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The Ten Books on Architecture : 건축십서
비트루비우스 (Vitruvius Pollio) / United States / 2011.12.1
‘건축10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에 대한 책이다. 이 서는 로마시대에 비트루비우스가 황제 카이사르에게 받칠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비트루비우스가 군인출신인 카이사르 휘하에 있다 보니 책의 문체가 확신성을 가지고 간결하고 명쾌하며 사실적으로 기술하였다. 책의 구성은 총 10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1서에서 7서까지는 건축에 대해서 썼고, 8서에서는 물에 대해서 다루었으며 제 9서에서는 천체의 운동과 시계를 제10서에서는 실용적인 기계장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는 현대 건축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 목차

제1서 : 총론
건축가의 교육 : 이론과 실제
건축의 기본원리 : order, arrangement, eurythmy, symmetry, decor (propriety), economy
건축의 분류 : 건설기술, 기념건축물, 기계제작
건축의 3요소 : firmitas, utilitas, venustas
도시의 입지
가로의 방향과 풍향
공공건물의 위치
제2서 : 주거건축
그 기원
각 재료들의 성질과 구조
제3서 : 신전 건축
인체와 신전에서의 대칭성
신전의 기초 및 하부구조
각 부분의 비례
제4서 : Orders
3 order의 기원
신전의 각 부분
제5서 : 공공건축물
바실리카, 포럼, 극장, 공동욕장 등
제6서 : 계획론
주거양식을 결정하는 기후
Symmetry와 그것을 대지에 따른 변형
주요 실들의 비례
각 실들의 위치
제7서 : 시공
바닥
벽 마감
마감 색채
제8서 : 설비
물의 공급방법, 선정
제9서 : 천문, 기타
해시계 만드는 법
제10서 : 기계제작
○ 저자소개 : 비트루비우스 폴리오 (Marcus Vitruvius Pollio, BC 81년경 ~ BC 15년경)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 (라: Marcus Vitruvius Pollio, 마르쿠스 위트루위우스 폴리오, BC 81년경 ~ BC 15년경)는 BC 1세기 경에 활약한 고대 로마의 기술자, 건축가이다.
비트루비우스 (Vitruvius)의 생애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그의 이름이 마르쿠스나 폴리오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의 일생에 관한 모든 것은 오직 그의 저술을 통해 유추해낸 것일 뿐이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군단의 건축기사로 스페인과 갈리아 등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군막사, 공성장비, 가도, 다리건설등의 공병일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에 아우구스투스가 그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파눔’ (Fanum, 현재의 이탈리아 파노)의 한 바실리카를 직접 건축했다고 저서에 썼으나 현재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의 저술로 알려진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는 10권으로 구성된 일종의 건축학 논문이며, 로마건축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도시계획과 건축일반론, 건축재료, 신전, 극장·목욕탕 등 공공건물, 개인건물, 운하와 벽화, 시계 · 측량법 · 천문학, 토목도구 및 군사용 도구 등 건축기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이는 그리스 건축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는데 규칙적인 비례와 대칭구조, 고전적 형식미를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건축은 새나 벌이 둥지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방이었으며, 따라서 건축의 재료는 자연에서 구한 것이고 인간에게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건축구조는 세 가지 본질을 반드시 갖추어야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견고함 (firmitas)과 유용성 (utilitas), 또 아름다움 (venustas)이다.
그리스 건축양식을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토스 양식으로 분류한 것도 비트루비우스이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재조명되는데, 그의 ‘건축에 관하여’는 1414년 피렌체에서 재발견되어 르네상스 건축가들에 빠르게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으며 고대 로마 건축 연구 및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영향을 받아 유명한 ‘비트루비우스 해부도’를 그렸다.
○ 독자의 평
건축십서는 B.C. 30년경(로마의 공화정 끝무렵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로 추측)에 Vitruvius라고 추측되는 건축가에 의해 쓰여진 건축관련 종합서 입니다.
르네상스 무렵 비잔틴제국에 있던 자료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이 때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원본은 4종이 있으며, 1511년~1567년 사이에 Fra Gioondo의 여러 가지 판본이 출간되었는데, 이들이 현 번역본들의 원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판본에 ‘Marus Vitruvisu’라고 쓰여져 있어서 이를 저자의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1서에서는 건축가의 직능과 어떤 사항에 정통해야 하는가에 대해 서술합니다.
건축가가 가져야 할 교양에 대한 언급부터 시작됩니다. 건축가는 여러 가지의 학문과 교양에대한 지식을 구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지식의 판단에 따라 다른 분야의 기술로서 이루어진 작품을 음미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 = 이론(완성된 작품을 비례원칙에 입각하여 증명해 주고 설명해 주는 것) + 실제(조형의도에 따라 필요한 재로를 써서 작품을 완성하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실기의 적용 방식)의 소산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데, 그 두 가지는 의미를 부여받는 것(말하려는 대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학적인 원리에 따라 증명하는 것) 입니다. → 건축가는 양측 모두 정통해야 합니다.
예) Caryatides – 긴 로마의 예복을 입고 있는 대리석 여인상
Peloponnesus 반도의 도시국가였던 Caryae는 그리스와 적대관계인 프르시아와 은밀히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대승리를 거둔 다음, 도시연맹은 시민집회를 열어 카리아 시민에게 전쟁을 선포하였고, 여자들을 노예로 끌고와서 예복이나 장식을 벗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모욕뿐만 아니라 영원히 노예상태의 본보기로서 치욕을 머리에 이고 그들의 모국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영원히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제2서에서는 건물을 건립하는 재료의 공급에 대해 논합니다.
주택의 기원에 대한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의 따듯함과 쾌적함을 느끼게 되자 불을 보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단어 사용 및 자주 사용되는 발음을 기초로 하여 정제되었으며 빈도수가 큰 발음 형태에 의미를 부여함으로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 인류는 군집하기 시작였고
→ 손을 사용하여 도구를 다루게 됨에 따라
→ 자신을 보호할 안식처를 건설하게 됩니다.
→ 점차 주거형식 개량 됩니다.
제3서에서는 신전건축의 배치와 양식 및 다양성, 그리고 각 양식의 구성요소와 특징에 대해 기술하되 그 중 비례가 제일 정교한 이오니아식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또한, 높은 사람의 지우를 얻어 추천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 후세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즉, 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열의와 재능과 기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민을 위해 훌륭하고 완전한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전혀 기억되지 않는데, 근면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전건축과 인체에서의 심메트리에 관하여 부분에서는 황금비율에 대해 알려줍니다.
안면 = 턱에서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로 키의 1/10
한 손바닥 = 손목에서 장지 끝까지로 키의 1/10
머리 = 턱에서 머리끝까지로 키의 1/8
가슴 맨 위부터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 = 키의 1/6
가슴 중앙에서부터 제일 위인 머리끝까지 = 키의 1/4
얼굴 중 턱 밑에서부터 1/3 지점 = 콧구멍 밑
콧구멍 밑에서 양미간 사이까지 = 1/3
양미간 사이에서부터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의 이마 = 1/3
발 길이 = 키의 1/6
팔 길이 = 키의 1/4, 손바닥의 6배, 또는 손가락의 24배
가슴폭 = 키의 1/4
배꼽 = 중심, 사람이 손과 발을 펴고 드러누었을 때 컴퍼스의 선단을 배꼽에 놓고서 원을 그리면 손과 발끝이 그 원주선에 닿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재고 그 거리를 양손을 펼친 상태에서 옮겨보면 같은 폭과 높이를 가진 정방형
완전수 (perfect number)
1안) 10 = 테레이온 ← 예) 신체의 손가락, 발가락 개수
2안) 6
1/6이 1, 1/3이 2, 1/2이 3, 2/3(디모이론)이 4, 5/6(펜다모이론)이 5, 그리고 완전수가 6
6위에 단위가 더해지는 것 (에피도리온)
6의 1/2이 더해져서 9가 되는 것 (에피디모이론)
2/3이 더해져서 10이 되는 것 (에피펨프론)
두 개의 단순수로 만들어진 12 (디프라시온)
3안) 16 ← 두 완전수를 합쳐서
제4서에서는 도리아 (Doric)식과 코린트 (Corinthian)식 형태의 원칙과 차이 및 특징을 설명합니다
도리아식이 제일 먼저 생겨났는데, 그 유래를 살펴보면 Hellen과 요정 Phthia의 아들인 Dorus는 Achaea와 전 Pelophnnesus의 왕이었는데, 당시에는 아직 symmetry에 관한 법칙이 세워져 있지 않을 무렵이어서 고도 Argolis의 Juno 신역에 처음 이 형식을 건립한 이후 차례롤 다른 Achaea의 도시에도 같은 양식의 신전을 건립하게 되면서 하나의 양식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지방 명칭을 그들의 지도자 이온의 이름을 따서 Inoia라 하고, 신전을 건립하였습니다. 남자 발자국이 신장의 1/6인데 이를 기둥에 적용하여 주신의 상부를 어떤 굵기로 하든 그 6배만큼을 주두를 포함한 기둥의 높이로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도라이식의 기둥이 남자 신체의 비례와 강건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발자국을 여인의 가는 몸에 맞추었고 더 높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기둥 굴기를 높이의 1/8로 만들었습니다. 직경의 7배를 도리아식 기둥의 높이로, 9배를 이오니아식 기둥의 높이로 정하고 이오니아인이 변화시켜 처음만든 형식을 이오니아식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코린트식 주두는 코린트 지방의 어떤 소녀가 결혼적령기에 달하였는데 그만 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장례 후 그녀의 유모는 소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것을 모아서 바구니에 넣고 묘지로 가지고 가서 묘 위에 올려 놓은 후 바구니가 오래 유지되도록 기와로 덮어 두었다고 합니다. 이 바구니는 우연히 acanthus의 뿌리 위에 놓였는데 봄이 오자 아칸서스의 뿌리는 바구니의 무게에 눌리면서도 중간에서 잎과 덩굴이 뻗었고, 이 덩굴은 바구니에 엉켜서 성장해 가면서 기와에 눌려 그 가장자리에 소용돌이 (volut)형의 곡선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침 묘지 근처를 지나던 Callimachus라는 사람이 바구니와 그것을 싸고 있는 잎사귀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형태에 끌린 나머지 여기에서 착안하여 코린트인을 위한 기둥을 만들고 비례를 정하였고, 이로써 코린트식이라는 새로운 양식이 탄생되었습니다.
그 밖의 장들은 건축관련 개념들에 대해 차례에 있는 내용들을 서술합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