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허난설헌 : 세상의 모든 비난을 헤치고 나라 밖에서 더욱 빛나던 시인
박혜숙 / 건국대학교출판부 / 2008.12.24
저자가 문학연구자로서의 관점에서, 시인으로서의 허난설헌과 그 작품 자체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그와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내용을 담고 있는 평전이다. 허난설헌은 왜 하필이면 여자로 태어났을까, 많은 남자들 중에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또 조선이라는 작은 천지에 태어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할까라는 물음은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해도 저자의 가슴속에 남아 이 책을 집필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국문학사에 이름조차 한 귀퉁이 차지하지 못한 허난설헌이라는 여성이 천여 편이 넘는 시를 썼고, 중국에서 이름을 드날렸던 국제적인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제 허난설헌의 문학이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가 온 것임을 알리고 있다.

○ 목차
- 허난설헌의 출생과 불태워진 시 천여 편
명문, 양천 허씨 집안|강릉 초당에서 출생한 문장가들|학문, 시공부, 스승|불태워 없어진 일천여 편의 시|허난설헌 시의 찬사와 비난|한시 기법-용사와 환골탈태|표절인가-아닌가-아니다 - 시로써 우애를 다진 허난설헌과 형제들
허난설허의 오빠들|순탄한 벼슬길의 허성|허봉 1-짧은 생의 문장가|허봉 2-동•서 분당의 회오리 속에서|허균 1-총명하면서도 자유로운 생각의 천재|허균 2-한 시대의 문장가 혹은 산화한 정치적 꿈 - 시를 사랑했다 그리고 결혼 후 절망했다
허난설헌의 세 가지 한|16세기 여성의 사회적 위치|남편 김성립|아이의 죽음 - 허난설헌의 시는 어디에서 왔을까
허난설헌의 책 읽기1-태평광기|허난설헌의 책 읽기2-고문헌과 중국의 시집|당시를 본받으며 쓴 시|선계를 노닐다-유선시의 시인|스물일곱의 꽃송이 떨어지다-‘몽유광상산’과 삼구시|궁궐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궁사 - 같은 시대의 여성 시인들
옥봉-기다림과 그리움의 극한|황진이-야담으로 남은 삶, 별빛으로 빛나는 문학|매창-다만 매화나무 창가에 비치는 달그림자만 사랑했을 뿐 - 붉은 꽃송이 떨어졌어도, 중국에서 다시 피어나리
조선에는 없는 중국의 조선시선과 조선고시|허난설헌의 또 다른 중국 시집 취사원창|중국 사신 주지번과 난설헌집|중국 문인들이 써준 난설헌집의 서문|허난설헌 문학의 전파와 허경란의 경란집|조선에서 다시 살아난 허난설헌|허난설헌 문학의 부활 이후 100여 년
○ 저자소개 : 박혜숙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인이자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일탈 큰탈 해탈』등 세 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백석』, 『한국문학의 비평적 성찰』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 책 속으로
허난설헌이 삼한 (三恨)을 가슴에 안고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내용은 못내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여자로 태어났을까, 많은 남자들 중에 하필이면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또 조선이라는 작은 천지에 태어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할까라는 난설헌의 한은 설령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라 해도 가슴 속에 박힌 긴 못처럼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우리 국문학사에 이름조차 한 귀퉁이 차지하지 못한 이 여성이 천여 편이 넘는 시를 썼고, 중국에서 이름을 드날렸던 국제적인 시인이었다는 사실로도 허난설헌이 왜 그런 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생은 꽃다운 나이에 다했어도 그가 남긴 시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난설헌이 죽은 후 조선의 고루한 선비들이 여성이 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화살을 죽은 이의 무덥 위에 꽂을 때, 중국에서는 난설헌의 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시집과 시선집이 여러 차례 간행되었던 것이다. 난설헌은 그렇게 부활했다. 그리고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도 허난설헌의 문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제 허난설헌의 문학이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가 온 것이다. — 본문 ‘저자의 프롤로그’ 중에서
표절인가-아닌가-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표절 시비에 휩싸였던 허난설헌의 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러한 시비는 우선 허난설헌이 여성이라는 점과,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원만하지 못했다는 평판과 무엇보다도 동생 허균의 모반죄로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사실이 맞물려 허난설헌을 불리하게 만든다. 거기다가 시대적으로는 조선 중후기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옥죄어 오던 여성에 대한 고루한 봉건의식과 같은 요인은 난설헌의 문학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배경을 만들었다. 앞서 보았듯이 이백이나 두보, 혹은 한유와 같은 수많은 시인들이 앞선 세대의 문헌이나 시구를 끌어다 시를 짓는 것이 다반사였다면 다른 시인들은 또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허난설헌의 시에 전고 (典故)가 많은 것은 난설헌의 독서가 그만큼 풍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선대의 시들을 끌어다 쓴 구절들이 많다면 그가 읽어 왔던 시 또한 얼마나 많은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난설헌이 학당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는 것은 당시 (唐詩)에 대한 풍부한 독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조당의 ‘소유선시’는 당나라 때의 작품이기 때문에 난설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독서량으로 난설헌의 진가를 재려는 것이 아닌 난설헌의 시로 그 문학을 평가해야 될 것이지만, 논란이 되었던 ‘유선사’같은 시들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한시에서 말하는 용사 (用事)나 환골탈태 (換骨奪胎)의 시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 p.61

허난설헌의 세 가지 한
김태준은 그의 조선한문학사에서 허난설헌이 평생의 한으로 여겼던 세 가지를 조선이라는 소천지 (小天地)에 여성으로 태어나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이라고 했지만 어찌 보면 너무나 당당한 말이고, 또 어찌 보면 측은한 이 말의 배경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장가였던 아버지 초당을 비롯한 두 오빠의 학문 연찬은 난설헌에게도 많은 자극을 주어 이미 나이 다섯 살에 글을 읽고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과 같은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는 재원으로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오빠 허봉은 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누구보다도 그 재능을 키워주고 싶어 했다. 하곡집에 실려 있는 허난설헌을 위해서 지은 시에는 허봉의 그런 자상한 마음이 잘 담겨 있다. — p.121
허난설헌 문학의 전파와 허경란의 ‘경란집’
난설헌의 시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과정에서 특별히 난설헌을 경모했던 한 여성 시인을 만나게 된다. 그 이름도 허난설헌을 경모 (景慕)한다 하여 지었다는 경란 (景蘭)이며, 스스로 자신의 호를 작은 난설헌이라는 뜻으로 소설헌 (小雪軒)이라 했다. 난설헌의 시집이 명나라에서 출판되고 인기를 얻는 가운데 경란도 난설헌의 시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난설헌의 시가 너무 좋아서 그 이름까지도 경란 소설헌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소설헌의 시들은 전당 (錢塘) 양백아 (梁伯雅)가 편찬했다고 전하며, 해동란 (海東蘭)이라고 시집에 이름을 붙였는데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난설헌의 시들을 일일이 차운하여 지은 허경란의 ‘경란집’은 1913년 서울에서 난설헌의 시집과 합쳐서 간행되었는데 책의 제목을 ‘부인난설헌집 부경란집’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는 소설헌 경란을 조선의 역관 허순과 명나라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중국 여성 오자혜 (吳自惠)의 발문이 들어 있다. 이 책은 당시 출간된 후 매일신보에 광고가 나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오자혜는 문에서 그의 둘째 아들이 조선에서 돌아와 허씨양란집의 발문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조선 사람들이 두 사람의 시집을 한데 묶어 내면서 규방인의 발문을 싣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모두 신선 세계의 말들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양란 (兩蘭: 난설헌과 경란)에 대한 사모의 마음이 생긴다고 썼다. — p.252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저자가 문학연구자로서의 관점에서, 시인으로서의 허난설헌과 그 작품 자체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그와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평전이다.
또한 책 크기도 작고 예뻐서 어디서든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근래 허난설헌에 대한 연구들도 많이 나오고 대중매체를 통해서 소개되기도 했다. 대중매체에서는 흥미를 끌기 위해 난설헌과 그의 문학에 대한 일부분만 과대하게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시가 표절이냐의 문제나, 황진이와 문학적인 라이벌이 될 수 있는가 등 매우 표피적인 내용으로 접근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 양식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기 위해서 수많은 전적들을 읽고 천여 편이 넘는 시를 썼던, 치열하게 살다간 한 인물의 온전한 모습을 담기엔 치기어린 그런 소개들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의 생은 꽃다운 나이에 다했어도 그가 남긴 시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난설헌이 죽은 후 조선의 고루한 선비들이 여성이 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화살을 죽은 이의 무덤 위에 꽂을 때, 중국에서는 난설헌의 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시집과 시선집이 여러 차례 간행되었던 것이다. 난설헌은 그렇게 부활했다. 그가 떠난 지 400여 년이 넘은 지금 이 땅에서도 허난설헌 문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제 허난설헌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가 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천여 편이 넘는 많은 시를 쓰고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요절한 허난설헌의 일생과 그 시들이 먼저 중국에서 일대 돌풍을 일으킨 그의 삶과 문학을 통하여, 위대한 여류시인 허난설헌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바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