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0)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 호세아서<30>
필자는 이번 30회로 호세아서를 마감하려 한다. 호세아서 14:9 (히브리어 본문은 14:10)는 “누가 지혜로와 이것들을 이해하겠는가, (누가) 사려가 있어 그것들을 알겠는가, 참으로 여호와의 길들은 정직하고 의인들은 그것들 안에 걸어갈 것이지만 죄인들은 그것들로 실족할 것이다.”라고 직역이 된다. 이는 이 책 (편)저자의 앞의 내용에 대한 마감하는 말로 보인다. 그러면 앞에서 호세아가 한 말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그들의 구원자 참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앗수르 및 애굽과 음행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연애하던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명하시며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을 하나님 편에서 시행하실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한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구원자가 오직 여호와뿐이심을 알고 그분께 돌아와 전심으로 섬기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닥칠 멸망을 알고 대비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참 회복자는 다윗의 자손 (예수)뿐임을 알고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신명기 마지막 부분의 모세의 노래에서도 똑같은 권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신 32:6) 모세는 구원주이신 여호와를 앞으로 이스라엘이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을 통찰하며 지혜 없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와 같이 탄식하는 것이다.
호세아서와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찾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목회자나 여타 신자들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취해 있다. 또한 특히 한국 신학자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제사하는 것이다. 곧 자유주의 신학이다. 기복주의와 신비주의와 금욕주의와 영지주의와 세상 철학이다. 사탄은 이것들을 가지고 성도들의 영을 시들게 한다. 일부 목회자들은 명예를 좇아 명예 박사학위들을 받고자 성도들의 헌금을 유용하며, 권위를 세우고자 미석으로 교회당을 짓는다. 많은 성도들은 실제적인 성적 방종을 일삼고 있다. 얼마전 필자는 서울의 강남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사의 말을 들었다. 교회의 일반 성도들, 직분자들까지 술집에서 외간 여자들과 음행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도들의 혼합주의적 신앙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를 들자면, 성도들이 배가 불러 여호와를 잊어간다는 것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한국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세계관 (대표적인 것은 문화)을 통해 사탄이 혼합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바알 문화에 휩싸여 있는 한국교회
텔레비젼의 프로그램들, 영화 등을 보면 수많은 음란한 것들이 나타난다. ‘대장금’이 ‘헐리우드’류로 대치되었다. 유혈과 성과 권력과 귀신들과 ‘전시안’이 횡행한다. 이것들을 통해 사탄이 그 영혼을 잠식하는 줄도 모르고 성도들은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것들을 삶 속에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성도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신 32:29)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
따라서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다. 여호와께 대한 정조를 회복할 때다. 정절을 잘 지키던 성도들은 더욱 거룩하게 살고, 바알에게 갔던 자들은 다시 주님께 돌아와야 할 때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신종 외국의 자유주의 사상들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할 때다. 신사참배의 역사적 교훈을 따라 주의 말씀으로 다시 자숙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교회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따를 것이다.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