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4)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요엘서<4>
요엘서의 메시지는 주로 두 개의 모티프들과 관련되었다. 첫째는 여호와의 날 (‘욤 여호와’), 둘째는 금식이다. 여기서 여호와의 날은 유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징벌하시는 날과 징벌 후에 회복하시는 날을 포함한다. 이 징벌에는 ‘어둡고 캄캄한 날 2:2,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둠 2:10’과 ‘나팔 혹은 경고의 소리 2:1’를 동반한다. 또 이 여호와의 날 모티프는 ‘메뚜기, 가뭄, 화재 1:4, 10, 17-20’ 등의 모티프들을 휴대하는데 이러한 모티프들 중에 특히 메뚜기 재앙은 ‘다른 한 민족 1:6’ (곧 ‘많고 강한 백성 2:2’)의 침략과 연결된다. 메뚜기 습격과 외국 군대의 공격의 양상이 서로 비슷하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요엘은 또 기술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다시 사용하되 이번에는 반대되는 내용을 전하고 있으니, 곧 ‘여호사밧 골짜기 3:2’ (혹은 ‘심판의 골짜기 3:14’)라는 지명을 사용하여,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의 변화 2:31, 3:15, 땅의 진동이라는 모티프들을 사용하여 만국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을 취급하는 것이다. ‘유다에 대한 징벌’과 ‘만국에 대한 심판’과 관련해서 요엘서에 강조된 것은 유다를 공격해 올 적군이 많고 무섭다는 것인데 이 공격을 여호와께서 주도 하신다는 것이고 2:11, 마지막 때의 만국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주체도 하나님이신데 그분은 ‘보복’하시는 분 3:4이시고 그 보복을 당할 사람들은 많다 3:14는 것이다. 물론 만국에 대한 심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유다, 곧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24” 그리고,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고,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댈 것이다 3:18”.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고 그들은 선지적 은사를 받아 주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할 것이다 2:28, 29.
‘금식’은 여호와 날의 ‘유다에 대한 징벌’과 ‘유다를 괴롭힌 만국에 대한 징벌’ 중 ‘유다에 대한 징벌’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금식은 ‘곡하고 1:11, 슬피 울고, 굵은 베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눕고, 여호와께 부르짖고 1:13-14, 애통하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 2:12-13’을 포함한다. 간단히 말한다면 ‘금식’은 ‘회개’ 주제와 연결되었다.
두 모티프를 통한 신학적 메시지
이러한 모티프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종합, 요약한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나라의 군대로 유다 백성을 싹 쓸어버릴 징벌이 이르렀으니 너희는 모두 모여 금식을 선포하고 주님 앞에 회개 기도하라. 장차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괴롭힌 자들은 심판 골짜기에서 싹 쓸어버리실 것이다” 이것을 한국 교회에 적용하면, “주님이 다른 나라 군대로 한국 교회를 징벌하실 날이 이르렀으니 목사들은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울며 금식하고 회개하라. 복음을 거부하고 성도를 핍박한 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나의 진노를 쏟을 것이다.”
요엘의 ‘황충’, 사도 요한의 ‘황충’ 예언
흥미로운 사실은, 요엘서의 두드러진 이러한 모티프들을 사도 요한이 더 구체적이고, 더 변형-확충하여, 상징들을 더하여 영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엘이 예언한 황충 재앙, 해와 달의 변화,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음, 곡식과 포도주 등을 사도 요한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로, 요엘이 예언한 황충 재앙을 사도 요한도 예언하는데 더 자세하고 더 뚜렷하다. 무엇보다 요한이 말하는 황충은 하나의 변형-확장된 실체임이 분명하다. 요엘의 예언한 황충은 개역개정에는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 1:4; 2:25’으로 번역되었는데 히브리어로는 각각 ‘가잠, 아르베, 옐레크, 하씰’이다. 영어역본들은 이것들을 다양하게 번역하였는데 KJV를 예로 들면, 각각, ‘palmerworm, locust, cankerworm, caterpillar’로 나타난다. 그런데, 계 9:3, 7에 이 ‘황충’이 나온다. 헬라어 단수로는 ‘아크리스’인데 계시록에는 복수형으로 나오며 NIV 영어성경은 locusts로 번역하였다. 계시록의 ‘인’, ‘나팔’, ‘대접’ 재앙들 중에 7 나팔 중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이 바로 이 황충 재앙이고, 이것은 세 화(禍) 중에 첫번째 화에 해당한다 (8:13; 9:12). 계시록의 메뚜기는 요엘과는 뭔가 사뭇 다르다.
이 황충들은 무저갱 (9:2)에서 올라온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왔고, ‘황충들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위에’ 나왔는데 ‘그들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다 (9:2-3). 황충들이 스스로 권세를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권세를 부여하셨고 그것들은 다만 하나님의 심판 도구라는 것이 암시되었다 (이 점은 요엘서와 같음). 흥미로운 것은, 메뚜기들은 풀과 수목을 해치지만, 계시록의 황충들은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친다는 것이다. 황충들의 공격을 구원론에 비추어 사용한다는 것은 벌써 이 공격이 자연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인 현실로 이루어지는 공격임을 알 수 있다. 곧 불신자들을 해치게 되는데 황충이 불신자들을 해치는 방법은 ‘괴롭게 함’ 즉, 죽이지는 않고 5개월 동안 괴로움만 주게 된다. 이 메뚜기들이 보통 우리가 자연에서 보는 메뚜기들과는 다른 것은 분명하다. 어릴 때 논두렁을 걸어가면 이 메뚜기떼들은 누렇게 익은 벼들에 매달려 있었다. 고개 숙인 벼들을 스치고 지나가면 수많은 메뚜기떼들이 툭툭 튀어올랐다. 그러나 계시록의 메뚜기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들의 왕은 ‘무저갱의 사자 (혹은 천사)’이고 모습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또 철 호심경 (철흉갑, breastplates)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9:7-11”.
요엘서의 메뚜기와 비슷한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계시록의 메뚜기들은 요엘서의 메뚜기와는 뭔가 다른, 확대-변형된 영적인 실체라는 것이다. ‘옛 뱀’ (창세기)이 계시록에는 ‘용’으로 확대-변형된 영적인 실체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뱀과 용은 벌써 크기부터 다르다. 요엘서의 메뚜기와 ‘말 (馬)’ 같은 계시록의 황충도 크기부터가 벌써 다르지 않은가. 확대-변형판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무저갱을 열었으니 악한 천사 (이 별이 마귀인지, 그저 악한 천사인지는 분명치 않음)가 열은 것으로 보인다. 연기 가운데로부터 나오니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과 ‘연기’ (출 19:16, 18)를 흉내낸다. 이마에 인침 받지 않는 불신자를 전갈 같은 꼬리와 쏘는 것으로 괴롭히니 이 괴로움은 분명 악한 마귀 수하의 악한 천사들이 가져다 주는 육신적 질병이든지, 마음의 괴로움이든지, 영적 번민이든지 일 것이다 (렌스키는 이를 ‘땅위에서 맛보는 지옥의 고통 [241쪽]’으로 봄). 왜냐하면 예수 믿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이름이 이마에 있는 자들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들) 이러한 지옥적인 괴로움은 모두 없어졌고 그 심령에 오히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에서 우리는 영적인 측면들을 발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종합하면 계시록의 메뚜기는 요엘서의 메뚜기의 확대-변형된 영적 존재, 곧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불신자들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마귀의 수하에 있는 어떤 악한 영적 세력들인 것이 분명하다. 메뚜기들은 본래 그 무리를 이끄는 왕이 없다고 잠언에 기록되어 있는데 (잠 30:27) 계시록의 메뚜기들에게는 왕이 있고 그 이름이 히브리어로 ‘아밧돈’ (헬라어로는 ‘아폴뤼온’ 9:11) 곧 ‘파멸(멸망)시키는자’라고 한다. 이것이 마귀 곧 사탄의 별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귀는 ‘이간질하는 자 (참소자)’이고 그 특징이 ‘거짓말하는 자’이며, 사탄은 ‘원쑤 (대적)’로 이 둘이 같은 존재인데, 이는 불신자들을 괴롭혀 결국 지옥에 ‘멸망시키는 자’, ‘지옥 메뚜기들의 왕초’로도 불린다는 것이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