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에스라.느헤미야 개관 : 온전해져 가는 하나님의 집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다. 후대에 나누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에스라 비망록과 느헤미야 비망록이 따로 나오기 때문 인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저자일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저자가 아니라 후대의 어느 경건한 사람이 여러 자료들을 수집해서 기록하고 전해 준 형태이다. 아마 역대기의 저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대기의 마지막인 역대하 36:22-23 과 에스라 1:1-2 이 동일하기 때문에 연관된 책으로 생각된다.
<배경>
악몽같은 포로시기가 지났다. 포로 됨의 수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부르신 영적이고 도덕적인 이상들을 포기하고 신앙을 저 버린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그러나 이제 죄는 용서되고 새로운 빛이 동 터오기 시작한다. 바벨론이 B.C.539년 메대-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에 의해 멸망한다. 고레스는 이어서 B.C.538년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여호와의 집을 지어도 좋다는 칙령을 발표한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가?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피 정복인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에 연유한다. 일종의 문화정책이었다. 앗시리아와 바벨론처럼 억압정책을 사용하는 대신 각 민족이 소망과 이상을 가지고 살되 페르시아에 충성하게 할 의도였다. 또한 예루살렘을 세움으로 그 곳을 교두보로 하여 이집트의 견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다윗계열의 왕자인 세스바살을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하고 “돌아가 성전을 지어도 좋다” 라고 반포한다. 그때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떠한가?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50년간 다윗가문의 어떤 인물도 물리적으로 예루살렘의 통치자가 되지 못했는데 다윗계통의 세스바살이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임명되자 흥분하였다. 반면, 부정적인 면도 묵과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있었고 그들 역시 바벨론에 삶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닦아 놓은 상태이니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B.C.538년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얼마 후 스룹바벨이 총독이 된다. 이로서 새로운 성전 건축에 돌입하게 되는데, 장애물이 등장한다. 사마리아인들의 성전 재건 참여 요청을 거부하자 그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하고 나온다. 도시를 요새화 한다는 중상모략을 통해서 15년 간 성전 건축을 중단 시킨다.
그 사이에 종주국 인 페르시아의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고레스가 B.C.530년에 전사하고 아들 캄비세스가 왕위에 오른다. 그는 잔인한 폭군이었는데 이집트에 3년간 정복사업을 위해 출정 중 동생인 바르디야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귀국 중에 사망한다. 그리고 다리오가 왕이 되는데, 바로 이 다리오가 고레스 칙령을 확인 한 후 성전 재건 허락을 다시 내린다. 그 후 성전 재건이 순탄하게 진행되어 B.C.515년에 완공된다. 고레스 칙령이후 24년 만의 일이다. 그 후 스룹바벨의 이름이 갑자기 사라지는데 야인이 되었거나 왕정 복구 시도후 페르시아에 의해 실각된 것 중 하나로 생각된다.
그리고 나서 에스라서는 에스라가 귀국하는 B.C.458 년까지 60년 간을 침묵한다. 그동안에 문제가 발생하는데 성전이 완공되어 집회장소가 마련되었지만 공동체의 영성이 좋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병들고 흠있는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으며(말1:6-14) 율법을 집행할 때 편파적인 처신을 했다. 일반백성들은 안식일을 무시하고 버젓이 장사를 했으며 (느13:15-22) 십일조를 내지 않아 레위인들이 생계를 위해 직무를 버리는 일들이 발생했다.(느 13:10) 또한 사회 윤리 및 개인의 도덕적 문제가 초래되어서 부자들이 임금을 착취하고 약한 자들을 이용했으며 가난한 이들이 가뭄 등으로 세금을 못 낼 때 밭을 저당 잡은 후 강매하거나 심지어 노예로 전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제 믿음의 공동체는 스스로 개혁하여 영성을 회복하고 방향을 찾아야 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웃민족들과 사회,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때 등장한 두 개혁자가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 였다. 성전 재건 후 60년 만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지도아래 개혁과 부흥을 시도함으로 포로후기 공동체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도우셨다. 이스라엘의 참된 정체성이 무엇인가?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한 구별된 삶이 아닌가?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율법을 회복하고 60년 전에 스룹바벨을 통해 세워놓은 성전을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한 후 선민 다운 삶을 건축해 나아간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3 단계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견고케 하심을 발견한다. 1단계는 스룹바벨에 의한 제 2의 성전 건축이고, 2 단계는 에스라를 통해 율법을 공고히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3단계로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을 건축하게 하신다. 에스라-느헤미야의 사건은 이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이 율법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포로 후기의 공동체가 그리도 중요한가?
사실은 그들은 평범한 공동체 였다. B.C.538년에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에 의해 유대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고, 율법을 갱신하고, 성벽을 재건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당시에 막강했던가? 그렇지 않다. 아주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강대국의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였다. 페르시아 지배 이후에 헬라화 프로그램을 실행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치하에 있었고(B.C.336-323) 그후 마케도니아의 셀루코스 왕조에 억압을 받는다. 그 와중에 한 줄기 희망이 보여서 마카비 가문의 지도하여 60년 간의 짧은 독립기간을 맞이 하지만 결국 B.C.63년에 대제국인 로마의 침공으로 독립은 막을 내린다.
제2성전 역시 제1성전(솔로몬 성전)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건축물이 었다.
그런데 왜 이 별로 대단치 않은 공동체에게 성전 재건과 율법 개혁, 그리고 성벽 건설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기대 만큼의 영광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예배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치유되는 회복의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400년을 버티게 한 마지막 부흥 운동이기에 중요했던 것이다.
<구조>
에스라- 느헤미야 전체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서론: 에스라 1장 ;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 본론; 에스라 2장 – 느헤미야 7장 ; 하나님 집의 건축
– 결론: 느헤미야 8-13장 ; 지속적 하나님집의 유지(지속적 회복과 갱신)
이 분석이 명확한 것은 본론인 에스라 2장의 서두와 느헤미야 7장의 말미에 이 일들을 감당한 귀환자 명단이 나온다는 것이다. (에스라 2:1-67; 느헤미야 7:6-69)
왜 동일한 귀환자의 명단을 기록했겠는가? 더우기 에스라 5장과 6장 사이에는 60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에스라 3장-느헤미야 6장 까지의 일을 감당한 사람들 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다시 한번 구조를 살펴보자!
1) 에스라 3-5장 : 스룹바벨 중심의 성전재건
2) 에스라 6-10장 : 에스라의 율법갱신
3) 느헤미야 1-6장 :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이 세 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집을 지어간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그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비록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60년) 처음에 돌아왔던 그 귀환자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 율법, 성벽을 세우는 사역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 율법, 성벽의 앞과 뒤를 견고히 받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42,360명의 귀환한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에스라 2:64; 느헤미야 7:66). 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었나?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지금부터 2,500년전, 독립국가도 아니고 대제국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 아직도 속국의 땅인 예루살렘에 주권도 없이 돌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이 무명의 42,360명이 온 세계 만방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사명을 가진 자이라는 말씀이다.또한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너무나도 중요한 원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무명의 헌신자들이 중요하다. 왜 그들이 헌신자라 할 수 있는가? 당시 페르시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70년의 기간으로 말미암아 생활이 정착되고 안정된 상태였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민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다. 돌아오면 역 이민이 되고 폐허속에 있는 고국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할 고단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준비하고 실현해 나아갈 공동체로 세움을 받기 위해 안정된 삶의 터전을 버리고 폐허와 같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집(성전,율법,성벽)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들의 사역이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에서 그들의 명단을 반복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무명의 42,360명이 이 거룩한 일에 부름을 받고 소중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훈>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무명의 헌신자들로 인해 이루어져 간다는 것이다.
목회자나 선교사들에만 의해서가 아니다. 유명한 사역자들에 의해서 만도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설립을 위한 비젼에 불타는 무명의 성도 42,360명이 모였을 때 폐허와 같은 곳에서,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진 것이다. 그래서 작은 우리 각자가 중요하고, 우리 교회들이 중요하다. 우리가 작은 샘물이 될 때, 비로서 그것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두번째로 , 에스라-느혜미야서 구조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집 건축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본론의 처음인 에스라 2장과 본론의 마지막인 느헤미야 7장 사이에는 크게 3가지의 사건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스릅바벨에 의한 성전 건축, 에스라를 통한 율법 갱신, 그리고 느헤미야를 통한 성벽 건축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 건축과 율법갱신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필수적인 일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감한다. 그런데 성전 건축과 율법 갱신에서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마무리 될 때 비로서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 다시말해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집은 단순히 성전이나 율법의 갱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거룩한 성벽도 중요하다. 성벽은 그들의 삶의 터전인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는 곳이다. 실제적인 그들의 삶이 이루어 지는 곳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고, 집에서 성경을 보는 그 시간 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는 진리이다. 성벽으로 비유되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을 무한 강조하는 책이 에스라-느헤미야서이다. 경건의 물줄기는 교회 안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적, 즉 우리의 성벽안에서도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에스라-느헤미야서 에서는 하나님의 집 건축을 성전 건축과 율법갱신에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터전인 성벽의 재건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이원론자가 아니라 세상속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만인제사장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인 확장을 경험하고 기뻐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