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누가-행전(2) –대반전의 복음, 누가복음!
지난 호에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전반적인 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들을 들여다 보도록 하겠다. 먼저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서론: 누가복음의 목적(1:1-1:4)
2.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한 서론(1:5-4:13)
ㄱ) 세례요한과 예수님(1:5-2:52)
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준비(3:1-4:13)
3.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4:14-9:50)
ㄱ) 첫번째 갈릴리 사역(4:14-7:50)
ㄴ) 두번째 갈릴리 사역(8:1-8:39)
ㄷ) 세번째 갈릴리 사역(8:40-9:50)
4. 예루살렘 여정 및 수난(9:51-24:53)
ㄱ) 예루살렘 여정(9:51-19:27)
ㄴ)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사역(19:28-22:38)
ㄷ)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및 승천(22:39-24:51)
5. 에필로그: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24:52-53)
이와 같은 구조속에서 누가가 촛점을 맞추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속에 이 땅에 도래하는 대전환이다. 먼저 누가는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이 성경예언을 통해서 성취됨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예언하시고 약속하셨던 구원의 행위들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대전환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행위들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준비해 오셨던 구원계획의 성취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신적 당위성”에 대한 언급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 거해야만 하며(2:49), 여러 동네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만 하며(4:43),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셔야만 하며(9:22; 17:25; 22:37),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셔야만 하며(13:16), 예루살렘에서 죽임 당해야만 하며(13:33), 삭개오의 집에 유하셔야만 한다(19:5). 그리고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시고 제 삼일에 살아나셔야 한다(9:22,44).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가르침과 모범 또한 그의 행위는 모두 이 땅에 펼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과 섭리하심에 의한 신적 당위성에 의한 움직임이셨다. 이렇듯 예수님의 행동속에는 이 땅에 필연적으로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당시 선민이라고 자처했던 유대인들의 무지와 몰지각속에 잠수해 있던 하나님의 진지한 마음이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급격하게 표출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의 행적속에서 오랫동안 이루시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참되신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떤 종류의 하나님의 뜻이 명백하게 드러나면서 인류에게는 참된 변동이 감지되는 대전환이 이루어졌는가?
첫째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회개하는 죄인에게 다가가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의 주도적 생각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죄인들을 의인과 구별할 것을 주장했다. 바리새인들은 생각하기를 “의인”은 죄인들과 함께 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허비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그것이 예수님 당시 사람들의 주된 사고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고를 대전환 시키신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회개시키려 오셨고 죄인들을 죄에서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이 그분의 사역임을 강조하신다. 당시 지도자들은 죄인과 의인을 구분하여 격리시키는데 익숙했는 데 예수님은 그런 생각에 대반전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의 반열에 세우신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에서의 3가지 비유들 즉,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 잃어버린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을 통해 잃어버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신다. 합법적 도적에서 공동체를 돕는 자로 변신한 삭개오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눅19:7-10)와 십자가상에서 회개한 강도의 이야기(눅23:40-43)에서 회개한 자의 회복이 예수님 사역의 핵심임을 다시 한번 나타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눅24:47)이라는 말씀을 통해 교회에 주신 사명과 일치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통해서 의인과 죄인을 나누고 거룩과 불경건의 경계선을 확고히 하는 종교인들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담지 하고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사신이 되셔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은 회복시키는 일에 전념하셨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주님의 이 땅에 행하신 첫번째의 대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반문화적인 제자도를 통해서 인류에게 대 반전을 제공하신 분으로 그려진다. 누가복음에서 나타나는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잃어버린 자들에 관한 관심이 였다면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물질의 사용이다. 누가는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가? “옷 두벌 있는 자는 옷이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눅3:10-11). 마태복음도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가르치지만(마6:19-21) 누가복음만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라”(눅12:33-34)는 것이다. 이 명령은 누가복음의 다른 곳에 적어도 세 차례 반복해서 강조된다. 한 가지는 제자도를 위한 희생에 관한 말씀의 결론으로 제시되고(눅14:33) 또 한번은 부자청년의 도전 앞에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19:7-10에서 긍정적인 인물이 소개된다. 회심한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삭개오가 모든 소유를 팔지는 않았으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는다. 과연 누가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주님으로 인해서 시작된 인류의 대전환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보여 회복시키시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그 회복을 맛본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서 그 열매가 맺는 다는 것이다. 물질은 현실적이고 삶의 본질의 일부를 구성한다. 재물이 연관되지 않은 신앙의 양태는 극히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 물질을 구체적으로 바르게 사용하는 곳에 신앙의 대전환이 목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질의 축적이 힘의 축적이라고 믿는 사회속에서 물질을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제자도의 척도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확실히 반문화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주님께서 이루신 대 반전을 이어나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관한 세번째의 대전환(대 반전)은 낮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다.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특히 누가는 사회약자들, 즉 이방인, 가난한 자, 세리와 죄인들, 병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강조한다. 이런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대전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먼저 누가는 구원이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까지 이르는 보편적 구원으로 성취되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 했다고 기술한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누가는 예수님의 계보를 마태와 같이 아브라함에서 멈추지 않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탄생기사에서 천사는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2:10)고 선포한다. 이와 같이 시므온도 아기 예수를 본 후 “이방을 비추는 빛”(2:32)이라고 외쳤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이방인인 사렙다 과부와 아람의 나아만을 귀감이 되는 사례로 제시하셨으며(4:25-27),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다(7:9) 또한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의 주인공으로 삼으셨고(10:30-37)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든 족속에게 보내신다(24:46-48). 이와 함께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예수님 사역에 있어서의 대 반전은 주로 가난한 자로 대표되는 사회의 약자들에게 확산된다. 예수님은 나사렛회당에서 행하신 첫 설교를 통해 자신은 여호와의 종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4:18)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복음서 전체를 통해 예수님께서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로마당국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인해 배신자로 찍혀 멸시 받던 세리와 죄인들-가운데서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세리인 레위는 열두제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예수님은 레위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었으며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불러 회개키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신다(5:30-32).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은 또 하나의 소외그룹은 병자, 귀신들린 자들이었다. 고침 받음 많은 사람들 중에는 과부의 아들(7:11-17,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귀신들린 거리사인(8:26-39), 혈루증 앓은 여자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8:40-56,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구걸하는 소경(18:35-43)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볼 것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야기된 “대전환”의 다른 한 부분은 여자들이 차지한다. 누가복음에서 여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13명의 여자들이 언급된다. 이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특별히 섬긴 자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죄인(7:36-50) 막달라 마리아,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및 수잔나(자신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김, 8:2-3), 예수님에게 배우고 그를 섬겼으며 친구가 되었던 마리아와 마르다 등이 있다(10:38-42).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의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 시대 유대 랍비들의 남성 지향적 사역과 대조를 보이는 대전환점의 꼭지점을 보여준다.
이렇듯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사역하시는 그분의 일하심 속에서 인류와 사회에 던지신 대전환의 파장을 예리하게 제시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역과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 땅에 진정한 변혁을 이루시기를 위해 오셨고 또한 그렇게 행하셨다.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다가가셔서 복음을 제시하셨고 제자들에게 반문화적인 물질관을 통해 섬길 것을 권면하심으로 추상화되기 쉬운 신앙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세워 제시하셨다. 그리고 그 대전환은 사회적 약자들인 낮은 자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 극치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서 이 땅에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에 대 반전을 이루는 삶의 도전을 던져주시고 또한 몸소 행하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침투하는 곳마다 사실상의 대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대 반전의 감격 어린 삶이 또한 이 시대의 제자들인 유리들 앞에 놓여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서 이루신 이러한 대전환의 사역을 깊이 이해하고 이 시대에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우리의 온 맘을 다해 헌신하고 있는가?
사회의 가치관과 관행을 거슬러 올라가는 대전환의 삶,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는 참된 비전이 없다면 오늘날의 우리 기독교는 참된 동력의 엔진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을 변모시키는 반문화적인 사랑의 수고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이 시대속에도 도래하는 주님 나라를 향한 대전환을 체험하고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소명 받으시고 깊이 행하셨으므로 그 실체를 보셨던 것처럼!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