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지리
두아디라(Thyadira), 쿠사다시(Kusadasi)
두아디라(Thyadira)
두아디라(Thyadira)는 “회생” 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역 3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소아시아 루디아 도에 있는 성읍으로 빌립보의 여신도 루디아의 고향이다(행 16:14).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계 1:11, 2:18)이며 음행, 간음, 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여 심각하게 책망받은 교회가 있었던 곳이다(계 2:20-24).
두아디라(Thyadira) 교회는 AD 538년 16세기 초 종교 암흑시대의 교회이며, 광야로 피신한 교회이다. 유럽의 국왕들을 지배할 만큼 강력하게 교황권의 세력이 확립됨에 따라, 교황권은 교회가 제시하고 가르치던 교리와 지시를 거절하고 바꾸었으며,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고수하기로 선택한 그리스도인들을 직접적으로 핍박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사 중에서 이 시기에 성경 진리가 가장 많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두아디라(Thyadira) 교회는 16세기 초 종교 개혁 운동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교회를 말하는데,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여 진리를 고수하였다.
두아디라(Thyadira)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통탄스러운 희생”인데, 이것은 이 시기를 대표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의미이다. 교황권의 통치로 인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 온 배도 때문에 믿음의 단순성은 희생되고, 그것은 외적인 행함과 고행으로 대치되어 버렸다. 교회 역사의 4번째 시기인 두아디라(Thyadira)교회 시대에 와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단순한 복음을 떠나서 종교 의식과 인간중보자와 인간 제사장 제도를 만들었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갚은 상처를 가져온 시기였다. 교회는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회개의 신앙을 저버리고 죽은 행위와 의식을 신앙의 기초로 만들어 나갔다.
두아디라(Thyadira) 교회는 약 천년에 이르는 가장 긴 기간의 교회의 역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그 기간을 종교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종교 개혁 운동에 의해서 두아디라(Thyadira) 교회 시대는 그 종말을 고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고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광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셨다.
특히 그들의 나중 행위를 칭찬하셨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 두아디라(Thyadira) 교회 시대가 끝날 무렵 위대한 개혁자들 즉 루터, 낙스, 칼빈, 쯔빙글리 등과 같은 성직자들이 유럽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개혁운동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책망의 말씀도 있다.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행음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20-21).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신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의 지면을 할애한 것을 보면 이 시대의 교회들이 주목할 부분이라 생각되며, 도전 받아야 할 말씀이라 여겨진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는도다.”(계 2:20). 세속화되고 변질된 교회를 표상하기 위해서 이세벨만큼 적절한 우상은 없을 것이다.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여제사장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써 바알신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문을 열게 되었다. 이세벨은 결국 국권을 사영해서 이스라엘의 전체가 우상숭배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 앞에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배도를 책망하면서 3년 반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는 대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아합왕과 이세벨의 추종자들은 엘리야의 개혁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이처럼 우상 숭배와 이교 사상을 받아들인 두아디라(Thyadira) 교회의 지도자들은 중세기 동안 교회에게 주어졌던 엄청난 권력을 이용하요 각종 우상숭배와 잘못된 교리를 백성들에게 강요하였다.
AD 538년 저스티니안 로마 황제는 로마 교회의 주교를 “이단자들을 교정하는 자”로 세웠는데, 교회는 이단을 박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교황권의 교회의 지시와 가르침을 거절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고 사형시키는 일을 자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정치의 권력과 손잡고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종교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단 것이다. 그로부터 약 천 년 동안 교회는 영적 대기근에 들어가게 되었다.
두라디라(Thyadira) 교회에 보내졌던 이세벨을 용납하고 행음했다는 책망의 말씀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영적인 우상 숭배에는 진리의 타협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문화라는 옷을 입고 각계각층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은 바로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본질을 잃어버리는 신앙의 모습들, 진리를 왜곡하는 교회들, 뿐만 아니라 평화란 이름으로 연합이란 이름으로 참 진리가 퇴색되는 그 현장에 교회들이 모른 척 하며 뒷짐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의 유일한 소망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 땅의 종교들이, 아니 악한 영들이 주관하는 힘의 논리에 의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적인 듯 치부되면서 세상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아마도 교회가 깨어 기도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특별히 두아디라 교회를 흔적을 보면서 교회가 화려함이나 숫자, 그리고 세상적인 가치와 기준으로 평가되기 보다는 진리를 사수하는 영적 가난함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쿠사다시(Kusadasi)
쿠사다시(Kusadasi)는 아이든(Aydin) 시의 해안선에 있는 작은 항구 이름이다. 이 곳은 예전부터 질 좋은 무화과 산지로 유명했다. 고대애는 트랄레이스로 알려졌으며 유명한 조각학교가 있었다. 에게해의 휴양지로 유명한 쿠사다시(Kusadasi)는 가면새의 섬이라는 뜻을 거지고 있으며 빝나는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을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계단상으로 세워진 마을에서는 아름다운 에게해가 한 눈에 들어와 방문객에게 감탄을 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