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콜롬바(St, Columba)의 생애와 영성(3)
5) 콜롬바 생애에 대한 역사적 평가
비드(Vernerable Bede, 673-735)의 대작인 <영국민의 교회사>(Ecclesiastical of English People)에는, 43년에 시작된 로마제국의 침입에서 731년까지 영국역사를 다루고 있다.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브리튼은 바다위의 섬나라로 과거에는 알비온 이라고 불리웠고, 독일과 골(Gaul), 스페인을 마주보고 있다. Gaul은 Gallia라고도 불리우는데, 고대 켈트사람의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스위스의 일부를 포함 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브리튼에 살고있던 원주민들은 England의 후손인 Britons, Ireland의 후예인 Gaelic 과 Scotland의 후예인Picts 족 이었다. 스코틀랜드의 픽트 족들과 아일랜드의 켈트인들은 잉글란드의 서부해안을 공격했고 로마는 이들을 귀델 (Gwyddel) 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Goidel이라 바뀌었고, 마침내 게일인 (Gael)및 게일어 (Gaelic)가 되었다.
콜롬바의 태생을 100년 전에 예고한 패트릭(St. Patrick, 432)은 영국및 유럽 복음화에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였는데, 그가 태어날 당시 Gaul 지역에는, 당대의 유명한 수도승 마틴(Martin of Tours)이 생존해 있었다. 패트릭은 로마제국의 세력이 침투하지 않았던 아일랜드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 로마의 선진화된 문화를 미개 지역 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다.
켈틱 영성의 뿌리는 아일랜드 성자인 패트릭과 스코틀랜드의 성자인 콜롬바를 들 수 있고, 패트릭은 콜롬바 보다 100년 먼저 태어났는데, 이는 마치 얀후스가 마틴 루터 보다 100년 먼저 태어나서,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흐름을 주도했음을 상기 시킨다. 얀후스(1372-1415)는 프라하대학을 거쳐 총장까지 지낸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카돌릭교회의 신부였다. 그는 죽기 전에 “진실한 크리스챤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진리가 너희를 죄와 악마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할것이다.” 얀후스의 사후 100년 뒤에 마틴루터가 등장하여 종교개혁을 성공시키고, 칼빈에 의해서 교회개혁은 완성 되었다. 켈트족은 최초의 유럽인들로, 마치 호주의 원주민 아보리진 처럼 유럽에서 가장 일찍 이름 지어진 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호주인들의 혈연이나, 신앙의 뿌리를 그들에게서 찾을 수가 있다. 켈틱교회는 로마 교회나, 동서방교회와는 다른 신앙 공동체였다.
켈틱교회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감독체계를 갖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사제나 평신도가 각자의 역활은 달라도 모두가 수도자처럼 경건생활에 참여하였다. 수도사들은 평신도들을 하나님나라를 향해가는 영적인 동반자(Soul Friend)라고 불렀다. 켈틱수도사들은 정치, 경제, 교육, 예배에 참여했고 구제에도 참여했다. 세상과 분리된 수도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은사에 따라 공동체를 섬기었다. 수도원 내에는 결혼한 수도자도 허락이 되었다.
이안 브래들리에 의하면, 위대한 주님의 사도였던 콜롬바의 영성을 요약하면 “주 너의 하나님을 예배하라, 이웃사람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모든 것을 사랑하라. 그리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이다. 이안 브래드리(Ian Bradley)의 저서 ‘Colonies of Heaven’에서 콜롬바의 영성을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데, 켈틱교회 수도원에서는 수행해야할 규칙이 주어졌고 수도사들의 방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있다. “배고프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말아라, 잠이 오기전에는 자지 말아라, 말을 아껴라, 눈물이 나기 까지 기도해라, 땀을 흘릴 때까지 노동해라, 눈물이 나지 않으면 땀을 흘릴 때까지 일하거나 무릎을 끓고 기도해라.” 수도생활은 엄격하였지만 개인과 공동생활은 활동과 명상, 예배와 목회적 돌봄, 연구와 가르침 이라는 균형잡힌 생활의 조화와 리듬이 있었다. 이안 브래드리는 이러한 켈틱 수도원을 평가하기를, “세상에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영적공동체요, 아직 오지 않은 나라를 보여준, 하늘공동체였다.”
왕족출신으로 태어난 콜롬바는 얼마든지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생애에 개입하시므로 자신의 진로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종교적실천(Religious Practise)에 헌신한 경건의 사람이었고, 그리스도를 봉사함에 지칠줄 모르는 낭낭하고 힘있는 목소리의 사도였다. 지정된 예배당 안에서 보다, 가정집 마당이나, 자연을 사랑하며, 들녘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설교를 하던,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힘있는 목소리를 주신 것이다.
콜롬바는 큰 리더의 자질을 갖고 있었으며, 아주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주 덕목은 정욕적인 본성을 제어하고, 그의 밝은 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과 친절하고 따뜻한 가슴을 갖고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말 못하는 신의 창조물에 대해서 관대했고, 다른 사람들과의 기쁨과 즐거움을 항상 공유했다. 그의 평생에 300개가 넘는 수도원 교회를 개척했으며, 시(Poem)로 스코틀랜를 기독교국가로 개종시킨 장본인이다.
Timothy. J. Joyce에 의하면 아일랜드의 조직화된 수도원 운동은 성 엔다(Enda, 460-530)로부터 시작되었다. 엔다 자신이 스코틀랜드 휘트혼(Whithorn)에있는 성 니니안의 수도원 캔디다 카사(Candida Casa)의 수도사였다. 니니안(Ninian)은 로마에서 돌아왔을 때 투르의 성 마틴(Martin of Tours)을 우연히 만났다. 수도원 운동이 프랑스의 마르틴으로부터 시작해서 스코틀랜드의 니니안을 거쳐서 아일랜드에 도착한 시점을 밝힐 수가 있다. 아일랜드수도사들은 유럽으로 수도적, 선교적 진출을 계속했다. 티모시에 의하면, 성킬리안(Killian 649년 사망)은 부루츠부르그(Wurzburg)에 정착했으며, 독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독일에는 아일랜드 수도원이 트리어(Trier)와 마인츠, 오스트리아에는 비엔나, 잘스부르크, 스의스에는 베른을 비롯하여 유럽대륙의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초기 켈트교회의 이러한 황금시대는 12세기까지 계속 되다가 그후 로마 카돌릭교회에 완전히 밀려났다. 하지만 초기 켈트교회는 여전히 켈트 특징들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부족성에 맞추어서 고대 바드 및 드루이드 집단들을 대신했으며, 수도사는 새로운 기독교 드루이드 역활을 했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사랑, 긴밀한 영적유대, 영혼의 친구들의 유대가 수도사들과 수도원들을 결속 시켰다. 켈틱수도원을 세우고, 콜롬바는 사제들이나 평신도는 서로의 역활은 달라도 모두가 경건한 삶을 살았다.
수도사들은 정치, 경제, 교육, 예배에 참석했고, 구제에도 참여했다. 콜롬바는 배움에 대한 사랑, 학문연구에 대한 존경, 지혜에 대한 갈망을 백성들에게 해결 하고자 노력했다. 켈틱공동체는 목조건물이 많고, 앵그로쌕슨 공동체는 석조건물이 많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켈틱 수도사들은 하루 일과중 주간에 5회, 야간에 3회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말씀 “쉬지말고 기도하라”을 붙잡고 매달렸다. 실천적이고 헌신적이었던 콜롬바의 영향으로 아이오나의 수도원은 수세기 동안 복음전파의 핵심기지이자 아일랜드 교회 선교기지로 남아 있었고, 스코틀랜드와 전 켈트족의 복음화는 물론이요, 중세 유럽교회 전초기지로 발돋음 하였다. 콜롬바가 없었다면, 세계선교 방향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콜롬바영성 수도원의 근간이 되는 켈트영성의 본격적인 연구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다. 1865년 더블린에서 태어나, 1883년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의 민간전승에 관심을 갖는다.
1896년 부인 그레고리와 함께 아일랜드 서부해안지방을 돌아다니며, 게일어로 된 설화문학을 채집하여 창작설화집을 서술한다. 예이츠는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1939년에 사망했다. 현대학자들의 신화적 이론으로 등장하는 요정들이 초기 켈트의 옛이교도 신들의 축소된 존재들이라는 것으로, 예이츠의 주장도 신화적이론과 맥을 같이하고, 아일랜드의 고대이교도 신, 다누의 종족(The Tribes of Danu)을 요정이라고 생각한다. 예이츠는 <다누의 종족>에서 옛시인들은 여신 다누의 종족들이 완벽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예술의 창조자라고 생각한다. 예이츠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마술사, 전사들 모두가 다누의 후손인 켈트족이라는 것이다. 그 종족의 보고서에는 “모든 이들은 머릿결이 아름답고, 복수심이 강하고, 키가 크다. 모두가 약탈자이고, 모두가 음악적인 사람이고, 재미있고 마법적인 기술에 능하고, 그들은 모두 다누의 후손이다.” 콜롬바같이 그들은 음악, 예술, 문학에 소질이 많고, 두르드의 지혜를 가진 후손들이다.
콜롬바는 어느날 수도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가서 두손을 들고 그의 수도원을 축복하면서 “이곳이 비록 작고 소박할지라도 위대하고 평범하지 않은 명예를 지니게 될 것인데, 스코틀랜드의 왕들과 백성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외국의 통치자들과 야만인들의 나라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백성들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이다. 다른 교회들의 성자들 조차도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이곳을 이야기 할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언덕을 내려가 수도원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시편을 필사하면서 그의 기도방에 있었다. 시편 34편에 이르렀을 때, 이 페이지에서 “나는 필사를 멈추고 다음에 나오는 시편은 베이딘(Beithene)이 쓰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콜롬바의 말대로 제자 베이딘은 가르치는 일과 저술하는 일에 콜롬바를 계승하였다.
그의 무덤앞에 하나의 기념물로 서있는, 그의 베게로 쓰였던 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기대어 콜롬바는 자신의 수행원 만이 듣는 가운데 형제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었다.
나의 자녀들이여,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화평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 사이에 순수한 자비심을 가지십시오.
당신들이 거룩한 신부님들의 모범을 따른다면,
모든 선한 것들의 위로자이신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돕는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과 함께 하면서 당신들을 위해서 중보할 것입니다.
당신들에게 이 현세의 삶의 필요들을 충분히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하고 영원한 상들을 수여해 주십니다.
콜롬바의 생애는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기독교의 역사로 변화시킴으로써 서유럽 제국에 새로운 기독교적 정신의 바탕을 이루었다. 콜롬바가 보여준 신앙의 경건, 학문의 추구, 사회의 정의와 섬김은 지금도 연구되어져야 할 과제이다.
노정언 장로
한남·촬스슈터트대학 신학석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