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1)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1>
설교자들은 좀처럼 열두 소선지서를 설교하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를 든다면, 첫째는 이 책들이 소위 대선지서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야기 보다는 강화체로 되어 있어 읽기 쉽지 않기 때문이고, 셋째는 현대인에게 낯선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들 중에는 가끔 소선지서에서 몇 구절을 뽑아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유인즉 소선지서들 중에도 호세아서나 요나서는 이야기로 된 부분이 있어서 그렇고, 하박국, 스바냐, 말라기 등은 잘 알려진 특정 주제들, 예를 들어,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온전한 십일조…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등이 있어 제목 설교를 하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구역 모임이나 교회학교의 공과를 위해서도 소선지서가 채택되는 예는 거의 없다. 신약에서 하나의 책을 택하여 공부할 때 소선지서의 어떤 부분을 조금씩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는데,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공부하면서 요엘서를, 마태복음 2장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을 공부하면서 미가서를, 계시록 6장의 일곱 인 심판을 공부하면서 스가랴서를 약간씩 터치하는 정도다.
반면 소선지서의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번 헤아려 보려고’ 배의 닻줄을 끄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구약의 책들에서 미처 다루지 않았거나 적게 다루어졌던 주제들을 소선지서에서 발견하고는 저으기 놀란다. 물론 우리가 깊은 바다를 헤엄친다 해도 그 깊은 바다를 얼마나 알겠는가. 70마일 해변에서 모래 한 줌 주무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소선지서 연구를 통해 얻는 것은 적쟎다. 구조 이해가 어렵기로 소문난 호세아서 4-14장의 주제들의 전개를 식별하고, 메뚜기의 표상이 북쪽 군대들로 오버랩되는 요엘의 독특한 묘사 기법을 음미하고, 예언적 시점들의 이동을 통찰하며, 아모스의 통열하고도 냉소적인 책망과 나훔서의 심판-회복의 교호적 예언배치를 가늠해보라…그리하여 주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라기까지 가보라. 작은 지체들 속에도, 세미한 혈맥 속에도 다른 데서와 같은 생명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열방, 그리고 우주에 있어 메시야를 통해 행사하시는 야웨의 주권과 통치, 그의 언약, 율법, 약속, 예언 등이다. 분량이 적다고 이 중요한 것들이 생략되지는 않는다.
호세아서
12 예언서의 처음인 호세아서도 마찬가지다. 이 안에도 위대한 신학적 주제들이 뛰놀고 있다. 이 주제들을 제대로 끄집어 내려면 내용들의 흐름과 짜임새를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이 작업이 쉽지 않은 반면, 학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일단은 호세아서를 1-3장과 4-14장 큰 두 덩어리로 구분한다. 거의 모든 호세아서를 공부하는 이들이 1-3장은 선지자 호세아 자신의 전기적인 이야기 부분으로 보고, 4-14장은 여러 예언적 담화들의 컬렉션으로 본다. 기독교 서점이나 신학교 도서관에 가서 아무 것이든 호세아서 주석을 한 권 빼들고 그 내용 분해를 어떻게 했는지 보라. 이와 같이 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해가 나오게 되었는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하나를 들라면 그것은 설화적인 성격을 지닌 1장과 3장이 앞뒤에 있어 가운데 있는 2장의 설교체의 구절들을 하나로 감싸 묶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2장에는 1, 3장과는 다른 예언적 담화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oracle/ sermon)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이 담화는 1장에 연이어져 있는 것 같고, 2장을 마침과 동시에 3장의 설화가 나타나니까 1-3장을 쉽게 한 꾸러미로 묶는 것이다. 1장에는 명령형으로 시작하는 여러 구절들, 예를 들어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3장에도 그러한 명령형,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와 같은 구절이 나타난다. 이런 유사점 뿐만 아니라 1장 11절의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는 3장 5절의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와 동일한 종말론적 회복의 내용으로 인식되기에 1-3장을 하나로 보기 쉬운 것이다. 반면, 4장부터 14장까지는 솔직히 장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비슷비슷한 예언적 담화가 계속된다. 그래서 이 장들을 또다른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는 것이다.
호세아서 전문 학자들이 거의 1-3장을 하나로 묶고 시작한다. 영 (Edward J. Young), 해리슨 (R. K. Harrison), 볼프 (Hans W. Wolff), 앤더슨과 프리드만 (F. I. Andersen & D. N. Freedman), 크루거 (P. A. Kruger), 이동수 등이 다 그러하다. 늘 그런 것처럼 호세아서에 대해서도 문서비평-역사비평가들은 1-3장은 보다 순수한 부분으로, 4-14장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본다. 특히 4-14장에는 호세아 자신의 예언들이 아닌 것들이 섞여 있다고 보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호세아서의 통일성을 부정한다. 또 늘 그런 것처럼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 책의 통일성을 옹호한다. 이들은 1-3장과 4-14장은 서로 간에 문학적 장르는 달라도 사상, 주제, 심지어 단어까지도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 의미가 서로 통하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한편, 나는 많은 학자들이 1-3장과 4-14장으로 구분한 것은 좀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비록 호세아가 절개 없는 이스라엘을 향해 격렬한 모멸감을 표현하였고 그러한 자기 백성임에도 불붙는 사랑과 긍휼을 쏟으시는 하나님을 격앙된 필치로 증거한 아주 감정적인 선지자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아무렇게나 (hodgepodge) 배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나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호세아 선지자의 서술 전략 곧, 주제들의 반복, 변이, 발전 (확장), 생략 등의 기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탁월한 문학성,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전달하는 그의 신학을 논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호세아서를 다시 읽으며 야웨 하나님과 그의 종의 마음을 만져보고자 한다.
최영헌 교수(알파 크루시스 칼리지)
Korean VET Director & Trai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