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말라기서 개관 : 영적 퇴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하나님께서 말라기서를 구약의 마지막 책으로 배열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시간 차분히 살펴 봄으로 하나님의 진정 어린 음성에 귀 기울이도록 하자.
연대 본 서에 연대를 측정할 만한 결정적 사건이나 왕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아서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으나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 보면 주전 435년 경으로 추측할수 있다.
1.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성전 건축을 완성하고 다시 제사를 드렸다. (1:7,10 ; 3:10)
2.성전 재건 때의 열정이 식어서 제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아 (1:7-10,12-14) 성전 완공 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때로 추정할 수 있다. (주전 515년 이후)
3.말라기가 지적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죄의 목록이 느헤미야가 두 번째 총독으로 재임되어서 고쳐야할 죄목들임으로 느헤미야가 두 번째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B.C.432년 보다는 먼저가 될 것이다. 따라서 B.C.435년 경으로 예측할 수 있음
<시대상황>
그 당시는 긴장의 시기였다. 성전 건축과 봉헌 이후에도 왕국의 위대성은 구현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유대 공동체는 페르시아라는 거대제국의 구석에 남은 초라한 속국에 불과 했었고 학개와 스가랴가 예언한 영광스러운 미래가 실현되지도 않았다. 또한 선지자들이 예언했었던 것 처럼 열방들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을 높이기 위해 권능과 엄위로 임하시는 일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그들의 인간적인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현상들이 지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이 궁지에 몰려 있었는데,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 당하고 있었으며 가난한 이들은 빚을 갚을 수 없으면 아들과 딸을 노예로 팔아야만 했었다. 또한 주변을 둘러보면 분투하는 백성들의 고난과는 대조적으로 악한 자들이 번영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새 공동체는 뚜렷한 우상숭배를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열심도 내지 않으면서 부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이와 같이 성전이 재건되고 성전 제사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실제적인 신앙생활과 삶에 있어서는 영성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아 악화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지 않음으로 공동체는 점차 희망을 잃어가게 되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함께 하시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으면서 자신들의 나태함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문학적 분석>
말라기서는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신학적,윤리적 문제에 심각하게 봉착해 있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께서 6번 논쟁하시는 형식으로 기록되어있다.
[첫번째 논쟁 : 1: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백성들은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족속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각별한 하나님의 심정을 표출하신다.
[두번째 논쟁 1:6-2:9]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보여준 모멸에 대한 논쟁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거나 자기 직책을 잘 수행하거나 바른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옛날 레위와 맺은 언약대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진리와 법을 가르치고 화평과 바른 삶을 살도록 요구하신다.
[세번째 논쟁 2:10-17]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긴 것에 대한 논쟁으로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 사이에 만연한 이혼과 이방사람과의 잡혼을 강하게 책망하신다. 어려서 취한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명하시고, 불성실한 일을 행하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그들은 우상숭배하는 이방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동족여인들과 이혼하는 신실치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이 부실하게 되었음을 지적하신다.
[네번째 논쟁 2:18-3:6]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논쟁이다. 선지자는 백성들이 말로 하나님을 괴롭힌다고 논쟁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괴롭혔느냐는 백성들의 질문에 답변한다. 백성들은 정의의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느냐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악인을 더 사랑하고 세상의 정의에 관심이 없다고 불평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조롱이다. 이러한 주장은 학개와 스가랴 시대 이후 성전이 건축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지 않자 회의주의와 냉소주의가 만연하게 된 역사적 정황 때문이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의 대답은 금을 연단하는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처럼 반드시 하나님은 옮은 자와 그른 자를 갈라내시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질 것임을 선포한다.
[다섯번째 논쟁 3:7-12] 회개에 대한 논쟁으로 그들이 조상 때부터 하나님의 법을 떠나 지키지 않았음을 책망하신다. 특별히 말라기 선지자때에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음으로 제사장들의 생계유지가 곤란해져서 성전일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섯번째 논쟁 3:13-4:3] 하나님께 대한 완악한 말을 하는 자들에 대한 논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고 교만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이 더 번영한다고 하나님께 불평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선한 행위와 이름을 기록하는 기념책이 있음을 밝히면서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간에 상벌을 분명히 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선포한다.
이렇게 말라기서는 당대의 이스라엘의 삶의 정황속에서 발생한 여섯가지 문제에 대한 하나님과 백성들의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훈>
첫째로, 바른 예배에 대한 교훈이다. 말라기 선지자가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 갱신이다. 당시의 예배는 타락하고 무성의한 예배였다. 먼저, 하나님을 진심으로 존귀히 여기지 않으므로 눈이 멀고 절뚝거리고 병든 제물 같이 합당치 않은 제물을 바쳤다. 또한 삶의 예배에 있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기며 자기 욕심의 발로 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되지 못했다. 또한 제사장들이 자기 직책에 충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성실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이 같이 된 원인은 하나님의 법을 바르게 가르쳐야할 하나님의 사자들이 편견과 이기적인 목적으로 가르쳐서 백성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예배가 온전하지 못한 삶, 예배가 부실한 교회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설수 없음을 알고 바른 예배를 추구함과 동시에 우리의 삶이 드러나는 살아있는 산 제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온전한 예배이다. (롬 12:1)
두번째로 신학적인 근시안을 극복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들은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안락한 종교’를 원했다. 말씀앞에서 뼈를 깍는 각성과 복음을 위한 부단한 분투보다는 자신의 편의만을 추구하는 기복신앙 수준에 머물렀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공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으로 인해 단순히 자신들의 이기적 만족을 극대화 시키는 보잘것 없는 작은 왕국만을 조각해 내는데 몰두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그림은 없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복원하는 일에 실패하고 한갖 주변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해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시대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라는 큰 그림을 바라보지 못하면 기복신앙이란 근시안적인 신앙에 몰입해서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작은 왕국에만 치중할 수 있다. 이것이 실질적의미의 우상숭배이다.
세번째로,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한 존재(세굴라 3:17)로 삼으셨다. 즉, 그들이 하나님이 택하고 세우신 특별한 존재로 하나님을 섬기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내하고, 세속문화를 변모시키는 대응문화의 창출자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에 실패했다.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인 세굴라는 결혼관계의 신실함 (2:10-16), 사회적 책임을 수행함(3:5),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함(3:16)등을 통해서 신앙적 ,윤리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야 했었다. 그들은 세상의 교만한 자 들이나 허울 뿐인 종교인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하나님 말씀안에서의 신실한 삶이고, 무엇이 퇴락한 세상문화를 저지하고 새로운 삶의 영역을 제공할 대응문화 인가에 대한 뼈를 깍는 각성이 부족하였다. 오히려 그 속에 동화되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뜻을 분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갔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논쟁이 발생한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 이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한 종들을 그 시대에 세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으로 희망을 세우신다. 종교가 부패하여 자기 욕심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사회가 어지러울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이 시대도 하나님의 종들인 신실한 성도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가짜들이 너무 많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기는 본문속에서 신실성(윤리)이 없이는 소망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없이는 진정한 신실성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말라기서를 통해 신실성과 하나님께 대한 열정을 품고 시대를 섬기려는 자세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이 시대의 신실한 종들을 기대해 본다. 시대가 혼탁하고 사상이 불건전 할 수록 말씀을 진솔하게 실행함으로 이 땅의 빛이 되기를 헌신한 그러한 성도를 말이다.
따라서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 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선행하며 길을 열 참된 선지자 엘리야, 즉 요한의 사역을 예시함으로 신약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참된 종들이란 그리스도의 길을 열어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생명력과 빛을 비추는 사역자들이다. 우리가 이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말라기서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 더 나아가서는 구약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참된 호소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만 비로서 우리는 영적 퇴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이 세대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가 있지 않겠는가?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