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합리적인 미치광이
자크 아탈리 / 중앙m&b / 2001.4.30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형제애 유토피아 제안서.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창안해야 하며 그 바탕이 바로 ‘형제애’임을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유토피아의 의무를 상기시켜 사람들이 역사의 완성을 생각하는 때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이기주의가 횡행하는 때에 새로운 유토피아가 출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 목차
1. 황금을 찾는 자들
2. 역사의 진상
3. 행복을 찾아서
4. 영생, 자유, 평등, 형제애
5. 유토피아의 미래
6. 형제애, 윈윈 시츄에이션
7. 지금 당장 시작하라

○ 저자소개 :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회 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자크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태어나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열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공과대학, 파리고등정치학교, 국립행정학교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소르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계와 정계, 국제기구를 넘나들며 활동하였고 1974년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을 맡아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탈리는 10여 년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직을 거친 후 유럽부흥개발은행을 설립하여 총재직을 맡았다. 현재는 아탈리 자신의 이름을 건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 정치인, 행정관료 등을 두루 거친 아탈리의 탁월한 혜안과 과학적인 분석은 프랑스 지성계를 넘어 전 세계의 방향타가 되었다.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예측을 담은 그의 저서들은 학자로서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주고 있다. 한편 아탈리는 한 인물에 깊게 파고들어 전기傳記를 쓰는 일에 매혹되었는데 이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에 대한 충실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서로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등이 있다.
– 역자 : 이세욱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미셸 투르니에, 르 클레지오, 미셸 우엘벡, 마르셀 에메, 에릭 오르세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등 세계적인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또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에 심취하여 이탈리아어를 착실하게 공부한 뒤, 에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옮겨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서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개미』 『타나토노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아버지들의 아버지』 『천사들의 제국』 『뇌』 『나무』 『신』 『웃음』을 비롯하여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소립자』 『밑줄 긋는 남자』 『두 해 여름』 『오래 오래』 『검은 선』 『미세레레』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등이 있다. 이탈리아 작품으로는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 등이 있다. 특이한 건, 데뷔작이 프랑스 문학도, 이탈리아 문학도 아닌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점이다. 당시 한국에 처음으로 번역된 이 작품은 환상 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는 평을 받았다.

○ 책 속으로
열정이 인간을 사로잡으면, 이성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따라와 위험을 예고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그래 맞아. 내가 미쳤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열정이 그에게 소리친다.
그러면 난, 나는 죽으란 말이냐고.
알프레드 드 뮈세,’어떤 세기적인 아이의 고백’ 중에서 — p.9 프롤로그 중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이 커지면 연대의 기구들은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실 시장과 민주주의는 두 개의 집단적인 결정과정이며 그 결정의 결과는 잠재적으로 대립한다. 시장에 따르면, 사회의 최적 상태는 구성원 각자가 이기주의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때 도달된다.
민주주의에 따르면, 소수가 다수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집단적인 상황이 이상적으로 된다. 다시 말하면, 시장은 가난한 다수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데에 반해서, 민주주의는 부유한 소수집단에 이익을 준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 제대로 작용할 때는, 어떤 결정으로 불이익을 당한 소수집단은 다수집단의 일부를 자기들 의견에 가담시켜 차후의 집단적인 의사결정에서 승리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p. 53-54

○ 출판사 서평
이데올로기들이 비틀거리는 세계에서 유토피아는 더 이상 공개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와 시장 경제의 극대화는 결코 인간들에게 살가운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시장 경제는 민주주의의 시작을 부추겼지만, 시장 경제가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는 순간,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신경제와 세계화는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경쟁력이다. 끊임없이 우리의 한계, 우리의 결함에 맞닥뜨리면서 그것들을 극복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대로의 세계와 지금 이렇게 전개되는 역사로 만족해야 하는가? 형제애가 넘치는 사회,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가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모든 질문은 결국 자크 이탈리의 말처럼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운명의 주인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창안해야 한다.『합리적인 미치광이』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합리적인 미치광이』는 우리의 상상력에 활기를 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읽어야 할 책이다. 프롤로그와 1,2장에서는 시장의 극대화가 갖고 올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장이 민주주의를 부추겼지만, 결국은 시장의 독재가 전제군준의 독재를 이어갈 것이며 최첨단 과학의 재앙과 혁명세력의 씨앗을 잉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은 시장의 지원을 받으면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예상하게 해준다. 식량난의 완전한 해소, 사막 지역의 식림, 인류의 신체적,윤리적 변화 따위가 현실화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마침내 품귀나 결핍이 종말을 고하게 되리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향을 놓고 보면, 이러한 변화나 잠재력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오늘날 부국들의 평균 소득은 빈국들의 평균 소득보다 72배나 높다. 19세기 초에는 3배밖에 되지 않았었다. 세계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지속적인 지배, 빈곤층의 급격한 증대, 폭력과 전쟁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아탈리는 민주주의건 시장의 법칙이건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고, 21세기에 벌어질 전쟁을 여섯 가지의 유형으로 정리하고 있다. -세 가지는 가난한 자들끼리의 전쟁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의 전쟁이다.
3, 4장에서는 지금 이대로의 세계와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꿈꾸게 되는 ‘유토피아’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아탈리는 유토피아의 절실한 필요성과 유토피아적 담론이 세계 역사에 기여한 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인류의 모든 위대한 진보는 유토피아가 현실화된 덕분이라는 앙드레 지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탈리는 역사에 출현했던 모든 유토피아를 네 개의 큰 범주, 즉 영생, 자유, 평등, 형제애로 묶는 분류법을 제시하면서, 각 범주의 유토피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처음 세 범주의 유토피아들은 상호 대립적이라서 다른 것들의 잔해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 영생의 유토피아는 자유의 유토피아를 희생시키고, 자유의 유토피아는 평등의 유토피아를 희생시키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영생의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유토피아이며 나머지 둘은 세속적이다.
5, 6, 7장에서는 형제애의 이데올로기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면서, 영생, 자유, 평등의 유토피아를 양립가능하게 하는 형제애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물론 형제애는 자발성과는 매우 거리가 먼 도덕절 범주이다. 아탈리도 “형제애는 자연 상태가 아니라 문명이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타인의 행복에서 기쁨을 얻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타인의 행복을 증대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복을 증대시킨다는 것, 곧 타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아탈리가 말하는 형제애 유토피아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고, 이 두 모순되는 말이 양립가능하기만 하다면 시장 자유주의의 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는 <세계 속의 프랑스인> 1999년 11~12월호에 실린 인터뷰기사로 프랑수아즈 플로캥이 대담하고, 세바스티앵 랑쥬뱅이 정리한 것이다.

○ 독자의 평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미래 예견 도서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각 장의 시작에 알프레드 드 뮈세의 책에서 인용한 어구들이 적혀있는데 조금은 충격적이지만 너무나 잘 와닿는 어구들이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윈윈 시츄에이션, 함께 나누는 것, 형제애를 강조한 공동체적 삶은 언제 적용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미치광이로 여겨지지만 결국에는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위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상깊은구절]
열정이 인간을 사로잡으면, 이성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따라와 위험을 예고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그래 맞아. 내가 미쳤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열정이 그에게 소리친다.
그러면 난, 나는 죽으란 말이냐고. 알프레드 드 뮈세, “어떤 세기적인 아이의 고백” 중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