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4)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4>
호세아 1장의 구조를 이해할 때 조금더 부연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단어를 선지자가 재차 사용 (이 단어가 인명, 행동, 지명, 유사음을 가진 다른 단어일 수 있음)함으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 (혹은 심판과 구원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같은 말 가지 뻗기’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스르엘’이란 이름을 가지고 한번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겠다는 심판의 예언을, 다른 한번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는 회복의 예언을 전하는 이런 기법은 선지서 도처에 발견된다.
예를 들어, 암 7:7-9를 보면, 선지자는 주님이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 계신 환상을 본다. 주께서 아모스에게 물으신다.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선지자가 대답한다. “다림줄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단어 ‘다림줄’을 사용하여 심판 예언이 나타난다.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이 ‘다림줄’이라는 단어가 가지를 뻗어 심판 예언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좀더 흥미 있는 예는 아모스 8:1-3에 보인다. 주 여호와께서 아모스에게 ‘여름 실과’ (히브리어로 카이츠)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물으신다.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선지자가 대답한다. “여름 실과 (카이츠) 한 광주리입니다.” 주께서 예언의 말씀을 하신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 (히브리어로 케츠)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그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버리리라.” 즉, 여기서는 ‘여름 실과’ (카이츠)를 보이신 이유가 이스라엘의 멸망 곧 ‘끝’ (케츠)을 예언하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음을 가진 단어로 가지를 뻗은 경우인 것이다 (보기. 렘 1장의 살구나무 ‘샤케드’와 지켜보다 ‘쇼케드’).
또 예를 든다면 렘 1:13-16이 있는데 여기에는 ‘끓는 가마’라는 이미지를 통해 그 이미지에 대한 실제 의미가 예언 속에 이어지는 동시에 ‘북(방)’이라는 같은 단어가 심판 예언을 위해 가지를 뻗고 있다. 여호와께서 질문하신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한다. “끓는 가마 (이미지)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 (단어)에서부터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재앙 (이미지의 실제 의미)이 북방 (같은 단어)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내가 북방 (같은 단어)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이미지의 실제 의미).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 (이미지의 실제 의미)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기법이 렘 19:1-13에도 나타난다. 여기서는 ‘깨뜨리는 행동’이 가지를 뻗는다. 여호와께서 선지자에게 말씀하신다. “오지병을 사고…오지병을 깨뜨리고…” 이어지는 예언은,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또 지명과 그 지명을 변경하면서 가지를 뻗는 예가 또 이 본문에 들어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여기에 예언이 이어진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며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이 성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즉 여기서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살륙의 골짜기’로 명칭이 변경되며, ‘도벳’이라는 같은 지명도 덩달아 가지 뻗기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하겠다.
약간 더 복잡한 예를 들자면, 이사야 7:14이하의 본문이 있다. 여기서는 ‘임마누엘’ 징조가 심판과 구원의 이중 예언을 위해 사용된다. 이러한 ‘같은 말 가지 뻗기’ 기법을 이해할 때에야 8:8의 호격으로 나타나는 “임마누엘이여!”와 8:10 끝의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 (임마누엘)”이 사용된 의도를 알 수 있게 된다. 즉, ‘임마누엘’은, 한번은 심판으로 이어지는데, 8:6-8에,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여기서 “임마누엘이여!”는 심판의 컨텍스트에서의 탄식이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펴는 날개”에서 ‘그’는 바로 유다를 침략할 ‘앗수르 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땅을 보호하신다.”라고 번역한 표준새번역은 오역! 이렇게 한번은 심판을 위해 ‘임마누엘’이 쓰이는데 이번에는 구원을 위해 ‘임마누엘’이 또 쓰인다. 8:9-10을 보면,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임마누엘).” 즉, 이 구절은 심판 메시지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을 대적하는 열방을 심판하신다는 메시지이므로 결국은 구원을 나타내는 예언으로 봄이 옳은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볼 때 호1장의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위해서 같은 단어 가지치기 기법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기법은 호 1:4-5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 우리가 이 구절들을 무심코 이어서, “…내가…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날에 내가…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로 읽으면 아무 의심 없이 ‘심판’ 내용으로 판정할 것이다. 그러나 하반절의 “이스라엘의 활이 꺾여진다”는 언급은 더 이상 전쟁의 도구가 그들의 손에 들려지지 않게 됨도 의미한다. 즉,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것의 우회적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이사야 7-8장의 ‘임마누엘’의 예처럼 호세아서의 ‘이스르엘’이 한번은 심판을, 다른 한번은 ‘구원’을 전하는 예언을 위해 의도적으로 기술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이해한다면 나는 이러한 판단이 정확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구원을 예언하는 본문인 사 2:2-4도 이러한 해석을 지원한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