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허울뿐인 세계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 따님 / 2000.10.31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며,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그녀가 이끌고 있는 국제 생태운동 조직인 ISEC가 펴낸 책. 세계화와 자유무역 논리를 넘어서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명료하고 설득력있게 말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교육, 에너지, 인프라 그리고 연구 등에 걸쳐 사회 각 부문이 어떻게 세계화와 거대화에 맞추어 틀이 잡혀 있는지를 많은 자료를 토대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목차
1. 진화가 아닌가요?
2. 큰 것은 갈수록 커진다
3. 성장의 토대 – 인프라와 규모
4. 장거리수송 보조금
5. 세계화를 전파한다
6. 에너지를 찾아서
7. 세계화 시장에 봉사하기 위한 배움
8. 연구 – 누가 씨를 뿌리고 누가 거두는가?
9. 팽창하는 인프라 – 끝없는 경주
10. 게임의 규칙 – 자유무역
11. 많은 규제, 작은 효과
12. 그렇다면 그들은 왜 계속하는가?
○ 저자소개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Helena Norberg-Hodge)
40년 동안 전 세계에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있는 로컬 경제 운동의 선구자.
글로벌 경제와 국제 개발이 지역 사회와 경제,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분석해 왔으며, 이러한 영향에 반대하는 방법으로 ‘지역화’를 주장해 왔다. 2012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권위 있는 고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 ‘오래된 미래’는 같은 제목의 영화와 더불어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었으며 수상작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경제학’의 제작자이자 공동감독이기도 하다.
‘어스 저널’은 헬레나를 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환경운동가 10인’에 선정했고, 칼 맥대니얼은 저서 ‘살 만한 지구를 위한 지혜'(Wisdom for a Liveable Planet)에서 헬레나를 ‘세상을 바꾸는 선견자 8인’에 올렸다. 1975년부터 ‘작은 티베트’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자국의 문화와 생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현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해법을 찾고 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제2의 노벨상’이라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언어학을 전공, 7개 국어를 구사하여 옥스퍼드와 하버드 등 수많은 대학에서 강연했고, 전 세계의 여러 방송과 지면, 온라인 미디어에도 다수 출연했다.
로컬퓨처(Local Futures)와 국제지역화연합(IAL)을 설립하고 현재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국제미래식량농업위원회, 국제세계화포럼, 글로벌에코빌리지네트워크 창립회원이다.
한국 전주에서 매해 열리는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도 함께하며 공동체와 로컬 경제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알려왔다.
– 역자 : 이민아
이화여화대학교에서 중문학을 공부했고, 영문 책과 중문 책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 『깨어남』, 『색맹의 섬』, 빌 헤이스의 『인섬니악 시티』, 에릭 호퍼의『맹신자들』,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피터 브룩의 『빈 공간』등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기업경제는 조직의 모든 자리를 채워줄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량생산 해내는 엄청나게 다양한 제품을 사줄 소비자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현대 학교교육에서는 어린이들을 그들이 장차 살아갈 소비자세계에 친숙하게 만드는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미국이다 – 초등학생들 자신의 소비와 이들이 부모의 소비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합하면, 그 시장규모가 4,850억 달러에 달한다.
기업들은 이 시장을 창출하고 개척하기 위해서 슬며시 그리고 점점 더 깊숙이 교육체계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곳에는 그들의 허영된 모든 광고메시지를 싫어도 들어야 하는 청중이 있다. 현재 많은 학교에서는 기업들의 광고가 복도와 식당, 학교버스, 컴퓨터 스크린 따위를 장식하고 있다.
아마도 채널-원이라는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이 이러한 추세의 가장 음험한 예일 터인데, 40퍼센에 가까운 미국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틀어주는 이 프로그램은 광고로 넘친다. 이 음모를 꾸며낼 영리법인인 위틀 커뮤니케이션스는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매일 (광고시간 2분을 포함해서) 12분 동안 시청하는 것을 보장한다는 조건하에 채널-원에 고정된 파라볼라 안테나와 비디오 장비를 학교에 제공한다. 결국 학생들은 1년에 하루는 학교에서 줄곧 광고만 들여다보는 셈이다. 학생 대다수가 (학교에서 보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광고상품은 틀림없이 자신들에게 좋은 상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교실에서 방송되는 상업텔레비전의 부정적인 영향은 광고에서 자체를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또한 텔레비전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원이며 실용적ㅇ니 교육수단이라는 생각을 어린이에게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의 생활에서 텔레비전을 제거하고자 하는 학부모는 자녀 또래 아이들의 압력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의 이같은 묵시적인 권장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p.110
○ 전문서평 : 표정훈
우리 집 근처에서 내가 겪고 있는 세계화의 한 장면. 외국계 대형 할인점이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그리고 걸어서 1분도 안 걸리는 동네 슈퍼가 있다. 가격은 애당초 경쟁이 안 된다. 생필품을 비교적 대량으로 구매 할 경우, 나는 주저 없이 대형 할인점을 찾는다. 상품 구색도 마찬가지다. 동네 슈퍼에서 구할 수 있는 품목은 제한되어 있기 마련이다. 갖가지 사은 행사는 또 어떤가.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지만, 동네 슈퍼가 다윗이 되기는 힘들다.
이런 비근한 현실이 왜 세계화의 한 장면인가? 유통업 개방 조치 덕분에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들이 우리 나라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국적 거대 유통 기업들이 세계 각국의 소매 시장에서 직접 소비자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동네의 이러한 세계화는 자연스럽게 동네 슈퍼의 구조 조정과 통합의 물결로 이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상가 두 곳에 있던 4개의 소규모 슈퍼들이 2개로 줄어든 것이다. 한 상가에 두 개씩의 슈퍼가 있었는데, 한 슈퍼가 나머지 다른 슈퍼를 인수하여 결국 상가 하나에 슈퍼 하나 체제로 바뀌었다.
세계화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담고 있는 책 <허울뿐인 세계화>를 통해서, 나는 우리 동네에서 벌어진 세계화의 본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예컨대 나는 물건값이 저렴하다는 이유에서 외국계 대형 할인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는 것을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왜일까?
무엇보다도, 대형 할인점의 영업 활동을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이 결국은 일반 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품 운송에 필요한 교통 수단의 에너지 비용, 교통 수단이 움직이기 위한 도로 건설 비용, 다국적 기업의 운영에 필수적인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비용, 이런 비용들은 결국 세금이 그 주요 재원이기 마련이다. 선진국의 다국적 거대 기업들은 교통, 에너지, 정보통신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나라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기 마련이다. 한 마디로 장사할 만한 조건이 되는 나라, 예컨대 우리 나라 같은 곳에 투자한다.
그들의 투자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 그리고 보다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이점,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는 허리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낸 세금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런 생각을 좀 해보라고 말한다. 대형 할인점 식품 매장에 탐스럽게 진열되어 있는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의 달콤한 맛에만 취하지 말고, 그 오렌지가 매장에 놓이기 위해 필요했던 대륙간 운송 체계, 정보통신 기반 시설, 에너지 비용 등을 돌이켜 보라고 말한다.
저자의 요지는 매우 간단하다. 세계화란 결국 다국적 거대 기업이 이익을 증대, 유지시키려는 움직임과 다를 바 없으며, 그로 인해 불평등이 확대,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각국의 시장 문을 열게 만드는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저자의 비판의 대상이다. 거대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는데 열심인 각국 정부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물론 저자의 논지를 우리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측면도 없지 않다. 이른바 대외의존도가 높다못해 거의 절대적인 우리 나라로서는, 문을 닫는 것만이 능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던가 하는, 다분히 선언적인 차원의 대안(?)을 이야기할 뿐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많은 서평들이 바로 그 점을 이 책의 단점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이 책의 단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동네 세계화의 뒤안길에 도사리고 있는 달갑지 않은 풍경과 처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파트 단지 앞 슈퍼로 향하는 1분 남짓한 발걸음이 훨씬 더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집필한 다른 책으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녹색평론사)가 있다.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만날 수 있는 책으로 다음이 있다.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살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 (공감),
‘세계화의 덫: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 (영림카디널).
○ 독자의 평 1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머, 이럴수도…’라는 생각으로 술렁술렁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조금씩 읽어나갈수록 이건 머나먼 나라의 경제 이야기 책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현실감 넘치는 외침이 되어버렸다.
대형마트가 생겨나면서 동네 상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대형마트의 일자리 창출로 인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보다는 점점 대기업에 종속되는 지역주민들의 경제침체가 심화되어버리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우리밀이 좋은 것을 알지만 엄청난 가격차로 인해 수입밀을 먹게 되는 현실, 우리 고장에서 재배되어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귤보다 농약에 찌든 수입 오렌지가 더 많이 소비되는 현실이 그대로 책 속에 담겨 있다.
세계화라는 말은 지금까지 좋은 의미로만 쓰여지는 것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였었는데, ‘세계화’라는 말의 이면에 담겨있는 경제구조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경제구조에 맞물려 있는 내 소비생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대화로 치닫고 있는 세계경제는 덩치가 커지는 만큼 부의 집중 역시 강화되며 가속화되고 있다.
더구나 세계화라 하며 세계를 하나의 연결망으로 구축하는 인프라는 자세히 뜯어보면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거대기업의 생산과 판매 구축을 위한 것이며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숨겨진 의미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프라 사업은 사회 전체로 볼 때 이롭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사업은 경제규모를 팽창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지역사회와 지역경제를 서서히 갉아먹으며 그것들로 인해 가능해진 소비의 증가는 지구의 환경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런 허울좋은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세계화를 주장하는 거대기업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지역으로, 소규모로, 내 주변의 일상적 소비로 눈을 돌려보자. 잠시 나의 일상생활속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생활을 돌이켜보며 올바른 소비생활에 대해 깊이 느껴야 할 것이다. 이런 깨달음에서 소비생활을 하는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진다.
○ 독자의 평 2
이 책은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읽거나 또는 뉴스를 잘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그냥 생뚱맞은 이야기이거나 저 먼 나라 이야기여서 우리랑은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어줍잖게 세상 이야기를 조금 주워들은 사람에게 이 책은 그리 마음 편하게 읽을 책이 아닐 성 싶다. 우리는 ‘커지는 것이 진화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살고 있다. 우니라나의 GDP가 얼마가 늘었고 고속도로 연장 길이가 얼마가 늘었는지, 그런 것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빅딜과 합병으로 은행과 기업들이 커졌고 계속 지어지는 건물과 학교간 학과간 통폐합으로 학교들이 커졌다. 그 사이 우리 집도 평수가 더 넓은 집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이게 진화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분명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되어 편한데도, 고속철도로 두시간 반만에 부산에 닿을 수 있는데도,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한다. 이마트와 까르푸에 가서 무료시식을 즐기는 나에게, 그것 때문에 망한 중소 상인들을 생각해보라는 비장함을 안겨주면서. 전기값을 못내 단전을 해 촛불을 켜놓고 자다가 불이 나서 죽은 소녀의 기사를 보았다. 정부의 중대한 결정을 설명하며 밤에 찍은 위성사진을 보여즈는 뉴스에서는 북한 지역이 전기가 없는 암흑과도 같은 지역임을 묘사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켜기 위해서라도 전기가 없으면 안될테다. 그런데 이 전기는 석유와 석탄과 우리늄으로 생산되는 것인에 이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경 파괴와 군사지출을 유지해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란 대통령이 누가 당선되었느냐에 따라 원유값이 폭등하는 세계 현실에서, 미국이 이라크 민중을 다 죽여서라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켜야 유조선들이 안전하게 통행할테다. 그러고보면, 내가 이렇게 에어콘을 켜놓고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쥬스를 마시며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것도, 수많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총으로 미사일로 쏘아서 죽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더 빠른 것을 구가하면서도 항상 속터진다. 생활반경이 늘어나면서 이상하게 길에다가 쏟아붓는 시간도 더 늘어났다. 조선시대에는 학교 다니느라 길바닥에 세시간씩 쏟아붓지는 않았을테니까. 컴퓨터가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울화통이 터지고, 지하철이 앞차와의 간격을 맞추기 위해서 천천히 운행하면 신경질이 나는 것이 내 모습이다. 편리함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10년 전에는 핸드폰 없이도 잘 살아갔을텐데, 요즘은 핸드폰 없으면 그 불편함 이루 말할 수 없다. 발전이라는 것이 참 이상한 것임은 분명하다. 산업 문명이 이토록 발전하고 상품이 쏟아지는데 전세계 민중의 4분의 1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받으면 받을수록 일자리가 줄어들고 청년실업에 허덕인다. 초국적 기업, 대형 마트,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왔는데 일자리가 줄어들었단다. 그것참 이상하지 않은가. 이제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이라는 곳도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의 3분의 1을 줄이기 위해 대학끼리 통폐합하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과 대학도 산업이라 선언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에서 교육의 앞길을 볼 수 있다. 10년간 대학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커리큘럼은 학생을 산업주의 전사로 키워내기 위한 방향으로 재구성 되었고, 이제는 기업체 인턴을 학점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해 드디어 기업 업무가 커리큘럼 안으로 정식으로 편입했다. 학생들도 좋아한다. 경력 쌓고 돈도 벌고 학점도 따고. 일석삼조네. 그래서 호주처럼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고기를 굽고 감자를 튀기며 학점을 따는 날이 얼마 멀지 않았다. 대학 안에는 각종 프랜차이즈들과 상업 자본들이 들어온다. 고려대 타이거플라자에 이런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소수의 학생만 반발하고 나머지는 다 좋아했다. 이화여대에 던킨도너츠 들어올 때 학생들 다 좋아했다. 우와 가까운데서 사먹을 수 있네. 이제 대기업들이 열심히 대학들에 투자한다. 건물 이름에 삼성 엘쥐 에스케이 포스코 등등의 이름이 아로새겨진다. 각종 연구기금으로 대기업의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교수 학생들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이리 하여 대학에서 생산된 지식과 기술이, 사회적 공공성을 가지지 못하고 사기업의 지적재산권으로 편입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을 개발하여 난치병 환자 치료할 수 있게 되면 전 세계 민중에게 축복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에 에이즈약 카피를 금지한 인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전 세계 에이즈 환자들이 다 죽게 생겼다. 백혈병 환자들이 먹는 글리벡이 얼마나 비싼지 아는가. 결국 축복이어야 할 기술 개발은 글리벡 팔아먹는 다국적 제약회사 같은 기업들 배만 불리어 주는 것일지니. 그래서 정부가 교육에 사활을 거는 것이리니. 돈이 되지 않는가. BK21과 그 쌍둥이 누리사업, RIS, 산학협력에 녹아 있는 천박한 목적의식도 그런 것이다. 이제 법을 보완해 학교를 기업으로 만들고 장사해서 이윤을 마음대로 남길 수 있도록 만들고 기업의 연구소를 학교 안에 짓게 하고 기업이 학교를 차릴 수 있게 하겠단다. 그런 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니 노동자가 35미터짜리 크레인에 올라가고 트럭에 깔려 숨져도 그저 ‘노동귀족의 배부른 투정’ 정도로 들리는 것도 당연할테다. 이 세계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한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 책은 매우 짧고 빈약하면서도 그 안에 이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Small is Beautiful.” 작은 것으로의 실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 진행 중인 실험들이 있다. 소비자협동조합과 의료생협, 지역신용금고 제도, 지역화폐 LETS, 지역생산공동체, 대안농업과 유기농공동체 등. 그러나 책의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새로운 의제 – 금융시장과 다국적기업의 힘에 기꺼이 맞서 싸우고자 하는 정부대표들을 선출해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주권국가들과 풀뿌리공동체들이 세계적으로 연대하는 것. 블레어와 슈레더와 룰라가 신자유주의의 품에 안기고 있는 현실에서 가능할지 두려움이 들기도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이 인류의 믿음이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사회적 불행의 숨은 원인은 단 하나, 팽창인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곳에는 무언가 너무 커져 있다. – 31page 현대적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자기들의 주의 상황을 거의 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자원을 사용할 줄도, 자신들의 세계에서 제구실을 할 줄도 모른 채 학교를 떠난다. 학교는 전통적인 기술을 잊어버리는 곳이고, 더 나쁘게는 그것들을 경멸하는 곳이다. – p.102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