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없는 여객선 침몰, 이 시대 책임성없는 사회지도층의 모형 보는 듯
“운명은 가혹하고 생명은 지독하다.”
지난 4월 16일(수) 8시 48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황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인천 제주간 여객선)의 침몰사고가 있었다. 당시 세월호에는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3일(수) 오후 11시 현재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발표한 구조현황은 승선자 총 476명중 초기에 대피한 생존자 174명, 사망자 159명, 실종자 143명이다.
한편 정부는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와 인명피해가 집중된 경기도 안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20일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은 대형사고나 재난을 당해 정부차원의 사고수습이 필요한 지역에 선포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국가가 복구와 재난응급대책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하거나 자치단체에 보조할 수 있다.
세월호의 침몰에 관련해 여러 가설들이 있다. 급격한 변침, 암초 충돌설, 구조 결함설, 구조 변경설, 내부 폭발설, 복합 원인설(혹은 단계설), 과적 및 선체결함설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때 여객선 세월호의 선원이 수사과정에 “비상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해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를 확인중이다. 진술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의 안전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인 만큼 관련 수사진행상황에 따라 입건대상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CNN은 한국 여객선 참사를 전형적인 ‘인재’(Human Error)로 규정했다. CNN의 간판앵커 앤더슨 쿠퍼의 뉴스쇼 ‘앤더슨 쿠퍼 360’이 16일 해양안전 전문가와의 대담 ‘Did human error sink the South Korean ferry?’(한국 여객선이 침몰된건 인재였나?)라는 방송을 통해 CNN은 해양 안전전문가인 제임스 스테이플스 선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의 사고원인과 선장과 승무원의 부적절한 행동 등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분석했다. 제임스 스테이플스 선장은 ‘해난사고를 당했을 때 해야만 하는 첫 번째 일은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승객들을 배로부터, 위험으로부터 피해 구명보트를 타고 배에서 빠져 나가게 해야한다. 구명보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그대로 묶여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승무원들의 훈련에 의문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테이플스 선장은 “승무원들이 어디서 훈련을 받았는지, 얼마나 자주 연습을 했는지,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 알아내야 한다 … 이번 사고는 대혼란이고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 배에 구명정이 많이 있었고 주변에 소형 선박들이 많아 배를 빠져 나왔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이 모든 문제는 결국 구조훈련과 인재의 문제로 돌아간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월호 침몰, ‘서해 패리호’, ‘남영호’ 사건 등 20년 간격으로 발생하는 여객선 대형참사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는 21년 전 발생한 ‘서해 패리호’ 침몰사고와 닮았다. ‘서해 패리호’ 사건은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인근 해에서 침몰한 ‘서해 패리호’에 타고 있던 승객 292명이 숨진 사건으로, 1970년 12월 15일 운항중 침몰해 323명 사망한 ‘남영호’ 사고와 더불어 한국의 여객선 대표적인 사고이다. 특히 ‘서해 패리호’ 사건은 110톤 규모로 탑승정원이 221명 이었지만 사고당시 악천후로 위도에 며칠간 고립됐던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정원에 141명을 초과한 362명(승객 355명, 선원 7명)을 승선시켰다. 또한 사고당일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가 2-3m로 여객선이 정상운항하기 힘든 날씨였음에도 운항을 강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대표적 인재로 손꼽힌다. 또한 당시 서해 페리호는 항해사가 휴가중이어서 갑판장이 항해사의 업무를 대신했으며, 비상시 구명장비 사용법을 알려야 할 안전요원도 고작 2명뿐이었다. 전복 사고당시 선체에 설치된 구명정도 4대중 1대만 작동했다. 사고 직후 위급상황을 통제한 사람도 없어 구조요청도 하지 못했으며, 생존자들은 구명장비가 어딨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다. 서해 패리호의 사고원인으로는 스크류에 어망이 걸려 엔진이 정지된 상태에서 높은 파도에서 전복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역시 인재가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해외 주요 외신들, 한국 “숱한 사고에도 교훈은 얻지 못했다” 지적
주요 외신들은 한국이 대형 선박사고를 숱하게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일제히 지적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경주리조트 붕괴로 대학생들이 100명 넘게 숨지거나 다친 지 몇 달도 안돼 비극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은 ‘전쟁 때가 아닌 시기에 발생한 최악의 참사’, ‘20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해상사고 중 최악’이라고 전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여객선 침몰사고가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혼선과 더딘 구조작업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이 분노로 변했다”며, 총리가 물세례를 받는 등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L.P.와 CNN, 워싱턴포스트도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등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승객 수 백명을 버린데 대해서도 실종자 가족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상자 만큼이나 무수한 사연들
책임을 회피한 세월호 선장이 있었는가 하면 마지막까지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사연들이 있었다.
구명조끼를 양보한 희생자가 있었다. 세월호 승무원 박00(22, 여)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탈출을 도우며,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사망하였다. 구조된 안산 단원고 학생 김00(17, 남)는 “배가 기울면서 3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 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 당시 10명이 함께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모자라 승무원 누나가 학생들에게 조끼를 양보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누나는 왜 조끼를 입지 않느냐”고 묻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덕분에 그와 함께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선원으로서 의무를 다 하다가 실종된 선원은 더 있었다. 세월호 사무장 양00(45)는 아내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통장에 돈이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고 말했다. 아내가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양 사무장은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살신성인한 선생님들이 있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교사 남00(35)는 16일 오전 10시쯤,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어 탈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는 등 대피를 돕다 사망하였다. 2학년 5반 담임교사 이00(32)는 난간에 매달려 있는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실종되었고, 인성생활부 교사 고00(40)도 제자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탈출을 돕다가 정작 본인은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학생구조로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단체메시지로 “모두 사랑한다”고 전한 선생님이 있었다. 침몰하는 여객선 속에서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자녀들이 있었다. 한편 사지에서 구조된 인명, 그러나 다시 숨진 제자들 곁으로 자결해 돌아간 교감선생님도 있었다.
세월호의 침몰참사, 신뢰 잃은 한국사회 지도층과 닮은듯
정부 재난관리시스템이 또다시 불신을 자초했다. 세월호와 대한민국 사회를 유비추론한 사회 전반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침몰하는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빗대어 ‘침몰하는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며, 세월호의 핵심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남겨 두고 먼저 탈출하는 모습을 위기에 처하면 몰래 빠져나가는 재벌회장, 국회의원 같은 한국 사회지도층의 모습과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사고발생 후, 먼저 빠져 나가는 사회지도층과 달리 평범한 일반 국민들은 괜찮다는 말을 신뢰하다가 결국 손해를 본다는 점도 세월호 침몰사고와 닮았다고 했다. 선내방송을 듣고 선실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은 대부분 배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며, 1950년 한국전쟁 때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라디오방송을 믿고 서울에 남아있던 국민들이 그랬다. 64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들은 세월호의 침몰을 통해 한국사회와 사회지도층에 대한 권위와 신뢰의 부재도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실종자가족들을 만나 책임자 엄벌과 신속한 구조를 약속했지만 돌아온 것은 거친 욕설이라며,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감에 떨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대통령의 약속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또한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과 해군을 믿지 못하고 민간잠수부 투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해경이 민간잠수부 투입을 막고 조롱했다는 이야기가 정부의 공식발표 보다 더 힘을 얻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 스스로 권위와 신뢰를 잃은 결과라 지적했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 16일부터 인원집계와 구조작업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온 점,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업무분담문제, 언론의 기회주의적 태도, 오보논란 등 역시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다.
아이들에게 사죄를 빌어야할 사회, “운명은 가혹하고 생명은 지독하다.”
실종자 대부분이 학생들이라 더 억장이 무너진다. 학생들은 가만히 기다려라, 선실이 안전하다는 안내방송을 그대로 따랐다가 배 밖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을 숱하게 했다. 그 말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걸로 바뀌었다. 혹시나 일탈행동으로 선생님의 눈밖에
날까봐 두려웠다.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순응적인 아이가 되기를 바랬고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조차도 우리 아이들은 그 말을 잘 따랐다. 어른의 안내방송을 믿고 가만히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어른들의 혹독한 배신이었다.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이 사회는 그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유가족들이여 평생 아파할 일입니다. 오늘 다 아파하지 맙시다. 운명은 가혹하고 생명은 지독합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