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18)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 호세아서(18)
지난 호에서 필자는6:7의 번역이 쉽지 않음을 언급하였다. ‘아담처럼’이냐, ‘아담에서’냐가 두 중요한 번역의 입장으로 서로 팽팽히 맞선다. 오늘 소개하는 바 6:11-7:1은 개역개정에 의하면,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6:1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7:1)”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번역이 히브리어 원문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앞부분인 6:10까지 포함하여 원문 순서대로 직역하면 이렇다: “이스라엘 집에서 나는 끔찍한 것을 보았다. 거기엔 이스라엘의 음행이 있고 에브라임은 더러워졌다. (6:10) 또한 유다여, 그분이 너를 위해서도 추수를 정하셨다. 내가 내 백성의 포로를 돌이킬 때 (6:1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행들이 드러난다. 그들이 속임을 행하였고 도둑은 들어가 훔쳤고 깡패들은 밖에서 강도질했다. (7:1)” 매끄러운 내용의 진행을 위해서는 6:11의 상반절과 하반절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중간을 나누어 의미를 최대한 살려 의역을 한다면 이렇게 된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끔찍한 일을 본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음행을 일삼으니 더럽기 짝이 없다. 남 왕국 유다 또한, 이미 심판 (추수)은 기정사실이다” (6:10-11상) “나는 내 백성을 곤고에서 놓아주려 하고, 나는 이스라엘을 치료해 주려하건만, 아! (오히려) 이스라엘의 죄와 악행들은 매번 훤히 드러나기만 하니 (이를 어쩔까!) 도둑들은 집을 뚫고 들어가 훔쳐대고 조폭들은 밖으로 몰려다니며 강도질이구나.” (6:11하-7:1)
김희보 교수의 설명
김교수는 위와 같이 번역하면 문장 구조상 유창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구약 호세아 주해, 194). 그러나 6:11의 ‘내가 돌이킬 때에’의 어구에는 전치사 ‘베’가 쓰였는데, 7:1 ‘내가 치료할 때에’의 경우에는 전치사 ‘케’가 쓰였다. 왜 똑같은 전치사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두번째는 그 다음에 오는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할 때에’ 다음에 오는 접속사 ‘바브’를 ‘그때’로 보면 현 개역개정과 같이 번역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즉, 7:1을,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바로 그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치사 ‘베’나 ‘케’ 다음의 1인칭 대명사 접미가 딸린 부정사는 공히 ‘…할 때에’로 번역해도 상관이 없다고 본다. 접속사 ‘바브’를 ‘바로 그 때’로, 즉 때의 강조로 보아도 6:11 하반절과 7:1 상반절을 위에서 필자가 의역한 것처럼 병행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NIV의 번역
그리하여 필자는 아예 때를 강조하여 whenever로 번역하고, 6:11 하반절과 7:1 상반절을 붙여서 번역한 NIV가 매우 잘 되었다고 본다 (물론 NIV가 신구약 번역 모든 부분에서 우수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문자적 번역인 KJV와 NASB를 아주 선호하며 RSV도 꽤 참조하는 편이다). NIV의 번역은 이렇다: “Whenever I would restore the fortunes of my people, whenever I would heal Israel, the sins of Ephraim are exposed and the crimes of Samaria revealed. They practice deceit, thieves break into houses, bandits rob in the streets;”
하나님의 선의와 호의와는 딴판으로 이스라엘은 얼마나 방탕한지가 이 번역에 나타난다. 이것이 우리 모습이다. ‘죄인 중의 괴수’ (딤전 1:15)인 바로 나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선의와 은혜를 교묘히 이용하여 나의 잇속과 욕심을 차리려는 나의 모습이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숭배하는 나의 모습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어떤 때는 은근히 나를 알리려는 심사가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다). 북이스라엘, 그리고 또한 남유다가 모두 육체적으로는 부도덕한 성행위, 간통, 간음 등으로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졌고, 영적으로는 바알과 아세라의 교리를 섞어 이스라엘 신앙을 혼합주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영을 따라가 다른 영과 교합하여 그 영이 죽었다.
심판은 기정사실
따라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은 기정사실인 것이다. 거짓과 다른 영을 좇아간 사람들은 어둠에 들어가게 되고, 그 결국은 생명의 빛의 나라에서 제외된다. 나는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성경 말씀에서 잘못된 사람들의 영이 어두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스트우드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그 영이 너무나 어두운 것을 보았다. 옆에서 그들이 식사를 하며 주고 받는 말을 들은즉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교회, 담임 목회자가 기도 많이 한다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영이 달랐다. 호주에서도 가끔 목회자들 중에 어떤 분은 그 얼굴에서 영적인 험악함을 보는데 나중에 그분이 죄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옷과 외모를 멋있게 치장하고 교회당을 다니는 신사들, 여자들 중에도 귀신 들려 있거나 어둠에 싸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단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교리 뿐 아니라, 눈빛도 다르고 영도 다르다. 이들은 심판으로 나아간다. 이들에게 심판은 정해졌다.
예수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 갈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길 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빚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라 하셨건만 그에 대한 많은 복도 약속하셨건만, 인간은 그 부여받은 인격과 의지로 오늘도 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꾸 더 곁길로 가서 욕심을 채운다. 다른 영에, 어두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미 그 어두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들이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나대로 더더욱 근신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소망이 없음을 알고 그분 앞에 엎드려야 한다.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