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마가복음 개관 – 세상가치에 역행하는 제자도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서 가장 짧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가복음이 다른 두 공관복음서(마태복음,누가복음)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약92%를 공유하고, 누가복음은 약48%을 공유하며 이 두 복음서를 합하면 마가복음 내용의 약95%를 공유한다. 마가는 서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복음”이라고 부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복음서”라고 부르는 네 권의 책에 호칭을 부여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저자>
마가복음은 저자가 자신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작자미상이지만 마가의 글로 인정되고 있다. 외적인 증거로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A.D.60~130년)가 사도요한으로부터 이 복음서의 저자가 마가였음을 들었다고 기록한다. 그는 마가가 모든 자료를 베드로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의 복음서는 사도적 기원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내적 증거들도 여럿이 있는데 특히 본문 속에는 사도베드로와의 연계성이 많이 드러난다. 마가는 누구인가? 그의 모친은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비중 있는 일원이었다(행12:12). 그는 삼촌 바나바와 바울을 따라 일차 선교여행에 동행했으나(행12:25) 이 일을 완수하지 못 함으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게 된다(행13:13;15:37-40).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나중에 회복되고(몬24;골4:10), 후에 하나님께서 마가를 회복시켜서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맡기신다.
<기록연대 및 장소, 수신자>
빠르게 A.D.55경으로부터 늦게는 A.D.60년 또는 64년경으로 본다. 기록장소는 대개 로마로 보는데 그 이유로 첫째로 마가복음이 베드로와 관련돼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또한 마가복음 안에 풍부한 로마적 색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마가는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에 넣은 두렙돈이 로마의 한 고드란트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들어간 뜰은 관정(브라이도리온)으로 부른다. 또한 마가는 로마식 시간법을 사용해서 밤시간을 전통적 유대방식인 세 개의 시간대로 구분하는 대신 네 개의 시간대로 구분한다(6:48;13:35). 또한 수신자 역시 로마인으로 볼 수 있는데 마가복음에 있는 로마색채들(군대, 시위병, 채찍질, 뜰, 백부장 등의 라틴어휘)은 그것을 나타내며 이 증거는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고백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내적 증거들은 마가복음의 첫번째 독자들이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모르고 대부분 유대관습에 낯선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기록 목적>
당시 로마에 있는 이방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좋지 않았다. A.D.49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부터 추방된 사건으로부터 50년대 중반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 공동체의 내부적 갈등 및 로마정부와의 긴장이 존재했다. 또한 A.D.64~68년의 네로의 박해 등으로 인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정체성 확립이 중요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마가는 몇 가지 촛점을 가지고 베드로의 회고에 따라서 4가지 정도의 목적속에서 본서를 집필한다. 첫째로 목회적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자도의 본질을 가르치며, 둘째 선교훈련적 목적으로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준비시키셔서 자신의 사역을 맡기셨는지를 보여주며, 셋째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불신자들에게 보여주는 변증적 목적과 넷째로, 진정한 구세주와 주되시는 분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 썼다고 알려진다.
<개요 및 구조>
간결하고 구체적이며 생생하고 질서 있는 문체로 기록되어 동적인 묘사가 풍성한 마가복음은 크게 두 단원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단원은 권능 있는 메시아를 다룬 1:1-8:26이고, 둘째 단원은 고난의 종을 다룬 8:27-16:8이다. 첫번째 단원은 설명보다는 예수님의 활동에 대한 기사로 가득하며 예수님의 기적을 비롯하여 치유와 논쟁 및 비유에 관한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다. 이 복음서의 전환점은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는 길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대한 신앙고백을 하면서부터 이루어지는데(8:27-30) 여기서부터는 예수님의 임박한 고난 및 죽음에 대한 가르침에 촛점을 맞춘다. 마가복음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권능의 메시아로서의 하나님 아들 예수(1:1-8:26)
1) 광야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준비(1:1-13)
2)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심(1:14-3:35)
3) 갈릴리 및 주변사역(4:1-8:26)
- 고난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8:27-16:8)
1) 예수님의 예루살렘 노정 사역(8:27-10:52)
2) 예수님의 성전 사역(11:1-13:37)
3)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및 부활(14:1-16:8)
<주제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치유행위나 기적을 베푸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또 한 사람의 주술가와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마가는 이러한 치유나 기적의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해석하게 함으로서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마가가 그의 책의 절반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할애하면서 선포한 것은 그의 신앙적 주제가 무엇이었나를 뚜렷이 보여준다. 그의 촛점은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마가는 독자들에게 “약함을 통해 완전하게 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고난을 강조하며 복음서를 기록한다.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을 진지하게 제시함으로써 기독교가 남을 위해 자신을 주며 섬기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는 그런 능력을 소유했음을 논증한다. 이런 능력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것들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즐기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해서 모든 세대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 충성함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과 지위의 하락과 물질적 손실은 결코 그들의 명예하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이야기는 그래서 반드시 고난의 빛 안에서만 올바르게 인식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신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향해 발진한 예수님의 발걸음과 행진속에서 많은 고난이 도래하지만 마가복음은 아주 지속적으로 그 분이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히 증언한다. 이 사실을 1:1에서는 마가가 증언하고, 1:11과 9:7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한다. 3:11과 5:7에서 귀신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다. 또한 13:32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시고, 14:61에서는 가야바의 법정을 통해 선포되고 마지막으로 마가복음의 후반부인 15:39에서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세상에 선포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주요 신앙적 주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와 능력의 상징인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날 때에만 인간의 허황된 욕심과 교만으로 인해 확장되어지는 인간에 대한 사탄의 지배가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탄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의 길인 십자가의 길”에 들어서는 방법밖에는 없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이렇게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를 15번씩이나 언급하면서 강조한다(1:15; 4:11,26,30; 9:1,47; 10:14; 15:23,24,25; 11:10; 12:34; 14:25; 15:43). 이를 통해 마가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사탄의 사악한 재배를 끝내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가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는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심으로 발진된다는 것이다.
이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선포되고 사탄은 그 세력을 잃고 추방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과의 예수님의 싸움과 승리가 마가복음에는 불꽃 튀는 치열함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복음서 중에서 특별하게 사탄의 세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한다(사탄:1:13; 3:23,26; 4:15; 8:33, 더러운 귀신(영):1:23,26,27; 3:11,30; 5:2,8,13; 6:7; 7:25; 9:25, 귀신:1:34,39; 3:15,22; 6:13; 9:38; 16:9,17)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 위해 사탄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셨는데 그 본질적인 도구 겸 무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치열함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지속되고 확장될 것인가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마가는 여기에 대해 진지한 답변을 주고 있다.
우리가 제자도의 길을 걸을 때 이 일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시아 되심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달릴 정도의 다른 사람을 섬기는 모습속에서 그의 주권을 드러내셨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속에서 우리가 본 받고 따라야 할 진정한 제자도를 제시하셨다. 그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깊이 침투할 수 있다. 제자도란 무엇인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 제자도의 길을 간다는 것은 과감하게 세상 사람들의 견해를 비웃으며 주님의 길에 서서 충성되이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가치관과 성공의 법칙을 거부하고 예수께서 취하셨듯이 문화역행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가치에 역행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셨던 섬김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커짐과 성공과 출세와 재력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무한 경쟁하며 뛰어든 상황속에서 이러한 세상적 가치를 전복시킬만한 믿음의 담력을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참된 보람의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마가는 말하는 것이다. 세상적 가치가 최고조로 양양 되어 있고, 힘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중심부에 있는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이다. 참된 희망이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또한 이렇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십자가로 구속 받은 주의 제자들이 당시에 팽배한 성공주의에 몰입하지 않고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제자도를 실천할 때 이 땅에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교회안에서도 자기 영광과 성공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속에서 과연 누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군사가 되겠는가? 마가복음에서 보여주셨던 우리 주님의 모습, 즉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오직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참된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하신 그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이렇게 우리 역시 이 시대속에서 이 시대의 만연한 세상의 가치에 역행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마가복음이 제시하는 진정한 제자도를 행하는 희망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