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필 칼럼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조심스레 받아보니 캔버라에 사는 숙희라는 청년이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몇 마디 얘기하던 중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신학교에서 몇 학기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 커피를 가져다 준 학생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돌아왔다며 저가 생각나 망설이다 전화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조금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하였고 시드니에 오면 꼭 한 번 만나자 하였고 신랑이랑 같이 내려와 인사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렇게 통화하던 중 그의 목소리에 힘이 없고 말꼬리가 쳐지는듯 하면서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 저는 대뜸 너 요즘 무슨 걱정거리 있지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녀는 감추려는듯 어떻게 아셨어요 누구에게 들었어요 하며 오히려 저에게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주저주저하며 말하였습니다. 서로 좋아 결혼 하였지만 살아보니 다른 점이 많이 보여 서로 말도 안하고 소원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도 어려운데 믿었던 남자가 조금 다르다고 느껴지니 몹시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저에게 전화했던 것입니다. 저는 안됬기도 하고 짠한 마음이 들어 힘내라고 격려하며 같이 오면 저녁한 번 쏘겠다고 하였고 그는 왜 목사님이 사요 돈 버는 우리가 사야죠 하며 힘주었습니다. 저는 미안하게도 잊고 있는 청년이엇지만 그녀는 고맙게도 어려울 때 나에게 전화를 하였던 것입니다.
두어 주 전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나가시는 권사님이시라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새벽기도 때마다 저와 저희교회를 위해 기도하신다며 어떤 부부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면서 요즘 잠시 교회를 쉬고 있으니 가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지만 마음 많이 부드러워져 있습니다. 그 권사님 사실 뵌 적이 없고 다른 교회 권사님이시기에 그 전화만으로 그쳤습니다. 그러나 저를 위해 아침마다 기도하신다니 고마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주의 종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려는 순수한 신앙의 표현이라 느껴지기에 그 믿음 정말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두려운 마음 또한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물투성이요 주의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이를 데 없어서 그냥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데 그분은 아침마다 저를 전도자의 선봉에 세우시고 기도로 저를 밀고 계신다니 고마운 마음 보다는 사실 부담감과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좁은 교민사회, 숨소리 하나까지 어떤 분이 세고 있는듯 하여 목회자로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교민을 피해 차라리 타 민족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로만 바로 서서 전도하고 목회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시간을 다 쓰며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숨지도 말고 딴 곳에 눈 팔지도 말고 시간 아끼면서 죽기까지 충성하라 하십니다. 정말 이 소명 어떻게 다 감당하며 이 은혜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요.
한 때에 믿는자를 훼방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이 뒤 늦게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안정된 교회를 뒤로하고 이방인 선교사로 자청하여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에 고난을 감당하며 순회선교를 하였습니다. 예상하지 않게 감옥에 있을 때에는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다 땅 끝이라고 알고 있었던 로마에 가기로 작정하고 죄인의 모습으로 가서 거기에서 복음을 증거하다 순교로서 자기 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베드로는 한 때에 촉망받는 예수님의 제자중의 맏형이었지만 그는 잘 넘어졌습니다. 주님께 바다 위를 걷게 해 달라고 하였다가 뒤를 돌아다 본 후 물에 빠져 살려달라며 허우적거렸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주님 따라가겠다고 큰 소리 쳤다가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던 그물을 꺼내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의리없고 배신자 같은 베드로를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가셔서 꾸중 한마디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느나고 물으시며 내 양을 치라고 사명 다시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견딜 수 없었는지 뜨겁게 기도하고 목 터져라고 전도하며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지는 중심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후 어눌한 언어실력이었지만 땅 끝으로 알고 있는 로마로 달려가 복음을 증거하다 주님처럼 반듯하게 매달릴 자격이 없노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로 자기 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정말 소명받은 종은 이렇게 사나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이 소명 다 완수 할까요.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는데 저는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이 은혜 이 소명 어떻게 다 감당할까요. 이는 저의 진실한 고민입니다.
손상필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