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5)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5>
2장의 구조는 1장과 차이가 있다. 호세아 선지자의 자녀들의 이름으로 심판과 구원을 반복하는 1장과 달리 2장은 전반부는 이스라엘의 언약 파기과 그에 따른 저주의 내용 (2:2-13)을, 후반부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른 이스라엘 회복 (2:14-23)을 나타냄으로 대조되는 큰 두 하위단락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1장과 2장까지에서 알 수 있는 호세아의 문체는 수없는 짧은 단락들을 누적시켜 주제를 강조해 나간다는 것이다 (더글라스 스튜어트, WBC). 1장과 2장은 그외에도 ‘아내’, ‘자식들’, ‘어미’라는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다만 2장은 1장에 비해 빈번한 인칭 변화를 사용하고 ‘남편-아내’의 관계를 강조하여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죄론에 있어서도 그렇다. 1장은 이스라엘의 음행죄를 서두에 한번 언급하는 데 그치지만 2장에서는 서두에 이것을 한번 언급하는 데 그만두지 않는다. 2장에서는 이 음행죄가 곧 이스라엘이 연애하는 자들을 따라간 것 (5절)으로 말하고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 그 연애하는 자는 ‘바알’신이었음을 명시한다 (8, 13절). 2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본 남편’ (7절)으로, 바알을 ‘연애하는 자’로 소개하신다. 자신을 남편으로 언급하심은 언약 관계성을 요약적으로 기술한 “내가…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7-8; 호 2:23 “너희는 내 백성이라…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어구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하나님은 언약 파기를 남편에 대한 정조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좇아간 불륜에 비교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이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서 낳은 자식들은 ‘음란한 자식들 (2:4)’ 곧 ‘비합법적인 자식들 (illegitimate children, ‘사생자’ 5: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인 것이다.
이러한 2장의 죄론은 여러가지 언약 저주로 이어진다. 시내산 언약 (그리고 모압들판의 갱신된 언약)에서 예고된 대로 언약/계약 조항들 (약정들)인 율법을 어김은 곧 그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심판들 중에 몇 가지를 들자면, 1) 벌거벗겨 그녀 (이스라엘)의 태어나던 날 같게 하심,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하심 (3절), 2) 가시로 그녀가 연애하러 가는 길을 막으심 (7절), 3) (바알에게 바쳤던) 곡식, 새 포도주, 양털, 삼 등을 빼앗으심 (9절), 4)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그녀의 수치를 드러내심 (10절), 5)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심 (11절), 6) 포도나무와 무과화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심 (12절). 여기서 이스라엘이 ‘태어나던 날’은 출애굽을 시사한다. 이스라엘은 과거 이집트에서 자기를 구출해주는 분 없는 상태에서 계속하여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그 날로 돌아간다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이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다고 해도 약속된 하나님의 가나안의 부요를 누리기는 커녕 과거 노예신분의 처절한 탄식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광야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고, 남편이신 여호와께서 주신 은혜임에도 그것은 다른 신들이 준 것이라 하는 이스라엘은 이제 가시에 찔리게 되고,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목마르게 되고,하나님께 드리던 예배들마저 못드리게 되고, 벌거숭이 빈털털이가 되고, 삶의 터전이 황량하게 되고 (수풀이 됨) 흉악한 들짐승들이 들끓게 된다 (자연 파괴, 동식물 이상)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 저주의 반전이 2장 후반부에 나타난다. 반전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심판의 표상이었던 ‘거친 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말로 위로하는 장소가 되며 여호와는 거기서 그녀의 포도원을 그녀에게 주신다 (14-15절) 2) 출애굽하던 날처럼 이스라엘은 노래하게 될 것이다 (15절) 3) 이스라엘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17절) 4) 동물 회복과 전쟁 종식 (18절) 5) “그녀는 나의 아내가 아니고 나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 (2절)에서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16절),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19-20절)로 바뀐다 6) 땅/식물 회복 (22절. 곡식, 포도주, 기름) 등.
언약관계의 회복과 완성을 알리는 2장의 말미는 1장 말미와 병행을 이룬다. 1:11-2:1은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 (내 백성)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 하라”라고 하여 자식들의 이름들을 마지막으로 언급함으로 1장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2:21-23을 보면, 비슷하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응답할 것이다.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또 이것들은 이스르엘 (=하나님이 심으실 것이다)에 응답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녀를 이 땅에 심고 (sow)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 (로루하마)를 긍휼히 여기며 (루하마/라함) 내 백성 아니었던 자 (로암미)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암미)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라 할 것이다”로 2장을 마무리한다.
즉, 1장과 2장은 쟝르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주제들에 의해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한편으론 2장에 가서 이스라엘의 죄가 더 명시된다는 것이다. 즉, 그 음행죄는 다른 신 (귀신)을 섬기는 죄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더 구체적으로는 우상에게 절하고 송아지상에 입맞추는 행위로 3; 4-14장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본 남편 야웨를 떠나 다른 남자와 놀아남, 곧 이스라엘의 귀신 섬기는 죄는 뒤에 가서 드라빔, 주상, 제단, 제물, 산당 제사 등 여러 가지로 자세히 설명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죄들은 말할 것 없이 왕과 방백들의 타락, 야웨를 버리고 외세를 의존함, 그리고 백성의 도덕적 타락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호세아 선지자는 그 특유의 탁월한 문학성을 통해 정조를 버린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심각한 것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앞으로 다른 장들을 상고하며 우리가 또 보겠지만 호세아는 너무나도 기술적이고 여실하게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자유주의 구약학자들은 여전히 충분한 객관적 데이터 없이 호세아서의 문학을 분해한다. 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매달려서 고집하는 역사비평법은 많은 경우 상상력에 의지함으로 씨나리오를 만들 수밖에 없는 본문 접근법이다. 어떻게든지 역사적 재구성을 해서 여러 시대의 여러 잡다한 신학들의 짬뽕으로 이 책을 멋대로 요리하는 것이다. 의도야 어쨌건, 결국 하나님의 메시지가 왜곡되는 것이다.
호세아서를 지금 현실에 제대로 적용한다면, ‘본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를 찾아 몸과 영혼을 주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는 짓’인 근래의 종교다원주의가 독약이라고 서슴없이 말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성경의 ‘오직 예수=구원’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극약을 권하는 자들이다. 양심에 화인이 맞아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천사와 동성애를 요구하던 소돔인들처럼 이들은 사람들에게 종교다원주의로 ‘평화’를 도모하자고 밤새도록 쉴새 없이 대문을 두드린다. 이에 대해 우리는 바른 말씀의 기초위에서 용기있게 대응하고 있는 최덕성교수 (브니엘신학교총장)나 김정한목사 (한국교회 바로세우기 통합측 목회자 일동: 카톨릭과 신앙과 직제 일치 반대 통합측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태도를 크게 본받아야 할 시점이다!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