나, 실수 행위를 했을 때는 무의식에 그 실수를 유도할 수 있는 심리적 기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정신분석의 시작이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업적인 ‘꿈의 해석’, ‘정신분석의 기술’, ‘성의 세계’ 등을 그의 삶과 함께 풀어 나간다.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 츠바이크는 그의 업적이 칸트와 코페르니쿠스의 진보적 사고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순간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츠바이크는 단순히 어떤 시기에 어떤 생각으로 업적을 세웠는지를 넘어서, 소설가가 우리를 새로운 방으로 인도할 때 문 손잡이부터 구석의 벽난로까지 죄다 서술하여 펼쳐놓듯 상세한 서술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시대적 상황과, 앉아서 불을 피울 때의 주변의 시선, 그 불꽃이 타오를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소설처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궁금증을 유도한다. 특히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섬세한 심리묘사와 의식의 흐름을 작품에 직접 도입함으로써, 그만큼 프로이트를 이야기하기에 적격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평전 다음에 실려있는 츠바이크와 프로이트의 서신들은 그들의 생각과 업적을 지근에서 보여줌으로써 평전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