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콜롬바(St, Columba)의 생애와 영성(14)
아이오나 공동체 설립자: 조지 맥레오드(George MacLeod)
조지 맥레오드(George MacLeod)의 조부인 노만 맥레오드(Norman Macleod, 1812-1872)는 알렉산더 스코트에게서 영향을 받은 젊은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 가운데 한 사람이며 조지 맥도날드의 소설을 가장 널리 알린 사람이다. 그는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 교회의 영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서임권의 문제로 1843년에 스코틀랜드 제도교회가 분열 되었을 때 그는 교회 연합을 위하여 국가 교회안에 머무는 길을 택하였다. 그는 교회와 그 전통안에만 거의 배타적으로 하나님의 현존을 찾는 대신에 삶의 전체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찾는 특유의 켈트적 특성을 그의 교회지도부에 도입하였다. 즉, 형식주의적인 주일 성수주의로부터 해방 시킨 일인데, 식물원을 주일날 개방한 일이다. 일요일에 식물원을 열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네 벽을 넘어서는 영성의 표시였고, 동시에 삶의 정체성안에서 하나님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는 켈트영성의 흐름을 실행하는 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노만 맥레오드는 1869년에 스코틀랜드 교회의 총회장이 되었다.
노만 멕레오드의 손자가 바로 Iona공동체를 설립한 조지 멕래오드(George MacLeod, 1895-1991)이다. 그는 켈트 신비주의자이자 장로교회 목사였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항상 새로운 관점의 방법과 특별히 하나님이 단순히 어느 종교적 측면이 아니라 세상의 생명이라는 인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곤 하였다. 조지 멕래오드는 1895년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성직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서부 해안의 모번(Morvern)의 멕래오드 가문은 550년 이상 스코틀랜드 제도교회에서 성직을 잇고, 성직자 가족으로의 특권도 누렸다. 윈체스터와 옥스포드에서 공부하던 기간동안 그의 경력은 풍부 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아르가일과 하이랜드 사람들과 함께 참전해서 장교로 복무했다. 서부전선에서 그는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용맹성으로 훈장을 받았으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이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전쟁이 끝난 뒤 멕래오드는 스코틀랜드 교회의 목사로 훈련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장로교인이었고, 어머니는 퀘이커였다. 목사훈련을 받고 에딘버러의 성자일스(St. Giles)교회의 부목사가 되었다. 그후 유명한 성 커스버트(St. Cuthbert)교회의 협동목사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아주 대중적인 인기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후 1930년대 극심한 실업과 널리 퍼진 빈곤 때문에 가난이 찌든 글라스고우에 있는 조선소로 가서 고반목회(the Parish of Govan)를 하게 된다.
이 시기 동안에 멕래오드는 장로교의 경직된 형태로부터 더욱 신비주의 적이고 정치적인 영성으로 옮겨간다. 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표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가장 물질적인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고통을 줄이는 봉사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이다”라고 했다.
1938년에 그는 아이오나(Iona)에 있는 고대 수도원을 재건하기로 했다. 그곳은 6세기 성 콜롬바(St. Columba)가 그의 켈트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아이오나가 그에게 재현해준 영성을 재건하고 재발견할 필요를 상징화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아이오나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기도의 훈련을 재발견하고 그들의 삶과 도시속에서 정의를 다시 세우는데 열심을 내었다. 전쟁 직전에 서방세계와 함께 멕래오드와 젊은 공동체는 평화를 위한 기초를 다시 정립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아이오나 수도원이 재건축되는 동안 드려진 멕래오드의 기도는 공동체의 주제를 나타낸다.
그것은 단지 이 벽들의 내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새롭게한 우리 자신의 내적 존재 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지지 않은 당신의 신전 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몸 입니다.
모든 벽들이 붕괴된다면,
그리고 모든 교회가 쇠퇴한다면,
우리는 당신의 거처입니다.
당신은 호흡보다 더가까이 계십니다.
손과 발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의 것은 신비함속에서 열정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시는 당신과 함께하는 그 눈 입니다.
이 곳을 위하여,
우리를 향한 당신의 방향성을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는 당신,
그리고 당신의 내재 하심을 위하여 당신을 찬양 합니다.
캠프 바깥으로 우리를 데려가 주소서,
주여, 신성한의 바깥으로,
병사들의 도박과 도둑들의 욕설을 바깥으로,
세상의 교차로에서 국가들의 충돌 바깥으로 이건물은 계속하여 정당화될 것입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장으로 뽑혀서 교회 전체에 걸쳐 인물이 되었고, 10년 후에 영국 상원의원에 임명되었다. 종교의 발전을 위한 국제 템플턴상도 수상했다. 이러한 영예를 받은것은 “내가 결코 참된 예언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확증한다고 그는 겸손히 말했다. 멕래오드 나이 90세 였다. 현대 켈트영성을 부활시킨 이 시람은 과연 누구일까? 4세기에 펠라기우스에서 시작하여 에리우게나, 콜롬바, 조지 맥드날드까지 켈틱영성 전통을 이어서 아이오나 공동체를 설립한 위대한 인물이다. 멕래오드의 비전과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윤곽에 대한 그의 열정적 탐구는 말년에 에너지와 열정을 갖고 그를 방문하였던 사람들과 이세계의 충만함과 비폭력을 위한 토론을 지속 하였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축복 있으라”, “때때로 나는 백살까지 살 것이라 생각 한다”. 1991년 여름 96세에 그는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아이오나 교회의 종이 울렸고 섬 사람들, 방문객들과 수도원 공동체 사람들은 대예배실에 모여 침묵으로 그를 기념하여 몇 가지 기도문들을 함께 경청하였다. ‘거미줄 처럼 얇은 베일’은 그가 사망하던 날 형식에 구애없이 수도원에 모였던 사람들에 의하여 읽혀진 마지막기도문 이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땅의 눈으로 보아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하여,
감사드릴 때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당신 곁에 있는 그들은 땅과 하늘아래 한 가족의 신비함 안에서,
아직도 우리와 함께 예배 드립니다.
그것이 당신의 거룩한 뜻이라면 그들에게 말해 주소서.
얼마나 우리가 그들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가 그들을 그리워하는지,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당신의 모든자녀들을 사랑하는 일을 우리가 계속 하도록 힘을 주소서.
우리가 당신과 교제하고 당신 안에서, 우리의 사랑스런 존재와 교제하게 하소서.
그러면 거기에는 죽음이 없고 아주 얇은 베일만이 갈라 놓는다는 것을 우리 자신 안에서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오나 공동체는 스코틀랜드의 그라스고(Glasgow)에 본부를 두고, 스코틀랜드의 첫 번째 선교사인 콜롬바가 머물렀던 아이오나섬에 훈련소를 두고 있다. 이 공동체는 수년에 걸쳐 현대사회 속에 교회로 존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회원이 되면 이들은 몇 개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는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명상하며, 서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한다. 둘째는 수도원의 주제인 균형과 리듬을 따른다. 즉 시간계획을 세울 때 노동시간, 휴가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새 기술을 배우는 시간, 예배와 경건의 시간, 봉사와 휴식과 수면시간을 균형있게 만든다. 세 번째 규칙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행동에 참여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하여 콜롬바 영성을 개발하고 훈련을 받는다. 이들은 헌금과 회원가입비를 약속하고 지불함으로 아이오나 공동체를 육성하는 책임을 함께 나눈다. 아이오나 정신은 하늘 공동체의 모습을 이 땅에 실현 하는데 있다. 이들은 직접 인쇄소와 서점을 운영하여 예배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하늘공동체는 요한복음 전통이 말하고 있는 데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목자는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돌보는 자이다. 아이오나 공동체의 기준은 도덕율이나 율법이 아니고, 오히려 사랑으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이다.
콜롬바 사상과 켈트영성은 과거의 6-7세기의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21세기의 기독교뿐 만아니라, 지구문명사는 공공신학의 발달과 함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이다. 전통에 너무 몰입해 있어도, 우리시대는 이미 켈트영성의 시대로 가고 있다. Clive Pearson에 의하면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은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중요 문제들을 처리하기위해 다른 학문과 교류해야 한다. 그것은 신학이 기독교인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질서와 교회질서가 정립되어야 할 시기가 왔다. 전통의 재해석이 이루어져야 하고 새로운 교회의 구조와 제도가 필요하며, 교회가 어떻게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하나님의 백성을 섬겨야 하는가의 도전을 받게 된 시기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세상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오면서 변화를 경험하며 성장 해왔다. 이민교회는 순례의 도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진지하게 연구되어야 할 교회이다.
우리가 믿는 서방교회 핵심은 제도교회이다. 즉 주어진 교회, 주어진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어왔고, 임의적으로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한인교회의 특징들은 먼저 베드로적인 교회를 볼 수 있는데, 이 교회는 교회가 해석한 교리 때문에 신자는 그냥 순종하고 의식에 따르면 된다. 다문화 교회로서 호주연합교회는 호주에 있는 어떤 다른 교단보다 자기갱신과 변화를 통하여 호주의 역사와 문화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으로서 교회가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발전해 왔다.
이민교회는 너무 청각적이었는데, 앞으로는 시각적인 목회를 지향할 때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끼는 목회이다. 요한은 다른 제자들 보다 더 예수님 곁에서 주님의 심장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뛰는 것을 보고 느낀 제자이다. 요한공동체는 시기적으로 가장 후대의 공동체인데, 당시 유대교에게 많은 핍박을 받아서 파문당한 공동체로 여겨졌다. 당시 제도권안에서 많이 밀려나고 핍박받고 소외받은 공동체였다. 이 요한공동체가 바로 켈트영성의 뿌리가 되었다. 호주연합신학대 학장이었던 그레이암 퍼거슨은 호주인들과 호주내의 기독교 이민자들의 일치의 기초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했다.
조지 멕래오드는 1938년에 아이오나 공동체를 재건했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내일 이라도 이러한 공동체를 시드니에 세워서 이민교회에 아이오나공동체가 사용하는 공동기도문을 도입해서 한달에 한번 드리는 교회 성만찬에 적용해 보았으면 한다. 동시에 호주연합교회의 목회자들이 사용하는 매 3년 주기로 인쇄되어 나오는 예배 의식서(Lectionary)를 병행해서 사용해야 한다. 켈트영성의 요소들이 우리 주위에 다양하게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켈트적인 요소들이 우리의 영성을 풍부하게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 장차 이민 2세, 3세들이 호주사희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분야는 물론이요, 목회와 신학분야에도 정진할 것이므로, 그들에게 맞는 공공의 선과 웰빙 문제들을 현명하게 개발하며 대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셨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상에서 자신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
노정언 장로
한남·촬스슈터트대학 신학석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