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논단(15)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본 G2국가로서 중국에 관한 연구
세계 지도자 역할에 관하여
목 차
I. 서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III. G2국가로서 중국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V. 100년간 G1 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의 청교도 정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1. G2 중국의 역할과 책임
2. 중국이 G1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한계성
3. G1 미국과 G2 중국의 정체성의 차이에 관하여
4. 중국의 G1능력의 가능성과 국가적 자질
VII. G2국가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IX. 결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2. 중국이 G1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한계성
지금 21세기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나라들은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리고 특히 젊은이들은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받으며 배워가고 있다. 중국에서 온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의 여러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학하며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을 체험하며 배우고 있다. 언젠가 때가 차면 중국의 사회주의 사상의 기성세대가 사라지면 중국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체제가 사라지는 기회가 올 수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나라들은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로부터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도 기독교 선교사들의 기독교 선교와 교육을 받았다. 서구의 기독교의 사상적 나라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등 모든 나라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기독교의 신앙과 민주적 교육을 식민지 정책 속에서도 민주주의적 교육을 하였기에 독립한 이후에도 기독교의 신앙과 민주주의 사상은 남아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들의 오천년 역사 속에 국가적 식민지 지배는 받아본 역사는 없다. 물론 원나라와 청나라는 이웃 민족이 국가의 주권을 차지하여 통치하여 온 시대가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중국대륙 안에서 같은 문화와 사상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원 나라를 세운 몽골 민족이나, 청나라를 건국한 여진족(만주족)은 중국 대륙의 유교적 문화의 통치이념 속에서 제국을 통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문화적으로 빈약했으며 그들이 간직한 고유문화가 없었기에 오랑캐 민족이라는 명칭으로 불러 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륙문화는 2500년이라는 역사 속에 유교를 제국의 국가통치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유교에서는 민주주의 사상보다는 통치자에게 충성해야 하는 복종적 국가질서와 주인과 종의 신분으로 순종의 질서를 사회적 안정을 구성하는 진리로 삼아 왔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孔子, 기원전 557-479)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노나라 정치가였다. 노나라 관리로서 대구사(현재의 법무부 장관) 벼슬을 지냈으며 최고의 재판관 직책과 외교관 직책도 겸직했다. 그러나 정적이었던 노나라 권세가인 삼 환 계열인 삼손의 권력을 타도하고자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피하여 10여년(또는 14년) 동안 주위의 나라에 안주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년에 그는 고향으로 귀향하여 사설 강습으로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의 제자들의 수가 3,000여명이 되기도 하였으며 그 중 72명은 현인의 반열에 들었다. 공자의 철학은 군자교육(君子敎育)이며, 덕치주의(德治主義)로 정치에서 덕(德)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존비친소(尊卑親疎)의 사회 규범을 말하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민주주의 사상이 유교는 빈약하다.
공자는 군자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위하여 여러 저서들을 편찬하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그의 사후에 제자들이 집대성했다. 사회적 정서로 시경(詩經)과 절대 왕권에 기초사상인 서경(書經)은 주 나라시대부터 기초 교양서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중국은 유교의 철학사상을 대륙을 통치하는 기본 윤리의 사상으로 삼아 대륙을 지켜 왔다.
유교적 사상이 중국민족의 민족사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국민족은 대륙을 사랑하고 광대한 중국 대륙을 여러 민족들이 유교의 철학 사상으로 함께 지켜올 수 있었다. 그러나 유교의 철학에서는 민주주의 철학보다 군신의 유교적 사상철학으로 무장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도 국민들 사상 속에 유교적 잠재력이 중국을 중국되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다. 중국의 대륙 정치역사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통치이념을 삼은 국가는 중국 역사에 없었다는 것이다.
왕조 정치의 속성에는 오로지 여당적 정치만 가능하다. 그리고 중국의 국민사상에서 양당정치나 자유민주주의 정치는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정치 역시 일당 체제로 정치를 하고 있다. 통치이념은 다르지만 통치사상과 행정에는 야당이 존재할 수 없는 왕정정치와 다름이 없다. 사회주의 일당 독재 정치제도이다. 일당정치체제에서는 막강한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며 거기에 존속되는 모든 권력집단에는 권력과 함께 부정과 부패가 기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로 되어 있다. 일당독재의 취약점은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면 부패의 온상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중국이 지향하는 G1의 사명도 부패와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다. 20세기의 세기에서 활약 했던 서구의 국가들은 대개가 정직을 생명처럼 지켜왔다. 그리고 부정과 부패와는 거리가 멀다.
1949년에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이 2010년에 G2라는 강대국 중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2012년 제 5세대의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은 강력한 부패 척결을 다짐하고 있다. 아득한 옛날 인류 원년에 시작된 황하문명(黃河文明)의 후손들이 세계를 지배하려 눈을 뜨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진정으로 G1의 임무를 감당하려면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중국의 관리들의 정직한 행정이며 중국인민들의 정직한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하는 평가에 의하면, 중국은 2013년도 80위에 40점이며 2014년도 100위에 36점(조사대상 175개국, 100점 만점)이다. 중국의 부패지수는 평균 아프리카 국가들의 수준이다. G1 미국은 2013년에 19위로 73점, 2014년 17위로 74점이었다. 1위는 덴마크로 92점이었으며, 14위까지는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과연 중국이 G1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감당하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1992년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조치가 확대되면서 부정부패 배금사상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가 고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넘쳐나는 자본금과 수익금의 팽창으로 중국의 국영기업으로부터 일어나는 자금들은 당, 정, 군 관들의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확산되어 갔다.
20여년에 걸쳐 이루어졌던 중국의 부정부패의 진상은 관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부호마다 배후의 거대한 먹이 사슬이 형성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중국식 특징이다. 부정부패로 성장한 기업이나, 부유한 개인이 법망에 적발되면 수많은 정부 관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가족을 중시하고 인정에 약한 중국 사회에서 고위관리의 부인, 아들, 형제들의 가족 단위 부정부패 행위도 만연한 현실이다. 한 사람의 부패한 관리 배후에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 부패의 행위가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는 물론 전국적 지방도시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패행위로 거래되는 액수도 또한 천문학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지만 뇌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처럼 중국 내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유는 인·허가 권한이 관리 한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고 국유기업이 주요 국가자원을 독점하고 있는데 있다.
이에 반해 관리들의 권력 행사를 효과적으로 감시하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있다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중국에는 공산당원이 8,700만 여명이며, 국가공무원이 708만 여명이며, 반관 반민 사업 단위 근무자 4,000만명이 된다. 사회주의 정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 경영하는 특성상 독점하는 기업과 국유기업들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감시 감독에 한계성과 엄밀히 말하면 주인없는 형태의 기업경영에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1978년 이전 극도의 가난과 빈곤에 시달려 왔던 중국의 환경상 갑자기 풍요로운 중국적 환경은 중국의 관리들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물질적 요구를 통제하기 어려운 심리적 작용도 그 원인 중에 하나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방치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이 공산당에 대한 분노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부정부패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기구와 예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으나 성과가 미비한 현상이다.
2007년 9월 국무원 직속으로 국가 부패 예방국 설치, 고위공직자 부정부패 조사.
2010년 10월 행정 감찰 법 수정, 공무원 및 행정기관, 행정부 파견인원 및 조직에 대한 감찰 감사를 규정.
2010년 12웡 15일 공산당 청렴정치 건설책임제 실시.
2010 년 12월 29일 국무원, 중국 최초로 “중국의 반 부패와 청렴 정치 건설백서” 공표.
2011년 6월 14일 중국 인민 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정부의 주정부패자들이 1990년부터 현재까지 해외로 도피한 부패 관료가 최소 1만6,000여명에서 최대 1만8,000여명이며 이들이 함께 해외로 도피시킨 불법자금이 8,000억 위안(한화 133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건국이후 처음으로 공개한 것으로, 인민은행이 보고한 내용에는 중국국가 공무원과 국유기업 간부와 사회단체 고위직까지 포함된 것이다(중국 혜이룽강 신문 2011. 6. 16 기사). 국유 및 민간기업을 합쳐 수뢰 횡령 공금유용 등 죄목으로 중형을 선고 받은 임원이 95명에 달했으며 범죄액수가 1억1,000만위안(한화 187억원)이었다.
2012년 11월 15일 시진핑 국가 주석은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면서 18분의 평범한 수락연설로서 앞으로 10년간 13억5천만 중국인민의 지도자로 출발했다. 그리고 전임자 후진타오 전 주석이 해결하지 못한 부정부패 척결의 문제를 물려받았다. 새로운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국가 주석은 취임 초기부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 했다. “호랑이부터 파리까지 모두 때려 잡겠다” 호랑이는 고위직을 말하고, 파리는 최하위의 말단직까지도 포함시킨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취임 초기인 2013년 4월 19일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정치국 제5차 집단 학습을 주재하면서 발언한 내용의 마지막 일부의 내용이다.
“부패를 척결하고 청렴을 제창하는 일은 항상 꾸준히 진행해야 하며 사상이 썩고 변질되는 것을 막는 일은 오랫동안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좀이 많이 슬면 나무가 썩고, 틈이 커지면 벽이 무너진다’는 이치를 명심하고, 부패의 처벌 수위를 높게 유지하며,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조사하고 부패가 존재하면 반드시 처벌하며, ‘호랑이와 파리를 함께 때려잡는 태도’로 인민의 합법적 권익을 철저히 보호함으로써 간부, 정부, 정치의 청렴과 공정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자신이 시험대에 오른 부정부패 척결을 완수를 위해 과거의 어느 중국 지도자가 하지 못하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G2라는 명분을 위해서도 개선되어야 한다. 2014년 중국의 부정부패 청렴지수가 100점에 36점이다. 분명히 발전하고 개선되어야 한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 주석은 자신의 임기 시대에서 마지막 기회가 되는 제13차 5개년 계획을 맞이하고 있다. 부정부패로 인해 중국의 발전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 그리고 원대한 중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부정과 부패는 근절 되어야만, 중국의 정체성이 세계 속에 존재할 수 있다. 아직도 중국의 부정부패 청렴지수는 평균적으로 아프리카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한 사실은 심각한 문제이고 비극적인 현상이다. G2국가라는 명예를 위해서도 중국의 모든 인민들은 이제부터라도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가는 힘에 의하여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역사에 존재했던 강대국들이 결국은 역사에서 사라져야 했던 증거는 지도층이 부패하고 백성이 부패하여 정직하지 못하면 국가는 정당하게 유지될 수 없었다.
서구의 국가들은 법칙과 정직을 생명처럼 신봉하고 노력하며 살아온 민족들이다. 비록 국가가 가난해도 그들의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다. 국가적 부정부패 청렴지수에서 1위부터 14위까지 모두 유럽 국가들이다. 중국의 순위는 100위(2014년 기준)이다. 부정과 부패는 국가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타락하게 만드는 국가멸망의 근원이며 범죄의 근원이다. 정당한 노력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기본이 되는 사회가 평등한 기본 사회이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라는 성서의 말씀이다. 정당한 삶의 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불로소득(不勞所得)하는 백성들이 많아지면 국력은 약해지며, 정치는 모리배들이 좌우한다. 역사에 등장 했던 강대한 국가들은 부정부패가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대륙에서 지난 30년간 최악의 환경과 조건에서 일했던 그들의 노력으로 오늘 세계적 총 생산량이 G2로 등극했다. 그러나 못살던 시대를 경험한 중국의 지도층은 부정과 부패로 그들만의 배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대다수의 생산 기업들이 국영기업이며 독점 기업인 공산주의 정치상향에서 생산되는 생산품들이 시장 경제 자본주의 경영체제에서 주인 없는 무주공산처럼 수많은 부자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덩샤오핑이 정책적으로 시행했던 선부론(先富論)의 결과이다. 부자들을 정책적으로 만들어서 그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론이다. 그 부자들의 성장 과정이 정상적인 과정보다는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 했던 것들이다. 편법으로 법망을 지혜롭게 피해가면 유능한 인재로 보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편법을 이용하면 막대한 이익이 발생한다. 그리고 멋지게 포장하여 자기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하며 부정과 부패는 아니라고 스스로 변명하며 자축한다. 관료들이나 정치가들의 부패는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그러나 중국은 우선 G2국가라는 경제 대국으로 세계적 리더의 역할에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G2의 입장에서 부정부패가 너무 극심하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부정 부패순위가 175국에서 100위다(2014년 기준). 그러나 경제력은 175국에서 2위이다. 그리고 부정부패의 규모가 광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례라는 아는 비밀로 만연되어 있는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주인없는 수많은 국영 기업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13억5천만 인구중에 8천만 공산당들은 막대한 특혜와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그들은 넓은 대륙에서 엘리트 중에 엘리트로서 그들만의 서로 단결하여 중국 속에 중국을 통치하고 있으며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과연 G1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부정부패에 희생되는 G2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부정한 국가는 국제적 리더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없다. 서구의 국가와 백성들은 아직도 정직을 소중한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다.
칼 마르크스 공산주의 자본론에서는 개인 사유재산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공산주의 사상의 기본이다. 그러나 중국은 2003년 전국 인민대표 대회(전인대)에서 원자바오가 국무원 총리로 선출되어 주룽지의 경제개혁사업을 계승하게 되었다. 2004년에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헌법 개정안이 전국 인민대표 대회에서 채택되어 사유재산, 주식 구입 투자, 기업구입, 국유기업의 개혁을 위한 시장 경제제도 채택 등 많은 개혁정책들을 결정했다. 2007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사유재산을 명기한 재산 보호물권법, 국내 기업과 외자기업의 소득세율의 격차를 시정하는 기업 소득세법이 채택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나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최도 결정되어 중국은 개혁개방을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30년간 모택동 공산주의 사상과 문화혁명으로 수많은 엘리트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혁명동지를 숙청하는 배신의 방법까지 동원하여 열심히 공산주의 이념으로 통치하였지만 결과는 극도의 빈민과 굶주림이 중국대륙에서 최악의 조건으로 변화되어 갔던 경험을 직접 체험한 중국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이다. 칼 마르크스 공산주의 자본론 사상과 이론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30년이라는 긴 세월의 교훈에서 중국은 경험하고 배운 것이다.
오늘의 G2 중국의 씨앗은 1920년 상하이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가는 배를 타고 가는 16세의 덩샤오핑 그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기생한 부정부패의 근절이 중국의 국가적 과제이다. 중국이 G1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내일의 주역들은 오늘 미국과 유럽 등 서구문명의 나라에서 유학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과학과 최첨단기술과 문명으로 세계를 주도한 나라이다. 그리고 많은 세계적 인재를 배출한 명문대학들이 많으며, 역대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들이 제일 많은 나라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의 숫자는 250,000명 이상이며 미국에서 공부하는 전체 해외 유학생 숫자의 3분에 1 이상을 넘고 있다. 이는 지난 2000년에 비하여 2015년 6월 4일 현재 5배로 증가한 것이다. 2014년에 중국에서 미국에 유학중인 학생이 276,78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의 공립대학인 UIUC에는 한 대학에 중국 유학생만 5,000명이 넘는다. 미시간 주립대학의 경우도 몇 년 사이에 중국인 학생이 4,000명에 이르면서 이에 불만을 갖고 중국인 학생의 고급승용차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중국에서 한 가정에 한 자녀 정책으로 태어나기 시작한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연령이 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부모들이 해외의 명문대학에서 교육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몇 개의 명문대학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전공과목을 공부하려면 경쟁과 성적의 결과로 정하기 때문에 전공과목을 택하기가 어려운 경우이다. 앞으로 성장하는 중국의 학생들이 더 많은 숫자로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에 유학하러 갈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유학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 역시 중국에서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불가능한 현실이다. 미국 UIUC의 경우 해외 유학생 학비와 생활비는 1년에 미화 $46,000에서 $53,000이며 미국의 다른 대학들도 $46,000에서 $51,000정도이다. 저렴한 일리노이주 학생들은 $30,000-35,000이지만, 대개의 중국 학생들은 비싼 명문대학을 선호한다. 또한 중국의 부모들이 서구의 자유로운 교육환경에서 자녀들을 교육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부담에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미국에서 유학하는 중국 대륙의 유학생이 1만여 명을 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2004년 전국 인민대표대회에서 사유재산 인정권과 사유재산 보호법이 책정되어 시행하기 시작함으로 중산층 이상의 인민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1년에 $46,000에서 $53,000의 액수는 세금을 공제한 액수로서 대다수 미국 국민들의 1년 소득에 가까운 액수다. 그러나 많은 학비를 부담하며 공부를 하는 유학생들이 내일의 G1 중국을 담당할 인재가 될 자산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예전의 후진국으로 중국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몇 년 전에 호주의 명문대학인 시드니 대학의 호주인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숫자를 늘리지 말아 달라는 조건으로 데모를 했다. 학과의 모집정원 에서 해외 유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자신들의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정부의 예산이 삭감되면서 유학생들의 학비로 학교의 부족한 제정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호주에도 중국 유학생들이 제일 많다. 호주뿐 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중국의 유학생들이 많다. 호주의 경우 유학산업이 호주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강호생 선교사
Dr.강호생 Mlssion Pastor
Iona Columba College 출강
Mental Health CPE 과정중
M.Div, M.Th, D.Ics
jhskang@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