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홍위병 :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
션판 (沈汎) / 황소자리 / 2004.11.1
–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
1966년 5월 17일, 〈런민르바오 : 人民日報〉에 실린 마오쩌둥의 이 말 한 마디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예측불허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중 일부는 제5세대 지도부처럼 중국의 중추로 성장해 미래를 향한 도약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용도폐기된 대다수의 홍위병은 전국의 궁벽한 시골로 하방되어 돌아오지 못한 채 과거를 숨기고 살아간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이, 가장 민감한 성장기의 한 시절을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보냈던 아이, 그러나 끝내 자랑스런 혁명가가 되지 못하고 ‘악의 심장’인 미국으로 투항한 아이, 어렵사리 손에 쥔 행복을 의심하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아이.
이 책 《홍위병》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그 개인의 삶 속에는 중국 현대사의 격랑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봉건 잔재를 일소하기 위해 놓았던 교정의 거대한 불길 앞에서 시작되는 기록은 어린 홍위병이 겪어야 했던 기나긴 여정을, 현대 중국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 목차
1부 불
1. 낡은 세상을 불사르자!
2. 붉은 테러. 만세!
3. 그건 내 피아노야!
4. 만리장선 투쟁도를 결성하고
5. 혁명을 목숨을 난도질한다는 뜻
6. 금지된 책들을 사냥하다
7. 위대한 지도자와 홍위병의 만남
2부 흙
8. 서쪽으로의 여행
9. 베이징에서 온 아이들
10. 혁명 농민으로 거듭나는 방법
11. 큰물이 산촌을 덮쳤다.
12. 맨발의 의사가 되어
13. 달덩이와의 만남
14. 골초 악마. 결혼하다
15. 귀뚜라미 아저씨의 죽음
3부 쇠
16. 쥐, 비행을 꿈꾸며
17. 아!리링
18. 자꾸만 사람이 죽어나갔다.
19. 8월이 두 번 든 해
20. 목표는 입당이다.
21. 참회는 곧 죽음이다.
22. 행운아 열한 명
4부 나무
23. 꿈의 상아탑으로!
24. 그 아저씨들
25. 총명한 자오는 왜 죽었을까
26. 성직자 선생님
27. ‘야망’ 이라는 이름의 괴물
28. “제가 직접 말할까요?”
5부 물
29.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일
30. 박테리아가 검출되지 않는 설사병
31. 가정 방문 작전
32. 인공위성을 쏘다!
33.리링을 다시 만난 후
34. 여권 발급 전쟁
35. 마침내 그녀와 결혼하다
36. 최후의 웃음
○ 저자소개 : 션판 (沈汎)
1954년, 베이징 (北京)의 다위안 (大院)에서 태어났다.
1966년, 열두 살의 나이로 문화혁명을 맞아 ‘만리장성 투쟁조’라는 홍위병 조직을 만들기도했다.
1969 ~ 1972년,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샨시 (陝西)의 시골 마을로하방되어용협공사 (龍峽公社)에서 농부의삶을살았다.
1972 ~ 1978년, 원인 모를 자살과 전염병이 만연한 옌안 (延安)의 동풍비항공창 (東風飛航工廠)에서 기술자로 일했다.
1977년 8월, 마오쩌둥을 비판한 자와 연계되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1978년, 6년 동안 꿈꿔왔던 국가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해 란저우 (蘭州)대학 외국어 학부에 입학했다.
1978년 8월, 미국인 재클린 (Jacquelyn)의 간첩 행위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비밀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1979년, ‘베이징의 봄’으로 불리는 중국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1980년, 란저우대학 최초의 자유선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승리했으나 이내 철저한 탄압을 받으며 좌절하고 말았다.
1982년, 란저우대학을 졸업한 뒤 최악의 수질로 악명 높은 톈진 (天津) 경공업대학교 탕구 (唐沽) 화학학교 강사로 발령받았다.
1984년 11월, 미국 유학을 위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꿈에 그리던 유학길에 올랐다.
1986년, 네브래스카 링컨대학 (University of Nebraska Lincoln)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마켓대학 (Marquette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로체스터 커뮤니티 기술 대학 (Rochester Community & Technical College) 영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역자 : 이상원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고전을 비롯하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등 80여 권의 번역서를 번역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 교수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며 저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을 출간했다.
○ 책 속으로
집회가 끝난 후 속옷 차림의 장군은 행진하듯 다위안을 한 바퀴 돌았다. 홍위병이 장군 목에 밧줄을 메고 개를 다루듯 이끌었다. 우리는 그 옆을 따라다니며 조금이라도 속도가 늦어진다 싶으면 장군의 옆구리를 막대기로 찔러댔다. 팔다리에 난 상처를 꼬챙이로 쑤시면서도 나는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훌륭한 혁명가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 p.43
말들이 작년 수확 비축분을 정부에 헌납하기 위해 실어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귀뚜라미 아저씨는 다시금 ‘마오쩌둥 주석, 만세!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문화혁명, 만세! 인민 자치구, 만세!’를 외치게 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었는지, 광적인 열정에 휩쓸려 어떻게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p.155
눈앞이 흐릿해진 상태로 나는 물컵을 바라보며 내 씁쓸하고도 달콤한 승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탈출을 꿈꾸어왔다. 산촌에서 4년, 공장에서 6년, 대학에서 4년, 탕구와 톈진에서 2년… 그리고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나는 위대한 지도자와 싸워 이겼다. 더 이상은 혁명가 흉내를 내지 않아도 좋았다. 관료들의 비위를 맞출 일도, 위대한 지도자와 당의 가공할 권력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얼굴 위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시간뿐 아니라 새로 얻은 것들, 사랑과 자유, 새로운 삶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승리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눈물방울이 차례로 굴러 손에 든 물컵 속으로 떨어져내렸다. 나는 그 짭짤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 p.436

○ 줄거리
문화대혁명은 베이징 시장 펑전 (彭眞)이 해임됨으로써 시작된다. 베이징 시장 펑전의 인민재판이 있던 날 피가 튀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 광경을 목도한 저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 인민해방군 사령관 루어 장군을 심판하는 자리에도, 육군 부사령관인 헤이 장군의 인민재판 현장에서도 소년 션판은 어른들을 제치고 맨 앞자리를 지켰다. 혁명은 그저 게임일 뿐이었다. 그러나 헤이 장군의 주검을 본 순간 혁명 (革命)은 ‘목숨을 난도질한다는 뜻’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홍위병 조직 ‘붉은 행동위원회’가 급습한 부르주아의 집에서 수치심과 무력감을 안겨준 리링의 당당한 태도 앞에서 혁명에 취해 있던 어린 홍위병의 이성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적을 베던 피 묻은 칼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베이징의 상류층 자제로 열정적으로 홍위병에 합류했던 저자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오지로 떠나고 자신의 아버지마저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절친한 친구인 샤오롱의 누나 역시 ‘붉은 행동위원회’라는 최고의 홍위병 조직을 이끌다 어느 날 갑자기 반동으로 몰려 7년 형의 강제 노동을 선고받는다. 베이징대학에서 있었던 홍위병 조직 간의 전투는 신처럼 받들던 마오쩌둥 그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던 홍위병 모두가 인민해방군에 체포된다. 저자는 가장 충성스러운 홍위병도 알아보지 못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정말로 위대한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샨시의 시골 마을로 하방되어 4년, 그 누구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 온통 흰 벽으로 둘러쳐진 비행기 부품 공장에서 6년, 저자는 막막하고 적막한 세월을 아이로니컬하게도 홍위병 시절 자신이 불태워버린 고전을 찾아 읽으며 견뎌낸다.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개인적 ‘야망’과 두터운 현실의 벽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공장의 도서관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그에게 구원처럼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 옛날 홍위병들이 급습한 집에서 마주했던 얼굴, 리링과의 해후는 절망 속에 빠진 션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결정적 계기였다.
홍위병은 흩어졌으나 혁명의 여진은 끈질기게 소년을 괴롭힌다. 공장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대학 입학에서 찾은 저자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던 만년필 선생님 (그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펴며 마오쩌둥 주석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의 죄에 연루돼 감옥에 갇히고, 대학시절엔 란저우 최초의 미국인 여선생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고 공안에 잡혀 심문받는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자신과 같이 열성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던 친구의 원인 모를 죽음에 맞닥뜨린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죽음을 겪은 그는 다시는 ‘정치’란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시련은 찾아왔다. 최악의 수질, 질병으로 악명 높은 탕구 화학분교에 배치받은 저자는 그곳을 벗어나고자 처절하게 투쟁한다. 탕구를 벗어나 톈진경공업대학에서 교편을 잡기까지 몸과 마음은 극도로 황폐해졌다. 어떻게든 중국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드디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과 인적 관계망을 총동원해 미국행 여권을 손에 쥔다.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무심코 가방을 열었을 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붉은 완장이었다. 그 옛날 ‘만리장성 투쟁조’라는 홍위병 조직을 함께 결성했던 친구 샤오롱이 이별 선물로 건네준 거였다.
펼쳐보니 그것은 붉은 실크 완장이었다. ‘홍위병 – 만리장성 투쟁조’라는 낯익은 글씨가 보였다. 하도 이곳저곳 옮겨다니느라 나는 오래전에 그 완장을 잃어버렸다. 내 혁명 경력의 시작을 상징하는 그 완장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완장을 팔에 차보며 나는 그것이 내 홍위병 여정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혁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 본문 431~432쪽

○ 출판사 서평
– 중국을 읽는 키워드, 홍위병
대륙을 지배하는 ‘마오의 아이들’ 홍위병, 그들은 시대의 사생아다. ‘극좌적 오류’의 산물이라는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살아남아 중국의 허리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잘못 태어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린다. 한때 조국과 당을 위해 부모를 버리고 스승을 버리고 친구를 버려야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환영받지 못할 과거로 묻혀버린 사람들. 이 책 《홍위병》은 그 어디에서도 진솔한 속내를 들을 수 없었던 ‘문화대혁명’과 ‘홍위병’을 ‘기억’의 힘으로 복원해낸 기록이다. 그리하여 현재 중국이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중국을 이끌어가는 세대들이 그려내는 청사진은 무엇인지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도대체 왜 위대한 지도자가 홍위병 수백만 명을 궁벽한 시골로 보내 농민으로 살게 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지방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고 젊은이들의 삶을 망쳐버린 것인지 추측이라도 할 수 있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이는 아마 홍위병을 길들이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 본문 115쪽
당의 결정한 배치는 권고가 아닌 명령이었다. (…) 따라서 당의 배치를 거부하는 학생의 거의 없었다.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원치 않는 종류의 일을 맡아야 해도 말이다. – 본문 342쪽
– 거대한 부조리와 맞서 싸운 한 인간의 자화상
마오쩌둥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순간, 그들의 운명은 마오의 것이었다. 혁명의 현장인 베이징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걸었던 길은 대다수 ‘홍위병’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여정이었다. 14살,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어딘지도 모를 시골 마을로 떠난 소년은 이미 너무 많은 세상의 풍파를 겪었다. 홍위병 활동을 하며 보았던 수많은 적들의 죽음, 식당에 앉아 바로 오늘 아침까지 같이 밥을 먹었던 친구의 장례식, 수영장 아래에서 발견된 동지의 주검. 운명은 그에게 ‘붉은 마음’ 대신 개인적인 ‘야망’을 갖게 했다. 마침내 그는 정해진 운명을 변화시켰고 목표를 세우고 치열한 생의 의지를 발휘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비로소 털어놓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선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리라는 걱정이 컸다. 평생 혁명가로 살았던 두 분은 아들인 내가 혁명에 크나큰 죄를 저질렀다는 데 대해 분노하고 상처받으실 것이 뻔했다. 나 같은 자식은 아예 낳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하시게 될 수도 있었다. 부모님의 사상 교육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위대한 지도자인 마오쩌둥 (毛澤東, 1893 ~ 1976) 주석에 반기를 들고 혁명 반대론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
1966년 5월 17일, 〈런민르바오 : 人民日報〉에 실린 마오쩌둥의 이 말 한 마디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예측불허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중 일부는 제5세대 지도부처럼 중국의 중추로 성장해 미래를 향한 도약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용도폐기된 대다수의 홍위병은 전국의 궁벽한 시골로 하방되어 돌아오지 못한 채 과거를 숨기고 살아간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이, 가장 민감한 성장기의 한 시절을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보냈던 아이, 그러나 끝내 자랑스런 혁명가가 되지 못하고 ‘악의 심장’인 미국으로 투항한 아이, 어렵사리 손에 쥔 행복을 의심하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아이.
이 책 《홍위병》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그 개인의 삶 속에는 중국 현대사의 격랑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봉건 잔재를 일소하기 위해 놓았던 교정의 거대한 불길 앞에서 시작되는 기록은 어린 홍위병이 겪어야 했던 기나긴 여정을, 현대 중국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문화대혁명은 베이징 시장 펑전 (彭眞)이 해임됨으로써 시작된다. 베이징 시장 펑전의 인민재판이 있던 날 피가 튀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 광경을 목도한 저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 인민해방군 사령관 루어 장군을 심판하는 자리에도, 육군 부사령관인 헤이 장군의 인민재판 현장에서도 소년 션판은 어른들을 제치고 맨 앞자리를 지켰다. 혁명은 그저 게임일 뿐이었다. 그러나 헤이 장군의 주검을 본 순간 革命은 ‘목숨을 난도질한다는 뜻’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홍위병 조직 ‘붉은 행동위원회’가 급습한 부르주아의 집에서 수치심과 무력감을 안겨준 리링의 당당한 태도 앞에서 혁명에 취해 있던 어린 홍위병의 이성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적을 베던 피 묻은 칼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베이징의 상류층 자제로 열정적으로 홍위병에 합류했던 저자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오지로 떠나고 자신의 아버지마저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절친한 친구인 샤오롱의 누나 역시 ‘붉은 행동위원회’라는 최고의 홍위병 조직을 이끌다 어느 날 갑자기 반동으로 몰려 7년 형의 강제 노동을 선고받는다. 베이징대학에서 있었던 홍위병 조직 간의 전투는 신처럼 받들던 마오쩌둥 그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던 홍위병 모두가 인민해방군에 체포된다. 저자는 가장 충성스러운 홍위병도 알아보지 못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정말로 위대한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샨시의 시골 마을로 하방되어 4년, 그 누구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 온통 흰 벽으로 둘러쳐진 비행기 부품 공장에서 6년, 저자는 막막하고 적막한 세월을 아이로니컬하게도 홍위병 시절 자신이 불태워버린 고전을 찾아 읽으며 견뎌낸다.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개인적 ‘야망’과 두터운 현실의 벽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공장의 도서관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그에게 구원처럼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 옛날 홍위병들이 급습한 집에서 마주했던 얼굴, 리링과의 해후는 절망 속에 빠진 션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결정적 계기였다.
홍위병은 흩어졌으나 혁명의 여진은 끈질기게 소년을 괴롭힌다. 공장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대학 입학에서 찾은 저자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던 만년필 선생님 (그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펴며 마오쩌둥 주석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의 죄에 연루돼 감옥에 갇히고, 대학시절엔 란저우 최초의 미국인 여선생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고 공안에 잡혀 심문받는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자신과 같이 열성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던 친구의 원인 모를 죽음에 맞닥뜨린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죽음을 겪은 그는 다시는 ‘정치’란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시련은 찾아왔다. 최악의 수질, 질병으로 악명 높은 탕구 화학분교에 배치받은 저자는 그곳을 벗어나고자 처절하게 투쟁한다. 탕구를 벗어나 톈진경공업대학에서 교편을 잡기까지 몸과 마음은 극도로 황폐해졌다. 어떻게든 중국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드디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과 인적 관계망을 총동원해 미국행 여권을 손에 쥔다.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무심코 가방을 열었을 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붉은 완장이었다. 그 옛날 ‘만리장성 투쟁조’라는 홍위병 조직을 함께 결성했던 친구 샤오롱이 이별 선물로 건네준 거였다.
중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커튼 뒤에 가려진 실루엣이다. 응어리진 과거는 중국인들의 가슴을 차갑게 식혀놓았고, 지독한 열병은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이 책 《홍위병》은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홍위병의 기록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아픔을 묻고 담담하게 풀어놓는 한 홍위병의 ‘자기 고백’은 현재를 살고 있는 중국인들 내면 깊숙한 곳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이다. 거대한 피의 역사를 하이 코미디 수준의 유머와 위트로 녹여낸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미국의 지성계는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현재 하버드와 미네소타 등의 대학에서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활용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