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47)
바위 틈, 높은 곳에 사는 자여: 오바댜(1)
오바댜서의 일반적 면모
오바댜서를 대하면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 분량이 아주 짧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약성경 중에 제일 짧은데 21절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에돔의 멸망이다. 에돔은 형제국 이스라엘이 신바벨론에게 586년에 멸망할 때 이스라엘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동맹국들과 손을 잡고 이스라엘을 약탈하였다. 에서 때부터 육체적이요 세상적이었던 모습이 이때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의 나라로서 에돔도 한 인간 에서와 다를 바 없음을 보인다. 만약 에돔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관계성을 중시하고 형제 나라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도와주었더라면 오바댜에서 보이는 이러한 심판 예언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심중은 교만했고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동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였다.
오바댜는 에서의 멸망 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교만한 만국인의 멸망을 내다본다. 즉, 범위가 한 나라 에돔에서 온 세상의 악한 나라들로 확장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은 예언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그 심판의 날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회복을 맛보게 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오바댜서의 구조
오바댜서의 구조는 간단이 다음과 같이 기호로 나타낼 수 있다. 즉, 1a 표제를 제외하고, A 1:1b-9; A’ 1:10-16; B 1:17-21로 표시할 수 있다. 첫 단락이 에돔의 죄에서 심판으로, 둘째 단락이 에돔의 죄에서 심판으로 나아가는 것은 같으나, 둘째 단락은 에돔의 죄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서술함으로 하나의 내용의 변화 (구체화)를 준다. 죄론은 둘째 단락에서 보다 심화되어 있으며, 심판은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 모두에서 ‘여호의 날’ 주제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B에서는 에돔에 압박을 당하던 이스라엘이 이제 에돔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나라가 세상 나라를 물리치고, 그 나라가 확장될 것, 그 나라의 백성이 그 확장을 통해 기업을 얻게 될 것에 대한 묘사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내용이 역전되기 때문에 B로 나타냈다.
바위 틈, 높은 곳에 사는 자
오바댜는 에돔의 거주지를 ‘바위 틈’으로 묘사한다 (3절). 지금의 요르단 나라의 암만에서 왕의 대로를 따라 한참 내려 가면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험한 지형이 나타난다. 이는 이스라엘의 하단 도시 에일랏에 도착하기까지 꽤 광활한 지역을 망라한다. 지난 2013년 신학도들과 함께 그 길을 지나면서 나는 그곳을 에서의 후예들이 거주하던 지역임을 추측하였다. 그 지역의 한 곳이 바로 페트라다. 지진으로 무너진 바위 틈 사이의 도시, 현재 80프로는 아직 발굴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남부의 광야들과는 또 다른 지형을 하고 있다. 신 광야든, 바란 광야든, 유대 광야든 이렇게 바위가 많지는 않다. 에돔이 살던 세일산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바위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발걸음을 용납하지 않는 페트라를 비롯한 그 아래 지역 중 어느 한 곳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에돔의 다른 도시인 보스라도 그런 도시일 것이다. 짐승 사냥을 좋아했던 에서의 후예답게 그들은 그 지역에서 사람들을 사냥하고 사람들을 약탈하여 보물을 바위 속에 감추고 높은 요새를 집으로 삼고 살았다.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칼 한 자루만 있으면, 그 칼에 피 좀 묻히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거주지만큼이나 마음이 단단하였다. 자기들이 거주하는 위치만큼 마음이 높았다. 이렇게 마음이 단단하고 높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되기 시작한다. 천사도 하나님이 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물을 움켜쥐다 보면 사람은 하나님이 되기 시작한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 그 천사도 보물과 관련이 있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 이 천사는 이제 곧 자기가 하나님이라 하는 한 사람을 우리 사는 땅에 세울 것이다. 이 사람이 적그리스도다. 교만이 우상을 제조하듯, 이 사람은 우상을 제조케 할 것이요, 세상 사람으로 이 우상에게 절하도록 할 것이다. 모든 에서의 후예들이 이 우상에게 절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이 우상을 숭배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사랑이 식어진 사람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할 것이다. 혹은 우상에게 자기들 스스로를 투영하여 자기들 스스로가 하나님인양 살아갈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세워질 때가 가깝고, 우리는 이러한 때를 살고 있으므로 영적 경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요망된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yunghun.choi@ac.edu.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