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사무엘하(1) – 다윗의 상승곡선(1-10장)
교회역사상 가장 실패한 정책은 십자군전쟁이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묘소를 구출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당시 이슬람교도인 투르크가 기독교 순례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095년 11월 26일, 클레멘트 회의에서 예수님의 묘역을 무력으로 회복한다고 주창하고 그 일을 위해 칼을 드는 자에게는 죄를 사면하고 영생을 제공한다는 어이없는 선포를 한다. 마치 9.11테러분자들이 “비행기 폭발과 함께 영혼이 천국에 간다.”라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1차 십자군운동의 시작이다. 이듬해인 1096년 십자군이 라인계곡을 지나는데 그들의 광기에 의해 수천 명의 유대인이 희생당한다. 이슬람을 돕는다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서 역사를 오염시켰던 뼈아픈 예이다. 우리는 깨어 있지않으면 역사적으로 수치가 되는 길을 갈 수 있다.누가 이러한 길을 갔는가? 사울이었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에 줄곧 잘못된 길을 가다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삼상31장)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제 다윗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가 도래하였다. 과연 그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그는 먼저 국내통일 문제에 부딪혔다. 1-5장에서는 국내통일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사울이 전사했다고 다윗이 일거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은 아니었다. 명백하게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지만 유다를 제외한 북쪽의 지파들은 사울의 남은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남유다는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세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이 분단국이 된 것이다. 사울의 친척이면서 장군인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지만 사실은 자신이 정권을 쥐고 이스보셋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2년 동안 심각한 내전상태가 지속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윗의 우세가 증명되기 시작하자 북이스라엘의 아브넬은 이스보셋과 결별하고 다윗 진영으로 와서 남북통일을 위한 논의를 하게 된다. 하지만 거의 성사지경에 이르렀을 때 유다의 제2인자였던 요압이 남북통일의 주도적 역할이 아브넬에게 넘어감을 보고 그를 암살함으로 남북통일은 잠시 미궁으로 빠진다. 그러나 결국 실권자인 아브넬의 죽음으로 권력기반이 없어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군대장관인 바아나와 레갑에 의해 살해되고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대표들이 헤브론에서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간구하고 기름을 부음으로 이스라엘이 통일된다(5:1-5).
이로써 다윗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3번 기름부음을 받는다. 삼상16:13 에서 15세경일 때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삼하2:4에서 약 30세 가량일 때 유대사람들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후 삼하5:3에서 약 37세때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통일왕국의 실질적인 왕이 된다. 이렇듯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 받고 세워졌지만 결국 오랜 기간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들로부터도 마음 담긴 인정을 받는 것도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중요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이 진짜 재목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기름 붓게 하듯이 세상으로부터 “진짜”라고 인정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다윗은 먼저 국내적으로 통일왕국을 완성했다. 한편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다윗이 사울의 보좌에 올라간것은 7년전 사울에게 길보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러한 블레셋의 침공을 격퇴함으로 여호수아가 시작한 가나안 정복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이로 인해서 내부정치를 장악한 후에 나타난 외부의 위협인 블레셋의 공격을 극복함으로 이제 다윗은 세번째 단계인 “신정정치 실현”을 위한 법궤의 이동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윗은 1단계인 내부통일과 2단계인 외부세력 격퇴, 그리고 3단계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해 나아가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6장에서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와서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고(6:9-15) 다윗은 희생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을 축복한다(6:17-19). 이 사건은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먼저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의 축복을 의미한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를 빼앗긴 사건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이었고(삼상4장) 기럇여아림에서 법궤가 머문 것이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의미했다면(삼상6:10-7:2) 이 사건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왕국의 중심부에 머무신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다윗 가계의 합법성을 의미한다. 고대근동에서 신이 한 왕으로 하여금 신전을 짓도록 허락한 것은 신이 그 왕을 인정하고 그의 왕국을 축복하는 표징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더불어 여호와께서는 법궤를 통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심으로 공식적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 거처하심을 명백히 보여주시는 사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3단계 즉, 내부통일과 외부세력 격퇴, 그리고 법궤의 예루살렘 안치로 그의 왕권이 안정되고 합법화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들을 초월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헌신이 있어야 가능함을 사무엘하 7장은 보여준다. 사무엘하 7장의 메시지는 어떤 면에서 보면 전체 구약신학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기럇여아림에서 자신의 왕도로 법궤를 옮긴 다윗은 아직 회막안에 머물러있는 법궤를 위해 성전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나단선지자에게 자신의 결정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승인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승인하지 않으신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함께 장막에 거하시는 것에 만족하셨고, 두번째로 여호와께서 하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한 곳에 심어 보호하시는 일을 행하신 후, 즉 여호와께서 먼저 다윗을 위해 하실 일을 마치신 후에야 다윗의 후손이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지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7:8-10). 이렇게 성전건축 제안을 거부하신 이유를 밝히신 여호와께서는 이를 기회로 다윗에게 무조건적인 약속을 주셨다(삼하7:11-16). 이것이 그 유명한 다윗 언약이고 나단의 신탁이라고도 불리운다.
다윗 언약은 크게 두 가지, 즉 왕조하사와 입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하사하신다는 것이다. 다윗이 여호와를 위해 집을 짓겠다고 하자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가 다윗을 위해 집을 건축하겠다고 하신다(7:11).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그의 백성을 돌보실 다윗 계열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다윗 계열의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안에 왕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를 유지하실 것임을 맹세하신다. 두번째로, 이를 위해 다윗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하실 것을 약속하신다(7:14-15).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 후손왕이 사악하면 그를 징계하실 것이나 그에게서 은총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징계를 받지만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특권이다. 우리는 사울왕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를 폐하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심으로 그의 백성의 길을 안전하게 하신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진행되어져 가지만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언약이 성취되어서 하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보좌가 오늘날 온 땅에 걸쳐 영원한 나라를 다스리신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비록 그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인해 징계를 받게 되더라도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세워주시는 은혜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은혜를 복음이라 부르고 받아들인다.
이것으로서 다윗은 합당한 왕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왔다. 전 이스라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1-5장), 블레셋의 침공을 무찔러 외부의 적으로부터 견고한 나라를 확립하고(5장), 언약궤를 옮겨 예루살렘에 안치하고(6장),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왕조언약을 받게 되었다(7장).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왕으로 서게 된다.
그 이후 8-10장까지는 그가 과연 이렇게 택함 받은 왕으로 왕답게 행동하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워진 이스라엘의 왕 다윗! 그는 과연 택함 받은 왕답게 행동하는가? 그렇다. 먼저 그는 왕국을 견고케 하였다(8:1-18). 다윗은 이제 서쪽의 적인 블레셋, 동쪽의 적인 모압과 암몬, 북쪽의 적인 수리아, 남쪽의 적인 에돔과 아말렉을 모두 이기고 승리함과 동시에 두로와 하맛과의 화친을 맺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승리와 번영을 얻게 된다고 성경을 설명한다(8:8).
그런데 과연 주변의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강대국을 이루는 것이 이스라엘 왕의 중요한 본분인가? 아니다. 우리는 신명기 17:18-19에 기록된 기준에 의해 이스라엘 왕직의 성공적 수행여부가 측정 받을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옆에 두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율례와 규칙을 지켜 행함을 모범으로 보이는 자”이다. 이것이 없다면 국가의 내적 통일도, 외적의 격퇴도,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도 의미가 없다. 말씀에 입각해 살아감으로 주변국의 왕들과 구별되는 모습이 드러나야만 한다. 다름을 보여주어야 한다. 과연 다윗은 그러한가? 그러하다고 성경은 평가한다. 삼하9장에서 다윗은 전 왕조의 왕족인 므비보셋(요나단의 아들)에게 계약적 자비를 베푼다. 사울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게 함으로 왕자로 대우한다. 그는 요나단과 맺은 언약(삼상20:15)을 결코 버리거나 잊지 않고 성실히 지킨다. 우리는 다윗이 과연 하나님이 세우신 왕다운 모습을 갖출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다윗은 이것을 행한다. 고대 근동에서 전 왕조는 결코 다음 왕조로부터 호의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윗은 다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다른가? 다윗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 땅을 오손도손한 형제우애적 공동체로 세워 나아가고 인애와 성실이 넘치는 공동체를 세우는데 헌신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다르게 삶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요청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다윗은 그렇게 했다.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했고 말씀에 입각한 삶을 그의 영토에 뿌리 내리려고 헌신했다.
그래서 국토통일, 외적격퇴,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체험 위에 믿음과 성실함의 반응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이렇게 그는 삶의 전반에 걸쳐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모든 사람이 흠모할만한 멋진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한 인간이요 죄인에 불과한 그가 이 길을 끝까지 올곧게 걸을 것인가? 우리의 궁금증이 증폭된다.
이연재 목사 (라이드예수마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