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해방론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 울력 / 2004.2.5

이 책에서 마르쿠제는 사회에 부과된 어떤 본능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전에는 ‘새로운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마르쿠제가 마르크스주의와 어떻게 문제의식을 달리하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마르쿠제가 마르크스, 프로이트, 칸트, 헤겔 등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 준다.
○ 목차
감사의 말
머리말
서론
1.사회주의를 위한 생물학적 기초?
2.새로운 감성
3.이행에 있어 전복의 힘들
4.연대성
옮긴이의 글

○ 저자소개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Herbert Marcuse)
1898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였고, 192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호르크 하이머가 주도했던 사회조사연구소의 공동 연구자로 참여했다.
1933년 연구소를 따라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했다가 1934년 미국뉴욕으로 이주하여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연구소와 브랜다이스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 강의한 바 있다.
1979년 유럽 여행 중에 사망하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마르쿠제는 헤겔과 마르크스, 그리고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통합하여 현대 선진 산업 사회와 문명에 대한 변증법적인 부정 철학 이론을 전개하였고, 베트남 전쟁과 68 혁명 때에는 학생 운동과 좌파 이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말로 번역된 마르쿠제의 책으로는 『일차원적 인간』, 『에로스와 문명』, 『미학과 문화』,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이성과 혁명』등이 있다.
– 역자 : 김택
1968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불어와 영어에도 능한 그는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반 고흐』『모네』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30여년의 세월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시간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때로 시간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유사한 상황에 직면하게 한다.
68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의 중심에 선 학생 운동은 냉전 체제의 긴장 속에서도 풍요와 안정을 누리고 있던 서구 문명에 큰 충격을 안겼으며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서구 문명에 대한 반성을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대량 살상 무기를 빌미로 이라크전을 일으켰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패권주의 국가인 미국이 밀어붙인 이 전쟁에 대해 전세계 시민 운동 단체들은 세계적 규모의 반전 평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WTO 중심의 세계화로 인해 태동된 세계 시민 운동의 반세계화의 흐름과 함께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구 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과 앞선 산업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풍요 사회의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고, 또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그러한 물질적 풍요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서구 사회 자체 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가장 풍요롭고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된 사회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인간 실존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 현상황에서 왜 인류는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출간된 지 30여년이 훨씬 지난 마르쿠제의 <해방론>을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읽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 이 책에 대하여
68혁명 당시 서구 학생 운동 진영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소외론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비판 철학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마르쿠제가 1969년에 발표한 <해방론>은 서구 신좌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며, 68혁명 세력이 품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의 비전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후기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분석에 입각한 새로운 혁명론을 전개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란 “숨막힐 정도로 많은 상품들을 생산하여 음란하게 내보이면서도 그 희생자들로부터는 생활의 필수품마저 대대적으로 빼앗는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이 사회는 그 호전적인 영역에서는 모자라는 식량에 독을 넣고 불을 지르면서 자신과 자신의 쓰레기통은 꽉꽉 채워 넣는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그렇다 보니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과학 기술이 담보하는 물질력과 그것이 보장할 수 있는 평화와 자유의 가능성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억압하는 사회이고 그러한 억압 상태가 사회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소비에 대한 열망을 인간의 자연스런 생물학적 욕구로 만들어 버리고 또 사회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그에 맞게 변화시켜 버린 사회이다.
즉 외설스러운 소비 사회는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을 통제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그 사회의 구조 자체 내에 동화되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된 계급 투쟁에 의한 혁명이 곧바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외설적인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는가? 마르쿠제에 따르면, 새로운 사회는 생의 본능이 갖는 요구인 새로운 감성의 출현에서 비롯된다. “공격성과 죄악에 대해 생의 본능이 상승하여 우위를 점하는 것을 표현하는 이 새로운 감성은 사회적인 규모로 부정과 불행을 폐지하고자 하는 생의 욕구를 키워주어 삶의 기준의 보다 나은 발전을 형성해 준다.” 낭비와 과잉 사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물신 숭배적인 사회, 가난한 이들이 굶주려 죽을지라도 자신들의 남아도는 곡식을 불태워버리는 비인간적인 사회, 국가의 폭력이 제도화된 사회, 그리고 전쟁과 학살 등이 만연한 이러한 인간 사회의 야만성과 맹목적 무지에 대한 혐오감이 바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생존을 규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게 하는 추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개혁의 열망에 대해 체제가 기존의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그에 저항할 때 직접적인 행동과 난폭한 불복종을 통해 혁명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힘은 변화의 과정 자체에서 제기되고 결과는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마르쿠제는 혁명의 결과로 도래할 새로운 사회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사회에서는 파괴적 충동이 아니라 삶의 충동에 기반하여, 타인의 삶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타인과 더불어 하겠다는 생물학적 연대감과 협업에 바탕하여 선하게 행동하는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 비로소 “우리 삶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시점부터 개혁을 부르짖어 왔다. 하지만 개혁은 또 다른 개혁을 요구하는 구호로서의 개혁에 그치고 있고, 민의를 대변한다는 정치가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쁘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그것은 기업들의 이윤 추구의 목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사회에 대한 꿈을 망각한 채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삶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회의 전제 조건과 실현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마르쿠제의 <해방론>은 30여년의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현재적인 의미로 다가오고, 고전으로서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