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당신은 No(Nein)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부정(否定)의 철학자 니체 이야기

들어가는 말
(1) 우주와 세계, 자연과 역사, 인간과 삶, 그 어느 것 하나에 대해서도 우리는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제한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모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 한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인문학 친구 한 사람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데도 말입니다. 다른 때도 마찬가지지만 오늘 니체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극히 제한된 단면을 볼 뿐입니다. 다만 그 작은 조각이 그를 바라보는 전체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 할 뿐입니다.
(2) 역사는 긍정(肯定, an affirmative, yes attitude)을 통하여 진보한다는 신념을 지닌 이들도 있지만, 그 반대로 부정(否定, an denial, no attitude)을 통하여 보다 더 나아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수적으로는 인생과 역사에 대하여 긍정적이며 적극적 마인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한 마커스 아우렐리우스로부터 시작하여 최근 ‘긍정의 힘’을 종교적 신앙으로까지 만들어낸 조엘 오스틴(J. Austin)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인, 예술가, 문인, 종교인, 철학자, 사업가들이 긍정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긍정의 힘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적극적 사고 못지 않게 부정적이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다 더 인생과 역사를 견인해 나가는 능력이 된다고 믿는 이들도 점증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따르는 철학자들, 과학자들, 심리학자들, 역사학자들, 정치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이를 지지하곤 합니다. 모든 antithesis는 결국 synthesis로 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쉐드 햄스테드(S. Hampstead)의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에 약 5만 가지 이상의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든다.’고 하는 말도 그런 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헴스테드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그 5만 가지도 더 되는 많은 생각들 중에는 부정적 사고가 약 75% 정도이고 긍정적 생각은 25%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들어내는 불평이나 불만 같은 것들도 모두 부정적 사고에 해당될 것입니다. 다만 그 부정과 부정적 사고나 언행을 ‘창조적 부정’이 되도록 할 수만 있다면 부정이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3)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으로 우리는 어차피 한 사람의 인생과 사상, 모두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니체의 크고 넓은 사상의 바다 – 이성, 관념, 로고스, 파토스, 철학, 도덕, 종교, 미학, 음악, 예술, 비극 등등을 다 섭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니체의 사상과 그의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key word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정을 통한 긍정’의 역사입니다. 역사 발전과 개인의 목표 성취는 과연 긍정적인 힘이 더 클까요, 아니면 부정적 태도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칠까요? 오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니체는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 철학자입니다. 그는 부정의 능력을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그런 니체를 ‘부정의 철학자’ 혹은 ‘전복(顚覆)의 철학자’라고 부르겠습니다. ‘부정’(Nein!, No)과 ‘전복’(overturn, subversion)이라는 두 개념을 니체를 이해하는 key word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간추린 생애
19세기 중엽, 지금은 독일 땅이지만 당시엔 프로이센의 작센 지방에서 태어나, 20세기가 시작되던 첫해 바이마르에서 숨을 거둔 철학자 니체는 오래된 서구 정신사의 전통을 깨트리고 새로운 가치체계를 세우고자 전력을 다하여 몸부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그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곤 합니다. 니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독일 루터파 교회의 목사였고 외가 역시 목사의 집안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하여 니체는 어렸을 때 부터 기독교적 삶의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문화를 체득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니체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살 때는 남동생도 죽음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와 두 명의 고모와 한 명의 여동생 등 여러 여자들 사이에서 성장했습니다. 김나지움에서는 특히 음악과 언어에서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음악을 작곡하고 시를 지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에도 심취하였습니다. 1864년, 20살 때 본(Bonn)대학에 들어가 신학과 고대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신학은 중단하고 리츨(Friedrich Ritschl)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겨 철학 연구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로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역사학자 랑케와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를 이어 음악가 바그너였습니다. 바그너와는 퍽 오랜 기간을 마치 바그너의 제자가 될 정도로 가까이 지냈지만 결국 기독교적 신념의 차이로 갈라졌습니다. 뛰어난 석학이었던 니체는 스승 리츨의 추천으로 24살에 박사학위 없이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 문헌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 취임 강연은 ‘호메로스와 고전문학’(Homer und die klassische Philologie)이었습니다. 박사학위는 교수 취임 이듬해인 1869년, 25살에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부터 아무런 시험이나 논문 없이 그 동안 출판된 저술로 수여받았습니다. 이후 독신으로 지내면서 연구와 저술, 강의와 강연을 계속했으나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로 잦은 병치레를 했습니다. 편두통, 류마티즘을 비롯하여 이질, 디프테리아 등으로 시달리기도 했고 거기에다 낙마 사고와 정신발작을 거치면서 병세는 더 악화되어 마침내 35살 때인 1879년 바젤에서의 교수직을 사임했습니다. 그 후 요양을 위하여 유럽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가 188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 마지막 10년은 정신 발작과 정신 졸도를 거듭하며 병원에서 보내다가 1900년 8월 바이마르에서 숨을 거둔 다음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안장되었습니다. 니체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그의 정신착란이 매독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천재였지만 불행했던 철학자’라는 말은 그의 짧은 삶 속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주요 저술 – 니체의 저술 30여권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 몇 가지만 추려봅니다.
‘Also sprache Zarathustra, (188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의 가장 대표적인 책인데 그 원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Also sprache Zarathustra : Ein Buch fur Alle und Keinen,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만인을 위한, 그러나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짜라투스트라’ 라고 번역하거나 표기한 책들도 있지만 이는 한글 맞춤법 표기에 맞지 않습니다.
‘Menschilches, Allzumenschliches, (187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 도덕의 계보’.
‘Die Geburt der Tragoedie aus dem Geist der Musik, (1872) 비극의 탄생’ – 미학, 철학, 문헌학.
‘Jenseit von Gut und Boese, (1886) 선악의 저편’ – 니체 자신이 쓴 차라투스트라 해설서.
‘Der Antichrist, (1895) 안티크라이스트 – 이원론적 기독교 신학에 대한 비판서’.
‘Goetzen-Daemmerrung oder wie Man mit dem Hammer Philosophirt, (1889) 우상의 황혼’ – 소크라테스를 중심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이성주의자 칸트를 비롯한 서구 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서.
‘Ecco Homo, (1888) 이 사람을 보라’ – 니체 자신이 쓴 자서전으로써 자신의 다른 저술에 대한 해설적 내용이 많음.
니체의 저서 한국어 출판 전집에는 1969년 휘문출판사판, 1982년 청하출판사판, 2000년 책세상판 등 3가지가 있으나 니체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책세상판이 가장 방대하고 자세합니다. 모두 21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어판의 주요 번역자들은 니체연구로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평생 그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 온 충북대 정동호 교수, 계명대 이진우 교수, 원광대 김정현 교수, 서울대, 연대, 서강대 강사 백승구 교수들입니다.
니체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개념 풀이
1)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 –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e Zarathustra)’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독일어로는 Zarathustra라고 쓰고 영어로는 Zoroaster(조로아스터)라고 씁니다. 조로아스터란 말은 ‘낙타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래 차라투스트라는 기원전 3천년 경 아리안족의 후예로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서 태어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유목민 사회요 다신교 신앙이 혼재되어 있던 시대에서 인류 최초의 일신교로써 ‘조로아스터교’를 창설했다고 전해집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지혜의 신’이요 ‘선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와 그와 대립되는 ‘악의 신’ 앙그라 마이뉴가 대립하던 중 ‘지혜의 신’이 승리함으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마침내는 선이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는 이런 입장에서 당시 유행하던 동물제사를 금지하고 지혜의 신이 만든 땅, 불, 바람, 물, 이 4가지를 신성하게 보전하도록 했습니다. 흔히 조로아스터교를 가르켜 불을 섬기는 ‘배화교’(拜火敎)라고 하지만 그들이 하루에 5번씩 행하는 의식에서 성화를 보존하기 때문이지 불 자체가 숭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니체는 이런 차라투스트라를 그의 책에서 패러디하였습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풀어갑니다. 차라투스트라는 10여년을 깊은 동굴 속에 있다가 산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연설을 시작합니다. 이 책에는 소설처럼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고 시간과 자리를 바꿔 가면서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만 그러나 소설은 아닙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경구적 형태의 언어를 통하여 서구의 이성주의 철학과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와 그들이 만들어 낸 도덕 체계를 통렬하게 비난, 부정, 전복하려고 합니다. 모두 4부로 되어 있습니다.
2) 초인(Uebermensch) –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초인(超人)이란 글자 대로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인 신을 말하는 듯 하지만 신은 아닙니다. 니체의 초인은 인간이긴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아닙니다. 다윈과 같은 시대를 산 니체는 인간 진화의 다음 단계를 초인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날 침팬지나 원숭이로부터 진화해 온 것이 지금의 인간이라면 훗날 지금의 이 인간은 초인으로 진화 될지도 모릅니다. ‘아 그 때 우리 조상들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했지?’라고 말하는 초인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새로운 인간종족의 출현 가능성과 연계되는 스토리입니다. 카를스루대학의 패터 슬로터다이크(P. Sloterdijk) 교수는 니체의 초인 사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논쟁 중인 이론 중 하나입니다. 독일어의 Uebermensch를 영어로는 ‘Superman’이나 ‘Overman’으로 번역하곤 하는 데 둘 다 적합하지는 않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주로 등장하는 ‘위버멘쉬’는 전통적이며 주어진 현실을 초극하려고 몸부림치는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의 기독교적 도덕과 윤리를 비롯하여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예술 등을 거부합니다. 그는 주어진 사고와 그 시대의 정신적 규범과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는 스스럼없이 대중에게 다가갑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와 같이 산에서 내려와 인간 사회에 들어가 사람들을 깨우치고 가르칩니다. ‘Nein!’ ‘No!’라고 말하십시오! 부셔야 합니다! 전복해야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모든 부정과 파괴는 결국 재창조로 가는 길입니다! 니체의 초인은 한마디로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존재’입니다. 실현될 가능성 같은 것은 따져보지도 않고 그냥 이상적 세계, 꿈꾸는 나라를 그리워하며 ‘자아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바로 초인입니다. 그래서 니체가 등장시킨 초인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는’ ‘자유로운 인간’이라 하겠습니다.
3)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 위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니체 사후 그 동생이 편집해서 발행한 유고집 중 하나입니다. 독일어의 Macht나 영어의 Power는 흔히 ‘권력’이라고 번역합니다만 이는 흔히 ‘정치권력’이라는 뜻으로만 읽힐 수 있어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의지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힘에의 의지’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2000년에 책세상에서 출판한 니체 전집은 ‘힘에의 의지’로 번역했습니다. 니체의 권력의지론은 한 때 나치에서 악용된 적이 있지만 그의 본래 의도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치체제를 힘으로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초인은 스스로 자아를 초극해 내야한다는 이론입니다. 책의 부제에도 ‘모든 가치의 전환을 시도함’이라고 되어 있는 그대로입니다. 우선 니체는 인간이란 그 누구를 막론하고 ‘xxx이 되려는 의지’와 ‘xxx을 해 보려는 의지’ 두 가지 의지를 지닌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인간이 원초적으로 지닌 본성을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라고 불렀습니다. 정치인이 되려는 의지, 사업가가 되려는 의지, 예술가나 학자나 과학자가 되려는 의지로 부터, 권력을 잡으려는 의지, 돈을 벌려는 의지, 남을 사랑하려는 의지, 공부, 운동, 음악을 하려는 의지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니체는 서구의 정신사와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모든 인간들의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의지를 제한, 규제, 억압, 정죄, 컨트롤 해왔다는 것입니다. 지난날 철학과 종교와 도덕은 가장 심각하고 비참하게 거짓말을 통하여 인간을 비겁하게 만들고 모든 ‘힘으로의 의지’를 꺾었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입니다. ‘초인의 시대가 온다. 그는 우리를 비겁하고 어리석고 우매한 도덕에서 벗어나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게 만든다!’
4) 인간발달의 3단계 –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서 주장한 것으로 ‘인간의 정신은 3단계를 거쳐 발전되어 왔다’는 주장입니다. 상징적인 방법으로 그려줍니다. 제1은 ‘낙타의 단계’입니다. 이는 마치 낙타와 같이 뜨거운 사막에서 인내와 순종을 미덕으로 살아가는 단계입니다. 자기보다 높은 것은 숭배하고 말없이 순종하며 고난을 견디는 단계를 말합니다. 제2는 ‘사자의 단계’입니다. 이는 사자처럼 울부짖고 달려들고 먹이를 찾아 싸우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존재와 대결하고 마찰을 일으키며 투쟁하는 단계로 자유로운 정신, 독립적인 정신, 부정과 비판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철학과 종교와 도덕에 대해서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 제3은 ‘어린아이의 단계’입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갓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상징합니다. 삶과 죽음의 터널을 뚫고 죽음의 관문을 지나 새롭게 태어난 생명을 니체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에서 니체의 철학은 부정의 철학이 아니라 긍정의 철학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지난날의 생각과 신념과 가치는 벗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신비를 가슴이 안고 새로운 생각, 새로운 종교,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창조하기 위하여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외치는 ‘힘에의 의지’라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5) 영원회귀(永遠回歸, 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 / Eternal Return, Eternal Recurrce) – 이 개념도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통하여 제시한 그의 사상 중 하나입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니체는 ‘모든 것은 마침내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 “끝은 없다. 종말이란 없다. 모든 것은 돌고 돌면서 순환한다. ‘지금’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과거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과거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미래도 ‘아직’은 없다. 모든 미래는 오는 순간 현재가 되고, 그 현재는 현재가 되면서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already(이미)와 not yet(아직) 사이에서 영원히 돌고 돌아가는 존재이다.” 니체는 시간과 역사를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같은 것이라고 본 듯합니다.
니체는 역사를 ‘영속’으로 이해했습니다. 전생에서 현생으로, 현생에서 내생으로 나아가는 직선적 사관이 아니라 마치 카셋트 테이프가 계속 돌아가듯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역사와 인생의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불교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니체는 ‘영원’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작도 없고 중간도 없고 마지막도 없이 무한히, 끊임없는 되풀이하는 반복입니다. 그야말로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영겁’(永劫)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이란 인도의 여인네가 자기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비단으로 북한산 같은 바위 덩어리를 쓸어내리고 또 쓸어 내려서 그 바위 덩어리가 다 쓸려서 없어지는 기간을 ‘한겁’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그런 겁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우주라고 보는 것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 사상은 헤겔의 변증법적 지향의 한계를 무한으로 확대함으로 역사의 영속적 발전을 주장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 사상 – 부정과 전복을 꾀했던 그의 철학적 사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니체는 지난 날 유럽을 지배해 온 온갖 전통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습니다. 철학과 종교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예술, 관습 등 모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하여 그는 Nein! 이라고 부르짖으면서 그것들을 뒤집어엎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부정과 파괴가 가장 강한 긍정이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무너뜨리지 않으면 결코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유럽의 정신사에서 가장 강력한 이단자였고 반항아입니다. 그는 유럽을 지배해 온 3가지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적 전통과 종교적 전통과 도덕적 전통을 모두 송두리째 부정, 전복한 사람으로써 유럽의 정신사와 종교적 신앙과 삶의 방식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니체는, 유럽의 철학에 대해서도 No!, 종교에 대해서도 No!, 도덕에 대해서도 No!를 부르짖음으로 역사의 이단자와 반항자를 넘어서 유럽 정신사의 새로운 여명을 열고자 했던 고독한 철학자였다고 봅니다.
1) 첫째로 니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데카르트와 칸트와 헤겔을 거쳐서 이어져 온 서구의 지배적이며 주류 사상이었던 이성 중심적 사상사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서구는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이라는 두개의 큰 사상적 흐름이 하나는 이성, 하나는 신앙을 축으로 하여, 서로 타협, 균형, 조화, 절충을 하면서 흘러왔습니다. 그런데 니체는 이 두 가지에 대하여 모두 부정적 입장입니다.
첫 번째는 전통적 헬레니즘(Hellenism)에 대한 부정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 존재 만은 아니’라는 것이 니체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했던 헬레니즘(Hellenism)이 중시하는 것은 ‘이성’ ‘합리성’ ‘논리’ ‘로고스’입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문헌학자였던 니체는 이것들의 뿌리가 된다고 생각해 온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다시 분석합니다. 물론 이것들은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다 압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문학 작품으로만 읽지는 않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는 인간의 생각하는 방식과 삶의 방식이 담겨있습니다. 니체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두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아폴론(Apollon)적 요소’입니다. ‘아폴론’은 태양신입니다. 이는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체계적입니다. 여기에는 냉정함과 질서가 핵심입니다. 문학에서 만이 아니라 그리스의 조각이나 그림이나 조형 예술들이 한결같이 정형성을 지닌 이유는 바로 이런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사유의 방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작품은 둘째로 ‘디오니소스(Dionysos)적 요소’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니체의 분석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입니다. 감각적이며 정열과 뜨거움, 비체계적이며 무질서가 디오니소스의 특징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질서가 아닌 혼돈에서 아름다움이 빗어지고 창조적 생명이 탄생한다고 봅니다. 마치 아무데로 뛰는 럭비공처럼 비정형적이고 무질서하고 취기가 넘치는 박카스의 신이 바로 ‘디오니소스적 정열’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니체는 바로 이 아폴론적 요소인 이성, 균형, 이론, 체계, 분석, 비판성 같은 것과 디오니소스적 요소인 감성, 열정, 무질서, 비합리성, 취기, 광기 같은 두 가지 요소가 함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왔던 것이 호메로스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출발이었는데 그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아폴론적 요소가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무시하고 축소시키고 무화시켜 온 것이 유럽의 정신사였다는 진단이며 비판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유럽은 오직 아폴론적인 이성의 힘만 강조해 왔고 아폴론만 노래하고 이성 찬미가만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써 디오니소스적 창조성과 생명력은 무시해 옴으로 인류 정신사의 균형이 깨트려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감성 위에 군림해 있는 이성을 끌어내려야 한다’ ‘이성 위에 서 있는 감성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감성 위에 서 있는 이성도 문제다’ ‘이성과 감성은 함께 가야한다’ ‘사실 생명의 힘은 디오니소스적인 정열에 있다’ 예술의 힘을 강조하고 음악과 미술, 문학과 연극을 높이 산 니체에게 있어서 이런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헬레니즘에는 ‘로고스적 요소’만 있지는 않습니다. 거기에는 ‘파토스(Pathos)적 정열’도 함께 있습니다. 인간은 머리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사는 존재입니다. 이성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느끼며 함께 공감하면서 살아가는 뜨거운 존재요, 열정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계속해서 부르짖습니다. ‘이성은 죽었다’ ‘이성은 죽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성을 죽일 때가 되었다’ ‘인간은 절대로 이성적 존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구 합리주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그 속에서 이성의 세례를 받고 이성적 교육을 받고 성장해온 니체는 자신을 향하여 묻습니다. ‘나는 참으로 이성적 존재인가? 인간은 정말 이성적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가?’ 역사와 자아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평가하고 성찰하는 양심적 지성인이 된 것입니다. 니체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 합리성과 비합리성, 아폴론적 요소와 디오니소스적 요소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는 이성만 절대시해 온 ‘이성제일주의’ ‘이성만능주의’를 지지해 온 지난 날 유럽 정신사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이성은 죽었다’
2) 두 번째로 니체가 도전장을 낸 것은 서구 기독교 전통입니다. 이는 전통적 헤브라이즘(Hebraism)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는 헬레니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헤브라이즘에 대해서도 동시에 부정과 전복을 시도했습니다. 니체는 이성의 탑을 높이 구축해 온 서구의 철학사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믿음 만능’만 외치며 ‘오직 신앙’만 가르쳐온 서구의 신구 그리스도교회를 싸잡아 비판하고 부정하고 이를 극복해 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니체는 서구 2천년 기독교는 완전하고 철저하게 플라톤적 이원론(二元論, Dualism)의 터전 위에 서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플라톤이 이데아와 현상을 구분하고, 이데아만이 진실되고 영원하며 본질적이라고 하면서 우리 눈 앞에 나타난 현상계란 허상이며 거짓이며 순간적이라면서 오직 이성으로만 이데아의 세계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부터 그냥 그대로 영향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교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이데아는 저 세상으로 대치하고, 현상계는 이 세상으로 규정하고, 이성은 신앙으로 대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가 본 기독교는 플라톤의 변형이고 따라서 극복하고 청산되어야 할 이원론의 잔재였습니다. ‘오직 신앙’이니 ‘오직 주님’이니 하는 말은 ‘오직 이성’ ‘오직 합리성’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본 것입니다. 니체의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이원론을 부정한다면 당연히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천국과 현세를 포함하는 구원론도 부정되고, 이성이 부분적이고 부정되어야 할 것이라면 신앙도 부분적인 것이고 따라서 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치 플라톤이 절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는 이성을 절대화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신앙을 절대화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식으로 저 세상과 이 세상을 나누어서 보고, 이성이라는 도구 대신에 신앙이라는 도구를 대치한 것은 다만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 서구의 정신사의 두 축인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은 똑같이, 함께 극복해 내야 할 숙제라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저 세상을 긍정하느라 이 세상을 부정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기독교는 저 세상으로 가는 방법을 가르치느라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방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기독교는 거짓을 선전하느라 진리를 놓치고 말았다’ 니체는 이런 종교적 지도자들을 ‘생명의 전도사가 아니라 죽음의 전도사들’이요 ‘거짓말쟁이 삯꾼들’이라고 평했습니다.
한때 기독교는 정치권력을 가장한 이성주의와 대결하던 때, 환란과 핍박의 시절에는 천당이나 저 세상, 하늘나라를 강조했다 하더라도, 기독교가 권력을 잡은 다음부터는 그래서는 않되는데 오히려 더더욱 이성과 합리성을 가장한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여전히 죽은 후에 가는 천당을 외치면서 사람들을 노예화하는 ‘노예의 종교’가 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참되고 진실된 종교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을 말해 주어야 한다’ ‘종교는 죽은 후에 천당가는 방법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 주어야한다’ ‘더 이상 면죄부(혹은 면벌부, Indulgence)를 판매하는 도매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입니다. 이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내세적 종교’를 ‘현세적 삶’으로 바꾸어 보려는 도전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각도에서 ‘지금과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직 ‘그 때와 그 곳’만 강조하는 기독교의 신에 대해서 니체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가 말한 ‘죽은 신’이란 바로 인간 삶의 현실에 대하여 침묵하는 신’을 말합니다. ‘지금과 여기를 말하지 않는 그런 신은 이미 죽었다’ 퍽 많은 기독교인들이 니체가 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의 앞뒤는 모두 거두절미하고 그를 평가합니다. ‘그는 무신론자다’ ‘그는 미쳤다’ ‘그는 매독환자였다’ 그러나 니체가 던진 이 ‘신은 죽었다’는 폭탄적 선언은 ‘이성은 죽었다’는 말과 함께 서구 정신사의 양대 주축을 이루어 온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동시 사망선고를 한 것입니다. 이성과 신이 함께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 자신이 목사의 손자요, 아들이면서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자라났고 한 때는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니체는 자기 자신이 진실로 ‘신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믿으며 살고 있는 인간인지를 반성한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니체 자신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유럽의 사상과 종교를 포함한 유럽 문명의 기반이 총체적으로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니체는 정직한 자아성찰을 통하여 양심적으로 이미 유럽에서는 이성도 죽었고 신도 죽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안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던지는 말은 비난이나 터무니없는 비평이 될 수 있습니다만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던지는 말은 통렬한 자기 성찰이요 ‘좀 더 잘해보자’는 뜻이 담긴 충언이 된다고 봅니다. 니체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미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면서 자기를 고발한 참된 지성인이요, 정직한 학자입니다.
똑같은 말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 그 말의 의미는 달라지게 됩니다. 노암 촘스키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악과 불의는 자본주의가 빚어낸 결과이고 그 자본주의 악의 한 가운데는 미국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 노암 촘스키는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자본주의자입니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과 미국을 향하여 자아를 반성하고 자아를 성찰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노암 촘스키와 똑같은 말을 시진핑이나 푸틴이나 김정은이 한다면 우리는 이를 정치적 비난 정도로 듣고 무시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촘스키가 한 이 말은 그럴 수 없습니다. 깊이 새겨듣고 반성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향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도 니체가 하는 경우와 모택동이나 김일성이나 스탈린이 말하는 의미는 다릅니다. 홍길복이 공개적으로 ‘저는 실패한 목사입니다’라고 말하면 이는 홍길복의 자아성찰이고 자기 반성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 말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이는 지나친 비판이나 비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동양 사람들은 이성적 사고나 합리적 삶의 훈련이 서구인들 보다는 약한 편입니다. 우리에게는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과 생활 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처럼 동양적 정서와 유불선 종교 속에서 낳고 자라난 사람들이 ‘이성은 죽었다’ ‘기독교의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다면 그건 성찰이나 반성이 아니라 비난이나 비평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디서, 왜 그 말을 하는가?”는 그래서 참 중요합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의 이 선언은 그 자신과 그가 속한 시대와 역사를 향한 근대 유럽의 지성이 던진 절규요, 냉철한 자기 반성과 성찰로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그 말 한마디만 강조하게 되면 전체적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보아야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문맥을 알고 단어의 뜻을 살펴야 본의가 드러나게 됩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한 다음 이어서 ‘그 신은 어떻게 죽었는가?’를 묻습니다. 늙어서 죽었는가? 힘이 쇠약해서 죽었는가? 사고로 죽었는가? 도대체 신은 어떻게 죽었는가? 니체는 서슴없이 말합니다. ‘아니다! 신은 우리가 죽였다! 신이 죽은 것은 우리들이 그를 죽임으로 죽은 것이다. 우리(너와 나)는 모두 신의 살해자들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문장에다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는 자리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야만 우리는 니체의 생각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사신론자(死神論者)가 아닙니다. ‘신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무신론자(無神論者)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 인간들이, 특별히 서구의 역사를 이끌고 온 지성이 신을 죽인 살해자(殺害者)라고 보았습니다. ‘신은 우리가 그를 죽임으로 죽은 것이지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니체는 오늘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 시대의 우리들 까지도 모두 이 신의 공동 살해범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니체를 가르쳐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 했다. 그는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이들은 사실 자신은 이 신의 살해범이라는 공동 범행에서 벗어나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신을 살해한 살인범들입니다. 문장의 한 부분만 읽으면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전체와 문맥의 흐름을 함께 보아야 온전한 의미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서구의 모든 역사 – 철학사, 종교사,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 예술사 등을 ‘이성 살해의 역사’와 ‘신 살해의 역사’로 보았던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니체는 서구의 전통적 도덕 체계를 향하여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아폴론적 인간 이성에 대한 지적 전통에 대하여 디오니소스적 정열로 문제를 제기하고, 내세지향적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지닌 종교적 전통에 대하여 현세적 삶의 중요성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한 니체는 마지막으로 그 때까지의 서구적 인간 삶의 주도적 방식인 도덕적 전통에 대해서도 ‘아니’(No!)라고 선언합니다.
우선 니체가 던진 도덕 비판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따라가야 할 도덕체계란 없다” “보편적 도덕 기준이란 없다” “도덕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을 하나의 보편적 도덕 규칙으로 옭아매는 것은 기득권자들과 기성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통치적 편리성과 교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작한 것입니다. 만약 온 세상 사람들을 하나의 보편적 도덕율로 묶어 놓으면 인간 개개인들이 지닌 창조성과 생명력과 가능성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생각해야 하고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하고 반드시 이렇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보편적 도덕 규정이 있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기계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니체는 이 인간의 사고와 언어와 행위의 통제, 규제 및 통일성을 가장 악랄하고 교묘하고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세뇌시키고 율법화한 것이 기독교라고 보았습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을 잘못 읽고, 잘못 판단하고, 잘못 교도함으로 인간성 속에 있는 자유와 창조성과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의 윤리와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라고 규정하게 됩니다.
니체는 도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첫째는 ‘주인의 도덕’입니다. 이는 가진 자들의 도덕이요, 강자들의 도덕입니다. 부자들과 정치 권력자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의 도덕입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기에 아량과 베품, 도량과 선행, 고상함과 깨끗함, 용기와 헌신에 있어서 주저하거나 망서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 가진 자들은 통치와 지배, 강인성과 용맹, 결단과 투쟁, 전투와 대결, 꿈과 비전을 높이 쳐주고 이를 고상한 도덕률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노예의 도덕’입니다. 이는 없는 사람들,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의사 결정에서 아무런 주도권도 없는 사람들의 도덕입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생각과 언어와 행위는 순결성, 정직성, 순종, 감사, 겸손, 화목, 부드러움, 인내, 착한 마음, 충성과 같은 것들입니다. 니체는 소위 기독교에서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노예들이 지켜야 할 도덕률’ 이라고 보았습니다. ‘good boy’ ‘good girl’ 하면서 ‘착한 사람 되야지?’ ‘거짓말하면 안되지?” 하면서 순종과 정직을 칭찬하는 것은 모두다 주인이 노예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낸 도덕이라는 겁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도덕이란 인간을 노예화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그는 기독교적 도덕이란 근본적으로 약자들이 강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비겁한 도덕’이라고 불렀습니다. “비겁한 자들의 비겁한 도덕율은 인간을 결코 더 좋은 방향으로 전진시키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는 선하려는 의지, 나아지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가 없다. 인간은 그 누구든지 본질적으로 자아를 실현해내고 환경과 사회를 변혁시키고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나가려는 힘의 의지를 지닌 존재인데 노예의 도덕, 기독교의 도덕은 그런 의지를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런 의지를 꺾어버린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xxx이 되려는 의지와 xxx을 해 보려는 의지를 부정하게 만들고 무력화시켜 그 의지를 꺾어 버린다고 진단했던 것입니다.
좀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여기 돈을 잘 버는 사업가와 사업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음악과 미술 등 재능이 뛰어난 어린이와 그렇지 못한 어린이가 있다고 합시다. 만약 공부를 잘못하는 학생이나 사업에서 거듭 실패하는 사람이나 원래부터 예능적 재능이 별로인 어린이가 ‘내게 능력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야! 그건 하느님이 처음부터 나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신 거야! 세상일이란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되게 되어 있어! 그건 운명이야! 후에 천국에 가면 뒤집혀 질 거야! 참자! 저 세상에 가면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부자는 지옥가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고 하셨잖아!’ 니체는 바로 이런 심리를 비겁한 약자가 강한 자를 시기하여 이기려는 ‘원한에 맺힌 도덕’이라고 불렀습니다. 불평등한 현실을 상상 속에서 뒤집어엎음으로 위로를 주고 위안을 받으려고 하는 종교가 기독교라고 본 것입니다. “약자들은 도저히 극복해 내기 어려운 현실의 비극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원한의 가치관’을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4)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니체는 ‘부정과 비판’ ‘반대와 파괴’ ‘전복과 창조’의 철학자로써 특히 3가지 분야에서 부정의 철학, 부정의 사상, 부정의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첫째는 전통적 철학이 추구해온 이성에 대하여, 둘째는 전통적 기독교가 주장해온 신앙과 그 신앙의 대상인 신에 대하여, 그리고 셋째로는 전통적 삶의 방식인 서구의 기독교적 도덕율에 대하여 그는 단호하고 분명하게(clear and distinct)’ No!’ ‘Nein!’ ‘아니!’라고 하면서 ‘이성(理性)도 신(神)도 도덕(道德)도 모두 사망(死亡)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의 서구적 가치관을 우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니체를 우상숭배적 서구 사상을 전복시키려고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5) 니체가 이렇게 과격하게 보이는 주장을 펼친 이유는 ‘균형을 잡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쪽으로 치우친 사상과 종교와 도덕을 반대편으로 끌어당김으로 삐뚤어진 저울추를 바로 세워 공정성을 유지하게 하고 기울어진 배를 난파당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데 본심이 있었습니다. 역사라고 부르는 커다란 배가 균형 있게 사람과 물건을 싣지 않고 배의 선두나 선미 쪽으로만 과중하게 선적함으로 곧 침몰할 것처럼 보였기에 그는 위험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역사의 배는 항상 공정하고 균형 있게 짐을 실어야만 안전한 운행이 가능합니다. 반대가 없이 만들어진 진리는 언젠가는 들통이 납니다. 모든 진리는 검증과 반대를 통하여 진리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100% 찬성만 얻으면 그것은 무효로 처리하는 것이 옳습니다(‘만장일치는 무효다’ 변정수 지음, 모티브, 2003). 탈무드는 소수 의견은 첨가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의결하는 것은 무효화하는 것이 유대 사회의 전통이라고 일러줍니다. 이스라엘 정부에는 ‘10번째 사람’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10명 중 9명이 동의를 해도 그 누군가 1명은 반드시 반대를 해야만 그 의안을 통과시키는 제도입니다. 사실 이는 정치에서만 그래서는 안됩니다. 종교나 도덕율에서도, 학문적 이론이나 주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장일치는 결코 정상이 아닙니다. 기성제도나 전통, 관습이나 인습에 대해서는 그 누군가 반기를 들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역사는 발전합니다. 가톨릭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 두는 ‘악마의 변호인’(Advocatus Diaboli) 제도는 그 누구에게든지 결함은 있게 마련이고 오판은 극소화 되어야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니 되옵니다” “나는 반대합니다” 니체는 역사에서 그 악역을 맡은 철학자였다고 하겠습니다.
6) 파괴와 전복의 철학자 니체는 어떤 특정한 분야나 특정한 사람이나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만 부정의 논리를 펼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주장, 어떤 사상, 어떤 사람, 어떤 종교, 어떤 역사는 부정하고 또 어떤 것은 긍정한 선택적, 혹은 선별적 긍정과 부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니체는 기존의 모든 사상과 종교와 도덕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부정의 사람’이요 ‘부정의 철학자’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선별적으로 비판하고 부정합니다. 어떤 대통령에게는 지나치게 호감을 표시하고 다른 정치인에게는 가혹하게 비판합니다. 사실 모든 정치인들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인간이 그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을 사명으로 여기는 철학자’는 못되고 그저 정치평론가, 종교비평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누구, 그 어떤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역사와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비판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자, 철학자, 사상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부정과 파괴가 그의 사명이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No Philosophy야 말로 철학자의 사명이요, 철학자의 운명인 ‘아모르 파티’(amor fati)요, 철학의 내용이며 동시에 방법론” 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니체가 끼친 영향과 남긴 과제
이상과 같은 니체의 ‘Nein Philosophie’ ‘No Philosophy’는 이후 20세기와 21세기를 통하여 실존주의, 허무주의, 해체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새로운 사상을 열어 가는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철학, 종교, 문화, 예술, 문학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반대, 경제적 이론(異論), 사회적 다양성, 종교적 포용성을 넘어 ‘관용’(똘레랑스 Tolerance)과 ‘호의’(Hospitality) 같은 현대의 새로운 정신 사조를 가능케 했다고도 봅니다. 특히 니체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부정을 넘어선 그 다음’을 질문하게 합니다. Beyond the No는 무엇인가? ‘부정의 사명’을 넘어서 ‘긍정의 새로운 책임’과 ‘새로운 건설’ ‘새로운 대안 제시’를 질문하게 해 줍니다.
1) 허무주의(Nihilismus / Nihilism) – 니체 이후 20세기 유럽의 정신세계는 니힐리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정의 철학’이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이끌어 간 측면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정의 종착역은 결국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게 되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니다’ 쇼펜하우어로부터 시작하여 니체를 거쳐 더욱 크게 심화된 니힐리즘은 영어의 nothing, 독일어의 nichts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원래는 라틴어 nihil에다 ism을 붙여서 만든 단어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아무 것도 없다’ ‘형태도 내용도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순수 한국말로 ‘아무 것도 안 – 이즘’이라고 표기한 분도 있습니다. 하여튼 니체의 사상은 허무주의 사상을 북돋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2)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 – 해체주의는 일체 지난날의 사상이나 사고방식을 해체시키고 새로운 사상, 새로운 사고 체계,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니체로부터 영향을 받은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 2004, 유대인 출신의 현대 프랑스 철학자)가 대표적 학자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누군가가 꼭 부수고 무너트리고 해체해서 해체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시대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부서지고 무너지고 해체된다. 이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이것이 요약된 데리다의 주장입니다. 해체주의는 니체의 뒤를 따라 유럽의 전통적인 이성이나 신이나 도덕을 비판하는데서 출발했지만 사실은 그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모든 것의 중심부는 주변부로’ ‘모든 것의 주변부는 중심부로’를 모토로 삼습니다. 파괴나 해체나 풀어헤침이라는 관점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해체주의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물론 해체주의에는 부정적 해체, 파괴적 해체(Destructive Destructionism)의 성격도 있지만 그 본래의 목표는 긍정적이며 건설적 해체(Constrctive Destructionism)를 목표합니다. 과거에 대한 해체가 미래를 새롭게 건설한다는 주장입니다. 고전적 명암법을 해체함으로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인상주의와 추상주의가 나왔습니다. 전통적인 대위법이나 고전주의 교향곡과 실내악적 기법을 무시하고 깨트리고 해체함으로 BTS나 싸이가 나왔습니다. 전통적 건축기법, 꼭 성냥갑을 쌓아 놓은 것 같은 건축물들과 도시들을 해체함으로 루블박물관 앞에 유리로 만든 현대적 피라미드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전통은 해체되어야한다. 그것이 사상이든, 종교든, 도덕이든, 정치든, 경제든, 예술이든, 건축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다 부수고 깨트릴 때에 드디어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니체의 뒤를 이은 해체주의는 이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폭넓게 진행 중입니다.
3)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 우리가 아는 대로 ‘전근대 사회’(Pre–Modern Society)는 신과 신화가 중심이었습니다. 그 후 ‘근대 사회’(Modern Society)에서는 이성과 과학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 이후 사회’(Post Modern Society)는
(1) 다양성과 다원화가 중심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을 상대적이라고 봅니다. ‘절대적인 것은 절대로 없다’고 합니다. 다양한 언어, 문화, 관습, 전통, 사상, 종교, 가정형태를 지지합니다. 커피 하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고 자동차나 TV나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은 넓고 선택은 다양하다는 것이 커다란 흐름입니다. 이런 pluralistic society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 존중, 관대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2) 객관적 기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나한테는 사실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정답은 절대로 하나가 아니다’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실험한 것도 각기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3) 따라서 포스트 모던 사회에서는 우월성이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나 취미에 대해서 ‘독특성(Distinctness)를 말할 수는 있어도 우월성(Superiority)을 주장하면 절대로 참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정리하면 니체 이후 현대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종래의 모든 가치체계가 전도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날 소중하게 여겼던 정신, 이성, 신, 종교, 문화 같은 것들은 이제 물질적인 가치로 대치되어 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나가는 말
니체의 ‘부정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우리 각자는 자신을 성찰해 봅니다. “지난날 나는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스님에게, 대통령이나 정부나, 기존 질서에 대해서 반항해 본적이 있었는가? 나는 순종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환경에 저항해 본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당신은 No!를 말 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인문학교실이 지향하는 것은 ‘냉정하고 정직한 자기 진단과 성찰’입니다. ‘나’는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제도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내로남불’이 아니라 ‘내불남로’의 심정으로 자기를 성찰함으로 시대성찰, 역사성찰로 나가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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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