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누가-행전(3) – 대약진의 복음,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함께 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책이다. 파피루스를 사용하던 시대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하기에는 너무 분량이 많았다. 당시 분량이 커지는 것 때문에 분책을 해야 할 경우 제1권의 끝 사건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제2권의 처음에 이 사건을 길게 설명함으로써 서로 연관된 책임을 표시했다. 누가는 누가복음 끝에서 예수님의 승천기사를 간략하게 보도한 다음 사도행전에서 이 승천기사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을 잇는 제2권 또는 속편임을 표시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을 역사서나 교회의 시작을 알려주는 책으로 생각한다. 일명 맞는 면도 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서신서를 연결시켜 주면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탄생했으며 어떠한 사건들과 경로를 통해 전파해 갔는지를 보여주기에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저자가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이 흘러가는 경로 또는 복음이 세상을 정복해가는 과정을 알려주기 위한 필요한 정보와 자료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 즉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와 저작 년대>저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인데 그는 12제자가 아니었지만 바울과 동행하는 동료였으며 사도행전 후반부에 서술된 사건의 중요부분을 직접 목격했다. 이것은 사도바울과 함께 동행했음을 나타내는 “우리”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16:8-17; 20:5-15; 21:1-18; 27:1-28:16). 기록연대는 60년대초반으로 잡을 수 있는데 로마제국에 대한 친근하지 않지만 중립적인 묘사나 바울 서신에 대한 언급의 부재, 유대전쟁에 대한 언급부재로 인해 적어도 로마황제 네로의 박해(64-66) 이전에 쓰여졌다고 볼 수 있겠다.
<기록목적>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죽음을 당하였으나 어떤 소유도 축적하지 않았으며, 책을 저술하지도 않은 채, 그저 실의에 빠진 소그룹의 제자들만 남겨 두고 간 갈릴리 출신의 예수께서 주신 복음이 어떻게 로마를 비롯한 온 세계를 사로잡아가는지? 흡족한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예루살렘 밖의 언덕 위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께서 삼일 후에 죽은 자를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하나님 우편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접한 이들이 그 복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명령대로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사도행전은 이 역사를 기록하면서 복음을 유대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방인들에게 확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차분히 제시하고 설명해줌으로써 기독교의 역사를 변증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진 복음을 세계만방에 변증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사도행전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만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의 약30%가 강화로 구성되어 있다. 사도행전 2,3,13,17장의 복음적 설교와 15장의 예루살렘 총회에서 행한 연설, 사도행전 20장의 고별사 및 22,24,26장에서의 바울의 변증을 통해서 기독교의 본질을 선포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사도행전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열거가 아니다.
<구조>
널리 알려진 대로 사도행전의 기본 청사진은 사도행전 1:8에 나타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은 예수님의 명령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교회(1:1-6:6)와 사마리아(6:8-9:31) 및 땅끝(9:3-28:31)에 이르기까지 펼쳐짐을 보여준다. 이때 1-12장의 중심인물은 베드로이고 13-28장의 중심인물은 바울이다.
다음구조를 보면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땅끝으로 확장되어 가는지를 알 수 있다.
- 승천과 사명 위임(1:1-11)
- 초대 예루살렘 교회(1:12-6:7)
- 유대와 사마리아(6:8-9:31)
- 이방인에 선포된 복음(9:32- 12:25)
- 안디옥으로 부터의 사역(13:1-15:35)
- 헬라 세계로의 확장(15:36-19:20)
- 체포와 로마여정(19:21-28:31)
위와 같은 지리적인 확장과 함께 우리는 복음이 흥황해 가는 사태를 목격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조를 함께 살펴보면 유익하다.
- 베드로 사도에 의해 주도된 증언들(1-12장)
1) 예루살렘에서의 사도적 증언(1:1-6:7)
2) 새로운 증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을 넘어 확장된 사도적 증언(6:8-9:31)
3) 베드로의 사도적 증언의 절정(9:32-12:24)
2. 바울에 의해 주도된 이방인을 향한 사도적 증언들(13-28장)
1) 바울 사도직의 정립(13:1-16:5)
2) 새로운 이방지역으로 확장된 바울 선교(16:6-19:20)
3) 로마를 향한 바울의 사역(19:21-28:31)
위의 개요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역들이 매 단원 끝날 때마다 “허다한 무리가 늘거나” (6:7; 9:31; 16:5), “말씀이 흥왕” (6:7; 12:24; 19:20)했다는 기록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역한 결과가 반드시 나타났는데 “제자나 성도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서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할 뿐 아니라 “말씀이 흥왕”함으로 교회가 참된 모습으로 견고히 섰음을 증언한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사도들의 사역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1-12장에서는 사도베드로가 주도한 사역과 13-28장에서는 사도바울이 주도한 사역의 개략을 보았다. 베드로는 주로 유대인의 사도로 사역하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하는데 사도행전은 두 사도들의 사역을 같은 선상에서 서술한다. 이것은 첫째 그들의 사역을 비교하면서 진술하는 데서부터 나타난다. 다음 사역들을 흥미롭게 대조해보자.
- 성령으로 가득 참(베드로4:8/바울13:9)
- “이스라엘 사람들아”로 설교함(베드로2:22-36/바울13:6-37)
- 앉은뱅이를 고침(베드로3:1-10/바울14:8-10)
- 죽은 자를 일으킴(베드로9:36-43/바울20:9-12)
- 마술사를 대면함(베드로8:2-24/바울13:6-12)
- 신비한 치유능력(베드로5:15/바울19:12)
- 감옥 착고가 풀어짐(베드로12:7/바울16:26)
- 기도중의 황홀경(베드로10:10/바울22:17)
- 복음전도 위한 환상(베드로10:17-35/바울16:9-10)
-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남(베드로12:7-8/바울27:23-24)
- 세번의 복음적 메세지(베드로2,3,10장/바울13,14,17장)
이렇게 베드로는 바울과 각기 다른 곳에서 사역했지만 같은 일들이 나타났음을 누가는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베드로와 바울은 사역의 내용만 동일한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의 구조에 있어서도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
- 예루살렘으로 돌아옴(베드로1:12/바울12:25)
- 함께 모여 기도함(베드로1:13-26/바울13:1-13)
- 성령의 나타나심(베드로2:1-4/바울13:1-12)
- 사도적 설교(베드로2:14-40/바울13:16-40)
- “여러분이여 왜?” 설교(베드로3:12-26/바울14:15-17)
- 사도들에 대한 박해(베드로4:1-5:42/바울14:19-28)
- 교회의 분란(베드로6:1-7/바울15:1-16:5)
-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베드로10:1-11:18/바울16:6-21:26)
① 환상(베드로10:9-16/바울16:6-10)
② “오라!” (베드로10:22/바울16:9)
③ 이방인 무리들(베드로10:24,44/바울16:31-34)
④ 예루살렘에서의 변호(베드로11:1-18/바울21:17-26)
- 감금됨(베드로12:3-5/바울21:31-28:28)
- 말씀을 막지 못함(베드로12:24/바울28:30-31)
왜 이러한 베드로와 바울에 대한 대조와 비교가 유익한가? 물론 사도행전에 있어서 일어났던 교회의 모든 역사들은 명확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나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셨기에 “말씀이 흥왕”하고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단시간 내에 세계의 핵심인 로마까지 진출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도행전의 강조점이다. 그러나 저자인 누가는 그것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주의 사람들이 어떻게 했느냐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왜 사도행전 1-12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베드로와 사도행전 13-28장에서 복음사역을 이끌어가는 바울을 그렇게도 밀접하게 대비시켰을까? 그들의 사역의 장소와 대상이 비록 달랐어도 그 사역의 내용과 결과는 하나님께 동일하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한 반면 바울은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이방인들을 만나 복음을 심어주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사역은 동일하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들이 어디서 누구를 상대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든지 그들은 사도행전 1:8에 나오는 주님의 명령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자 이런 구조로 기록하였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의 이민 생활을 하고 있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가 감당할 복되고 아름다운 소명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일지를 써갔고, 바울은 이방지역에서 복음일지를 써갔지만 하나님 앞에 펼쳐보았을 때 그 사역들이 얼마나 동일했던가? 우리는 이국 땅에서 서로 다른 직업속에 사역을 감당하지만 우리가 성령에 이끌려 이 일들을 감사히 여기며 수행한다면 우리 또한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아름다운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28장으로 끝나는 사도행전의 뒤를 이어받아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주의 제자가 어디서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전체구조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