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
A. N. 화이트헤드 / 동과서 / 2003.6.12
화이트헤드가 보는 종교의 형성과정은 철저히 합리주의를 따르는 과정으로서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위대한 신앙의 시대들은 합리주의 시대”라고까지 말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합리주의를 보는 시각과 또한 종교를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목차

제1부 역사 속의 종교
1. 종교의 정의
2. 종교의 출현
3. 관행과 정서
4. 신념
5. 합리주의
6. 인간의 향상
7. 마지막 대조
제2부 종교와 교리
1. 역사 속의 종교적 자각
2. 종교적 경험에 대한 기술(記述)
3. 신(神)
4. 신에 대한 탐구
제3부 육체와 영
1. 종교와 형이상학
2. 형이상학에 대한 종교의 공헌
3. 하나의 형이상학적 기술
4. 신과 도덕적 질서
5. 가치와 신의 목적
6. 신체와 정신
7. 창조적 과정
제4부 진리와 비판
1. 교리의 전개
2. 경험과 표현
3. 세 개의 전통들
4. 신의 본성
5. 결론
○ 저자소개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 ~ 1947)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 (Fellow)과 수석 강사 (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 (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1924~1937)를 역임했다. 그는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그의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 (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 (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 역자 : 미선 정강길
한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석사 졸업,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박사 과정, 몸학연구소 소장 및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총무이사로 있음
저서로는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4), 『기독교 대전환』(2012)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몸학, 화이트헤드 철학의 몸삶 적용 이론」, 「통섭에서 몸섭으로: 홀로니즘과 몸학의 몸섭 고찰」, 「지금 여기의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의 의미」, 「믿음 모델에서 모험 모델로: 화이트헤드의 종교론에서 본 21세기 종교변혁의 방향」 등 여러 글들 발표, 필명 ‘미선’으로 몸학 연구 활동.
○ 출판사 서평
“당신의 품성과 삶에 대한 당신의 처세는 자신의 깊은 신념들에 달려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타자들과 관계를 맺는 외적 사실이기 이전에 그 자체를 위한 내적 사실이다. 외적인 삶의 처세는 환경에 의해서 조건지워지지만, 그것의 가치를 좌우할만한 결정적인 속성은 존재의 자기실현이 되는 내적인 삶으로부터 허락된다. 종교는 그 자신과 사물의 본성에 있는 영속적인 것에 근거하여 좌우되는 한에 있어, 인간의 내적 생명에 관한 예술이며 이론이다.”
“당신은 신학을 과학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없으며, 또한 과학을 신학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없다. 아니면 형이상학으로부터 신학과 과학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혹은 신학과 과학으로부터 형이상학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진리를 향한 지름길cut이란 없다.”
“삶의 단순한 사실 저 너머에는 언제나 삶의 질이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질 (quality)을 사실 안에 포함시키려 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 ‘질에 대한 질’ (the quality of the quality)을 빠뜨리게 된다. 보다 훌륭한 질이라고 해서 분명한 행복 또는 분명한 즐거움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종교는 그러한 행복과 그러한 즐거움 저 너머에 있으면서, 현실적이고 눈앞에 있는 것에 그 어떤 기능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능이 세계에 활기를 돋우는 질서가 된다는 하나의 불멸의 사실로서의 그 질을 제공해준다는 점에 대한 직접적 이해인 것이다.”
“종교는 형이상학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종교의 권위는 종교가 유발하는 정서들의 강도 (intensity)에 의해서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서들은 얼마간은 생생한 경험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교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하나의 매우 빈약한 보증밖에 되지 못한다. 따라서 종교적 신념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 무엇보다도 우선 필수적이다. 교리의 기초토대들은, 그러한 비판들이 의미하는 바와 그리고 포괄적인 우주를 향해 가장 알맞은 일반적 개념들로 표현하고자 애쓰는 하나의 합리적 형이상학 안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입장은 실제로는 종종 회피되었지만 한번도 진지하게 의심받아 온 적은 없었다.”
– “종교의 논제는 ‘공동체 속의 개체성’ (individuality in community)이다.”
“신은 우리 자신의 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관심사들만큼 치우치지 않는 목적들에 대하여 우리의 의지들을 직접적으로 향하게 하는 세계 안에서의 기능이다. 신은 판단을 존재에 대한 사실에서 존재에 대한 가치에로 확대시켜 주는 생명 안에 있는 요소이다. 신은 우리 자신들을 위한 가치를 넘어서 타자를 위한 가치에로 우리의 목적들을 확장시키는 요소를 말한다. 신은, 그러한 타자를 위한 가치의 달성 그 자체를 자신을 위한 가치로 변화시키도록 하는 요소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종교라고 해서 반드시 선하다는 법은 결코 없다.” “종교는 매우 사악할 수도 있다.” “종교가 진보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으며, 특히 종교의 지배적 특성이 비판을 불허하는 신념의 단계에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화이트헤드는 신의 권능을 찬미하는 야만적인 신관을 가진 종교에 대해선, “이 세계 자체가 그러한 매력에 의해 도취된 사람들 때문에 대량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종교가 인류사에 끼치는 그 깊은 영향력에 대해서도 그는 분석하고 있다. “종교란 개개인이 그 자신의 고독 (solitariness)과 함께 행하는 것”으로, 그것은 타자가 결코 넘나볼 수 없는 영역인 인간 고독의 지평에까지 힘을 불어넣는다. 종교는 그 같은 고독자의 결단에 신념어린 현명한 지혜와 안전한 보장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사물에 대한 단순한 사실 저 너머에 있으면서 현실 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속적인 탁월함’이다.
○ 독자의 평
탁월한 수학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명으로, 현대신학의 가장 강력한 지류 중 하나인 과정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화이트헤드의 대표적인 종교철학서인 이 책을 읽는 것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이 비교적 얇은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집어던지고 싶었던지… 과거에 읽었던 몇 권의 현대신학 소개서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참된 독서가란 모름지기 자신의 능력에 넘치는 책을 끈기있게 읽어 내는 경험을 통해 귀한 성취감은 물론 지적 도약을 이루어 내기도 하는 법! 아마도 이 어려운 경험이 내 독서생활의 귀한 자양분이 되리라고 스스로 자위해 본다. 이 철학자의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기술하는 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보았다.
1. 그에게 있어 종교란 ‘인간의 고독과 함께 하는 행하는 것’ 이며 소수자의 ‘직관적 통찰’ 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수자의 직관이 바탕이 되어 사회화되면서 관행으로 굳어지고, 이 관행이 특정한 정서와 관련되면서 하나의 신념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곧 종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과 신념이 굳어져서 자기 만족에 빠져 변화를 거부하게 되면 결국 퇴보와 악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진정한 종교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예민한 종교적 체험을 가진 사람의 체험이 보편화되어 사물들의 본질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세계의식으로 발전됨으로 전 인류의 공동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합리주의적 종교로의 발전이 요구된다고 한다.
2. 그의 하나님은 절대군주로서의 두려운 하나님이 아닌 사랑과 인내 그리고 설득에 의해 역사하는 신이다. 하나님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절대적 초월적 존재가 아니고 세계와 상호 의존적이며, 세계와 함께 고통받는 자요, 세계의 위대한 반려로서 세계와 함께 새로운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전능이란 현재적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이다.
3. 종교의 교리란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명료하게 해주는 하나의 양식이며, 따라서 종교의 영감들을 그 자신의 교리 안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교리란 기껏해야 진리의 단편에 불과하며 협소하고 제한적이며 일시적인 것이다. 어떠한 종교나 교리도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며 그 모두는 형성과 발전의 과정 가운데 있다.
과정신학자들은 화이트헤드의 생성과 과정을 중시하는 철학이야말로 헬라철학의 영원한 절대자의 개념보다 기독교인의 경험과 성경의 증거에 더 부합한다고 주장하지만,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신학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성경이 증거하는 그분의 거룩과 초월성을 잃어버렸으며, 세상 가운데 실재하는 악과 정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난점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들 중에는 우리가 경청해야 할 몇몇 중요한 내용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 교재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이미 ‘성인이 된’ 나머지 하나님을 냉담한 초월자로서 나와 상관없이 하늘에 거하시는 거룩한 분으로만 남겨 두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우리의 신앙은 진리와 올바름을 향한 추구를 상실한 채 나의 현재 상태와 기득권을 합리화해주는 화석화된 신념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우리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끈과 합리적 보편성에의 지향을 포기하고 내부의 논리에만 사로잡힌 편협한 아집으로 전락한, 리차드 마우의 말마따나 “무례한 기독교” 를 좋은 신앙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