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훔볼트 평전 : 하늘과 땅의 모든 것
도널드 매크로리 / 알마 / 2017.1.16
- 세상을 바꾼 과학여행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아십니까?
알렉산더 폰 훔볼트, 그의 이름은 세상 모든 것으로 불린다. 대부분 훔볼트를 모르더라도 그의 이름만큼은 들어봤을 것이다. 산과 바다를 비롯해 강, 해류, 도시, 거리 등 그의 이름이 닿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펭귄에는 훔볼트펭귄, 오징어에는 훔볼트오징어가 있을 정도다.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명이 여덟 곳이나 있다. 『훔볼트 평전』은 ‘자연의 개척자’이자 ‘솔직하고 유쾌한 과학자’였던 훔볼트의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 도널드 매크로리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이며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집을 펴냈다. 스페인 문학과 독일 문학을 전공한 그는 정밀하고 심층적으로 ‘훔볼트’를 연구했고, 그것에 문학적 재능을 더해 ‘살아있는’ 훔볼트를 선보인다. 저자는 훔볼트 일대기를 프로이센에서의 어린 시절, 광산기술자로 일하던 때, 어머니의 죽음, 남아메리카 탐사, 시베리아 탐사, 수많은 저작 집필 등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풀어낸다. 또한 그와 교류한 사람들과의 일화, 주고받은 편지 등 인간적인 면모 또한 다룬다. 따라서 훔볼트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는 이 책은 그의 삶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준다. 훔볼트가 동료들과 함께 에콰도르의 최고봉인 침보라소를 등반한 것, 심한 추위와 거센 눈보라를 이겨내며 시베리아를 여행한 것 등에서 연구자의 자세와 소명 의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 일한다는 것이 가지는 진중한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추천사
여는 말
프롤로그
1 프로이센에서 자라다
2 솔직하고 유쾌한 과학자
3 스페인 왕이 훔볼트를 후원하다
4 탐험을 시작하다
5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곳
6 나는 위대하고 선한 것만 바랄 뿐이다
7 나뭇잎 한 장의 작은 우주
8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
9 파리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다
10 소년 시절의 꿈을 이루다
11 과학과 예술의 조화
12 새로운 세계의 질서
13 자연의 영원한 매듭
14 훔볼트가 보낸 편지
15 얼마나 장엄한 햇살인가
에필로그
닫는 말
알렉산더 폰 훔볼트 연표 │ 주
참고문헌│ 옮긴이 해설│ 찾아보기
○ 저자소개 : 도널드 매크로리 (Donald McCrory)
아일랜드 얼스터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랐다. 킹스턴 대학교에서 현대어를 전공했고 런던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마쳤다. 중등교사를 거쳐 1984년부터 2000년까지 리치몬드의 아메리카 국제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 및 독문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공부했고, 현대어와 유럽 작가들에 대해 연구했으며, 현재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저술과 중국어 연구를 하고 있다.
– 역자 : 정병훈
서울대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독일 뒤스부르크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물리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청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물리교육학 연구』(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달걀 삶는 기구의 패러독스』, 『과학교육의 사상과 역사』가 있다.

○ 책 속으로
《코스모스》를 연구해본다면, 당대에 가장 위대한 자연학자라고 인정받던 그가 선택한 주제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훔볼트는 천문학, 지리학, 해양학, 지질학, 식물학의 각 분야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데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 p.18, 프롤로그
식물학은 그로 하여금 식물의 생장과 형태를 지배하는 법칙뿐 아니라 우리 환경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탐구하도록 안내했다. 결국 자연계란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관한 정확한 지식보다 무엇이 인류에게 더 유익하고 더 즐겁겠는가? 끝없는 에너지와 열정을 가진 자가 얻고자 했던 지식이야말로 알렉산더가 추구하던 지식이었다. — p.40, 1 프로이센에서 자라다
훔볼트는 확실히 친구를 쉽고도 빠르게 사귀었다. 게다가 프라이슬레벤이 훔볼트의 젊은 시절 그에 대해 통찰한 것은 정확했다. 즉 그는 [훔볼트가] “끝없는 호인이면서 자비심이 많고, 관대하며 이기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직선적이고 솔직하며, 유쾌하면서 때로는 짓궂기도 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 p.73, 2 솔직하고 유쾌한 과학자
괴테는 죽기 바로 6주 전에 “우리의 세계 정복자는 (알렉산더 대왕이 아니라) 아마도 가장 위대한 웅변가 알렉산더(폰 훔볼트)일 것이다”라고 주장했으며, 계속해서 그가 어떤 주제든 토론할 때마다 이에 필요한 모든 사실 정보들을 쏟아낼 수 있게 만든 그의 놀라운 기억력을 찬양했다. — p.80, 3 스페인 왕이 훔볼트를 후원하다
정밀한 연구를 수행하는 자연학자에게는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은 무궁무진한 연구의 원천으로서, 과학의 발전에 따라 자연에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아는 관찰자에게는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게 된다. — p.11, 4 탐험을 시작하다
유럽에서 방금 도착한 이 여행객들은 무슨 충격을 더 받을까봐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고조된 느낌이 사방에서 쇄도했다고 훔볼트는 말한다. “오지의 깊은 정적, 다양하면서 서로 대조되는 사물들의 아름다움, 식물들의 충만함과 신선함. 식물로 넘쳐나는 지구는 더이상 개발할 여지가 없다.”— p.117, 4 탐험을 시작하다
나를 그렇게 깊이 감동시킨 것은 밀림의 당당한 그늘이나 웅장한 강물 흐름도 아니고, 만년설로 덮인 산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모든 힘과 풍요로움을 생각하게 만드는 식물에서 나온 몇 방울의 즙이다. — p.132, 5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곳
가장 높은 안드레아 산의 봉우리들이나 지진이 흔한 지역에서 타오르는 분화구로 향하는 여행 전야에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탐험의 어느 순간보다 더 행복감을 느꼈다. 그 이후 흘러간 몇 년은 고통과 힘겨움이 없지 않았지만, 당시 얻었던 인상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했다. — p.158~159, 6 나는 위대하고 선한 것만 바랄 뿐이다

우리는 대중을 즐겁게 하면서도 포괄적 성격을 지닌 것을 출판해야 합니다. ‘번호 3. 《적도 식물의 새로운 속과 종 : Nova genera et species plantarum aequinoctialium》’과 ‘번호 4. 《식물지리학 에세이 : Essai sur la Geographie des plantes》’를 선정할 때, 내 철학은 개인적 모험 이야기를 대자연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번호 3은 내가 그동안 이룩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의도가 묘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현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특히 상상력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보는 것’을 좋아하며, 여기서 나는 나뭇잎 한 장의 소우주 : microcosmos를 제시합니다. 그럼으로써 문학적 허구가 유용성과 결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176~177, 7 나뭇잎 한 장의 작은 우주
그렇게 많은 즐거움을 눈앞에 두고 익사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또 내 노동의 모든 결실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원고와 수집품 들을 불성실한 스페인 정치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지만) 꼭 가지 않아도 되었던 필라델피아 여행에 나를 따라나선 두 사람 (봉플랑과 몽투파르)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내 운명인가?— p.179, 7 나뭇잎 한 장의 작은 우주
사실상 19세기 미국의 모든 주요 탐사는 “그의 영향을 받게 된다”. — p.182, 7 나뭇잎 한 장의 작은 우주
과학과 예술에서의 업적은 지속적일 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봉사할 수 있는 데 반해, 전쟁터에서의 승리는 오래가지 않으며 오직 상처만 남길 뿐이라는 것을 보나파르트가 몰랐을까? 이것은 결국 훔볼트가 천명한 목표였다. 즉 그는 과학 분야에서 자신의 업적이 다른 이들, 특히 비특권층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애썼던 것이다. — p.190, 8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
1805년 11월, 그는 강연에서 “인간 지식의 모든 양상이 하나의 유기적인 총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상 이는 그의 목표이자 목적이었다. 즉 하나의 과학, 식물학이나 지질학, 또는 천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이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른 분야의 연구로 이끌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 지식의 모든 양상”은 자연과학 연구에서 도출된 지식을 의미했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과학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회원들이 팀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팀워크를 통해 지식의 모든 분야를 연결하는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길고도 파란만장한 인생” 내내 그가 고수했던 원칙이다. — p.192, 8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작들은 그의 최근 경험과 열대에서의 경험들에서 나왔다. 《신변기》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한 줄의 글이 훔볼트 작품의 특성을 통째로 규정했던 대주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즉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경험주의, 놀랍게도 폭넓은 지적 흥미, 자연의 미를 위한 정열, 그리고 보편 과학에 대한 헌신”. — p.198, 8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
그에게는 밤과 낮이 자고, 먹고, 일하는 데 아무 구분 없이 사용하는 시간의 한 덩어리였다. 나는 이런 능력, 아니 이런 습성은 대단한 재능을 가진 학자이자 세계적인 인사가 동시에 되고 싶어했던 사람이 한 대도시에서 유지해야 했던 편리한 생활방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훔볼트 씨는 지루하거나 쉬고 싶을 때만 자고, 한밤중에 깨면 마치 아침인 듯 일어나 일하기 시작했다 (…) 이 모든 것은 아주 좋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활에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 즉 모든 육체적, 도덕적 피로를 이겨낼 수 있는 체질과 사회 관습 위에 선 사람에게 부여되고 마치제왕과 같은 행동을 허용할 수 있는 명성이 그것이다. 훔볼트 남작은 이 둘을 모두 통합한 사람이다. 그의 크고 반듯한 체구, 확고한 발걸음, 그리고 매 순간 이루어지는 그의 결정과 힘, 이것이 그가 오리노코의 적도 열기에서 살아남고 침보라소 정상에 오른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 p.216~217, 9 파리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다
의견의 차이가 없이는 진리의 발견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진리를 완전하게 곧장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연학자들이 자신의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간 듯 보이는 단계에 도달할 때마다 실제로는 그를 또다른 미궁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의심은 줄어들지 않고, 마치 안개처럼 점점 더 넓은 영역으로 퍼지게 됩니다. — p.221, 9 파리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다
그는 대부분의 인생을 통해 마음, 육체, 정신에서 쉼이 없었고, 또 일과는 별도로 뜻이 맞는 동지들과 같이 있을 때나 자연을 관조할 때만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 p.256, 10 소년 시절의 꿈을 이루다.

“남자가 혼자 결정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책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아내이다.”— p.260, 11 과학과 예술의 조화
다사다난했던 인생의 황혼기에 거의 반세기 동안 내 마음의 눈앞에서 모호한 윤곽으로 맴돌고 있던 작품을 독일 국민에게 남긴다. 여러 번이나 이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이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그다음에 나는 이 일로 되돌아왔다. — p.268, 11 과학과 예술의 조화
그는 회장 취임 연설에서 과학의 목적과 진보에 대해 이야기했고, 덧붙여 과학에 대한 훔볼트의 자세와 접근 방식을 적절하게 잘 설명했다. “과학의 위대한 진리 (…) 그것은 자연이라는 위대한 신의 책의 해석인 것입니다.”— p.291, 12 새로운 세계의 질서
그러나 훔볼트에게 영향을 준 것은 이 시기 동안 과학 지식의 본질을 재평가하려는 수많은 시도였다. 사실과 이론 사이의 관계와 정신적 능력의 한계에 관심을 가진 많은 연구가 출판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코스모스》는 수많은 그런 저작 중 하나였다.
1848년 그에게 좋았던 유일한 사건은 1846년부터 시작된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가 집처럼 편하게 생각했고, 또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상치 못하게 “자유 아메리카”의 모든 이를 위해 종합과학센터를 세우려는 계획을 말했던 곳이 바로 멕시코였다. 그는 멕시코 제국의 멸망과 공화 정부의 탄생을 예측했고, 멕시코에서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그리고 과학을 위해 가장 유용하게”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하게 집착했다. 그가 호의를 느꼈고 모든 것이 그로 하여금 행복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게 만든 곳도 바로 멕시코였다. — p.311~312, 13 자연의 영원한 매듭
그럼에도 그는 영국에서 저술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진정으로 원했고, 이를 실현해준 다윈에게서 마음의 친구가 된 것을 느꼈다. 결국 다윈은 그를 높이 평가한 소수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 p.316, 13 자연의 영원한 매듭
그는 자연현상을 탐색하면서 복음이 말하는 ‘천국’이란 결국 지구의 표면에 펼쳐져 있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자연의 모습, 또는 창조의 숭고한 현상에 대한 고찰’이라는 부제는 매우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 p.319, 13 자연의 영원한 매듭
그는 파리에서 짧았던 만남 이후 삼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특히 워싱턴 어빙에 대해 물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훔볼트가 1859년 5월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빙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파리의 사교계에서 훔볼트를 자주 만났다. 그는 대단히 친절하고 아주 온화한 사람 bonhomie이었다.” — p.334, 14 훔볼트가 보낸 편지

○ 출판사 서평
- 세상을 바꾼 과학여행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
그는 일생을 온전히 ‘자연’에 바쳤다.
그의 일생을 추적하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정한 정복자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훔볼트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과학여행자.찰스 로버트 다윈
그는 남미의 진정한 발견자다._시몬 볼리바르
-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아십니까?
알렉산더 폰 훔볼트, 그의 이름은 세상 모든 것으로 불린다. 대부분 훔볼트를 모르더라도 그의 이름만큼은 들어봤을 것이다. 산과 바다를 비롯해 강, 해류, 도시, 거리 등 그의 이름이 닿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펭귄에는 훔볼트펭귄, 오징어에는 훔볼트오징어가 있을 정도다.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명이 여덟 곳이나 있다.
그는 하늘과 땅 그 사이 모든 창조물을 측정하고 기록했다. 19세기 미국의 주요 탐사는 훔볼트의 영향을 받았고, 영국의 박물학자 다윈은 그가 없었다면 비글 호를 타지 않았을 것이며 《종의 기원》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자연의 개척자’이자 ‘솔직하고 유쾌한 과학자’였다.
국내에도 훔볼트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 몇 권 있었지만, 이 책은 ‘훔볼트 평전’이란 제목으로 처음 발간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도널드 매크로리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이며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집을 펴냈다. 스페인 문학과 독일 문학을 전공한 그는 정밀하고 심층적으로 ‘훔볼트’를 연구했고, 그것에 문학적 재능을 더해 ‘살아있는’ 훔볼트를 독자에게 선보인다.
저자는 훔볼트 일대기를 프로이센에서의 어린 시절, 광산기술자로 일하던 때, 어머니의 죽음, 남아메리카 탐사, 시베리아 탐사, 수많은 저작 집필 등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풀어낸다. 또한 그와 교류한 사람들과의 일화, 주고받은 편지 등 인간적인 면모 또한 다룬다. 따라서 훔볼트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는 이 책은 그의 삶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준다.
- 세상을 바꾼 과학여행자
어릴 때부터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교육 받은 훔볼트는 각 분야의 석학들과 교류하며 세계 각지를 누비며 연구했다. 물리학, 화학, 지질학,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생리학, 천문학, 해양학, 기상학 등 모든 자연과학 분야의 지식을 섭렵했을 뿐 아니라, 칸트 철학과 계몽사상에 심취했다.
그는 독일인이었지만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했고, 스페인어와 영어에도 능숙했다.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 여러 외국어를 공부했고,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언어로 일기를 썼다. 그는 매년 이천여 통의 편지를 직접 쓰고 삼천여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와 관련된 서간집은 열 종 이상 출판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백오십 년이 넘었지만, 그의 방대한 저작들은 아직도 하나의 언어로 완전히 옮겨지지 못했다.
그의 주된 활동은 과학연구였지만, 그는 궁정 가신이자 외교관으로서, 많은 과학자의 중재자이자 후원자였다. 또한, 국제적 과학 네트워크에 힘썼다. 그는 탐사하며 보고 느꼈던 남아메리카의 식민지 정책과 러시아의 농노제도를 통령하게 비난했으며, 자국인 독일에서는 유대인의 평등권을 옹호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는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해상이나 대륙 간 여행은 취약했다. 이 시기에 그는 남아메리카와 러시아를 ‘과학적으로 탐사’했으며, 자연과학을 비롯한 모든 지식을 망라한 연구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그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었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훔볼트는 다년간 오지를 탐험하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고, 그에게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일을 사랑했고, 무엇보다 그 일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길 염원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밝히는 데 평생을 바쳤다. 나폴레옹의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오직 상처만 남겼지만, 훔볼트의 승리는 ‘인간의 삶’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목숨 걸고 과학여행했던 ‘자연’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훔볼트가 동료들과 함께 에콰도르의 최고봉인 침보라소를 등반한 것, 심한 추위와 거센 눈보라를 이겨내며 시베리아를 여행한 것 등에서 연구자의 자세와 소명 의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 일한다는 것이 가지는 진중한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해설’ 중에서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면,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과학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콜럼버스 Colombus는 아메리카를 ‘지리적으로’ 발견했지만, 콜롬 Colomb의 아들은 아메리카를 ‘과학적으로’ 발견했다.”(콜롬은 훔볼트의 어머니를 말하며 콜롬의 라틴식 이름이 콜럼버스다) 괴테는 그를 가리켜 “걸어 다니는 아카데미”라고 했고, “그가 한 시간 동안 말한 것은 여드레 동안 책으로 읽어도 부족할 분량”이며, 세계에 대한 그의 지식은 “끊임없이 빠르게 솟아나오는 물을 사람들이 그저 그릇으로 받기만 해야 하는 샘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전기 작가들은 자신의 언어적 한계로 인해 훔볼트에 대한 종합적인 전기를 집필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단편적인 부분만 서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옳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번역된 영어 문헌들을 주로 참고해 영어로 쓰였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훔볼트의 일대기를 종합적으로 서술한 근래 보기 드문 전기라 할 수 있다. 즉 이 책의 저자는 대단히 정밀하고도 심층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집필했으며, 특히 내용의 구성과 서술에서 풍부한 문학적 사고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이 책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대한 학술서로서만 아니라 대중적 교양서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당대의 원전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사건들을 발굴해 훔볼트와 연결한 것은 다른 전기에서 보기 어려운 연구라 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