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태의 보물찾기
작은 것의 소중함

한 표의 가치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말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의식과 향연과 그 위대한 기능을 가능하게 하게 때문이다. 솔직히 민주주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살육의 시대’를 끝내는 대신, 선거라는 ‘전쟁의 짐’을 부여해 놓았다. 오죽했으면 링컨 전 대통령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을까? 그래서 정치인은 “표가 있는 곳은 지옥까지도 찾아간다”고들 한다. 그 한 표의 소중함을 선거를 치뤄 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기 때문이다. 단 한표의 차이도 2등은 결국 패자이다. 한 표의 소중함, 한 표의 가치는 다음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645년 올리버 크롬웰은 한 표의 차이로 영국을 장악하는 권력을 쥐었다. 1649년 영국의 찰스 1세는 한 표의 차이로 사형을 당했다. 1776년 미국은 한 표의 차이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1845년 한 표의 차이로 텍사스가 미연방에 편입되었다. 1868년 앤드류 존슨은 한 표가 탄핵위기에서 구했다. 1875년 한 표가 프랑스를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1876년 러더포드 헤이즈는 한 표의 차이로 미합중국의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한 표의 차이로 나치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960년 4개구에서 선거구 당 한 표 차이로 존 F. 케네디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한 표나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1전인 페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1원이 소중한 것을 알아야 큰돈을 손에 만질 수가 있다. 지금도 집에 굴러다니는 5센트짜리 동전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집에 굴러다니는 10만 불짜리 수표가 있을까? 작은 아이를 배려하는 사회, 작은 자인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슈마허라는 경제학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사실은 ‘작은 것이 소중하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이다. 작은 것이 생명이다. 작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참 지혜이다. 러스킨은 “만일 사람이 작고 사소한 가르침이라 하여 깨뜨린다면 결국에 있어서는 중대한 가르침까지도 깨뜨리게 되고 만다”고 역설했다. 사람들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조약돌에 걸려 넘어진다. 배가 반드시 두 동강이 나야 침몰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구멍이 커다란 배를 침몰시킨다. 작은 불꽃이 큰 산을 태운다. 이처럼 ‘작은 것’은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오히려 한없이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작은 것, 사소한 것이 큰 조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많거나 큰 것 앞에 주눅 들고, 적거나 작을 때 무시하지는 않는가? 식당에 가서도 많은 무리를 몰고 갔을 때는 은근히 어깨에 힘을 주고, 고자세가 되어 명령투로 말하며 뭐든지 막 더 달라고 하지는 않는가? 또 작은 (혹은 적은) 교회 목회자라고 경원하며, 무능력자라고 마음속으로 헤아리지는 않는가?
작고 사소하다?
잊지 마시라. 크고 거창한 것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 하나에 사람이 무너지고, 회복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심지어 아주 작은 부주의나 무심결에 악의 없이 사소하게 던진 한 마디 말로 평생 원수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현실이다.
또 작은 실수나 작은 병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를 제패할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원숭이에게 손이 물려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어느 왕은 말발굽이 빠져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왕이 다치고 군인들은 사기가 저하되어 그 전쟁에서 패배하여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는 모기에게 물려 죽은 사람도 있고, 벌에게 쏘여 죽은 사람도 있다. 큰 병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병이 사람을 죽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오래 전, 미국의 노스웨스턴대학교 여자 농구 경기 중 한 선수의 머리핀이 빠져 바닥에 떨어져 잃어버렸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하고 심판과 선수들이 함께 마룻바닥을 훑어가며 잃어버린 머리핀 찾았다. 작은 것이 경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작은 것을 찾고 작은 것을 잘 지켜야 믿음도 승리하게 된다. 우리가 시시하다고 여겨왔던 것 속에 큰 비밀이 숨어있음을 잊지 말자.
사람은 갑자기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엄청난 죄에 연루되지 않는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작은 죄, 작은 윤리적 임무를 무시하며 서서히 타락의 늪 속으로 잠겨가다가 마침내 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사소한 갈등이 모여 큰 갈등을 만들고, 큰 갈등은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큰 나무는 작은 묘목으로 시작되고, 큰 사람은 작은 가르침으로 시작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며, 큰일도 작은 계획과 구상에서 출발한다. 오죽했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꾸며 사자후를 토하기보다 먼저 거처하는 방부터 청결하게 하라고들 할까?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 전에 발밑의 함정을 살펴야 하는 것이 일의 우선순위이다.
꽃이 되고, 새가 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략) – 김춘수 ‘꽃’ 첫 부분
누군가 “기르기 시작한 이상 잡초가 아니다”라고 했다. 지천에 늘려있는 작은 풀꽃도 의미와 이름, 그리고 양육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우주의 한 부분을 차지한 ‘의미 있는 큰 꽃’이 된다. 예수님께서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 ‘공중의 (작은) 새’를 먹이고, 기르고,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말씀하실 때, 공중의 새는 ‘존재가 새롭게 드러나는 순간’이 되었다. 여지껏 작은 새는 그저 ‘공중의 작은 새’ 였을 뿐이다. 하지만, 예수님 눈에 들어 온 바로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작은 새’가 아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 있는 존재가 된 순간이다. 세상 사람의 영성을 바꿀 ‘의미’와 만남의 순간이 된 것이다.
흔히 우리는 “새털같이 많은 날”이라며, 하루, 한 시간, 한 순간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소한’ 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날, 그런 날에도 무언가 ‘의미’가 숨어 있다. 보잘것없이 사소한 것, 작은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것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작은 것들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은 시시하다고 눈에 띄어도 쉽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것들은 발견되기 위해 태어났다.
발견되기 위해, 발견하기 위해
누군가 그 ‘작은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하면, 그 작은 것들은 모습과 본질과 의미를 드러낸다. 이곳저곳에서 작은 것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점점 커지고, 내 인생을 새롭게 해줄 ‘그 무엇’이 된다. 작은 것들이야 말로 진정한 보물이다. 작은 것들보다 큰 보물은 없다. 작은 것들 때문에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작은 것 하나로 내 인생과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항상 소자, 냉수 한 그릇, 작은 일, 한 달란트, 겨자씨, 동전 하나, 잃은 양 한 마리,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작은 자들인 아웃사이더 (outsider)들에게 눈길이 머무셨고, 그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시며 사랑하셨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감사한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은 모두 작은 일이기 때문이다. 혹 이웃들로부터 ‘사소하다’고 생각될 만한 작은 호의를 당연하게 받고 있지는 않은가? 호의도 반복되면 권리로 알게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풍성한 생명을 여는 열쇠이다.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충분히, 아니 더 많이 누리게 한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정을 수용으로 바꾸고, 혼돈을 질서로, 혼란을 명쾌함으로 돌려세운다.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한 끼 식사를 풍족한 잔치로, 평범한 집을 오순도순 정이 흐르는 가정으로, 나그네를 친구로 바꾼다. 우리 내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날마다 작은 일에 작은 승리를 축적해 나가다 보면 상상하지도 못한 ‘보물창고’가 날마다 층수를 올려갈 것이다.
“날마다 빵을 굽고 청소하고 먼지를 털고 닦는 이 모든 사소한 일을 흡족하게 할 가정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나이다. 오! 나의 가정 지상에서 최후의 피난처인 나의 가정에 주님이 계심을 감사하나이다.” – 디아 오 잭슨

송기태 목사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