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8월은 악마의 달
에드나 오브라이언 / 민음사 / 2024.10.18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한 소설가”(필립 로스)
–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정수가 담긴 도전적이고 대담한 대표작
.거침없는 필치로 사회적 모순과 위선을 고발한 아일랜드 문학의 귀재
.에드나 오브라이언이 사납게 그려 낸 욕망과 해방된 영혼의 분연한 절규
오늘날 아일랜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한 소설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로 평가받는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제일 대담한 작품 『8월은 악마의 달』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작렬하는 태양과 쪽빛 바다가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남프랑스의 호화스러운 휴양지를 배경으로, 이혼한 뒤에야 비로소 종교적 엄숙주의와 구태의 억압적 성 역할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아와 관능을 마주하게 된 여성의 치명적 휴가를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출간 당시에 “인간의 심성과 미덕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모국 아일랜드를 비롯해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금서로 지정되었고, 언론의 혹독한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의 소설 중 최고의 문제작이라는 당대의 평가와 달리, 오늘날 『8월은 악마의 달』은 오랜 세월 금기시되어 온 여성의 욕망을 과감히 해방한 선구적 작품이자 작가 특유의 세련된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가 유감없이 발휘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는 한층 고양된 작가적 개성, 예컨대 음습한 영국에서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남프랑스로, 성마른 여름에서 적막한 가을로 변화해 가는 장소와 계절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 반전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 종교적 죄의식과 가부장적 폭력에 잠식된 기억, 자아와 모성의 대립, 굽이치는 감정, 비상과 추락,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극적 사건들을 절묘하게 조형해 낸 저자의 천재성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에드나 오브라이언 (Edna O’Brien)
1930년 12월 15일, 아일랜드 서부에 위치한 춤그레이니 (Tuamgraney)의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톨릭 수녀원 기숙 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숨 막히고 억압적인” 사춘기를 보낸다. 이때 오브라이언의 문학적 토대가 되는 톨스토이, 새커리, F. 스콧 피츠제럴드 등을 탐독한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은 뒤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장차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960년부터 1964년 사이에, ‘시골 소녀들 삼부작’으로 불리는 『시골 소녀들』, 『외로운 소녀』, 『행복한 신부가 된 소녀들』을 런던에서 연이어 출간하며 크게 주목받지만 인간의 성생활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출판을 금지당한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은 결코 시류와 타협하지 않고 사회적 폭력과 모순, 종교적 위선, 여성 억압의 실태를 끊임없이 폭로하고 과감히 고발한다.
1994년 아일랜드 혁명군 IRA를 다룬 『찬란한 고독의 집』으로 새로운 문학적 국면에 접어들고, 1996년 『강가에서』, 2002년 『숲속에서』, 2015년 『작고 빨간 의자』, 2019년 『소녀』를 발표하며 참된 휴머니즘의 회복을 촉구한다.
1970년 요크셔포스트 도서상, 1990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1995년 유럽 연합 문학상, 2001년 아일랜드 PEN 도서상, 2006년 더블린 대학교가 수여하는 율리시스 메달, 2011년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 소설상, 2012년 아일랜드 도서상, 2019년 외국인 최초로 페미나 특별상을 잇따라 수상한다.
그리고 2018년 영국 기사 훈장을, 2021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고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2024년 7월 27일, 오랜 투병 끝에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아일랜드 대통령 마이클 D. 히긴스는 “아일랜드 여성들의 다양한 세대 경험에 진정한 목소리를 부여한 최초의 작가”라고 평가하며 “아일랜드 사회와 여성의 지위를 혁신한 중요한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역자: 임슬애
고려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 번역을 공부하고,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레이첼 커스크의 『영광』, 엘리너 데이비스의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니나 라쿠르의 『우리가 있던 자리에』,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 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뭘 하며 살 생각입니까?” 남자가 두 번째 수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질문했다.
“그냥 살려고요.” 엘런이 답했다. 드문 일이었다. 엘런은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번 만남은 영원할지, 자신이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두 사람이 탄 자동차 바퀴가 갑자기 튀어 나가는 바람에 반송장이 되어 길가에 널브러지지 않을지 걱정하곤 했으니까.
“현명해지는 거로군.” 남자가 말했다.
“나이가 드는 거죠.” 엘런은 전보다 행복했고, 만족스러웠고, 그러니 젊어진 셈이었다. 점심 식사는 비쌌고 남자는 뚱한 얼굴로 식당을 떠났다. -본문에서
엘런은 남자를 갈망하며, 그가 저지른 가장 사악한 짓이란 엘런이 죽은 듯 살자고 체념했을 때 그런 식으로 다가와서 거짓된 희망을 주고 하룻밤 동안 새 삶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문에서
햇볕, 살갗이 얼얼해지는 햇볕만을 엘런은 갈망했다. 살갗이 붉은빛 금색으로 물들었다. 하루 낮이 지날 때마다 빛깔은 조금씩 더 진해졌고, 밤이 되면 얼른 내일 아침이 와서 불의 세례식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잠들었다. -본문에서
엘런은 빠르게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섰다. 이제 서두를 필요가 없고,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 없고, 그저 가만히 호흡할 뿐이고, 행복하지 않으나 불행하지도 않았다. 낮이 전처럼 찬란하고 밝지 않다면, 밤도 그렇게 새카맣지는 않으리라. – 본문에서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이십 대 후반의 엘런은 어긋난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는 아이가 전남편과 함께 캠핑을 떠난 여름날, 그동안 잊고 살아온 자기만의 시간을 만끽하기로 결심하고 잠시 인연이 닿았던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거나 쓸쓸한 런던 거리를 배회하며 자유를 느낀다. 그런데 엘런은 때마침 우연, 어쩌면 운명 같은 낯선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고 여태 시도해 본 적 없는 탈주를 감행한다. 마치 그는 무거운 족쇄에서 이제야 놓여난 듯, 영국과 달리 햇빛으로 찬란한 남프랑스로 단호히 떠난다. 엘런은 여행객을 유혹하는 육감적인 언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남성들의 한심한 추파, 알코올의 열기, 사치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두려움 비슷한 떨림, 한평생 억눌린 욕망에 생겨난 깊은 균열을 느낀다.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엘런은 해변의 나체,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이름조차 알 길 없는 사람들과 뒤섞이며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자신의 참된 열망을 일깨운다. 온화한 열기에 달뜬 어느 날, 엘런은 유명한 영화배우 바비를 만나고, 그의 매력적인 미소에 한없이 빠져든다. 불붙은 욕망은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이, 그 자신마저 집어삼킬 듯 무섭도록 번져 나가고, 엄청난 비극과 잔인한 희극을 품은 채 엘런의 턱밑까지 다가온다. – 본문에서
○ 추천사
《가디언》 “정교하고 서정적이며, 아름답고 명료한 소설.”
《타임스》 “모성과 욕망,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정수가 담겨 있다.”
앤 패칫 (소설가) “아주 눈부시고 용감한 작품.”
앤 엔라이트 (부커상 수상 작가) “금기를 깨뜨린 기념비적 소설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그를 흉내 낼 수 없다.”

○ 독자의 평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제발 사라졌으면 하는 장면은 사라질까 두려운지 일부러 새긴 문신처럼 남았다. 그건 나의 아픈 상처이자 죄의식이다.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부질없지만 그 장면이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내가 싫어서 미칠 것 같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내내 그럴 거라는 걸 안다. 어쩌면 그게 나를 향한 벌인지도 모른다. 처음 만난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8월은 악마의 달』은 그런 소설 같았다. 그러니까 강렬하고 아름답지만 끝내 온전히 수용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
주인공 엘런은 아일랜드 출신의 스물여덟 살로 일곱 살 아들이 있는 이혼녀다. 아들은 전 남편과 캠핑을 가리고 했고 엘런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엘란에겐 만나는 남자가 휴가 있다. 그러나 그는 엘런과의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애인도 있다. 그런 남자는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 엘런은 그걸 늦게 알았다.
엘런은 런던을 떠나 프랑스로 향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온 홀가분한 휴가지의 일상은 다채롭게 이어진다. 매력적인 엘런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엘런과 즐기기를 바란다. 휴가니까. 런던도 아니고 엘런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뭐든 엘런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연하게 만난 화려한 배우와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무리의 분위기에 취해 엘런은 호텔을 벗어나 대저택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일행은 교통사고로 죽은 시신을 목격하지만 저택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술을 마시고 서로를 유혹하고 즐긴다.
휴가지에서의 하룻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엘런은 싱글이고 젊고 여긴 런던도 아니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긴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닐 테니까. 그러나 엘런의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곧 도착한다. 전 남편이 전하는 소식,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엘런이 휴가지에서 뜨거운 태양을 즐기는 동안 아들이 죽었다. 이제 아들을 볼 수 없다. 당장 아들 곁으로 달려갈 수도 없다. 60 년 전 엘런이 느꼈을 절망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게 엘런에게 8월은 잔인한 악마의 달이 되었다.

엘런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저 시간을 견딘다. 곁에서 위로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맡기는 일.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상대는 엘런의 육체만 원했을 뿐이다. 결국엔 혼자가 된 엘런은 런던으로 돌아온다. 아들이 없는 집으로. 전 남편을 만나려 찾아갔지만 이미 젊은 여자와 떠나고 없다.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었다면 엘런은 자책감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아나요? 나로 사는 삶을 그만두는 것.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어. 깊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필요하다면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232쪽)
아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엘런이 휴가를 떠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엘런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엘런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60년 전 엘런을 향한 시선은 아니다. 사회적 비난은 그녀를 말라죽게 만들었을 것이다. 누구도 엘런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엘런이 아들의 소식을 듣고 런던으로 바로 돌아올 수 없었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휴가지에서 따라온 몹쓸 병이 주는 고통이 엘런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엘런에게 8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뜨거운 8월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은 계속될 것이고 스물여덟의 엘런은나아갈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니 좋았다.
나뭇잎이 떨어졌고, 앨런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여전히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로 너울너울 떨어져 낙엽 더미 위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보았다. 수많은 나뭇잎이 사방에서 그렇게, 단순하고 무던하게 낙하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두 달쯤은 이렇듯 서늘하고 감미로운 가을이 이어질 것이다. (236쪽)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짐작할 수 없는 엘런의 마음,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변화를 때론 차갑고 때론 뜨겁게 담아낸다. 사랑, 욕망, 젊음의 덧없음을 말해준다고 할까. 삶이란 알 수 없고 인간은 상실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욕망을 채우려 발버둥 치는 존재라는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