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한서 외국전 역주(상, 하) :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
동북아역사재단 / 2009.4.27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은 바로 ‘외국전’에 실려 있는 외국의 실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외국 인식의 이념적 원리와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통해 중국 중심의 역사인식, 변경인식, 세계인식의 실체를 밝히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아울러 다른 국가나 종족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중국 사서에 기록된 한중관계에 관한 내용이 어떠한 이념적 원리에 의해 서술되었는지 파악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 목차
– 상권
.한서 외국전 해제
.흉노전
– 하권

.서남이양월조선전
.서역전
○ 저자 소개
– 해제 · 교열
· 김유철(金裕哲):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 하원수(河元洙):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 역주
· 김석우(金錫佑): 원광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 김호동(金浩東):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 문정희(文貞喜):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 정면(鄭勉):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 정재훈(丁載勳):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
○ 출판사 서평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사기』에서부터 『청사고』에 이르는 전통시대 중국의 정사에서 외국이나 다른 종족과 관련된 열전을 추려 ‘외국전’으로 정의하고, 장기적으로 외국전 전체를 번역 주석하여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중국 정사의 편찬 동기나 과정은 시대별로 편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통일적 역사인식의 확립에 있었다. 따라서 그 체제와 내용에 중국 왕조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었고, 특히 외국이나 다른 종족과 관련된 부분은 철저하게 중국 왕조의 시각에서 정리되고 표현되었다. 이것은 ‘외국전’에 나타난 외국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당시의 실제적 상황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중심의 당위적 이념이 크게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역대 중국의 왕조들이 정사에 대부분 ‘외국전’을 두어 상대적으로 풍부한 기록을 남긴 데 비해, 인접 국가나 종족들은 그들 스스로의 입장에서 정리한 고대사 기록을 충분히 남기지 못하여 중국 정사의 내용에 의존하여 역사를 복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외국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연구는 전근대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한중관계를 포함하여 다양한 층위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은 바로 ‘외국전’에 실려 있는 외국의 실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외국 인식의 이념적 원리와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통해 중국 중심의 역사인식, 변경인식, 세계인식의 실체를 밝히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아울러 다른 국가나 종족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중국 사서에 기록된 한중관계에 관한 내용이 어떠한 이념적 원리에 의해 서술되었는지 파악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외국전’ 가운데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은 이미 『중국정사조선전역주(中國正史朝鮮傳譯註)』 전5책(국사편찬위원회, 1986-1990)으로 출간되어 있어 역주에서 제외하였다. ‘조선전’은 한국사 특히 한국 고대사와 한중관계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이지만, ‘외국전’ 전체의 맥락 속에서 ‘조선전’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할 때 전근대 한국의 대외관계 및 한중관계의 실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중국 정사 ‘외국전’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역주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일이다. 외국전 기사의 방대한 분량과 원문의 난해함으로 인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 연구자라 할지라도 독해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외국전 역주는 난해한 한문 원사료에 대한 가독성을 높여주고, 외국전 자체에 내포된 외국인식의 이념적 원리와 실체의 파악과 더불어 동아시아 여러 국가와 종족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제공하여, 전문 연구자에게는 연구 분야의 확대와 연구 수준의 심화를 가능하게 하고, 일반 시민에게는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 및 교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한서』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후한 장제(章帝) 시기 반고(班固)가 찬술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한서』에서는 권94 「흉노전(匈奴傳)」,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朝鮮傳)」, 권96 「서역전(西域傳)」이 외국전에 해당되며, 그 서술 대상은 『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형식면에서 볼 때, 『사기』의 외국전이 개인 인물들의 열전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 『한서』에서는 한데 모여 있다. 이와 더불어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 순서이다. 외국전 다음에는 외척과 한의 찬탈자 왕망에 대한 기록, 그리고 후서(後序)라고 할 반고 자신에 관한 서술뿐이므로, 외국전은 사실상 열전의 마지막 자리에 놓였다고 해도 좋다. 따라서 『한서』는 황제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에 있는 제민과 주변의 종족 · 국가들을 확연히 나누었으며, 이처럼 내지와 차별적으로 인식된 이들의 열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외국’전이라고 하겠다.
『한서』의 내용에서 아울러 주목되는 사실은 외국을 바라보는 한인(漢人)들의 시각으로 중국적 관점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서』 「흉노전」에서 한과 흉노의 관계를 정벌과 화친의 역사로 정리한 뒤 ‘금수’와 같은 오랑캐를 다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기미’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중원의 왕조와 그 인근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차별하는 중화의식의 전형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한서』의 외국전은 이와 같은 사료적 성격을 전제하고 읽어야만 한다.
○ 한서와 조선전
– 漢書
後漢明帝때에 班固가 漢 高祖로부터 王莽의 멸망 때까지 230년간(B.C.206~A.D.24)의 사실을 기록한 前漢의 正史. 本紀 12·年表 8·志 10·列傳 70, 總 100編 120卷.
『漢書』의 편찬동기와 과정에 대해 살펴보면 『史記』가 漢 武帝 때까지만 서술되어 있고 그 후의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劉向·歆 등이 撰續하려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班彪가 前史의 遺事를 채집하여서 後傳 65篇을 撰하고 그의 아들 固가 이어받아 모두 100篇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班固가 8表와 天文志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和帝는 固의 妹인 昭에 命하여 완성시켰다. 『漢書』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通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당시 문장이 뛰어난 馬續에 命하여 보완하게 하였다. 따라서 『漢書』는 班彪로부터 班固·班昭·馬續 등 네 사람의 손을 거쳐 30~40年間을 걸려서 완전하게 되었다. 『漢書』의 名稱은 班固 스스로가 붙인 것이며, 앞에 前字를 추가한 것은 梁 元帝 時에 編撰된 金樓子의 聚書篇에 처음 보이는데, 대체로 『後漢書』가 刊行되자 이를 區別하기 위해서였다.
『漢書』의 基本資料는 武帝 이전은 대부분 『史記』에서, 그 이후는 班彪가 지은 後傳 65編을 底本으로 하였다. 이 밖에 『七略』·『尙書』·『洪範五行傳』·『戰國策』·『過秦論』·『新語』와 劉歆·王充·楊雄 등의 論著들을 참고로 하였다. 『漢書』는 『隋書』에는 115卷이라 하였고, 『通志』에는 120卷이라 하여 卷數에 차이가 있으나, 이는 본래 100編인 것을 顔師古가 注할 때 卷帙을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20卷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대체로 『漢書』의 체제는 『史記』를 답습하였으나, 世家를 두지 않고 書는 表로, 本紀는 帝紀로 고쳤다.
『漢書』의 내용 중 卷1부터 卷12까지는 帝紀로, 高帝부터 平帝까지 12篇 13卷으로 되어 있다. 특징적인 것은 『史記』에는 「高祖本紀」뒤에 「呂后本紀」가 있으나, 『漢書』에서는 「呂后紀」앞에 「惠帝紀」를 두고 있다. 또 『史記』에서의 「項羽本紀」·「陳涉世家」를 『漢書』에서는 모두 列傳에 넣었다.
卷13부터 卷20까지는 表(「異姓諸侯王表」·「諸侯王表」·「王子侯表」·「高惠高后孝文功臣表」·「景武昭宣元成哀功臣表」·「外戚恩澤侯表」·「百官公卿表」·「古今人表」)로 8篇 10卷으로 되어 있다. 『史記』에는 본래 10篇으로 되어 있으나 『漢書』는 8篇으로 하였다. 그 중 「外戚恩澤侯表」와 「古今人表」는 『史記』에는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것이다.
卷21부터 卷30까지는 志(律曆·禮樂·刑法·食貨·郊祀·天文·五行·地理·溝洫·禮文) 10篇 18卷으로 되어 있다. 志는 『史記』의 書와 같은 것으로, 『史記』의 「禮書」·「樂書」를 「禮樂志」로, 「律書」·「曆書」를 「律曆志」로, 「天官書」를 「天文志」로, 「封禪書」를 「郊祀志」로, 「河渠書」를 「溝洫志」로, 「平準書」를 「食貨志」로 고쳤다. 그리고 「刑法志」·「地理志」·「藝文志」는 새로 追加하였다.
卷31부터 卷100까지는 列傳으로 「陳勝·項藉列傳」으로부터 「敍傳」까지 70篇 79卷으로 되어 있다. 列傳에는 「儒林傳」·「循吏傳」·「酷吏傳」·「貨殖傳」·「游俠傳」·「佞幸傳」·「外戚傳」과 匈奴傳·西南夷·南粤王·閩粤王·朝鮮王·西域傳 등이 실려 있다. 『史記』의 世家가 列傳으로 바뀌고 刺客·滑稽·日者·龜策의 4傳이 省略된 반면 「西域傳」이 추가되었다. 『漢書』의 外國關係 記事는 『史記』에 비해서 훨씬 충실한데 특히 「匈奴列傳」과 「西域傳」은 『漢書』의 가치를 높여주는 부분으로 손꼽힌다.
『漢書』는 後漢·三國·隋·唐代에 많은 사람이 補充하였는데, 그 중 服虔·應劭·臣瓚이 代表的이며, 唐의 顔師古는 위의 注釋家들의 書를 종합하였다. 淸代에서도 錢大昭의 『漢書辨疑』, 沈欽韓의 『漢書疏證』, 周壽昌의 『漢書注校補』, 王先謙의 『漢書補注』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王先謙의 『漢書補注』는 顔師古 이래 제일 잘 된 것이다. 『漢書』의 刊本으로는 淸 乾隆의 武英殿版『漢書』와 王先謙이 宋 이후 淸末까지의 諸學者의 注釋을 收集增補한 『漢書補注』120卷이 代表的이다.
– 朝鮮傳
『漢書』「朝鮮傳」은 卷95 「西南夷兩粤朝鮮傳」에 들어 있으며 『史記』와 마찬가지로 衛滿朝鮮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다. 朝鮮에 관하여 『史記』「宋微子世家」에서 사마천은 ‘周 武王이 箕子를 朝鮮에 봉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衛滿이 통치했던 朝鮮과 箕子가 봉해졌던 朝鮮은 동일한 지역으로서 그곳은 古朝鮮 지역이었을 것으로 흔히 믿어져 왔다. 그러나 司馬遷은 「宋微子世家」에서는 箕子가 朝鮮에 봉하여졌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朝鮮列傳」에서는 箕子에 관해서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로 보아 箕子가 봉해졌던 朝鮮과 衛滿의 통치영역이었던 朝鮮은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司馬遷은 『史記』의 체제를 중국의 天子를 정점으로 한 중국적 세계질서 즉, 天下思想의 기초 위에서 구성하였다. 따라서 그는 「朝鮮列傳」에서 중국의 망명객인 衛滿에 의해서 건립된 衛滿朝鮮만을 중국적 세계질서 속에 포함시켜 서술하였고, 그 이전의 정치세력이었던 古朝鮮(檀君朝鮮)이나 箕子國(箕子朝鮮)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司馬遷은 夏族·周族·商族을 모두 黃帝의 후손으로 인식하고 있었고,(『史記』「夏本紀」·「殷本紀」·「周本紀」) 箕子는 商王室의 근친이었던 것으로 믿고 있었으므로,(『史記』「宋微子世家」) 만일 箕子가 古朝鮮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다면 당연히 古朝鮮 지역은 箕子時代로부터 중국적 세계질서 속에 들어와야 하고, 「朝鮮列傳」의 서술은 마땅히 箕子로부터 시작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朝鮮列傳」에서 箕子에 관한 언급을 볼 수 없는 것은 司馬遷은 箕子가 봉해진 朝鮮을 古朝鮮의 전지역이나 衛滿朝鮮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알게 하며, 『漢書』에도 그러한 인식이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箕子가 봉해졌던 朝鮮은 지금의 중국 河北省 동북부에 있는 灤河 하류의 동부연안에 있었던 지명으로서 古朝鮮의 서부 변경지역에 해당되었을 가능성이 보다 높아졌다.(尹乃鉉, 「箕子新考」pp.39~40 ; 「古朝鮮의 西邊境界考」pp.32~36)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衛滿朝鮮의 건립은 司馬遷이 출생하기 불과 50여년 전의 일이고, 西漢 武帝에 의한 衛滿朝鮮의 멸망은 司馬遷이 史官의 직인 太史令에 있던 때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던 데에서, 『史記』「朝鮮列傳」은 매우 정확한 내용을 싣고 있을 것이므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료라는 점이다.
『漢書』「朝鮮傳」은 이러한 『史記』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전재한 것이다. 다만 『漢書』의 경우 漢帝國의 동방진출로 인한 중국적 천하관의 확대로 그것이 보다 체계화되어 『사기』에는 나오지 않는 樂浪·眞番·臨屯·玄菟 등 4郡의 명칭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4郡의 명칭이나 위치에 대하여는 『한서』「지리지」와 관련하여 보다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될 것으로 보인다.
○ 중국정사(中國正史) 한서와 외국전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은 바로 ‘외국전’에 실려 있는 외국의 실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외국 인식의 이념적 원리와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통해 중국 중심의 역사인식, 변경인식, 세계인식의 실체를 밝히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아울러 다른 국가나 종족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중국 사서에 기록된 한중관계에 관한 내용이 어떠한 이념적 원리에 의해 서술되었는지 파악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외국전’ 가운데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은 이미 ‘중국정사조선전역주'(中國正史朝鮮傳譯註) 전5책(국사편찬위원회, 1986-1990)으로 출간되어 있어 역주에서 제외하였다. ‘조선전’은 한국사 특히 한국 고대사와 한중관계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이지만, ‘외국전’ 전체의 맥락 속에서 ‘조선전’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할 때 전근대 한국의 대외관계 및 한중관계의 실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중국 정사 ‘외국전’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역주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일이다. 외국전 기사의 방대한 분량과 원문의 난해함으로 인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 연구자라 할지라도 독해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외국전 역주는 난해한 한문 원사료에 대한 가독성을 높여주고, 외국전 자체에 내포된 외국인식의 이념적 원리와 실체의 파악과 더불어 동아시아 여러 국가와 종족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제공하여, 전문 연구자에게는 연구 분야의 확대와 연구 수준의 심화를 가능하게 하고, 일반 시민에게는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 및 교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한서’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후한 장제(章帝) 시기 반고(班固)가 찬술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한서’에서는 권94 흉노전(匈奴傳),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朝鮮傳), 권96 서역전(西域傳)이 외국전에 해당되며, 그 서술 대상은 ‘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형식면에서 볼 때, ‘사기’의 외국전이 개인 인물들의 열전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 ‘한서’에서는 한데 모여 있다. 이와 더불어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 순서이다. 외국전 다음에는 외척과 한의 찬탈자 왕망에 대한 기록, 그리고 후서(後序)라고 할 반고 자신에 관한 서술뿐이므로, 외국전은 사실상 열전의 마지막 자리에 놓였다고 해도 좋다. 따라서 ‘한서’는 황제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에 있는 제민과 주변의 종족 · 국가들을 확연히 나누었으며, 이처럼 내지와 차별적으로 인식된 이들의 열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외국’전이라고 하겠다.
‘한서’의 내용에서 아울러 주목되는 사실은 외국을 바라보는 한인(漢人)들의 시각으로 중국적 관점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서 흉노전’에서 한과 흉노의 관계를 정벌과 화친의 역사로 정리한 뒤 ‘금수’와 같은 오랑캐를 다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기미’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중원의 왕조와 그 인근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차별하는 중화의식의 전형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한서’의 외국전은 이와 같은 사료적 성격을 전제하고 읽어야만 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