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골로새서 개관 – 온전하신 사역 새로운 피조물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서신은 성경중에서 가장 그리스도 중심적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탁월성, 신자들을 위한 그 사역의 충분성,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지는 모든 면에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분명하고 열정적으로 주장한다. 따라서 골로새서는 우리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중심에서 발견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를 상기시킨다. 에베소서가 교회론 중심이었다면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이다.
<골로새 지역>
브루기아 산악을 통과하는 하나의 중요한 상업적 도로는 소아시아의 서쪽해안에 있는 에베소를 이고니온과 남동쪽으로는 다소와 연결시켰다. 그 길을 따라 에베소로부터 150km지점에 라이커스강 계곡이 놓여있다. 그 강둑에 상당히 대규모의 상업과 직물 중심지인 라오디게아가 서있었다. 거기서부터 간선도로로 들어서서 약9km북쪽으로 가면 히에라 폴리스에 도착하는데 이 도시는 약수온천, 아폴로신전, 자주빛 염료로 유명했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약17km가면 골로새에 도착하는데 역시 자줏빛 모직물로 유명한 직물중심지였다. 이들은 대략 삼각형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었고 그 도시의 주민들은 대개 브루기아인과 그리스인이었으나 바벨론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주전200년 직후부터 그곳에 다시 정착하였다. 바울 당시에는 라오디게아 지역의 유대인들이 10,00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당히 그리스화 되었다. 이 세 도시들은 모두 60-61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붕괴되었다.
<골로새 교회의 상황>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2:1). 에바브라가 그 도시에 복음을 전한 듯하고(1:7) 그 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이 이 편지를 쓰게 했다고 본다. 이 교회에 거짓교사들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논박하고 골로새 교인들을 견고케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첫째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1:15-19) 거짓교사들이 기독론을 훼손한 듯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는 시작에 불과하며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규례와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높이 평가하는 듯 했지만 결국 그리스도를 피조물, 즉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로 보았다. 그러한 가르침에 직면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인지를 명백히 선포해야만 했다. 또한 바울은 “헛된 속임수와 철학”(2:8)을 경계한다. 그 철학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토속신앙과 이교화한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의 혼합이었을 것이다. 또한 할례에 대한 언급이나(2:11; 3:11), 사람의 유전(2:8), 천사숭배(2:18), 안식일과 절기와 월삭 등을 지키는 것에 대한 혼동은 그들이 유대교로부터 영향을 깊이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고 있음을 볼 때(1:3-5; 2:5; 3:7) 교회가 위험한 상태에 있어서라기 보다는 골로새 교인들이 당시 유행하던 혼합주의의 위험에 놓여있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 서신을 썼다고 볼 수 있겠다.
<저자와 기록 연대>
바울이 로마감옥에 있을 때에 기록했고, 지진으로 인한 골로새 지역의 파괴가 60-61년에 발생했기 때문에 본서는 바울에 의해 58-60년쯤에 작성된 것으로 보아 진다.
<내용 요약>
바울은 서문에 이어(1:1-2)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전한 후(1:3-8) 본론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완전성을 선언한 후(1:9-2:23) 신자의 새 삶(3:1-4:6)에 대해 가르친다. 먼저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골로새 이단에 대해 1:9-2:23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채워질 것과 그 지식이 풍성해져서 합당한 삶, 즉 주를 기쁘시게 하는 도덕적 윤리적 삶을 살도록 기도한다. 곧 이어서 1:15-20에서는 성경에서 가장 뚜렷하게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부각시킨다. 여기서는 창조세계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1:15-17)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1:18-20)에 초점을 둔다.
바울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만물의 포괄적인 화해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신자와 하나님의 구체적인 화해로 주제를 옮긴다(1:21-23). 2장에서는 바울은 위대한 영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변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장사, 부활로 인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연합을 가져왔음을 보인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지닌 우월성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메시지를 완전히 약화시킴을 선언한다. 따라서 그들은 의식법(2:16-17), 자기 비하, 천사숭배, 환상 자랑(2:18-19), 사람이 만든 법령으로 기독교 믿음을 보충하는 것의 무익함을 선언한다. 곧 이어 3-4장에서는이러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해서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주권하에 둘 것을 권면한다.다시말해 그리스도의 주권이 지닌 우주적 범주가 이제는 성도 개개인이 위엣 것을 추구하는 삶에 적용되어야 하고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실제 생활의 주로 모신 것을 권면한다.
<개요>
- 서언 : 서문 및 감사(1:1-8)
- 본론 :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완전성(1:9-4:6)
1)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골로새 이단(1:9-2:23)
① 여는 기도(1:9-14)
② 그리스도의 우월성(1:15-20)
③ 그리스도를 통한 신자와 하나님의 화해(1:21-23)
④ 화해의 비밀을 전하는 사역자 바울(1:24-2:5)
⑤ 골로새 이단에 대한 굴복 경고(2:6-23)
2) 그리스도안에서 신자들의 새 삶(3:1-4:6)
① 위엣 것 추구(3:1-4)
② 땅에 있는 지체를 죽임(3:5-8)
③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기(3:9-11)
④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용서하기(3:12-17)
⑤ 그리스도인 가정을 그리스도의 주권영역 하에 두기(3:18-4:1)
3. 결어(4:7-18)
① 동역자들에 대한 추천과 문안인사(4:7-14)
② 마지막 가르침과 축도(4:15-18)
<메세지>
먼저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그 사역의 충분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특별히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촛점을 둔다는 면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이 책이다. 골로새서는 먼저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절대적 우월성을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높게 묘사한 본문중의 하나인 1:15-20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본문이 바울 이전에 쓰인 그리스도 찬가라고 본다. 여기서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1:15)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들이 주장하듯이 먼저 창조된 피조물이란 뜻이 아니라 서열상의 우위는 나타내는 표현이다. “먼저 나신이”라는 명칭은 권위적 명칭으로 예수님께서 창조 전에 존재하셨고 창조세계에 대한 주권을 지니고 계시며 창조세계보다 위대하시다는 의미이다. “먼저 나신이”라는 말은 구약전체에 걸쳐 서열상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때 사용된 용어임으로 이것이 예수님께 적용될 때는 주께서 창조행위 이전에 존재하셨으며 모든 창조세계를 다스리시는 높임 받은 왕이시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들보다 우월하시다고 설명하는가? 먼저 예수님께서 창조의 대리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 만드셨다. 그분은 물질적 우주를 비롯한 가시적 세계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천사, 주권자들, 통치자들, 권세자들을 포함한 영적 세계도 만드셨다. 우리 주님의 통치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온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주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계시다.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는 예수님께서 창조의 목적이 되심과 함께 만물의 유지자가 되신다는 대선언을 한다. “만물이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1:16)라는 선언속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존재함을 알려준다. 또한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17)라는 선언속에서 주께서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신론자들이 묘사하는 창조자와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우주를 만드신 후에 물러 앉으셔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주를 다스리는 물리적 법칙을 고안해 내셨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발휘를 통해 그 원리들을 유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창조주로뿐 아니라 지금도 온 우주를 그 분의 통치 원리대로 이끌어 가시는 만물의 유지자 되심을 고백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야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의 일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부가 예수님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1:19; 2:9). 예수님은 부분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전생애와 전인격을 걸고 이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과 헌신된 사역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분의 길을 따라가려고 다짐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우리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닮으면서 이 땅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비롯해서 이 땅의 모든 책들 가운데 이보다도 더한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서술과 선포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골로새서의 공헌이다. 또한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완전성을 피력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완전한 구속인 죄용서를 이루셨고, 그분의 피흘리심을 통해 우주적인 화해를 이루셨다(1:14,20,22).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신자들을 완전한 영광으로 초대하셨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무엇인가를 첨가하여 보완하려는 일체의 시도(골로새서는 그것을 당대의 철학이라 말함)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그 사역의 충분성은 오직 우리의 시야를 그리스도에게만 향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충만에 추가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따라서 그분에 대한 믿음에 추가될 것 역시 아무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이 완전하므로 바울은 신자들에게 삶의 모든 면에서 그분의 주권하에 두고 그 주권에 비추어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3-4장). 따라서 우리는 구원과 구원에 합당한 삶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가르침이 증거하는 우리 삶에 대한 증거 이외에 다른 것을 보충해야 온전해질 것이라는 어떤 유혹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모든 가치관을 뛰어넘어 참된 생명력을 주시는 주님의 복되신 인도하심에 항복선언을 하고 순종의 길에 투신하는 길이 남아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중에서 가장 우월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로서 활동하신 그 삶의 자취속에는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완전한 사랑과 순종과 섬김의 원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풍요와 강함의 철학”이 우리의 삶의 영역을 넘보는 시대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우리 삶의 진정한 푯대와 삶의 의미로 삼을 것인가? 이미 완전하신 인격과 사역을 통해 우리가 본받고 나아가야 할 참된 전형을 보여주신 주님의 선행하신 발자취가 있지 않는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과 삶의 여정이 제시되었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우리 주님의 헌신을 보고 인도하심의 신실하심을 맛보았으니 “높아짐과 강함의 철학”이 주는 땅의 가치관에서 눈을 돌려 땅의 욕망과 행위와 결별해야 할 것이다(3:5).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해 취득된 고결한 신분에 맞게 살아가는 변화되어지는 그리스도인 되어서 새사람을 덧입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존재감을(3:10) 이 땅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이 골로새서에서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그분의 사역의 충분성과 완전함을 덧입고 날마다 감격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이 될 것이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