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지그문트 바우만 / 궁리출판 / 2014.6.20
– 이 어두운 시절에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서슬 푸르게 살아 있기 위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가히 존재할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절망적이고 비통한 사건이 끊이질 않고,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과연 이 집단적 상처를 어떻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궁리해보아야 할 정도다. 인디고 연구소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진행했던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에서, 바우만 사유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희망’이었다. 이것은 바우만의 사유에도 드러나지만, 그의 삶과 인품에서 배어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바우만의 말처럼,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사람들만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에 이어 공동선 총서 두 번째 인물로 인디고 연구소가 바우만을 인터뷰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사회, 불평등, 인간관계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탁월하면서도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여럿 제공하였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바우만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과 사유의 지평을 두루 살펴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바우만식의 진중하면서도 재기발랄한 해결책 등이 담겨 있다. 가히 바우만 사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 목차
공동선 총서를 기획하며
서문
1부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1장 공동선과 새로운 윤리
공동선을 향한 투쟁
주체의 위기와 정서의 공동체
바다에 띄운 편지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자유와 안전보장, 야누스의 두 얼굴
자유를 향한 투쟁의 부수적 피해들
고해성사의 장, 아고라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표류하는 잉여 인간쓰레기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만국의 소비자여 단결하라!”
소비주의자를 위한 도덕적 신경 안정제
허약한 윤리, 무력한 주체, 무한한 타자
“행복들 하십니까?”
우리, 삶의 예술가들
2장 공동선과 새로운 정치
공위시대, 권력과 정치의 결합
제후의 영지에선 제후의 종교를 따른다cuius regio, eius religio
세계화 속의 불만
‘이미-존재-하는 것’과 ‘아직-도래하지-않은 것’
모두스 비벤디
세방화와 공동생활 양식
아랍의 봄과 이스라엘의 여름
우리는 닿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켄타우루스 문제
새로운 인텔리겐치아의 출현
나는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가?
생활 세계의 해방
인간 가능성의 실천
3장 공동선과 새로운 희망
말의 양심
문학은 현실의 층위를 담보한다
데카르트적 오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문학적 메타포의 사회학적 사용
액체 근대, 이후 10년
상처를 향해 돌진하라
어느 섬의 가능성
지치지 않는다는 말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Dum spiro spero
기고글 :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인터뷰 후기
2부 바다에 띄운 희망의 편지
1장 바우만의 아이러니―인터뷰_키스 테스터
2장 유토피아를 찾아서_미켈 야콥슨
3장 소비 자유의 독재_마크 데이비스
4장 악의 근원들_리카르도 마쩨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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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1925 ~ 2017)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1925 ~ 2017)은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한 후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 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 바르샤바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가르쳤다. 1971년 리즈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고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과 바르샤바 대학 명예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2017년 1월 9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기획 : 인디고 연구소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청소년들이 청년으로 성장하여,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의 작업을 통한 지속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2008년 12월 28일 만든 공부 공동체이다. 인디고라는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을 쓸모 있는 인문적 삶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출판사 서평
– 이 어두운 시절에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서슬 푸르게 살아 있기 위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가히 존재할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절망적이고 비통한 사건이 끊이질 않고,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과연 이 집단적 상처를 어떻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궁리해보아야 할 정도다. 인디고 연구소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진행했던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에서, 바우만 사유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희망’이었다. 이것은 바우만의 사유에도 드러나지만, 그의 삶과 인품에서 배어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바우만의 말처럼,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사람들만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에 이어 공동선 총서 두 번째 인물로 인디고 연구소가 바우만을 인터뷰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사회, 불평등, 인간관계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탁월하면서도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여럿 제공하였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바우만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과 사유의 지평을 두루 살펴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바우만식의 진중하면서도 재기발랄한 해결책 등이 담겨 있다. 가히 바우만 사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동선을 향하여. 이 물음을 바우만에게 던졌다. 그는 누구나 공동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문제는 누구도 그것을 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제껏 이론의 여지가 없던 역사적 행위자의 명백한 상실”, 이는 곧 공동선을 향하여 투쟁하는 주체의 상실, 또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소멸을 뜻한다. 그럼에도 바우만은 “사회적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칠 기회를 얻은 사람은,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는 부르디외의 말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희망을 가질 의무를 지니고 있다 말한다. – 윤한결(인디고 연구소 연구원)
– 지그문트 바우만이 전하는 희망의 편지! “점점 더 심해지는 과거로부터의 단절과 난해한 미래의 과제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한 인간 존재가 있고, 희망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인디고 연구소 팀이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들을 모두 읽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진단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바우만의 답신을 정리했다. 2부에서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1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세계화되고 또 파편화된 이 시대에 공동선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달성 가능할까요? 오늘날 공동선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보십니까?”
.“미지의 불확실성에 대해 희망을 갖는 자들이야말로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 발전이 만들어낸 잉여 인간쓰레기들로 전락하고 있는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정의, 평등, 자유 등의 가치가 실로 무력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불평등 문제의 극복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액체 근대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가 인간 유대의 약화 또는 상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편적 윤리로서의 사랑과 진정한 인간 관계의 의미는 어떤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등
2부에서는 영국 헐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키스 테스터, 바우만 전집 편집자인 미켈 야콥슨, 리즈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자 바우만 연구소 소장인 마크 데이비스 등이 자신들이 바우만에게서 받은 영향들과 자신이 다시 재구축한 바우만의 학문의 세계를 전해주고 있다.
지난 2, 3년 간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들이 연이어 출간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인디고 연구소에서 준비한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바우만 현상을 정리하는 의미의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바우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할까? 우선 바우만의 통찰에는 학문적 깊이와 개념적 보편이 공존한다. 시대가 처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그윽한 반면,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발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부분이 있다. 누구라도 그가 발명한 개념들을 여러 번 곱씹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세계가 명확히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 한 시대의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성공의 문이 철커덕 닫히고 잠기는 것과 같이 우리의 희망도 비슷한 형국에 처해 있습니다. 지식 기반 사회이자 정보 중심의 사회라고 일컫는 사회경제적 체계를 갖고 있는 이 세계에서 지식은 더 이상 성공을 담보해주지 않으며, 교육은 성공을 보장해주는 지식을 선사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지점은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독소가 중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불평등이란 사회속에서 그다지 해가 되지 않고 그 속에서 견디며 살 만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과 사회적 비전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진정한 배움이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이며, 견고한 지평을 뒤흔드는 도전이어야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 지점에 희망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시대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는 끝없이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고자 노력했고, 당대의 지배적 사유를 거스르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지금, 우리는 혁명적 배움과 삶의 기술을 체득하여 닿을 수 있는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싸움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 지그문트 바우만
왜 저는 여전히 바우만에 대해 흥미를 놓치지 않고 있을까요? 바우만의 이론은 끝없이 새로운 의문들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영국 사회학자들처럼 해답을 내놓기 위해 실증적인 연구를 하지 않습니다. 바우만은 질문을 발명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지점입니다. 그는 사유를 자유롭게 만들고, 독자를 향해 진지하게 말을 건넵니다. 우리가 스스로 세계를 열어젖히길 권하며, 이것은 삶의 근간을 뒤흔들라는 요구와도 같죠.
바우만은 늘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매우 명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기서 바우만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창조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립니다. 나아가 이는 “그 자체로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창조와 자유보다는 질서와 위계가 필요하지요. 그러니 인간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요구 당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된다는 것과 사회적 존재가 된다는 것 사이에 마찰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 제도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사회적 질서를 언제나 깨고 싶어 하니까요. 요컨대 사회, 문화, 소비주의, 윤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의를 관통하는 인간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통찰이 바우만 사유의 근본 뼈대라 할 수 있습니다. — 키스 테스터(바우만 인터뷰집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화』 저자)

○ 독자의 평 1
– 지그문트 바우만의 세 번째 책,
인디고연구소(인문학 공부 공동체)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인터뷰 내용을 싣고 있는 이 책은 잔혹한 자본의 횡포와 불평등을 넘어선 진정한 공동선의 세계를 향한 길을 안내해주는 책이다. 노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숨겨진 혁명의 날개에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실을 수 있길 바라며 리뷰를 적는다.
혁명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삶에 의지를 버리지 않는 것일 뿐.
바우만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는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행동방식이 가치를 얻게 되는 고체 근대의 시대를 거쳐 액체 근대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변화 혹은 유연성이 삶의 조건이 되어버린 시대, 과거의 것은 축적되지 않고 소멸해 버리는 시대, 낡은 것은 곧장 쓰레기가 되는 사회이다. 이러한 액체 시대에 ‘유연함’이란 삶의 기술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모순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늘 창의적이어야 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우리는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친구 삼아 새로운 모든 것에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유동하는 사회에 우리는 끊임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체성을 만들어내며 불안함을 떨쳐 보려 하지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정체성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나무처럼 약하기만 하다. 때문에 생성과 소멸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누구도 그것을 자기 극복으로 끌고 가지 못하는 것 같다. 불안한 사회에 허약한 윤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점점 더 무력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우리는 행동이나 실천과 분리된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잃어버린 책임과 함께 표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바우만은 공동선에 대한 물음이 우리 시대의 아주 중요한 문제라 얘기한다. 그는 더 나은 세상, 좋은 세상에 대한 열의가 활기를 잃은 이유는 ‘주체의 위기’에 기인한 것이라 평가하는데, 주체의 위기란 ‘책임은 이제 주인을 잃어버렸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책임이 표류되어 떠다니는 시대,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불합리하고 정당하지 못한 것들에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희망 없는 삶에 대한 인식에 그쳐있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경력단절, 독박 육아, 맘충 따위의 주제로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들은 보며 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것이 나에게 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헬조선, 금수저, 흙 수저 등의 이름을 붙여 공론화하여 비난하고 경멸하지만 정작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여러 현상에 대해 몇몇의 이름을 붙여 더욱 견고하게 불합리한 현실의 세계를 만들고, ‘견뎌야 하는 삶’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우리는 참고 견뎌야만 하는 걸까
견딘다는 것은 니체의 표현을 빌려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을 때의 긍정이다. 즉 긍정이 아닌 삶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긍정한다 함은 보존이 아닌 극복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을 견디면서 긍정한다는 것은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당연함이 익숙해질수록 변화하기는 힘들어진다.
바우만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이 사회가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꿀 때 우리의 주체의식도 단단해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희망 없이는 책임 (주체) 의식을 붙잡아 둘 수 없다.
“저는 이것이 지식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익숙한 것을 낯선 눈으로 보게 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문제시 함으로써 인간 세계 통념이나 억견의 비가시성으로부터 구출하여 사유의 몰입, 각성의 영역, 결단력 있는 행동의 대지로 이끌어 가는 것 말입니다.”p157
더 나은 세계는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세계이다. 사적 이익에 대한 관심을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려야만 한다. 혼자 (solitary)에서 연대 (solidary)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연대는 특정한 대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와 너와 광장에 있는 우리 모두가 목적을 갖는 것이고, 곧 삶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p137
우리는 삶을 구별하고, 차별하고, 파편화 시킨(p264) 유동하는 근대 자본주의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민주적 가치를 교육하고, 시민 의식을 심어주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아야만 한다. 즉각적인 자극의 충족을 향한 소비적 에너지를 균열된 사회의 틈을 메꾸는 것에 돌릴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계를 맹목적이고 암흑적인 세계라 단정 지을 때, 그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존재만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카네티 p162
유동하는 액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새로움을 찾아 영원히 멈추지 않는 사냥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p191) 담보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윤리는 모든 인간에게 공동체의 감각을 배양 시킨다 ” p198
윤리는 인간성의 회복이고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이다. 의지는 언제나 희망에 찬 미래를 향하고 있다. 과거에 의지를 두는 사람은 없다. 윤리적 주체로서 삶에 대한 의지를 고취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창을 마련해 주는 책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난 사회학자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 매일매일 좀더 발전 된 모습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꿈을꾸는 한 사람으로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좀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 나또한, 숨 쉬는한 희망하며 살고싶다!

○ 독자의 평 2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 지그문트 바우만
덕망과 학식을 갖춘 노사회학자가 들려주는 이 시대의 살아있는 자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들었다가 첫장을 읽는 순간, 청년의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바로 이 인터뷰집을 기획하고 만든 인디고 연구소가 공동선 총서를 기획하며 쓴 서문때문이었다.
이 책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청년들이 만들고, 공부공동체 인디고 연구소에서 엮은 공동선 총서 시리즈2편이다. 그들은 노학자의 영국자택으로 찾아가 세 차례의 인터뷰와 수십 통의 이메일을 통해 이 책을 탄생시켰다.
‘공동선 총서를 기획하며’라는 제목의 서문 일부 옮겨본다.
혁명은 공동선을 향한 투쟁이다.
차별과 배제의 높은 장벽을 넘어 서로의 손을 맞잡는 공동선을 향한 투쟁.
이 공동투쟁은 잔혹한 자본의 횡포와 불평등을 넘어선 진정한 공동선의 세계를 향해 있다.
이 간절함은 암울한 세계의 끝자락에서 어느 순간 점화되어 자유와 해방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세계시민의 오랜 기원과 맞닿아 있다.
‘공동선 총서’는 불가능한 꿈에 과감히 도전한다.
공동선을 열망하는 철학자의 사유와 더불어 불가능한 미래를 가능한 미래로 바꾸고자 한다.
공동선의 사유를 통해 자유와 평등을 향한 공동투쟁의 장에서 잠재된 혁명의 무수한 이름들을
이 세계에 살려낼 것이다.
불가능한 꿈의 시도야말로 인문학의 본질이자 가능한 미래의 징후가 아니겠는가.
기획의도에서 밝혔듯 이책은 공동선을 열망하는 폴란드 출신의 노사회학자 바우만 선생님을 찾아가 질문과 답변을 통해 그의 고견을 듣고, 희망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실마리를 쫒는다.
그는 오늘날, ‘좋은 사회’의 모델에 대한 모색이 공적의제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좋은 사회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신뢰할 만한 주체가 없다는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은 결정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분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여기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정치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대부분의 권력이 국민국가에서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인 공간으로 확산된 반면, 정치는 여전히 국가 영토 주권내의 제한된 지역적 경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스마트기기의 발달과 개인정보 유출등으로 사적인 공간이 침해를 받고 있다고만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공적 영역의 후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투쟁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박탈된 공적 토론의 장이라는 것이다. ‘아고라’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기만족적 위로라는 처방을 받는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고통과 절망을 공동의 문제로 다루게 하며, 나아가 공동선 및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을 함께 그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는다. 즉 아고라는 그 자체로 자율적인 개인과 사회가 나서서 공동선에 대한 담론에 다시금 불을 지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평등하게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능력과 자부심, 기회와 전망 등의 재분배가 필요한 것이다. 지식기반 사회이자 정보 중심의 사회라고 일컫는 사회경제적 체계를 갖고 있는 이 세계에서 지식은 더 이상 성공을 담보해주지 않으며, 교육은 성공을 보장해주는 지식을 선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지점은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독소가 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불평등이란 사회속에서 그다지 해가 되지 않고 그 속에서 견디며 살 만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정당하게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청년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공동의 노력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한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피난처를 마련하는 개인적 노력에 몰두할 것인가’ 중에서 말이다.
그는 이를 신자유주의 경제가 양산한 ‘중산층의 프레카리아트로의 전락’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개인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장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치욕과 자기 경멸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 프레카리아트 (precariat)란? 불안정한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 (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로 ‘불안정 노동자 계층’을 뜻한다.
‘행복’에 관해 언급한 그의 견해도 흥미롭다.
그는 괴테의 말을 인용해 81세가 되었을 때 괴테가 받았던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한 나날을 보낸 적은 단 한 주도 없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즉, 행복이란 역경이나 불안 등 어려운 도전을 극복할 때에 주어지는 것이며, 순간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프로이드가 말했듯 행복은 극도로 억제되어 있던 욕구가 갑자기 충족되면서 발생하는 것이고, 이것은 엄밀히 말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자신의 시에서 “화창한 날이 계속되는 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의미없음이다. 당신의 삶이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는 ‘좋은사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야만 현재 상태로부터 개선과 발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이 우리 삶에서 가능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끝없이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을때, 우리는 오랫동안 희망해 온 것들에 분명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파도를 거슬러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것이었다.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구석기 시대의 동굴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우만은 이렇듯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여러가지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평생을 연구하며 터득한 시대를 관조하는 부드럽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그는 앞으로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할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취업과 스펙쌓기에 치여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가 함께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하고,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해 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