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1)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요엘서<1>
요엘서가 언제 기록되었는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실로 다양하다. 기원전 9세기로 보는 사람에서부터 기원전 2세기로 보는 사람까지인데, 12 소선지서들 중에 그 저작 연대를 추측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이 요엘서다. 왜 그럴까? 본서의 내용으로는 이에 대한 이렇다 할만한 분명한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저술 시기에 대한 견해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포로 전과 포로 후인데, 우리가 한글 성경을 기준으로 욜 1:1-2:17을 읽으면 포로 전 내용인 것 같고, 그 이하를 읽으면 포로 후인것 같다. 여기서는 수많은 학자들의 견해들을 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필자는 포로전이라 한다면 기원전 7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로, 포로후라 한다면 기원전 5세기로 보는 것이 그럴 듯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저작 시기가 포로 전이라면
포로 전으로 저작 시기를 잡을 때 기원전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볼 수 있는 것은 요엘의 내용 중에 몇 가지 점이 예레미야서에서 언급한 것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먼저 예레미야서 1-20장을 읽어보라. 비교적 초기 저술로 생각되는 이 내용들은 요시야 왕 13년, 곧 기원전 627년 그의 선지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예언들이다. 이 설교들의 특징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강조 (이 날은 빛이 없고 어둡다고 묘사되었다), ‘북방에서 침입해 오는 족속’에 대한 강조다. 덧붙인다면 ‘애곡’하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4장과 욜 1-2장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보면 양자는 너무 비슷하다. 물론, 예레미야서에서는 이 ‘북쪽 군대’를 20장과 그 이하에 가면 ‘바벨론’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는데 반해, 요엘서에서는 ‘바벨론’이라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바벨론과 함께 괴롭혔던 나라들 명단에 ‘블레셋’, ‘두로’, ‘시돈’ 등이 렘 47:4에 나타나는데, 이 나라들은 욜 3:4에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더해서, 요엘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를 예견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욜 2:17과 같은 설교, 곧 “ 당신들 제사장들은 ‘이방 나라들이 유다 백성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라는 설교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는 유다 멸망 직전이니 기원전 6세기 초로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작 시기가 포로 후라면
한편, 우리는 욜 2:17의 상황을 이미 바벨론을 비롯한 주변 나라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유린한 이후의 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17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라고 되어 있다. 선지자는 마치 유다가 이미 다른 나라들에 짓밟힌 이후 그들의 관할을 받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포로 후기 시편으로 보이는 시 79:10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타난다.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또 느헤미야 9장의 ‘7월 언약’시에 행한 회개 기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느 9:37) 이는 욜 2:17 및 시 79:10의 내용과 아주 유사하지 않은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진동’에 대한 표현이 요엘 3:16에 보이는데, 이 표현이 포로 후 선지서인 학개에 몇 번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욜 3: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와 학 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21에,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를 서로 비교해 보라.
또 하나 언급하자면, 요엘 3장에 보이는 내용 곧 예루살렘이 사면 민족들의 공격을 받는 내용 및 그 민족들을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내용은 포로후기의 선지자의 글인 스가랴서 12장과 14장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슥 9:13의 ‘헬라’ (욜 3:6의 ‘헬라’), 슥 14:8의 ‘생수’ (욜 3:18 ‘샘’)도 생각해 볼 표현들이다.
그러나 무게가 실리는 쪽은
그러나 무게가 실리는 쪽은 아무래도 포로 전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한 민족’ (욜 1:6)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성전 (1:13-14 ‘여호와의 성전’)을 공격해 올 ‘바벨론’으로 보이기 때문이고, 욜 2:17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선지자 요엘의 설교와 촉구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2:18 이하는 미래 일에 대한 설교 (곧 예언)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필자는 요엘서의 저작 시기를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 곧 예레미야 선지자의 사역 시기와 유사할 것으로 본다. 참고로 주전 7세기로 보는 사람들 중에는 A. S. Karpelrud (약 600년; 시드기야 왕 때)와 C. A. Keller (630-600년), K. Koch 등이 있다. The Expository Bible Commentary 7권, 231-3도 참고하기 바란다. 반면, 1:15; 2:1b-2a, 11b 및 2:18 이하를 마카비 시대 후기의 묵시문학가의 작품으로 본 B. Duhm 등 요엘서의 단일저작설을 부인하고 예언의 진정성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Young과 Longman 등의 개론들을 참조 바람). 요엘서는 전체로 보아 그 전반부에 유다에게 심판으로 작용하던 여호와의 날이 그 후반부에 구원으로 작용함으로 반전을 일으킴으로 통일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요엘서가 문학적, 신학적으로 얼마나 치밀한 구조를 지니고 결국 아름다운 통일성을 나타내는지는 앞으로 충분히 논의하려 한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