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43)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 아모스서<5>
‘박치기 왕’ 아모스, 아마샤 눕히다
우리나라의 박치기 왕 하면 단연 김일 선수가 떠오른다. 역도산의 제자로, 6-70년대 세계 프로레슬링 챔피언을 석권한 사람이 김일이다. 그의 박치기 한 방에 다 나가떨어졌다. 아모스서 7:10-17에 보이는 아모스 선지자의 모습은 김일과 비슷하다. 아모스는 ‘여기 벧엘에서 말씀을 전하지 말고 유다 땅으로 도망가서 거기에서나 예언하라’고 지껄여대는 아마샤를 하나님 말씀의 박치기 일격으로 때려눕힌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선지자 갓이 솔로몬을,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을 (Expositor’s Bible 참고) 박치기 일격으로 때려눕힌 것처럼, ‘왕’을 들먹거리며 위협하는 아마샤를 선지자 아모스가 때려눕힌다. 아마샤는 어떻게 ‘왕’을 들먹거리는가. 그는 벧엘을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이라고 한다. 당시 벧엘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여로보암 2세를 말함, 암 1:1)이 우상에게 제사하던 성소가 있던 곳 (4:4; 5:5)이었다. 당연히 우상숭배날이 돌아오면 왕이 고관대작들을 거느리고 와서 온갖 음란을 행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Expositor’s Bible). 아마샤 같은 어용 제사장이 여로보암에게 온갖 아첨을 떨며 우상숭배를 권장할 때 아마샤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분연히 일어서 고향 유다를 떠나 벧엘로 올라와 북이스라엘 왕과 백성을 탄핵하였던 것이다. 하나님 말씀,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는 말씀이 아모스의 발걸음과 입술을 재촉한 것이다. 그러자 당시 거짓 목사 아마샤가 아모스 앞에 나섰다. 그는 먼저 여로보암에게 전갈을 보낸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라고 왕을 빙자하여 아모스를 죽이려 한다. 마치 왕이신 예수님을 로마 황제 (왕)를 빙자하여 빌라도에게 송사하는 유대인들 같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요 19:12) 대제사장들이 말하였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요 19:15).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한다. 그 하나는 사복음서 기자 중에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요한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가장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가장 미워한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세 복음서 기자들이 (이 기자들은 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 복음서마다 특징을 지님) 예수님을 위하여 ‘극렬히 질투’했다면 요한처럼 유대인들을 고소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소위 antisemitism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요한복음을 세속 심리학으로 해석하여 단순히 antisemitism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한심한 성경해석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는 자에게 적개심을 갖는다. 그 미워하는 자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겼다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죄목으로 고발한다. 요한은 조용하고 침착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위하여 극렬히 질투한다. 둘째는, 제2성전시대의 유대인의 종교는 ‘언약적 율법주의/신율주의’ (covenantal nomism)이라는 샌서스 (E. P. Sanders)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그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었고 율법을 지켰으며 혹 지은 죄에 대해서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천히 취급하였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로마의 황제를 들먹거리며, 마치 그 왕권을 빙자하여 아모스를 죽이려고 여로보암에게 고발장을 썼던 아마샤처럼, 빌라도 앞에서 메시야를 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까. 제2성전 시대에는 메시야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 같은 소수의 남은 자 구약교회가 있었으나 (이들이야말로 covenantal nomism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비록 그들이 피와 겉모습은 유대인이었을지라도 이 언약을 파기하고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을 언약 안에 있는 자들로 큰 선심쓰듯 인정해주고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한 가족이 되게 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복음을 발명했다는 것 (새관점주의자들의 주장)은 애써서 유대교와 복음으로 거듭난 백성을 하나로 통합해 보려는 꼴인데 우습기가 한량없다. 피상적인 평화를 위해 종교들을 통합하려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거짓되고도 가련하며 교묘하고도 파렴치한 짓이다.
제2의 아모스, 제3의 아모스
현시대는 아모스의 뒤를 따라 말씀의 일격으로 박치기를 하여 거짓 목사, 거짓 교사, 적그리스도들, 음녀들을 한방에 KO시키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아모스 때에도 말씀 전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암 2:12) 지금도 ‘missio Dei를 빙자한 WCC의 개종전도금지주의’ ( 최근의 최덕성교수, ‘신학충돌’ 등 통찰력 있는 글들을 읽어보라)를 표방하거나, 기도를 못하게 (1963년 미 공립학교에서 기도문과 십계명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 케네디 싸인함)하거나, 길거리 전도를 못하게 반사회 행위 규제법을 입안 (영국)하는 등 경우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점점 그 도가 높아지다가 급기야는 적그리스도가 와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 (단 9:27; 12:11, 곧 예배를 못드리게 함)할 것이며,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할’ 것이다 (계13:15). 이러한 ‘말씀을 금지”하는 종말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아모스의 박치기’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는 물러갈지어다!” 이 박치기 한 방에 마귀는 나가떨어진다. 플로렌스에서 사보나롤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보름스 회의에서 루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Expositor’s Bible), 절기가 있던 예루살렘에서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왕의 우상숭배 음란잔치가 있던 벧엘에서 아모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러분이여 말씀의 박치기 한 방을 날립시다! 마귀가 패퇴하도록, 이 마지막 시대에 아직도 죽음의 권세에 매여 있는 자들을 향해 생명의 말씀의 박치기를 날려 그들이 주님의 구원의 품안에 안기게 되도록, 아모스처럼 유다를 떠나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장소 ‘벧엘’로 가십시다. 제2의 아모스, 제3의 아모스가 됩시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4-6) 이 약속을 믿고, 복음대로 살고, 영혼들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시고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게 하시도록 (렘 1:18) 해 주십니다. 또한 ‘마귀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능히 대적할 하나님의 전신갑주’ (엡 6:10-20)를 입혀 주십니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