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혁명의 탄생 : 근대 유럽을 만든 좌우익 혁명들
데이비드 파커 외 / 교양인 / 2009.7.20
16세기 네덜란드혁명부터 20세기 말 탈공산주의 혁명까지, 근대 유럽을 만든 주요 혁명들을 통해 근대를 재구성하는 ‘혁명의 전기’이다. 혁명의 역사는 이념과 사상의 역사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파시즘과 같은 주요한 정치 이념들이 혁명과 함께 등장했다. 이 책은 이념들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대결하고 변모하는 과정을 혁명의 현장 속에서 포착하여 혁명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혁명의 탄생』은 세계 역사의 전환을 가져 온 혁명을 다루고 있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파시즘의 혁명 등 좌우익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혁명의 양상을 살피면서 혁명 운동을 가능하게 한 민중의 역동성과 창의성에 주목한다. 혁명은 언제 일어나는지, 무엇을 ‘혁명’이라고 부르는지,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통해 혁명의 본질과 속성, 과정을 낱낱이 분석한다. 각 분야의 전문 학자 12명의 내실있는 연구는 혁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세계사과 혁명사를 한 눈에 조망하게 해 줄 것이다.

○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혁명은 언제 탄생하는가
머리말
제1장 혁명이란 무엇인가 – 근대를 만든 혁명, 근대가 만든 혁명
혁명은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다|혁명을 보는 두 시선, 자유주의 대 마르크스주의
혁명과 외부 압력|무엇이 반란을 혁명으로 이끄는가?|혁명의 끝은 독재인가?
무기가 되는 혁명 이념|자유인가, 평등인가?|해방의 상상력, 이념의 힘
제2장 네덜란드 혁명 1566년∼1581년 – 근대 최초의 국민 혁명
‘거지’라는 이름의 반란자들|도시들, 봉기의 깃발을 들다|“돌멩이들까지 에스파냐에 반항한다”
저항의 최전선, 칼뱅주의|자유라는 이념의 탄생|‘국민 의식’을 만든 혁명
제3장 잉글랜드혁명 1649년 – 국왕 처형과 공화국의 수립
내전인가, 반란인가, 혁명인가?|인쇄물의 폭증, 정치 토론의 폭발 |급진파 대 보수파
“국가는 왕의 소유물이 아니다”|혁명적 민중을 이끄는 지도자|국왕의 도주와 혁명의 급진화
크롬웰과 혁명 군대|‘새로운 사슬’과 급진파의 좌절|‘자랑스러운 유산’ 공화국
제4장 명예혁명 1688년 – 의회의 승리와 군주정의 혁신
폭군 축출과 왕권의 제한 | 루이 14세를 꿈꾼 제임스 2세
국왕과 신민의 대결 | 의회, 군주 위에 서다
제5장 미국 독립혁명 1763년∼1791년 – 의회 주권에서 인민 주권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의회 주권 대 식민지 자치|‘왕 없는 정부’를 넘어선 공화주의
“공화국 인민은 스스로 통치한다”|헌법 제정과 삼권 분립 | 평등을 향한 인민의 요구
인민의 통치를 수립한 내부 혁명
제6장 프랑스혁명 1789년∼1799년 – 근대 혁명의 이념형
급진 자유주의 부르주아 혁명 | 자코뱅의 승리와 제1공화정
로베스피에르 몰락과 나폴레옹 쿠데타 | 혁명의 아이러니, 평등에서 독재로
제7장 1848년의 혁명들 – 급진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의 혼전
유럽 전역으로 번진 2월혁명 | 급진주의 – “민중에게 권력을!”
자유주의 – 원하지 않은 혁명의 수혜자 |보수주의 – 혁명의 공포가 낳은 이념
자유파와 급진파의 분열, 보수파의 승리|혁명의 실패와 권위주의 국가의 출현
제8장 혁명 이념의 계보와 진화 –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혁명 전통
직업 혁명가의 등장 | 폭력과 혁명 독재 – 바뵈프와 블랑키|마르크스주의, 프롤레타리아 발견
바리케이드 시대의 종언?|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길|아나키즘, 공포정치의 산물
혁명 운동에서 노동자의 역할
제9장 러시아혁명 1905년~1917년 – 20세기 혁명의 이념형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혁명’|데카브리스트에서 마르크스주의까지
1905년 혁명, 러시아의 ‘1848년’|전쟁과 혁명, 1904년에서 1914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과 2월혁명|1917년 : 2월부터 10월까지|10월혁명,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제10장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혁명의 좌절
산산조각 난 국제 혁명의 꿈 | 독일 중간계급의 두려움|좌파의 분열과 우파 행동주의
검은셔츠단과 로마 진군|가톨릭 보수주의의 정치화|반혁명 세력의 계급 전쟁
제11장 파시즘, 우익의 보수 혁명 – ‘상처 입은 민족’과 ‘국가의 재생’
파시즘은 혁명 이념인가? | 파시즘과 유사 파시즘|파시즘 신화의 구성 요소
파시즘과 나치즘의 차이|파시즘의 영구혁명 충동|뉘른베르크의 황홀경
괴벨스 – “우리 혁명은 총체적이다”
제12장 소비에트의 탈공산주의 혁명 1989년∼1991년 – 실패한 개혁과 체제의 붕괴
개혁 공산주의의 등장 | 소비에트 제국의 기원|개혁에서 위기로
동유럽의 탈식민화 혁명|개혁과 반개혁의 충돌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소비에트 해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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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데이비드 파커 외
1장 – 데이비드 파커(David Parker) 영국 리즈대학 근대사 교수
2장 – 마르욜레인트 하르트(Marjolein’t Hart)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에서 경제사와 사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3장 – 앤 휴즈(Ann Hughes) 영국 킬대학 근대사 교수
4장 – W. A. 스펙(W. A. Speck) 리즈대학 근대사 명예 교수
5장 – 콜린 본위크(Colin Bonwick) 킬대학 미국사 교수
6장 – 귄 루이스(Gwynne Lewis) 영국 워릭 대학 역사학 명예 교수
7장 – 존 브루이(John Breuilly) 영국 버밍엄 대학 근대사 교수
8장 – 딕 기어리(Dick Geary) 영국 노팅엄대학 근대사 교수, 독일 루르대학(보훔) 유럽노동사연구소 연구원
9장 – 모린 페리(Maureen Perrie) 버밍엄대학 러시아사 교수
10장 – 크리스토퍼 리글리(Christopher J. Wrigley) 노팅엄대학 영국 근대사 교수
11장 – 로저 그리핀(Roger Griffin) 옥스퍼드 브룩스대학의 사상사 교수
12장 – 로버트 대니얼스(Robert V. Daniels) 미국 버몬트대학 역사학 교수
– 역자 : 박윤덕 (PARK Youn-Duk, 朴允德)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대학 프랑스 혁명사 연구소에서 제헌국민의회 시기의 「농촌소요와 농민운동, 1789~1791」이라는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혁명사 및 근대 유럽의 농촌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프랑스 구체제의 권력구조와 사회』가, 옮긴 책으로는 『혁명의 탄생』등이 있으며, 「프랑스혁명 초기 농민운동의 성격」, 「농촌공동체와 농민혁명-1789년 7월 마코네Maconnais 지방의 농촌폭동 사례연구」, 「민중의 “도덕 경제”와 식량폭동-18세기 말 프랑스의 경우」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책 속으로
제1장 혁명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반란을 혁명으로 발전시키는지를 두고 일반화를 시도할 수는 없다. 혁명의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일련의 단계들을 규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여기에서 연구한 혁명들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혁명 가담자들이 때때로 하나의 위기에서 다음 위기를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과정이다. … 러시아혁명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고, 레닌이 의식적으로 준비했지만, 발전 과정은 예측할 수 없었다. 레닌이 확실하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은 결정적인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다. 1917년 2월 차르의 퇴위, 10월에 일어난 볼셰비키의 임시정부 전복, 이듬해 1월 볼셰비키의 제헌의회 강제 해산, 외세의 개입과 내전, 그리고 스탈린의 부상(浮上)이 그것이다. 러시아혁명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이는 이 책에서 다룬 거의 모든 혁명에 적용할 수 있는 의견이다. — pp.37-38
집권자들의 신념을 갉아먹고 반대자들을 대담무쌍하게 만드는 새로운 이념의 발전보다 더 안정을 뒤흔드는 것은 없다. … 귀족과 국왕이 하사한 관직 보유자들이 신권(神權)에 대한 신념을 상실했을 때, 공산주의 정부가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신념을 상실했을 때, 또는 독일 중간계급들이 대의제 정부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반란을 부추기는 이념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공간이 열렸다. 그런 이념들은 상호 모순되었으며, 여러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런 이념의 모순은 더 나은 세상의 질서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덜 중요할 것이다. — pp.46-47
제2장 네덜란드혁명 1566년~1581년
네덜란드 반란에 훨씬 더 적합한 용어는 국민 혁명이다. 반란의 반에스파냐적 성격은 칼뱅주의나 ‘부르주아의 요구’보다 다양한 사회계층과 많은 도시들에서 분출된 반란을 하나로 묶는 데 한층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자유’와 ‘주권’을 요구하면서 표출된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단지 투쟁 과정에서 뒤늦게, 아마도 1572년부터 발전했으며, 주의회는 자유와 주권의 진정한 수호자로 떠올랐다. 오라녀 공 빌럼이 보여준 종교적 관용은 칼뱅파 망명자들이 발전시킨 막 태동하고 있던 국민 의식과 함께 점차 자율성을 갖게 된 정치 환경 안에서 비옥한 토양을 찾았다. … 이 국민 혁명의 과정에서 양심의 자유나 제한군주제 같은 혁명적 관념이 발전했는데, 이는 잉글랜드혁명과 프랑스혁명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하고 나서 19세기에 훨씬 더 유행하게 될 관념이었다. — pp.82-83
제3장 잉글랜드혁명 1649년
1649년에 일어난 사건은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잉글랜드 정부의 성격을 눈에 띄게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명백히 혁명적이었다. 우선 단순히 왕을 교체한 것이 아니라 권력 구조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단원제 의회가 행정권을 갖는 국무회의를 선임하고 집단적으로 통치하는 체제가 수립되었다. 두 번째, 잉글랜드 지배층의 사회적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특권계급이 아니라 주로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지주계급에서 충원되었다. 세 번째는 근대 초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인데, 1649년 혁명은 모두에게 의무로 강요되었던 국교회의 쇠락을 확인해주었고 동시에 신교도들에게 전례 없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또한 새로운 정치적 관행이 출현하고, 결국 혁명적 과정에 도달하게 될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소통과 동원이 나타났다. — pp.92-93
제4장 명예혁명 1688년
공회가 소집되었을 때, 의원들 사이에는 국왕의 도주가 남긴 균열을 어떻게 메울지를 놓고 뚜렷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 그들은 제한군주제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 개념의 수용은 장차 가톨릭교도나 가톨릭교도의 배우자는 왕이나 왕비가 될 수 없다는 결정에 반영되었다. 가톨릭교도는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경험으로 확인되었다. 제한군주제의 수용은 또한 권리선언에도 표현되었다. 권리선언은 제임스가 채택한 13개 조치를 열거하고 그것이 불법임을 선언했다. 제임스 2세가 국왕의 특권을 사용한 것을 비난하고 의회가 국왕에게 행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권리선언은 절대왕정에 대해 제한군주제를 선택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제임스는 ‘잉글랜드 국왕이 부여한’ 법을 승인하고 유지할 것’을 맹세했다. 윌리엄과 메리는 “의회에서 승인한 법령, 의회의 법과 관습에 따라 … 잉글랜드 왕국의 주민을 통치할 것”을 선서했다. — pp.151-152
제5장 미국 독립혁명 1763년~1791년
미국인들이 동의한 거의 유일한 사항은 공화주의는 국왕 없는 정부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은 정통성의 원천으로서 국왕과 의회의 권리를 부정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정통성 있는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해결책은 공동체 자체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의회 주권을 인민 주권으로 갈아치운 것은 권력 원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강력한 민주주의, 평등주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했지만, 인민 주권의 원칙이 곧바로 명확한 다수결의 원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민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평등한 개인들의 산술적인 총합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집합체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난점은 어떻게 원칙을 실제에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 pp.181-182
제6장 프랑스혁명 1789년~1799년
혁명의 진정한 승자가 토지 소유로 보나 정치 권력으로 보나 부유한 부르주아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르주아와 부농층이 국유 재산 매각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았고, 영주제 폐지를 놓고 생각해볼 때 그들이 진정한 사회 혁명을 대표했다. 정치 권력에서는 기본적으로 토지 재산에 근거한 재산 자격 덕분에 혁명 이후에 살아남은 귀족들(사실 대부분이 살아남았다)이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도입은 이제 출생이 아니라 돈이 권력에서 한몫을 차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 혁명의 패배자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이었다. 민중 운동의 사멸과 불운하게 끝난 ‘평등주의자의 음모’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의 종언을 의미했다. 교육 확대와 빈민 구제 도입 계획은 묵살되었다. — pp.233-234
제7장 1848년의 혁명들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은 서로 협조하는 데 실패했고, 이러한 분열은 보수주의가 이끈 반혁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헝가리군(軍)이 1848년 10월 빈의 반란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을 넘었다면,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헝가리 사람들은 제국 전역으로 혁명을 확산시키지 않고, 헝가리에서 헌정적 성과를 수호하는 데 그쳤다.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의 이탈리아 급진주의자들은 반혁명이 승리를 눈앞에 두었을 때야 비로소 협력했다. 보수주의 세력들은 나중에 민족 간의 대립을 이용해서 모든 민족주의 운동을 진압했다. — p.276
제8장 혁명 이념의 계보와 진화
1789년의 신화는 1848년의 혁명가들에게 힘을 주기도 했고 힘을 빼기도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의 혁명이 소극(笑劇)으로 되풀이된 역사였다는 것을 꿰뚫어보았다. “1848년부터 1851년까지 늙은 혁명의 유령이 돌아다녔다. 구식 날짜 표기법, 옛날 연대기, 구식 이름들, 옛날 칙령들이 다시 나타났다.” … 마르크스는 프랑스혁명을 공부하면서 정치적 해방만으로는 결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자유로운 세상이 되려면 사회·경제 관계도 바뀌어야 한다. 법 앞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은 서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고, 서민들은 숙명적인 빈곤 탓에 노예로 전락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모두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후 오랫동안 1789∼1795년의 프랑스의 대변혁은 사실상 모든 종류의 혁명 사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 p.288
아나키즘 이론은 그 자체가 프랑스혁명, 특히 공포정치에서 비롯된 환멸의 산물이었다. 1793년에 영국 철학자 고드윈은 《정치적 정의에 관한 연구》에서 모든 형태의 권위를 폐지하고,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는 작은 사회 단위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처럼, 고드윈은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프루동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두 가지 점에서였다. 즉 국가에 기대는 모든 이론을 불신했다는 점과, 부르주아 정치와 모든 정당들은 부패했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해방해야 한다는 엄격한 노동자주의 (ouvrierisme)가 그것이다. 프루동은 어떠한 형태의 폭력 혁명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수제자였던 러시아 아나키스트 바쿠닌은 폭력 혁명을 지지했다. — pp.306-307
제9장 러시아혁명 1905년~1917년
볼셰비키가 1917년의 대중 조직들로부터 지지를 획득하는 데 레닌의 이데올로기적인 유연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레닌은 “평화, 토지, 빵!” 같은 효과적이고 민중적인 슬로건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강령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그는 아나르코 생디칼리슴적 함의가 담긴 ‘노동자 통제’를 약속했고, 사회주의혁명가당으로부터 ‘토지 사회화’ 정책을 빌렸으며, 러시아 제국의 여러 민족들에게 민족 자결을 제창하면서 비(非)러시아 정당들과 경쟁했다. 그러나 동시에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드러난 자본주의 위기의 국제적 몼격을 강조하면서, 후진적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서 끊임없이 정당화했다. 1917년 레닌의 이데올로기는 이 점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분파의 사상과 일치했지만, 인민주의와 아나키즘과도 공통점이 많았다. — p.349
제10장 혁명과 반혁명 사이
(두 세계대전 사이에) 좌파가 계급 전쟁에 관해 떠들어대는 동안, 유럽의 반혁명 세력은 계급 전쟁을 실행할, 적어도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대항해서 폭력적이고 단호한 행동을 할 각오, 의지, 능력을 갖추었다. 이는 나치 독일뿐만 아니라 헝가리, 이탈리아,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에스파냐와 두 세계대전 사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좌파는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 더구나 우파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좌파는 투쟁 방법이 의회주의적인지 혁명적인지, 혁명적인 경우에는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두고 이데올로기적 혼란에 빠져 점점 힘을 잃었다. … 1934년에 공산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프랑스뿐이었다. 프랑스공산당은 레옹 블룸이 이끄는 인민전선 연립정부(1936∼1937)에 참여하면서 의회주의적인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는 레닌이 선진 산업 국가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혁명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 pp.379-380
제11장 파시즘, 우익의 보수 혁명
파시즘 혁명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혁명이나 마르크스주의 혁명과 두드러지게 다르다. 후자의 혁명들은 국지적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이론상 세계적인 차원에서 구질서에 대한 투쟁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언젠가는 인류 전체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것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국제적인 평화일 것이다. … 그러나 파시즘은 언제나 ‘인류’가 아니라 ‘자국’ 국민에게 초점을 맞췄고 이런 점에서 파시즘 혁명은 일부에만 국한된 것이다. …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자유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파시스트들은 사회적 평형과 무풍 지점에 도달한 ‘불변 상태’의 사회를 상정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파시스트들에게 평형 상태는 환영할 만한 안정이 아니라, 정체와 쇠퇴,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파시즘은 자신에게 권력을 안겨준 혁명적 순간의 역동성을 영원히 지속시켜 ‘영구혁명’ 상태를 창출하려는 충동에 내몰린다. — pp.410-411
제12장 소비에트의 탈공산주의 혁명 1989년~1991년
유럽의 지정학적 차원에서, 소비에트 블록의 탈식민화는 거대한 힘의 공백을 불러왔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 정부는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만한 자원도 심리적인 매력도 지니지 못했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제국주의를 경험했던 동유럽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정치·경제·전략적인 모든 면에서 서구로 방향을 돌렸다. 요약하면, 동유럽과 소련에서 탈공산주의적 전환이 가져온 전략적 결과는 러시아에게는 지정학적으로 볼 때 재난이나 다름없었다. … 모든 혁명은 각각의 사회 조직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오지만, 모든 것을 바꾸는 혁명은 없다. 역사상 고전적인 혁명의 궁극적인 결과와 비교해서 판단해볼 때,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공산주의의 전복은 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표면적으로 나타난 격변의 양상은 달랐지만 국가의 태도와 운명을 형성하는 문화적 연속성을 남기면서 해당 국가들을 각각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 p.458

○ 출판사 서평
–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누가 혁명을 일으키는가?
언제 혁명은 성공하는가? 혁명에 관한 핵심 질문들에 답한다!
혁명은 근대의 작품이며, 근대는 혁명의 소산이다. 근대에 출현한 혁명은 근대적 가치와 이념을 탄생시켰다. 『혁명의 탄생』은 16세기 네덜란드혁명부터 20세기 말 탈공산주의 혁명까지, 근대 유럽을 만든 주요 혁명들을 통해 근대를 재구성하는 ‘혁명의 전기’이다. 네덜란드혁명은 에스파냐에 대항해 공화국을 세운 근대 최초의 국민 혁명이었다. 청교도들이 주도한 잉글랜드혁명은 최초로 왕을 처형한 공화주의 혁명이었다. 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명문화한 민주주의 혁명의 이념형이었다. 러시아혁명에 이르러 인류는 처음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뒤를 이은 파시즘 혁명은 국가의 쇠퇴에 두려움을 느낀 급진 민족주의자들의 보수 혁명이었다. 20세기 말 소비에트 체제의 해체와 탈공산주의 혁명으로 근대 500년의 혁명사는 하나의 사이클을 완결했다. 21세기 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혁명의 탄생』은 혁명에 관해 끝없이 되풀이되는 질문들을 통해 혁명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무엇이 반란을 혁명으로 이끄는가?”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은 동시에 실현할 수 없는 가치인가?” “혁명은 나폴레옹, 크롬웰, 스탈린 같은 독재자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는가?” 저자들은 혁명을 한 국면에서 다음 국면으로 밀고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는 구체적 사건들에서 이 쟁점들의 답을 찾는다. 개별 혁명들에 관한 깊이 있는 탐구와 혁명 일반의 성격에 관한 폭넓은 고찰을 위해 각 분야 일급 학자 12명이 전문 분야를 맡아 집필했다. 각 장마다 혁명 연표를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 혁명은 이념을 만들고, 이념은 혁명을 낳는다!
혁명의 역사는 이념과 사상의 역사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파시즘과 같은 주요한 정치 이념들이 혁명과 함께 등장했다. 이념은 혁명을 밀고 가는 힘이었고, 혁명은 이념이 자라나는 태반이었다. 권력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반대자들을 대담무쌍하게 만드는 새로운 이념의 진군보다 더 위험하고 위력적인 것은 없었다. 인류의 도덕적 재생에 대한 신념,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유토피아적 열망이 없었다면 어떤 혁명도 가능하지 않았다. 계몽사상에서 프랑스혁명이 태어났고, 프랑스혁명의 두려움 속에서 근대 보수주의가 일어났다. 잉글랜드혁명은 자유주의의 산실이었으며, 공산주의 열정이 러시아혁명을 낳았다. 『혁명의 탄생』은 이념들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대결하고 변모하는 과정을 혁명의 현장 속에서 포착한다.
–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언제 일어나는가?
이 책의 저자들은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 정치·사회적 파열의 순간에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들이 폭동과 시위를 일으킨다고 해서 반드시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거의 언제나 주민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그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게 하는 사회·경제적 모순과 그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 체제의 정치적 무능이 결합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 세력의 등장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들이 결합되었을 때 혁명이 성취되었다. 그중 하나가 결여되면, 폭동이나 반란에 그치거나 아니면 대중이 참여하지 않은 채 일부 저항 세력의 음모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무엇을 ‘혁명’이라 부르는가?
이 책에 따르면 혁명이란 구질서가 정치적으로 파괴되고 권력의 중심이 ‘혁명적’으로 이동하는 사건을 가리킨다. 즉 혁명은 역사적 흐름의 단절이자, 정치에서 돌이킬 수 없는 변화, 국가 기구 자체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사건이다. 이러한 포괄적 정의에는 ‘혁명’이라는 말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여러 요소, 즉 ‘민중’, ‘진보’, ‘폭력’, ‘해방’의 개념이 빠져 있다. 『혁명의 탄생』은 근대 유럽 500년 동안 일어난 혁명을 추적하면서, 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차원의 논쟁점들을 짚어본다. 혁명의 핵심적 특징은 폭력이라는 주장, 혁명은 반드시 진정으로 민중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 혁명은 본질적으로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 등 혁명에 관한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식을 요청한다.
폭력은 과연 혁명의 본질적 요소인가? 17세기 영국 명예혁명은 ‘무혈 혁명’이라 불릴 만큼 대체로 평화적인 사건이었으나, 권력의 소재를 국왕으로부터 의회로 혁명적으로 이동시켰다. 또 20세기 말 동유럽 탈공산주의 혁명에서도 폭력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 소련과 뾵유럽에서는 체제 비판과 변혁이 기존 제도권 기구를 통해 비혁명적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혁명이 반드시 폭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실패한 혁명 대 성공한 혁명 혁명 과정에서 여러 정치적 경쟁 세력들이 권력 투쟁을 벌이다 결국에 구체제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국가 기구를 만들어 질서를 회복할 경우, 그 혁명은 실패한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1848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대변혁은 불과 1년여 만에 보수주의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구질서를 약화시킴으로써 여러 정치 세력이 경쟁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했고, 혁명의 무대에 처음으로 새로운 세력을 등장시켰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요원한 상태일 때조차, 혁명들은 덜 권위주의적이고 덜 집중화되고 좀 더 대의제에 충실한 체제를 만들어냈다. 권력 투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국가의 세세한 형태가 혁명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붕괴와 재구성 과정, 그리고 그 국가를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 혁명을 규정한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파시즘 ‘혁명’
결국 이 책에 따르면, ‘혁명’은 “인간 활동의 특정 국면에서 나타나 그 국면과 연결된 사회적?심리적 현실의 광범위한 관계망에 급격한 혁신적 결과를 낳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이다. 이런 규정은 반드시 역사의 진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또는 자유주의적 도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과거와의 단절이 철저하기만 하다면, 어떤 사건을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음을 뜻한다. 그 논리의 연장에서 이 책은 ‘파시즘’을 혁명에 포함시켜 다룬다.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극단적 민족주의의 ‘혁명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도래를 지연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반동적이라고 추정하게 되었다. 파시즘은 사회를 사회주의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급속하게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반혁명적’이었다. …… 대다수 자유주의자들은 파시즘이 혁명적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지도자 숭배, 극단적인 민족주의, 조직적인 잔혹 행위로 환원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 이 글에서는 그런 ‘상식’을 정면으로 반박할 것이다. 다시 말해 비록 극우파가 전반적으로 ‘반동적’일지라도, 적어도 파시즘적 선언을 통해서는 극우파가 정말로 혁명적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 pp.392-394 (제11장 파시즘, 우익의 보수 혁명)
– 무엇이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가?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소수 혁명가의 기획이 아니라 ‘거리의 정치’에서 폭발하는 민중의 역동성과 창의성이 혁명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혁명에 참여했던 많은 혁명가들은 지식인과 직업 혁명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혁명은 지식인 혁명가와 그들의 이론이 지닌 설득력 이상의 것에 의해 좌우되었다.
모든 혁명들은 처음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들의 예상과 사고를 넘어서 발전했다. 프랑스혁명은 상퀼로트들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헌정적 개혁 이념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훨씬 더 총체적인 요구 사항을 제기하게 되었다. 모든 혁명 분파들(지롱드, 자코뱅, 격앙파, 에베르파)은 중간계급 출신 인사들이 지도했지만, 그들은 점점 더 서민들의 요구에 눈과 귀를 맞추어야 했으며, 서민들의 요구를 법제화해야 했다. — p.310 (제8장 혁명 이념의 계보와 진화)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권력 기구가 들어서고 개혁 조치가 단행될 때, 혁명의 지향점과 구체적인 개혁 조치에 관한 논쟁이 혁명 세력 내부에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켜 혁명 세력을 분열시킨다. 이제 혁명 세력은 혁명을 지키기 위해서 반혁명과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과거의 동지들과도 싸워야 했다. 이러한 정치 게임에서 민중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혁명 초기에 민중은 우발적으로 동원된 혁명 세력의 보조적 동맹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혁명 세력이 권력 투쟁을 벌이는 단계에서 민중의 개입은 권력의 향배를 가를 수도 있는,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혁명, 민중을 발견하다!
혁명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민중 역시 근대의 산물이다. 민중은 혁명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고, 혁명을 겪으면서 정치화되었으며, 때로는 혁명가들이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혁명을 급진화시켰다. 따라서 혁명 지도자들은 어떻게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민중과 동맹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민중의 개입은 두 가지 점에서 혁명의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민중의 동원은 혁명이 정치적 차원을 넘어 사회·경제적 문제를 의제로 삼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제 혁명은 민중이 원하는 참정권의 확대, 교육권과 노동권의 보장뿐만 아니라 봉건제의 해체나 토지 개혁과 같이 소유권을 건드리는 근원적인 문제까지도 해결해야 했다.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혁명에서부터 뚜렷하게 나타나서 러시아혁명에서 절정에 달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혁명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민중의 개입이 혁명을 더욱 폭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혁명 세력이 많은 양보를 하면서 민중을 끌어들인 것은 그들이 유권자의 다수를 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혁명을 방어할 혁명군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사실 혁명 전에 민중은 대부분 참정권이 없는 자들이었다.) — pp.11-12 (한국어판 머리말)
한편, 19세기에 마르크스는 혁명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를 재발견했다. 혁명을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혁명관은 혁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전위적인 직업 혁명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혁명이 행동을 통한 자기 해방이라면, 행동하는 것은 대리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어야 한다. 이는 정확하게 독일사회민주당에서 활동했던 폴란드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2년 레닌에 맞서 전개했던 주장이다.”
– 해방의 상상력, 이념의 힘!
『혁명의 탄생』에는 혁명의 발전에서 이념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계몽사상은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위한 길을 닦았고, 사회주의의 이상은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마침내 현실을 새롭게 창조했다. 새로운 이념의 발전은 집권자들의 신념을 뒤흔들고 반대자들을 대담무쌍하게 만들어 혁명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거꾸로, 혁명이 이념을 잉태하거나 이념의 발전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혁명은 이후 등장하는 모든 혁명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준 ‘혁명의 어머니’였다.
.자유주의 – 원하지 않은 혁명의 수혜자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유행한 전문 용어는 ‘헌법’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법의 지배와 헌법이 부과한 비인격적 제약에 종속되는 정부를 원했다. 그들은 선출된 의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바랐지만, 급진주의자들과 달리 의회를 주권 기구라기보다는 입헌군주제의 한 요소로 보려고 했다. …… 1848년 초 민중 운동이 정부들을 무너뜨렸지만, 민중 운동의 한계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이 허울뿐인 권력으로 급부상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여러 나라에서 정부의 부름을 받아 입각했고, 프랑스를 제외한 여러 나라에서 초기에 의회를 장악했다. ……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촉발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은, 오히려 종종 부정하고자 했던 혁명의 수혜자였던 것이다. — pp.261-262 (제7장 1848년의 혁명들)
.보수주의 – 혁명의 공포가 낳은 이념
근대의 보수주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났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 보수주의 이론의 효시로 꼽힌다. 그러나 보수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48년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였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에 의해 ‘보나파르트주의’라는 매우 독특한 성격의 보수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영악한 보수주의자들은 구식(舊式)으로 복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 일부 지역에서 혁명의 발발과 민중 조직의 급속한 확대가 이를 입증했다. 농민과 자유주의자들에게 양보한 것 때문에 원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급진주의와 자유주의 가운데 많은 요소들이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유형의 보수주의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 예들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것이 보나파르트주의(Bonapartism)였다. 보나파르트주의는 ‘보수주의적’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울 만큼 새로웠다. 사실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던 루이 나폴레옹은 1848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사회 계층과 정파로부터 실질적인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민중적 사회 조직에 대한 지원과 전향적인 외교 정책,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은 보나파르트주의를 복잡한 성격의 보수주의로 만들었다. — pp.272-274 (제7장 1848년의 혁명들)
.급진주의 – 테르미도르 반동의 산물
급진주의는 온건한 개량주의적, 수정주의적 개혁에 반대하고 타협 없는 직접 행동을 주장한다. 프랑스혁명기의 급진주의자 바뵈프와 부오나로티는 1794년 7월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혁명 세력의 좌절을 경험하면서 음모적이고 폭력적인 혁명 독재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7월왕정 시기(1830∼1848)의 프랑스에서 가장 극단적인 혁명 이론을 주장했던 오귀스트 블랑키는 소수의 음모가 엘리트가 사회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직업 혁명가 엘리트가 권력을 장악하고 혁명 독재를 수립하여, 유산자들로부터 사적 자본을 몰수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급진주의가 유행시킨 전문 용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중 (the people)’이다. 민중은 살아가기 위해 노동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되곤 했다. 때로는 더 협소한 의미로,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일만 하면서 기생계급의 수중에 권력을 내맡긴 체제에 의해 억압당하는 자들로 이해되었다. … 프랑스 혁명가인 오귀스트 블랑키는 끊임없이 3천만 프랑스 ‘민중’ (또는 ‘프롤레타리아’)과 30만 명의 기생계급을 대조해 보여주었다. … 급진주의자들은 두 가지 대조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하나는 교육이었다. 일단 민중이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하기만 하면, 수의 힘으로 확실하게 불의를 종식시킬 터였다. 다른 하나는 음모였다. 국가 권력을 정확하게 타격하기만 하면, 기생적인 소수 엘리트의 지배력을 분쇄할 수 있을 터였다. — pp.256-257 (제7장 1848년의 혁명들)
.아나키즘 – 공포정치의 산물
프루동과 바쿠닌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 제도가 인간을 구속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형태의 통치 권력을 제거한 곳에서만 정의와 협조를 토대로 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아나키즘은 그 자체가 프랑스혁명, 특히 공포정치에서 비롯된 환멸의 산물이었다.
바쿠닌은 드레스덴에서 실패한 혁명에 가담했다가 러시아의 감옥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는 1864년에 창립된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의 창립자 가운데 하나였다. 이 조직은 나중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통제를 받게 된다. 바쿠닌은 국가를 타도하려면 폭력이 필요하고, 이는 남유럽과 동유럽의 가난한 농민들이 일으키는 자발적인 봉기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바쿠닌은 특히 마르크스의 전위 정당(권위주의적 구속의 또 다른 형태) 이론을 거부했고, 산업노동자계급을 혁명 에너지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쿠닌은 19세기 말에 러시아 인민주의(나로드니키)에 영감을 주었고, 스위스, 이탈리아, 특히 에스파냐의 아나키즘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 pp.307-308 (제8장 혁명 이념의 계보와 진화)
– 혁명은 반드시 독재자를 부르는가?
일부 역사가들은 혁명 과정은 언제나 나폴레옹, 크롬웰, 스탈린 같은 독재자의 등장과 함께 끝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미국 독립혁명이나 1688년 명예혁명처럼 독재자의 등장 없이 마무리되는 혁명도 있었다. 모든 혁명이 필연적으로 독재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독재자가 등장한 경우에 혁명의 어떤 요소가 독재자를 불러들인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들은 혁명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진화하면서 안정적인 정치적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때 독재자가 등장할 새로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공간이 열린다고 지적한다.
프랑스혁명의 경우에, 자코뱅 독재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 반동과 뒤이은 나폴레옹 1세의 등장은 혁명이 급진화하면서 안정적인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일어난 혁명이 반혁명 세력으로부터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에 의지해야 했다는 것은 끔찍한 역설이었다. 이러한 역설은 혁명 세력의 이탈과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고, ‘반동’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결국 프랑스혁명은 혁명의 열기를 식히는 테르미도르 반동의 단계를 거쳐 나폴레옹 독재와 같은 중앙 집권적 무단 통치로 막을 내렸다. 1917년 혁명 후 내전과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던 러시아에서 스탈린 독재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