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그리스·터키·한국 여행일기

또 하나의 여행 일기 : 터키·그리스·강진·안동
① 시작한지 만 3년이 된 ‘시드니 인문학 교실’은 그간 교실에서 나눈 지식을 ‘역사의 현장’에서 확인해 보기로 하고 약 8개월에 걸친 준비 공부를 하고 2019년 10월 22일부터 26명이 그리스와 터키와 한국의 강진과 안동으로 단체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② 인문학 여행을 위한 기초 자료는 홍길복이 정리하고 참가자들이 각 분야별로 자료를 조사해 모았습니다.
(a) 그리스 신화에 대하여 – 강성형
(b) 그리스 철학에 대하여 – 김 클라라
(c) 아테네 대하여 – 이성열, 최부옥
(d) 크레타에 대하여 – 김선희
(e) 코린토스에 대하여 – 백문경, 정성미
(f) 올림포스에 대하여 – 조혜옥
(g) 델포이에 대하여 – 한정희, 한종춘
(h) 마테오라에 대하여 – 김용강
(i) 갈리폴리에 대하여 – 천순자, 천옥영
(j) 셀축과 에페소스에 대하여 – 김동숙
(k)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에 대하여 – 임운규
(l) 소아시아 7교회에 대하여 – 최창식, 최혜순
(m) 밀레투스에 대하여 – 박혜경
(n) 카파도키아에 대하여 – 이길선, 이길남
(o) 이스탄불에 대하여 – 계응준
(p) 고대 그리스 건축에 대하여 – 임현명
(q)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바다 이야기 – 임현명
(r) 이퇴계와 도산서원에 대하여 – 주경식
(s) 정약용과 다산초당에 대하여 – 홍길복
이상 모두 19분의 자료 조사를 한곳에 모았습니다.
③ 이 첫 번째 ‘인문학 여행’의 조직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장: 백문경, 기획: 주경식, 총무: 임운규, 재정: 김동숙, 사진: 주경식, 임운규, 정보 및 가이드: 홍길복, 의료: 천옥영
조장: A조-김용강, B조-한종준, C조-계응준
④ 이 첫 ‘인문학 여행’에 참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총 26명)
(a) 인문학 교실의 인문학 친구들 – 백문경, 한종춘, 계응준, 박혜경, 김용강, 천옥영, 김마리아, 김클라라, 임운규, 강성형, 주경식, 김동숙, 이길남, 홍길복(14명)
(b) 인문학 친구들의 지인과 친구들 – 최창식, 최혜순, 정성미, 최부옥, 이성열, 한정희, 김선희, 천순자, 이길선, 김혜옥, 최윤경, 임현명(12명)
⑤ 여행지역(총 16지역, 13박 14일)
(a) 그리스 지역 – 아테네, 크레타, 코린토스, 올림피아, 델포이, 마테오라
(b) 터키 지역 – 차낙칼레, 샐수스, 에페소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밀레토스, 카파도키아, 이스탄불
(c) 한국 – 전남 강진, 경북 안동
2019년 10월 22일(화) 시드니(Sydney)-맑고 상쾌함, 인천-선선한 가을.
월요일은 종일 Millie네 집에서 얘기와 같이 놀고, 여행을 앞두고 현철이와 Eve 생일카드 써서 우체국에 가서 붙이고, 김형동 장모님댁 공과금 납부하고 좀 걸었다, Chloe네가 화장실을 수리중이어서 아이들과 같이 모두 학교 끝난 후에 지혜가 와서 아이들 샤워시키고 저녁먹고 여행 잘 갔다오라고 인사했다. Millie도 바짝 커가고 Chloe, Ollie, Ellie는 모두들 철이 들어간다. 이길남이 종일 Millie 보고, 아이들 밥해 먹이느라 고생이 많다. 그래도 이날로 Millie네 집에 한 주에 두 번씩 가는 것도 마지막 날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Millie 외할머니가 와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애기 보느라고 수고했다는 말도 하면서 돈도 주었다. 모든 것이 다 고맙다. 집에 와서 가방 다시 챙기고 한 10시경에 잠이 들었는데, 어김없이 2시에 일어나서는 다시 잠이 들지 못해서 뒤치닥 거리다가 4시에는 일어났다. 다시 여행 보따리 챙기고, 여러 가지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점검했다. 모든 전기의 플로그를 다 뽑아 놓았다. 샤워하고, 집안 문단속하고, 집열쇠 하나는 어제 Millie네 집에다 놓고 왔다. 지은이와 지혜에게 Whats Apps으로 소식전하고, 이성열 선생님 내외가 준비가 공항 픽업 자동차를 타고 비행장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을 모두 만나게 되었다. 이성열 선생님 내외가 우리를 위해서 돈도 내 좋아서 우리는 꽁짜로 공항에 왔다. 감사한 일이다. 갈 때도 그리 하겠다고 하시니 참 좋은 이웃사촌을 만난 셈이다.
시드니공항에는 현명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Millie와 같이 동영상을 보고, 공항 라운지에서 급히 커피와 빵 한 조각 먹고, 모두 만나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감기로 고생하는 주경식 교수도 좀 새 힘이 나는 듯했다. 제일 연세 높은 최창식 집사님도 괜찮아 보인다. 준비하고 공부를 함께한 인문학 친구들이어서 벌써 오래된 지인들이 된 듯하다. 감사하다. 11시간이나 되는 긴 비행이 지루하긴 하다. 안소니 킨이 주연을 한 ‘희랍인 조르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옛날 흑백영화였지만 이번에 우리가 가는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Zorva, The Greek”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가면 11월 21일 인문학 모임에서는 이 작품을 다 같이 읽고 독서 토론회를 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얼굴을 지닌 인간 조르바, 그리스인, 그에게서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 나의 이중성을 발견해가는 작품이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최광렬 목사님댁 식구들을 반가이 만나 준비한 선물 – 이길남이 정성껏 뜨개질해서 만든 무릎덮개 2개와 그동안 판매한 내 두 번째 잡기장 “생채기 없는 자작나무는 없다”를 판매하고 후원해준 책값, 최목사님 지원 선교비 9천불을 드렸다. 정말 여러분들의 사랑과 후원에 깊이, 크게, 뜨겁게 감사드린다. 공항에서 한 1시간 이야기 나누다가 다시 여행에서 돌아온 후 구미정 선생님이랑 같이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Millie네 외삼촌인 채광이를 만났다. 반가웠다. 아버지를 모시는 수고가 많은 젊은이다. 같이 이곳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와서 우리 팀과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헤어졌다. 우리 여행 팀원들은 모두 같이 한 호텔에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하고 33 55씩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9시경에 모두 각자의 룸(Room)으로 흩어졌다.
오늘 첫날, 좋은 출발이다. 서로 따뜻하게 인사하고, 문안하고, 배려해주는 사람들이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도 2년 만에 은주엄마를 만나서 참 좋다. 늘 어머니를 가까이 두고 지난 40년 동안 L.A에서 딸노릇 정말 열심히 잘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길 빈다. 이번에 우리 시드니팀과 같이 L.A에서 와서 join하게 되었다. 우리 식구들만 해도 넷이나 같이 여행하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은주엄마도 이젠 70이 넘었다. 말없이 덤덤하게 믿음직스럽다.
2019년 10월 23일(수) 인천-약간 구름 따뜻하다 / 이스탄불(Istanbul).
이스탄불(Istanbul)로 가는 대한항공이다. 인천시간 오후 1시 40분에 출발하여 벌써 10시간 반을 날아왔다. 참 힘들고 지루하다. 아직 1시간 반 정도가 더 남았다. 그래도 이젠 거의 다온 것 같다. 시드니-인천-이스탄불의 거리는 약 1만 7,000km 정도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2시다. 아주 좋은 호텔이다. 새벽에 일기 쓰고, 묵상하고, 기도했다. 모든 일행이 평안하고 건강하도록 주님의 은총을 빌었다. 새벽 5시에 피트니스 센터(Fitness Centre)에 가서 60분, 5km를 열심히 걸었다. 두 번이나 샤워를 하고 땀 흘린 것을 닦아내니 기분이 좋다. 오늘 우리 일행은 새벽 운동하는 사람이 나와 현명이 뿐이다. 33 55 모여 아침식사를 느긋하게 했다. 서로 이야기 많이 나누었다. 좋은 친교가 된다. 11시경에 체크아웃(check out)을 하고 공항에 나왔다. 공항 라운지에는 현명 이와 같이 갔다. 시드니의 현철이와 통화했다. 다 잘 있다고 한다. 지혜네도 잘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순간순간마다, 감사한 것뿐이다.
비행기는 정확히 출발했다. 그러나 말이 12시간이지 정말 힘들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었지만 눈이 많이 침침에서 책을 읽지는 못했다. 이스탄불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반 정도다. 바람의 영향 때문에 서쪽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리나 보다. 출발부터 강행군이 되어서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 팀은 남자가 10명, 여자가 16명이다. 최창식 집사님이 80, 현명이가 38로 제일 젊다. 비행기에서는 당뇨식을 신청했는데 모두가 맛이 없다. 그래도 어제 그랜드 하얏트(Grand Hyatt) 호텔에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는 모두 뷔페식으로 아주 풍성했다. 이제 짧게 자도 푹 자야 하는데 나이 들면서 보통 하루 4시간 정도 잔다. 한 5시간만 자도 좋겠는데 그게 잘 않된다. 이 다음 일정은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진행되는 일정을 기록하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오늘 일정은 이쯤 해 둔다. 이스탄불 도착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7시 반경이 된다.
10월 24일, 목요일 새벽 1시 반이다. 꼭 3 시간을 자고 나니 다시 잠이 오질 않는다. 우리 일행은 어젯밤 7시 반경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이곳 신시가지에 있는 Tüyap Palas Hotel에 도착하니 밤 10시경이다. 공항에서 거의 1시간 거리, 새 호텔이다. 12시간, 8,000km가 넘는 장거리 비행에 모두가 지치고 피곤해졌다. 점심과 저녁은 모두 기내식이었다. 나는 당뇨식을 신청했는데 정말 맛은 없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왔지만, 그 좁은 이코노미(Economy) 자리에서 모두들 녹초가 되었다. 가이드가 비행장에서 우리를 영접해 주고 터키와 이스탄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곁들이면서 호텔로 인도했다. 밤은 깊고, 몸은 지쳐서 즉시 잠이 들었지만 3시간을 자고 나니 다시는 잠이 오질 않아서 이렇게 어제 미진했던 기록을 남겨놓는다. 문제는 오늘부터다. 강행군이 시작될 것이다. 새벽 4시 반에 출발하여 아테네로 간다. 그 다음은 종일 아테네에서 앞서간 인문학의 선배들 만나려고 한다. 소크라테스(Sokrates), 플라톤(Platon),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디오게네스(Diogenes), 에피쿠로스(Epicurus) 등 앞서간 인생의 선배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또 나를 발견해 보려고 한다. 감사해야지. 조건이나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이 감사하는 인간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 또 하루를 시작한다.
2019년 10월 24일(목) 이스탄불(Istanbul)-약간 흐리다. 아테네(Athene)-아주 좋은 가을 날씨.
새벽 2시에 눈이 떠졌다. 겨우 3시간이나 잤을까? 씻고, 일기정리하고, 인터넷신문도 읽고, 일찍 호텔 로비(Hotel Lobby)에 내려왔다. 모두 반갑게 인사했다. 서울서 조인(join)한 최은경 씨가 떡을 가져왔다. 맛있었다. 이른 새벽 여행사 직원이 마련해준 아침 도시락을 먹고 4시 반에 호텔을 떠나 이스탄불(Istanbul)의 구공항에 왔다. 우리 가이드 송하룡 씨는 친절했다. 끝까지 잘 챙겨줘 우리 일행은 무사히 이스탄불을 떠났다. 7시 40분에 떠난 비행기는 9시경에 아테네(Athene)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새로운 가이드 류학현 씨가 마중해 주었다. 송하룡 씨나 류학현 씨나 모두 다 자상하고 친절하게 우리는 가이드 했다. 이스탄불의 Tüyap Palas Hotel을 출발하면서 첫날 첫 성경은 이길남이 시편 20편을 암성해서 읽었고 내가 짧게 기도하고 출발했다. 모두들 잠은 많이 부족했지만 밝고 명랑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테네(Ahene)에서 우리는 오전에 근대 올림픽(Olympic), 1896년에 다시 시작한 올림픽 스타디움(Olympic Stadium)을 불러보고 사진을 찍은 후, 산티그마(Santagma) 광장에 가서 무명용사와 민주주의 탄생 이야기를 들은 다음, 고대 아카데미아(Akademia) 터전에 세워진 그리스 학술원과 아테네(Athene) 대학과 도서관 등을 둘러봤다. 모두가 정말 인류의 지성이 출발한 그 자리에서 나의 이성과 양심을 다시한번 더 되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진정 지성인가? 양심에 충실하고 이성적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이 새벽 다시 나를 돌아본다. 지금은 10월 25일 금요일 새벽 4시, 크레타(Crete)로 가는 Anek Line 큰 배 안이다. 깨끗하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글도 읽고, 짐도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refresh하면서 일기장을 펼쳤다. 짧은 Diary Memo도 했지만, 이렇게 어제를 되돌아보면서 일기를 쓰는 시간, 나는 정말 행복하다. 집에서는 늘 일지식으로 간단히 쓰지만, 지난 20여년을 여행 때마다 여행일기를 쓰는 기쁨이 크다. 뭐 누가 읽고 들어줄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나를 반성하고 글 쓰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좋은 습관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모든 여행지에서는 가능한한 현지음식을 먹으라고 읽고 배웠지만, 흔히 한식을 많이 찾게 된다. 오늘 아테네에서의 런치는 맛있고 풍성했고 편안하게 식사했다. 모두들 새벽에 아침 식사가 부실해서 좋은 날씨 가운데 편안히 먹은 점심과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한종춘 목사님 내외분이 쏜 커피 한 잔과 조망과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이후 우리는 가이드의 해박한 해설을 들으면서 아크로폴리스를 올랐다. Herodion Articus, Nike 신전, 에렉시온 신전, 그리고 동서남북에서 둘러본 파르테논 신전과 역사 배경 이야기, 그 높은 고대 도시 국가 위에서 내려다본 아고라(Agora), 아레오바고, 제우스 신전, 사도 바울, 아테네의 민주 정신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처음으로 소크라테스 감옥터까지 다 찾아보았다. 너무나 보람이 있었다. 내 인생의 스승 소크라테스(Sokrates), 플라톤(platon),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를 거기서 다시 만났다. 그들의 글과 그림에서 벗어나 나는 이제 그들의 얼굴과 영혼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는 나를 대면한다. “인간 홍길복, 너는 진정 너 자신을 아느냐?” 저녁 9시 우리는 크레타(Crete)로 가는 Anek Line이라는 큰 배안에 몸을 싣고 아테네의 Piraeus 항구를 떠났다.
2019년 10월 25일(금) 크레타(Crete)-하늘도 바다도 편 세상에서 하루를 행복하게 지냈다.
나는,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그대를 만나고, 그녀를 만나고, 또 그것을 만난다.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보는 것은 그가, 그녀가, 그리고 그것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아니, 그 무슨 반응을 보여도 전혀 상관없이 내가, 내 생각, 내 입장, 내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만남이란 전혀 다른 것이다. 나도 그와, 그녀와, 그것을 보지만 그와, 그녀와, 그것도 나를 보아야 우리는 서로 만나게 된다. 나는,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생이란 이 여행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 만나야 하고, 만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남이란 meeting인가? 아니다. meeting이란 단순한 접촉, Touch일 뿐이다. 만남이란 encounterng이다. 부딪침이다. 나와 그가, 나와 그녀가, 나와 그것이 부딪힐 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사상과 인생의 교감하고, 부딪치고 마찰과 파열음을 낼 때, 우리는 만나게 된다. 나는 어제 소크라테스 선생님, 플라톤 선생님,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을 비롯하여 디오게네스와 에피쿠로스를 만났다. 거리에서,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와 아래오파고에서, 숲과 거리와 언덕과 골짜기에서, 살아있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나도 할 말을 하면서, 하루를 행복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또 한 사람을 만났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베네치아 성채 높은 언덕을 찾아간 것은 이른 아침이다. 6시에 Anek Line에서 내린 우리는 멋지고 근사한 아침식사를 한후, 제일 먼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누워있는 언덕을 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묘비에 쓰여 있는 Greek을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진리를 향해,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찾아 한 평생을 달려온 한 선배 지식인을 만났다.
“오늘을 사는 내가 아는 것은,
누군가가 살아온 과거를 보고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살며
후손이 살아갈 미래를 위하여
걸어가는 바로 이 하루도
나는 오늘 그 자리에 서 있다” – 시드니인문학 회원 김용강
“What is Life?
Life is the Peace
Peac means Carpe Diem” – James KANG from Sydney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림이 된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 이성열, 최부옥
니콜스 카잔차키스를 찾아온 우리 인문학 친구들 중 몇 분이 아침을 먹은 호텔에 방명록에 남겨놓은 글을 읽으면서, 나는 더 이상 첨부할 글이 없었다. 그것이 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오늘 모두 죽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살아있는 모습을 다시 만난 후 언덕을 내려왔다. 사실 이젠 그냥 집으로 가도 될 것 같은 날이다. 오전과 오후, 우리는 미노아 문명의 발상지였던 크노소스 궁전터와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했다. 과도 있고, 지나친 점도 있었지만 Arthur Evans경을 생각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온 인간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탐욕? 투쟁? 죽고 죽인 파괴? 정복? 생존? 경쟁? 희생? 포기? 희망?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아울러 볼 수 있는 개념은 무엇인가? 자유다! 카잔차키스의 말이 맞다! 인류의 역사는 영원한 자유의 저변 확대사이다! 헤겔의 외침이 다시 귓전을 울린다. 물질로 부터의 자유, 욕망으로 부터의 자유, 당신으로 부터의 해방,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으로 부터의 자유를 통하여 나 자신으로 부터의 자유! 그것이다! 바로 이 자유를 향한 작은 몸부림들이, 큰 문명과, 더 큰 역사와, 더 큰 종교와, 사상을 만들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면서 변증법적 전환을 거듭해 왔다.
10월 26일 토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씻고, 짐을 챙기고, 생각을 가다듬고, 오늘 생일을 맞이하는 아들 현철이와 현명이 밀리를 생각하면 기도 한 후, 어제 난생 처음 찾아온 크래타섬과, 디도기념교회와 차잔차키스의 무덤과 크노소스 궁전터, 고고학의 의미, 성서고고학이 해야 할 일,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의 현 주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좋은 인문학 친구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평화, 평강, Peace를 기도하면서 새로운 날에 문을 연다. 좋은 친구, 강성현 선생의 크레타를 방문하면서 써 놓은 Peace는 무엇일까? 그는 Life에는 아무런 관사를 붙이 않으면서도 Peace에는 정관사 The를 붙였다. “Life is the Peace” 무슨 평화일까? “인생은 바로 그 평화”라고 생각하는 “그 평화”가 마음과 육체, 정신과 종교, 정치와 경제, 너와 나,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온누리에 평화가 임하기를 빈다.
2019년 10월 26일(토) 아테네, 코린토스, 올림피아, 파트라,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모든 지역이 다 맑고, 상쾌하고, 환상적으로 좋은 날씨였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크게 신적인 것이고, 가장 크게 신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그걸 반영하고, 또 그걸 가르친다. 높은 곳에 세워진 아크로 코린토스(Acro Corinthos)를 바라볼 때나, 낮은 강변에 자리 잡은 고대 올림픽(Olympic) 경기장과 그 앞에 있는 제우스와 헤라 신전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 인간으로서 가장 크게 추구하고, 사랑하고, 이뤄내고픈 소망, – 그것은 굳이 기독교만이 아니라, 역사를 통하여,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든, 인간들이 한결같이 추구해온 신적인 것이다. 신이 되고 싶어 했다. 신과 같이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신화나 아크로폴리스나 아크로 아테네, 아크로 코린토스나 올림픽에서의 운동경기나 모두가 제의적 행위에 표현이 된 것이다. 오늘은, 아니 어제라는 말이 맞다. 지금은 27일 주일 새벽 2시이니까 이미 어제가 되었다. 한 3-4시간 깊이 자고 나니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일기장을 펴놓고 어제를 생각하며 글을 가다듬는다.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또 그렇게 행동할 만 넉넉하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는 것,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는 것, 심지어는 서두르거나 굼뚜게 움직이는 것까지 인간의 모든 제각기 다른 사고와 언어와 행위는 결코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재된 배경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 한사람, 한사람만이 아니라, 집단과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개성은 다양해지고, 문화와 문명은 풍성해진다. 크레테의 이라클리오를 밤 9시에 출발한 Anek Line은 아침 6시, 정확하게 다시 아테네의 남쪽에 있는 커다란 외항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테네한인교회를 27년째 섬기는 정순욱 목사님을 만났다. 어제 우리의 여행팀의 그리스 가이드인 류학현 선생에게 이야기했더니 전화를 해주었다.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동안 나도 은퇴를 했고, 따라서 총회에 가지 못하다 보니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참 반가웠다. 오래전에 “지구에 배꼽” “신들도 꿈꾸는 그리스 섬기행” 그리고 “아테네의 사계” 같은 퍽 유익한 아테네, 그리스 그리고 아테네의 섬들에 대한 여행기, 수필집을 내셨던 분이고, 텍스트보다는 주어진 컨텍스트에 성실하게 임하는 목회자인데, 짧은 한 30분 정도의 만남이었지만, 문안, 목회, 3년 남은 은퇴 후의 계획, 나의 “이민 목회자들로써 은퇴하신 이들의 consultation”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아쉽게 헤어졌다. 우리 가이드 류 선생도 아테네한인교회 남선교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고, 함께 식사한 한인 식당의 주인되시는 이도 이 교회 은퇴장로로써 30여 년을 넘게 여기서 살고 계신다고 한다. 모두들 시간이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디아스포라 코리안으로 또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찬들로 한몫을 감당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주말, 토요일. 우리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반쯤이나 되는 긴 거리를 달리면서 고대 도시 고린도 유적지와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물론 고린도 운하를 건너면서, 우리 가이드는 운하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히 주었고, 고린도 유적지를 둘러보고, 그 이후 올림ㄹ피아로 가는 차안에서 사도 바울의 선교 행적까지 소상히 설명해주었다. 대부분 교인들인 우리 인문학 여행 팀원들에게는 많은 공부가 되었으리라. 물론 나는 아침에 일어나 출발하기 전에 그 동안 여러분들이 애써서 만든 우리 “인문학 여행 가이드북”을 잠깐이라도 다시 펼쳐본다. 그래도 그 안에 다 쓸 수 없었던 내용들이 잘 보충되어 있어서 참 고마웠다. 나는 출발할 때도 강성현 선생의 “그리스 신화” 클라라 선생이 쓴 “고대 그리스 철학 이야기”부터 다시 읽고, 첫날을 최부옥 선생과 이성열 선생 내외 가다듬어 놓은 “아테네 이야기”는 물론이고 김선희 선생이 자세하게 써주신 “크레타섬과 그 문명”도 참 유익하게 읽었는데, 오늘 출발해서 보게 되는 코린토스와 올림피아에 대한 가이드북도 다시 읽었다. 치과의사답게 꼼꼼하게 쓴 백문경 선생 내외의 “고대 코린토스와 현대 코린토스 운하 이야기”, 몽골에 있으면서도 조사해서 보내준 조혜옥 사모의 “올림피아 이야기”는 우리 팀의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사실 하나에 거의 완성된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쓰고, 발표하고, 듣고 그걸 다시 책으로 엮어 낼 때 이미 충분하게 다듬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어제와 오늘, 내일과 모레, 우리는 그져 아는 것만큼 보이는 세계를 조금씩 확인해 보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코린토스 운하, 코린토스 유적지를 올려 본 후, 점심을 먹고 긴 드라이브를 했다. 이번 우리 여행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후에 다시 해야 하겠지만, 식사는 정말 거의 최상급이었다. “현지에 가면 현지 음식을 먹으라”는 말에 충실하게, 풍성하게, 건강하게 준비해 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올림피아에서 나는 고대 올림픽 주경기장, 190m, 왕복 400m를 천천히 달려보았다. 다른 여러분들과 같이, 그리고 올림픽에 참가한 제각기 다른 도시 국가들의 선수들, 4만여 명의 관중들, 그리고 저쪽 뒤, 산언덕 위에서 선수와 관중을 함께 내려다보는 철학자들을 상상해 보았다 Life is the Peace를 떠올리면서 평화의 세상을 그려본다. 그리고 내 안에 내 마음과 정신이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 상업주의와 탐욕으로 더럽혀진 세상에서 그래도 평화, 자유, 사랑을 위하여 읽고, 듣고, 나누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행복한 사람들” 때문에 감사한다.
2019년 10월 27일(주일) 페트라(Petra)를 비롯하여 델포이(Delphoi)와 메테오라(Meteora), 모든 지역이 푸른 하늘, 신선한 가을 날씨 / 좋다. 그리고 감사한다.
지금은 메테오라(Meteora),-천상에 떠 있는 도시와 수도원들의 성지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 Kalampaka에 있는 Antoniadis Hotel 201호실에서 새벽 3시에 여행일기장을 펼쳐 놓는다. 어제는 몸도 많이 지쳤고, 나 스스로 마음을 추수리느라 무척 심신이 힘든 날이었다. 그래도 이 새벽 나는 또 다시 나를 반성한다. 끊임없이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또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알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책상 앞에 걸려 있는 거울에서 내 얼굴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비추어 본다.
마침 새벽에 읽었던 이부영 선생님이 쓴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처음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남성 속에는 여성이 있고, 여성 속에는 또 남성이 있다. 그 남성성 속에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라하고, 반대로 그 여성성속에 있는 남성성은 아니무스라고 이름한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용모도, 기능도, 생각도, 신체의 구조나 정신의 세계가 다 다르다. 그렇다면, 남자의 영혼과 여자의 영혼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분석 심리학에서는 좀처럼 영혼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데 융은 일단 영혼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영혼이 있는 심리학”-독일어로 Psychologie mit seele다. 심리학을 심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Seele의 문제에서 접근하여 Anima와 Animus로 나누어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시도가 참 흥미롭다. 여행중에 이런 책을 소개하고 읽어 보라고 준 김동숙 관장이 참 고맙다. 하여튼 나는 그 무엇이든 “다 다르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생각을 같이한다. 다른 것은 축복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다른 것은 옳고 그런 것이 아니고, 틀리고 맞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비록 경우에 따라 그걸 받아드리는 것이 정말 어렵고, 고통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 큰 원칙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노력이다. 끊임없는 자기 포기, 겸손, 수용성 훈련이다. 우주는 넓고, 만물은 다양하고, 인간은 여럿이기에 그 모든 것은 아름답고, 신성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하여튼 우리 일행은 Greece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Petra에서 이른 아침 이오니아해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저 바다건너에 있는 이태리와 스페인을 건너 대서양을 상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시는 천옥영 권사님은 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새벽을 열심히 사진기에 담는 것을 보니, 집에 돌아가 화복에 다 옮기실 모양이다. 이오니아에서 에게로 연결되는 긴 해협을 끼고, 아름다운 절경을 구경하면서 우리는 거의 2시간 반이나 달려 Delphoid에 올라왔다. 깍아지른 산등성이에 세워진 신탁의 도시 Delphoid에서 우린 박물관과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우는 옴파로스 앞에서 사진도 찍고, 낙소스의 스핑크스, 청동마부, 황금으로 만든 소, 그리고 소크라테스 선생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친절하고 자상한 류학현 가이드의 설명을 잘 들었다. 멀리 펠로폰네소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이 신탁의 도시를 떠났다. 오이디프스와 안띠고네를 떠올리며, Sophokles와 테베성을 머릿속에 다시 그려보면서, 옛것에서 새것을 찾고, 새것 속에 있는 옛것들을 다시 들추어낸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황은 늘 죽고 죽이면서 바뀌어도 결코 왕비는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 어떤 신화 해설서를 생각하면서 아침에 읽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보잘 것 없는 돌덩이 하나를 이 신탁의 땅에 세워 놓고, 여기가 세계의 배꼽이라고 했던 그 보잘 것 없는 상상은 이제 옛것이 되었다. 세계의 배꼽은 어디일까? 백악관? 청와대? 천안문과 자금성? 바티칸과 제네바? 그렇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그는 누구인가? 자유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는 고대 일곱 명의 현인들이 남겨놓은 경구들이 남아있다.
“너 자신을 알라” “너무 과하게 하지도 말고, 너무 부족하게도 하지 말아라” “All things in Moderation!” “Committment brings Misfortune” 집착이 불행을 가져온다.
또 다시 차는 달렸다. 중간에 우리는 버스와 운전기사를 바꾸어 가면서 마침내 어둠이 내린 Meteora의 작은 수녀원에 도착했다. 수년전에 찾아왔던 Grand 수도원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고맙다. 늦게까지 문을 열어주어서. 정교회 수도원의 내부를 다시 살펴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성스테파노 수녀원은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칼람바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이 작은 수년원은 수많은 성화들로 꾸며져 있었다. 지금은 불과 10여명도 않되는 수녀들이 남아 있지만 뛰어난 프레스코화들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는 너무 늦은 시간에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을 튀어먹듯이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아쉬운 것은 내일도 일정에 쫓겨, 일류의 문화유산중 하나인 그랜드 수도원과 그 내부는 그냥 사진만 찍고 스쳐 지날 수밖에 없어서 우리 팀원들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세게 10대 불가사이 가운데 하나인 14세기의 수도원들 – 메갈로 메테오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수도원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른다. 오래전 대 수도원에서 본 해골들을 생각한다. 전시된 유골들은 희고, 붉고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수백 명의 지난날, 이 수도원에서 평생을 지내다가 죽은 수도사들의 유골이 하나님의 집에 안치되어 있었다. 빈부유무식, 성인 속인 가릴 것 없이 인간은 다 죽었고, 죽고 있고, 또 죽을 것이다. “메멘토 모리” Mement mori! Remember to die! 수도사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죽은 선배 수도사들의 유골중 하얀 유골은 살아생전 White Wine을 많이 마신 이들이고, 붉은 해골은 Red Wine을 주로 마신 분들이라고! 시신과 죽음 앞에서 이런 joke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라 불리우는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이리라! 메갈로 마테로라는 오덥고 침침한 곳이 아니라 밝고 환한 곳이다. 그리스 땅에 있는 900여 개의 수도원들은 어두워 가는 땅에 희망의 빛을 비추는 인류의 희망중 하나라고 본다. 주일 아침, 버스를 타고 주경식 목사님이 드린 기도와 내가 암송하면서 읽어 드렸던 골로새와 빌립보서의 말씀, 그리고 우리가 함께 부른 “찬양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는 노래를 “희망과 평화의 길”로 이름해 본다.
2019년 10월 28일(월) 메테오라(Meteora)에서부터 테살로니키와 알렉산드로폴리스까지의 그리스 전 구간은 맑고, 청명했다. Gelibolu에서부터 차낙칼레와 아이발릭에 이르는 터키 지역은 약간 흐리고 얕은 구름이 낀 날이었으나, 어두운 밤이 이어져서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날씨는 그렇고, 우리 일행은 오늘 녹초가 될 정도로 긴 거리를 달려왔다. 새벽 6시 반, Meteora 아랫마을 Kalampaka에 있던 작은 호텔 Antoiadis를 출발하여 550m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공중에 떠있는 수도원들을 올려도 보고, 내려도 보고, 앞에서도 보면서 감탄을 했다. 사진을 찍고 메갈로 메테오라 수도원의 내부를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긴 길을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가이드 류학현 선생의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나는 지난 화요일부터 어제 주일까지 6일 동안 쓴 여행일기를 모두 다 읽어 드렸다. 여행일기를 쓰고, 또 그것을 함께 share하는 것까지도 여행의 한 part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달리는 차안에서 사도 바울의 제 2차 선교여행을 중심한 선교여행지와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면서 베뢰아, 데살로니기, 빌립보, 네압볼리 등 친숙한 지명들이 있는 도시들을 스쳐서 늦은 오후에 국경에 도착했다. 출국과 입국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까지 가이드해 주신 류학현 선생이 다시 아테네까지 돌아갈 여정이 걱정이 되었다. 하여튼 우리는 터키로 잘 넘어 왔다. 새로운 가이드 송하룡 선생과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우리는 어두운 밤, Orpsala를 지난, Gelibolu라고 불리우는 Galipoli를 지나면서 이미 준비공부 때 천옥영 권사님이 잘 준비해 주셨던 Galipoli 전투와 세계 제 1차 대전에 대한 글을 반추하였다. 버스를 탄 채 에게 해협을 건너 버스는 어두운 밤길을 달리고 달렸다. 끝내 여기까지 와서 호주의 시민권자들로써 Galipoli 격전지를 방문하여 묵념 조차도 못하고 떠난 것이 참 아쉽다. 또 밤을 지나오면서 유명한 Troa의 목마이야기가 남아있는 차낙칼레를 스쳐온 것도 미련으로 남아있다. 가이드 송선생은 버스에서 열심히 설명을 이어갔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 대부분은 너무 지쳐서 졸면서 겨우 녹초가 되어 아이발릭에 있는 Grand Hotel에 도착하여 밤 11시에 저녁을 먹었다. 20여년 전 장신대 학생과 교수들과 같이 Lebanon산맥을 넘어 Syria의 국경을 넘어 그 추운 겨울에 밤 12시 넘어 호텔에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29일, 화요일, 터키의 국경일, 새벽 4시다. 겨우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어제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여행일기를 기록해 둔다. 이제 조금 후에는 아침을 먹고, 다시 7시엔 출발하여 에페소까지 가야한다. 아이발릭에 대한 아쉬움을 남겨놓고. 그렇다.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우린 어쨌든, 모든 것을 다 경험 할 수 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작은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않된다. 부분들을 모아 전체를 구성하는 작업을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의무이다. 여행을 많이 한 우리 딸 지은이가 언젠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빠, 여행이 남긴 가장 큰 레슨(lesson)은 감사에요. 전 이제부턴 모든 것에 다 감사하면서 살 수 있어요” 내 딸에게서 나는 배운다. 전에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배웠지만 지금은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많이 배운다. 한때는 교수였던 내가 이제는 그때의 그 학생들을 내 선생으로 여기는 것도 똑같다. 선생도 제자가 되고, 제자들도 선생이 되는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2019년 10월 29일(화) 아이발릭, 에페소스, 밀레투스, 파묵칼레 등 에게해 연안의 터키 서부 해안가와 그 도시들은 거쳐 오는 동안 날씨는 맑고, 기온은 적당하고, 여행하기에 아주 적당한 좋은 날씨였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지금은 또 다른 역사가 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반드시 죽을 때가 오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이루어 놓았던 것들도 언젠가 가는 반드시 폐허가 되고 돌무더기로 변할 때가 올 것이다. 여행 내내 역사가 가르쳐 주는 lesson은 바로 이것이다. “홍길복, 절대로 교만하지 말아라. 반드시 죽을 때가 오고, 잊혀지는 날이 온다. 홍길복, 진짜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찍이 솔로몬도 말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그 찬란했던 그리스의 문화, 사상, 철학, 신화, 희곡, 종교, 신화, 이제는 다 길거리의 굴러다니는 돌멩이들이 되어 버렸다. 그 크고 웅장하과 화려했던 로마의 건축물도 – 신전, 극장, 도서관, 주택과 도시계획 등도 이제는 다 ruin이 되고 말았다. 정말 산 것은 죽고, 있음은 없음이 되고, 존재는 무가되고, 영광은 부끄러움으로 변하는 때가 온다. 겸손해야 한다.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be passed away다!
늦은밤 12시가 다되어 들어갔던 아이발릭의 Grand Hotel은 깜깜한 시간에 들어가 어두운 새벽에 나왔다.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식사도 맛을 음미할 틈도 없이 서둘러서 먹고, 그 자리를 비웠다.
어둠을 가르면서 달리고 달리는 우리 버스는 남동쪽을 향해 계속 내려왔다. 7시 반 출발, 10시반 에페소스에 도착했다. 가죽명품가게에 들려 몇몇 분들은 옷을 샀다. 그후 우리는 에페소스 유적지를 둘러보기에 앞서 이른 점심부터 먹었다. 우리는 현대의 Ismir, 그 옛날의 버가모를 pass하고 아름다운 항구도시 쿠사다시도 스쳐지나 여기 흩어진 돌덩어리 깨어진 잔해속에서 역사를 뒤적거린다. 사도 바울과 Hera Kleitos를 만났다. Domotian과 로마의 황제들도 다시 만났다. 가치의 충돌, 생각의 대립, 영원과 순간, 권력과의 싸움, 그 모든 옛날의 현장 속에서, repeat되고, repeat되는 오늘을 본다. 김동숙 관장은 몇 개의 돌기둥만 서 있는 셀수소도서관 터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녀의 도서관 사무실에 이 고대의 사라진 도서관 사진을 걸어놓으면 어울릴 것이다. Sophia Arete, Ennoia 그리고 Episteme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그 옛날 이미 12,000여권의 두루마리 도서를 갖추었던 셀수스도서관, 그 앞에서 김 관장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우리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신전터를 둘러보면서 신화를 비신화해 오느라 애쓴 인류의 지성사를 들여다보았다.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들의 스토리이고, 인간들은 스토리이고, 인간득ㄹ은 모두가 다 신들이 되었다. 굳이 로마의 황제들만 신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인간들은 황제들은 그렇게도 집요하게 신이 되려고 신의 자리에 앉았고, 신적 권위를 쥐려고 몸부림쳤는데 신은 그 반대로 인간이 되었는가? 도성인신! Incarnation!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도전이며 역전이며, 인간들을 향한 신의 싸움걸기인가?
에페소스를 뒤로하고 늘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Miletus에 도착했다. 여기 역시 없다. 그는 없고, 그의 제자들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우리는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학파 밀레토스학파가 남긴 우주와 Arche를 여전히 다시 질문하면서 Miletus의 무너져 내린 극장터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을 뿐이다. Thales와 Anaximendros와 Anaximens가 던졌던 의문과 질문, 그들의 소박한 도전과 대답들을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 보았다. “정말, 진짜로 우주와 만물의 Arche는 무엇일까?” 물인가? 불인가? 흙인가? 공기인가? 무한인가? Aperion인가? 원자인가? 도대체 우주의 본질, 근본, 기본, 그 기초는 무엇이란 말인가?
질문을 위대했다. 해와 달, 일신과 월식, 밀려오는 에게해의 파도들, 수평선 넘어 그 무엇을 생각하고, 천둥과 번개 앞에서, 바람과 파도와 해일 앞에서 그이들은 질문을 던졌다. 뭐가 본질이냐? 신화와 신비앞에서, 그냥 말없이 믿고 믿으라고 했던 시대에 그들은 질문, 의문, 이성적 도전을 던진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했던 인물들이지 아니한가? 오직 하나의 대답만 가능케 하는 질문은 그 질문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인간과 인생에는 오직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의 삶을 수학의 미적분과 기하학으로 풀 수 있겠는가? 여러개 다른 대답을 가능케 하는 질문이 참된 질문이고, 질문다운 질문이다. 탈레스는 그래서, 대답보다는 질문을 위대하게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또 몇백년 지난 다음, 우리는 이미 지나온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우주의 Arche를 묻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우주와 만상의 본질과 기본이 뭐 그리 중요하냐 이놈들아! 정말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시도하는 너의 인간들이다! 인간아! 너 자신을 좀 알아라! Know your self! Gnothi Deauton! 자연철학의 땅에 와서 자연철학을 넘어선 Greece 세계, Hella 문화권 전체를 다시 되새김질한다.
우리는 여기 이오니아 땅에서 또 하나의 Oracle을 받았다. 아폴론 신전을 찾았다. 델포이 아폴로 만이 아니라, 밀레투스의 아폴론도 신탁을 준다. 신의 계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우리네 초라한 마당신, 부엌신, 안방신부터 시작하여 델포이나 밀레투스의 아폴론신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표현대로 이름조차도 없는 무명용사의 신들까지, 모든 하늘은, 모든 땅에, 모든 신들은, 모든 인간들에게 수없이 많은 계시를 내리고, 문명을 결정에 주고, 생각과 삶과 역사를 지배해왔다.
꼭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 일행은 마이크를 돌리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 자신의 신을 만났고, 역사와 조우했고, 자신들을 재발견했으리라! 강행군 속에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영혼은 자유로운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하나님은 자꾸만, 거듭해서, 그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고 하시는데, 우리 인간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자꾸만 신이 되고, 신의 권능을 휘둘러보려고 온갖 잡일들을 만들어내는데, 그래도 탈레스는 신들의 껍질을 벗겨 비신화화를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더 나아가, 이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는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으니, 나는 오늘도 그저 그게 고마워서, 이 Greece-Turky 여행길을 걸어간다. 홍길복씨-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나를 향하여 “Who are you?”라고 묻다가, 이젠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What is I?”를 질문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2019년 10월 30일(수) 파묵칼레와 카파도키아(Capadocia), 여기까지 오는 모든 지역들이 다 아름답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지난주 22일, 화요일, 시드니를 떠난 후 부터 오늘까지 9일째, 가는 곳마다 거의 날씨가 참 좋아서 여행하는데 별로 큰 어려움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밝고, 기분 좋게 뒷받침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여기는 카파도키아에 있는 By Capadocia Hotel이다. 그냥 Capadocia Hotel하지 않고, 그 앞에다 By를 붙인 것이 신기하다. 카파도키아(Capadocia)에 있으면서 카파도키아 근처라는 하는 것은, 아마도 “그 카파도키아”에 접근한 호텔이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한 것 같다.
하여튼 어제 30일, 수요일, 이날도 우린 아침 일찍 별로, 그렇고 그런 호텔식 아침식사 후 히에라폴리스의 노천 온천에서 발을 담구고, 사진을 찍고,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던 라디오 교회를 생각해 보았다. 신은 자연을 창조하고, 인간과 자연을 파괴한다. 모든 건설은 언제나 파괴에서 비롯된다. 인간들은 부시면서도 세운다고 생각하고, 파괴하면서도 뻔뻔하게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악한 존재이다. 히에라폴리스도 어디에나 뒤덮인 인간들-관광객이라 불리는 자연 파괴자들이 지천에 가득하다. 호텔에도, 길에도, 관광지 어디에도 인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나도, 우리 일행도 그들 중에 섞여 있다. 지구는 병에 걸렸다. 점점 더 시름시름 해진다. 이러다 필히 죽을 것이다. 지구의 종말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게 아니라 인간들이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그들보다 더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예외없이 모두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탐욕의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국 같은 정치인, 트럼프 같은 장사꾼만이 아니라, 크던 작던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이 패션 쇼(Fashion show)를, 보고 물건값을 흥정하며, 자신과 타협해 간다. 이번 터치에서는 유독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상점에 들르게 해주는 가이드도 마찬가지이다. Desidero ergo sum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이 내 속에 있는 가지고 싶고, 되고 싶은 욕망, –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알고 싶고, 그래서 남보다 더 돋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성이 언제나 Diogenes 앞에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게 될까? 부끄럽다. 이 새벽 나는 추악한 내 모습, 위선적인 내 얼굴을 책상 앞 거울 앞에서 다시 확인한다. 거울에는 얼굴만 비추는 줄 알았는데, 아 놈이 내 속마음을 허니 빛이 비추어 주는구나! 2천500년 전의 디오게네스(Diogenes)와 에피크루스(Epicurus), 소크라테스(Sokrates)와 그보다 더 앞서갔던 이곳 이오니아와 그리스 땅의 지성들 때문에 그나마 다시 자신을 반추하고,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곳 터키의 동부지역에 흩어져 있는 쿠르드(Kurd)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몇 마디 거들었다. 디아스포라 코리안으로서 세계 최대의 디아스포라 쿠르족을 생각해보고 그들이 슬픔과 아픔을 위하 다른 일은 못해도 하느님께 기도는 드려야 하리라. “주님 나라없이, 주권없이 떠돌이로 살아가는 이 지구의 걸인들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크루드족, 시리아 난민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어, 인간들이 좀 더 더불어, 함께, 같이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시 옵소서. 탐욕에 찌든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은 물론이고, 오늘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까지도 좀 더 영의 눈이 떠지게 하시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주시옵소서”
이까짓 여행 일기가 무슨 힘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처음은 나를 돌아보는 출발이 되고, 또 기회가 되는 대로 남들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도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 어제까지 장거리 버스투어는 끝이 난 셈이다. 10월이 가는 마지막 31일과 새 달 첫날인 11월 1일, 목, 금, 이틀은 여기 카파도키아를 둘러보고, 비행기로 이동하여 이스탄불 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인천으로 날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큰 사고없이, 아니 작은 사고 하나도 없이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과, 서로 서로 챙겨주고, 남들을 배려해 주면서, 말없이 섬겨주신 분들이 참으로 고맙다. 어떤 이들은 무심코 지나가는 일도 눈여겨보고 살펴주는 이들이 참으로 감사하다. 많던, 적던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같이 먹고, 자고, 공동의 과제를 위하여 행동할 때 우리 각자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중에는 좀 더 현실적인 사람도 있고 좀 더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 진정한 공동체 삶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훈련이 되지 않았다면, 이 다음 천국에 가서도 “함께 살고” “더불어 사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이기적이다. 예외가 없다. 다만 우리는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적 본성과 싸우면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볼 뿐이다. 남들에게도 쉼 없이 말에 왔고, 나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죽을 때까지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 사람이 되자! 그것이 인간의 정도이다” 너무 일찍 모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한다. 무척이나 위험한 사람이다. 회의, 갈등, 모순, 생각하기, 자신에태클(Tackle) 걸기 – 이런 것들이 기본이다. 항상 “나 구원받았네. 우리 구원받았네” 하면서 춤추며, 웃으며, 자신을 속이고, 흥분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사실 지옥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이 새벽도 작은 일기장 앞에서, 구원받은 기쁨이 아니라, 주신 구원을 이루어가는 진지함과 마주하며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 이젠 카파도키아에 와서 처음으로 Air Balloon을 타러 나간다.
2019년 10월 31일(목) 카파도키아(Capadocia)와 여러 지역들, Derinkuyu, 우치하사르, 괴뢰메 등은 정말 바람 한점 없이 좋고 평온한 날씨가 종일 이뤄졌는데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비가 줄줄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일정이 아주 좋은 날씨 중에 이어졌는데 오직 이스탄불만 비가 내린다. 어제 밤 12시가 넘어서 이곳 이스탄불의 유럽 지역에 있는 Tüyap Palas Hotel에 들어왔다. 지난주 수요일 밤 여기에서 묵었는데 오늘은 두 번째다. 지금은 11월 1일, 금요일이다. 드디어 달이 바뀌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1시 넘어서 잠이 들었다. 5시에 눈이 떠졌다. 한 3-4시간 잔 셈이다. 아침에 시간에 쫓겨 어제 여행 일기를 제대로 기록해 둘 틈이 없어 보인다. 조금 있으면 또 출발해서 오늘은 종일 이스탄불 시내 관광을 하고, 저녁 무렵에는 여기를 떠나 인천으로 가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틈이 있으면 저녁에 이스탄불 공항이나 아니면 서울행 비행기에서 일기를 써야 할 모양이다.
이스탄불 공항 스카이라운지다.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어제, 수요일은 밤 12시가 넘어서 카파도키아에 있는 By Capadocia Hotel에 들어갔다. 정말 멀고 먼 길을 달려왔다. 파묵칼레에서 여기 카파도키아까지 종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10월 31일, 목요일, 아침. 우리는 또다시 4시에 일어났다. 6시에는 Balloon을 타기로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현명이가 내 티켓을 사고, 은주엄마가 이길남 티켓을 사주었다. 아침 해가 돋을 무렵 우리는 하시간정도 이옷 카파도키아 전역이 내려다보이는 높이 1,000m까지 하늘을 오르내리는 열기구를 탔다. 장관이다. 일생에 한번쯤은 해 볼만한 경험이었다.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이 참 놀랍다. 호텔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좀 쉬다가 드디어 이곳 눈물과 고난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죽음과 거룩함을 통하여 아름답게 창조된 또 하나의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였다. 괴뢰메 계곡, 우치하사르언덕, 바위 속에 있는 영혼, 지하에서 들리는 찬양, 데린쿠유와 파사바 계곡을 돌고 돌아,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면서 카파도키아 지역을 방문하고, 비행기를 타고 마침내 이스탄불에 돌아왔다. 시작했던 곳이 마치는 곳이 되고, 마치는 자리는 또 새로운 출발지점이 된다. 놀라운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 교통은 막히고 거리는 복잡했다. 겨우 Traffic Jam을 건너 호텔에 들어오니 또 밤 1시였다. 정말 온 몸과 온 마음으로 견디어 내는 강행군이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성? 그렇다. 그러나 믿음? 그렇다. 신념과 믿음, 그리고 신념에, 믿음에 모든 것을 다 걸고, 목숨을 바치는 것도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요, 결단이다. 도대체 초기 그리스인들과 그 공동체는 어떻게 그 끔찍한 인간적 고통과 죽음과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더 생각해보고 풀어 나가야 할 숙제로 내 앞에 다시 다가온다. 카파도키아는 죽음의 계곡이 아니라 생명의 계곡이고, 슬픔의 골짜기가 아니라 환희와 승리의 새 하늘이 열리는 곳이라는 생각을 거듭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성만이 아니라, 이성을 넘어서는 용기, 결단, 신념까지도 포함이 된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나”, 이 “나”라는 인간은 신념과 믿음에 따라 사는 인간인가? 자신이 없다. 내 속에 있는 추함이 나를 비웃는다. 내 안에 있는 부끄러움이내 얼굴을 붉게 만든다. 카파도키아는 오늘의 문명과 위선, 오늘의 교회와 크리스챤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 카파도키아를 다시 방문하면서, 내 영혼이 다시 순화되어 가는 경험을 한다. 더 이상 보거나, 듣거나, 읽지 않아도, 더 이상 만나거나, 부딪치지 않아도, 여기 오래전 암혈과 토굴 속에서, 유리하며, 칼에 짤리고, 톱에 켜이면서도 영원, 진리, 참된 가치를 위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버렸던 인간선배, 사람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팀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신비한 절경, 이해하기 어려운 땅의 비밀, 지구의 기기묘묘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렇다. 그 속에 있던 사람들, 그 속에서 살았고, 그 안에서 죽었고, 그 안에서 출생과 삶과 죽음의 길을 걸어갔던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생각과 신념을 지녔기에 그렇게 인생의 길을 선택했을까? 돌보다 묘한 것이 인간이고, 버섯바위보다 신기한 것이 인간이고, 지하 20층, 땅굴 속에서 낳고 살다간 그 인간들 – 그들이 신비다. 모든 신비한 것은 거룩하고, 거룩한 것은 아름답다. 모든 놀라운 것 안에는 하느님의 얼굴이 있고, 모든 알 수 없는 것 중에는 신의 뜻과 손길이 있다.
카파도키아를 다시 그려보면서, 나는 이번 인문학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인간을 찾아서 가는 길, 그리고 마침내는 나를 찾아서 가는 길목에 서서 한참을 머뭇거린다. 과연 나는 어떤 인간인가? 아니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인간이긴 한가? 나와 짐승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먹고 싶고, 갖고 싶고, 되고 싶어하는 이 동물성과, 거룩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인간성이라는 이 양면성 안에서, 나는 오늘도 여전히 갈등한다. 싶게 분노하고, 자주 좌절하면서도, 그래도 괴로워하고 아파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남아야지… 그러면서 오늘도 나는 내 길을 걸어간다.
2019년 11월 1일(금) 이스탄불(Istanbul), 종일 비가 내리고, 흐렸지만 이스탄불(Istanbul)에서 관광하는 동안은 그래도 크게 비가 내리지 않았다.
아침에 출발할 때 최부옥 선생님이 소박하고, 진솔하게 드린 기도대로 우리 모든 것이 다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루 하루, 오늘 그리스-터키 여행 마지막 날까지 감격과 이해, 배려와 협력 속에서, 어느 누구 한분도 심하게 편찮으시거나 처지지 않고 잘 진행하여 왔다. 인구 2천 5백만 명이나 가까이 되는 이스탄불은 인구수로만 치면 호주 전체 인구와 거의 맞먹을 정도이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Traffic Jam은 생각을 훨씬 벗어났다, 호텔에서 시내까지 나오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우리는 이날도 그 흔한 관광지에서의 쇼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스에서는 전 일정 중 한 번뿐이었는데, 여기 터키에서는 현지의 로컬 가이드(Local Guide)가 3일 내내 아침부터 숍(shop)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아마도 필연 여기에는 현지 Inbound 여행사와 무슨 유착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후 우리는 이것에 대한 시정조치를 하나투어 측에 요구해야 싶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출발은 이슬람의 술탄 황제들이 비잔틴 기독교를 정복하고 난공불락의 성벽을 무너뜨린 이ㅎ수 톱프카 궁전을 지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소피아박물관 내부를 자세히 돌아보는 것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미 전에도 와 본 곳이었지만, 종교권력의 신적 위력을 이곳에 와서 눈으로 다시 확인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최창식 집사님이 잘 따라와 줘서 참 고마워 왔다. 금년에 80이 아니신가! 하여튼 우리는 1000년도 더 되는 그 옛날, 시작이후 변화무쌍한 인간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인류의 역사란 종교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의 역사요,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잔인했던 지를 다시 한 번도 확인하는 경험과 학습을 했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는 동안, 그 속에서 벌어진 전쟁, 살육, 인간의 잔인성, 탐욕, 악행, 수탈,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비극이 계속되어 왔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종교는 오늘날까지도 손에 손을 잡고 잘 놀아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정교분리란 그들이 겉으로만 번지르르 하게 나열해놓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이 시점까지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은, – 비록 그들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표방하던, 아니면 사회주의 복지 체제를 외치던, 다 똑같이 종교를 이용한 권력, 권력을 이용하는 교권의 교묘한 틀 속에서 그 옛날 하기야소피아이든, 블루 모스크이든, 그 “찬란한 잔혹사” 속에서 벌어졌던 역사를 재현하고,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한다. 순진한 백성들과 세뇌된 애기 종교인들, – 그들이 기독교이든 무슬림이든 간에- 그들은 지금도 가슴을 두근거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정치와 종교의 노예들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하나도 배운 것이 없다”던 현대 지성인들이 외치는 소리는, 여전히 우리 귓전에 하나도 닿지 못하고 멀리 메아리로 흘러가고 있다. Holy Friday에서 우린 그 유명한 블루 모스크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신발을 벗고, 조잡한 히잡이나마 쓰고, 물을 뿌리며, 그곳에도 들어가 보았더라면, 하기야 소피아와는 또 다른 “폭력적 종교”의 민낯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만 시간에 쫓겨 이스탄불을 뒤로하고, 서둘러 저녁식사를 한 후 공항으로 떠났다. 잠깐! 우리는 이곳에서 60회 생신을 맞이하는 최윤경님, 김마리아님, 김클라라님, 그리고 김용강님을 위하여 작은 촛불 하나를 켜놓고 happy, happy, happy birthday를 노래하며 진심으로 한가족 된 마음으로 축하와 축복을 나눴다. 그들의 출생과 지나온 인생길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미지의 내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작은 관심과 사랑 속에는 늘 감사와 감격이 있다. 현명이를 이스탄불에 떼어놓고 와서 마음이 쓸쓸하기도 했지만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젊고 똑똑한 우리 현명이는 떠날 때부터 이미 이스탄불에서 한 이틀 정도, 자기 혼자서라도, 좀 더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 오겠다고 해서 이리 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카톡으로 보낸 사진과 문안의 글들을 보니,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스탄불 공항에 Sky Team Lounge를 이용할 수 있어서, 거기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지난 일정을 묵묵히 되돌아보면서, 밑줄 않되는 여행 일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지불한 여행 보험료를 잊으면서 10박 11일 그리스-터키 인문학 여행의 제 1, 2차 행선지를 뒤로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사고없이 여행하게 된 것이 제 1의 감사거리요, 그 다음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자발적인 협력과 도움, 속으로 새기는 인내심, 그리고 진심으로 배우려는 자세 등으로 인하여 감사드린다. 인생은 길이고, 길가는 나그네다. 인생은 신비롭고, 신기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간다.
2019년 11월 2일(토) 인천과 전남 강진 흐린 날씨에 약간 쌀쌀하다.
10시간이나 날아왔다. 그리고 인천에서 이스탄불로 갈 때 보다는 한 두 시간 정도는 짧은 비행이다. 우리는 오후 2시경 인천에 도착하니 이미 주경식 교수님이 준비해 둔 VVIP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 한국의 남단인 전라도 강진까지 달려갔다. 버스에서 우리는 모처럼 마이크를 돌려가면서 그동안의 소회를 나눴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좋은 경험과 배움을 나타내주고, 피차에 감사 마음을 전해주었다. 이후 우리는 대형 스크린 앞에서 노래방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여행을 했다. 모두들 스스럼없이 속마음을 드러내 주어서, 인간의 위선과 가식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어두워진 고속도로에서 우리는 충남 서천 지역의 휴게소에 들려 모처럼 따뜻한 한국식 저녁으로 향수를 달랬다. 그리고 또 달리고 달려 밤 9시가 되어 이곳 강진읍내 있는 프린스 호텔(Prince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8,000km를 날으고, 달리면서, 어두운 밤 우리는 쌓인 피로를 풀며, 모처럼 많이 자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탄 우리는 클라라 사모의 기도 속에서 시작하여 각자의 방에서 각인이 드리는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제 오늘, 주일과, 내일 월요일엔 한국의 두 인문학자, 다산 정약용과 퇴계 이황 선생을 만나러 간다. 남의 것만 보지 말고, 내 것도 보아야 한다는 평소 내 작은 소신에 함께해 준 동행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이제는 주일, 새벽이다. 11월 3일이다. 아침 7시가 되어온다. 아직도 밖은 어둡지만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하는구나! 이 어둠을 뚫고 가자! 희망이 있는 오늘과 내일을 걸어가야 하리라.
2019년 11월 3일(주일) 강진-약간 흐렸지만, 걷기에는 참 좋은 날씨/안동-어두운 밤: 비가 조금 온 것 같다.
아침에는 모처럼 여유로웠다. 주일 새벽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주님께 찬양을 돌린다. 프린스 호텔에서 아침 식사는 참 정갈하고, 맛있고, 남도의 풍미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강진군청에서 주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안내해 주실 강영석 선생님이 나오셨다. 이곳 향토사람이기도해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정이 갔다. 뿐만 아니라 다산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어서, 아주 작은 이야기꺼리까지도 모두 꿰뚫고 계셔서 아주 많은 공부를 했다. 우리는 백련사 앞에 차를 세우고, 백련사를 출발하여, 만덕산을 올라, 다산초당을 거쳐 다산의 18제자들중 윤씨 일가가 이루고 있는 마을을 지나, 다산 박물관까지 약 2km정도를 걸었다.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걷는 길이 아주 험했다. 다산을 생각할 틈도 없이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힘이 많이 들었다. 나도 그런데 80줄에 들어서 최창식 집사님과 최혜순 장로님, 그리고 조혜옥 사모님 등 좀 약한 분들이 많이 고생하셨다. 그래도 일생의 경험이다. 다산이 아니면 어디에 가서 이런 험한 산길을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출발 전에 교육했던 것처럼 인문학 여행은 건강검진이라고 했던 말을 실감 할 수 있었으랴! 하여튼 아무 사고없이, 백련사와 만덕산, 혜장선사와 다산, 동백나무 숲길과 야생차밭, 그리고 마침내는 200년전 이곳에서 백성과 사람을 생각하며, 인문주의, 인본주의를 외쳤던 다산초당, 동암, 서암, 丁石, 천일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잘 가다듬고, 정리해둔 다산박물관을 경험할 수 있으리요! 최창식, 최혜순 두 분과 이분들을 붙잡고 함께 해준 계응준 선생, 김용강 선생 – 모두들 참 고마운 분들이다. 이곳이 고향인 한종춘 목사님께 마이크를 드리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좀 들었지만, 모두가 공유할 틈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다시 다산이 처음 4년 동안이나 유배지의 첫 생활터전이요, 동네 교육이었던 사의재(四宜齋)에서 아욱국과 조밥을 먹으면서, 지금의 음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거칠고 조잡했을 다산의 음식을 생각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문전박대하며 가까이 하지 않는 귀양온 죄수를 선뜻 주막집 뒷간에 모셔두고,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가면서 섬겼던 한 주모 – 그녀는 진정 다산과는 또 다른 근대 봉건 식민시대를 극복하며 투쟁했던 여성상이다. 아름답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다. 까불거나 거드름을 피우면 않된다. 목사가, 장로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냐? 평범한 사람들, 막일하고, 찍소리 못하는 무지랭이들, – 그들이 진정 역사를 견인해 온 역사의 또 다른 invisiable Hero요 Heroin들이다!
사의재(四宜齋)-생각은 바르게 하고, 태도는 겸손히 하고, 말은 삼가고, 행동은 신중하게 하는 인간과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사회를 그려본 다산이 정말 다시 보고 싶다. 그의 영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주모의 밥상을 받으며, 그가 묵었던 방 앞에서 앉아보면서, “다시 한 번 더 나라고 하는 이 인간 홍길복” 때문에 속도 상하고, 불쌍하고, 부끄럽기도 한 자신을 반성한다.
도산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는 그의 시대와 제약된 환경 속에서도 도대체 무슨 꿈과 이상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지금 우리는 수 천리 아니 수 만리, 이 먼 길을 찾아봐 힘겹게 산을 오르면서 그를 흠모하는 것인가?
목민심서 –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으로 섬기는 모든 지도자들의 마음가짐과 정신자세를 그는 사랑과 겸손으로 요약해준다.
흠흠신서 – 제도와 질서, 법과 원칙에 따라 나라와 사회와 인류 공동체가 운영되고, 움직여 나가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경세유표 – 한 나라와 사회는 인간 평등의 원칙 위에서 통치되어야 한다.
아! 다산은 200년 전, 봉건주의 왕조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합리주의, 과학주의, 평등주의, 복지제도, 상호존중, 토지 공개념 등을 통한 실용적 철학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경세치용을 통한 사회개혁과 이용후생을 통한 부국안민과 실사구시를 통한 실제적 실용주의 접근했던 정치, 경제, 사회, 사상의 혁신적 인물이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인문학자가 아니면 누가 인문학자란 말인가?
1920년과 30년대 거친 민족시인이요, 서젇ㅇ시인이면서도 저항적 시인이었던 이곳 강진출신, 김영랑, 김윤식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강진을 떠났다. 가을을 보내는 주말, 고속도로 특히 지리산 자락을 끼고 있는 남해고속도로는 이스탄불 교통체증을 다시 생각나게 했지만, 우리는 8시가 너머 이곳 안동에 도착했다. 우리는 안동 간고등어자반을 곁들여 헛제사밥으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60회갑을 맞은 김용강 선생이 한턱을 냈다. 우리는 같이 회갑을 맞이한 김클라라와 김마리아를 기억하면서, 이분들을 다시 한 번 더 축복하며 감사의 기도를 받쳤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오늘 강진과 다산초당을 방문하기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을 다시 한 번 더 읽어 드렸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가 읽으면서 다시 복습한다.
밤이 되었다. 안동에 도착하니 이미 닫혔어야 할 식당이 우리를 위해서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려 주었다. 천옥영 권사님의 친구 권명희 선생의 배려가 참으로 고맙다. 저녁을 낸 김용강 선생과, 김마리아님, 김클라라님 이들 3사람의 회갑을 축하하느라 와인을 내고 축배를 들게 해주신 백문경 대표님, 모두가 참 감사한 분들이다. 우리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안동댐에 있는 월영교를 걸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참 신선한 공기에 아름다운 다리였다. 늦은 시간 마침내 이곳 리첼호텔에 들어오니 오늘도 어느덧 10시가 되었다. 깨끗한 방, 고요한 어둠 속에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감사를 드린다. 그 높은 만덕산을 오르내리면서도 아무 사고없이 걸어온 길, 다산을 만나도록 준비하고 주선해준 강영석 선생님, 여기, 저기, 이곳, 저곳에서 보이지 않게 서로를 돌보며, 보살펴 주시는 인문학 친구들.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리며, 이만 잠자리에 든다. 그리스-터키-한국, 제 1차 시드니 인문학교실 여행팀의 마지막 밤이다! 모두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 모두에게 아름다운과 거룩함이 있을 지어다!
2019년 11월 4일(월) 안동-맑게 개이고 여행하기 최적이다. 서울-밤이고 흐리다.
인간은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그 실수와 실패를 거듭한 운명을 지닌 존재이다. 시지프스의 신화 속에서 살아간다. 이민, 결혼, 직업, 인간관계 등에 있어서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물론 후회스럽지 아니한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다. 지식과 정보, 느낌과 깨달음, 선택과 지혜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되돌아 보먄서 이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아니하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운명이고, 인간의 모습이다.
아침의 안동은 정말 곱게 물든 가을의 빛깔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리첼호텔 주변을 좀 걸었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과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이곳 저곳에서 고국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정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가는 곳마다 온누리가 가을빛깔로 가득 차 있다.
잘 준비된 아침 식사를 한 후, 천옥영 권사의 오랜 친구 권명희 선생과 또 그 권선생의 친구, 안동 토박이 김재교 선생이 호텔 앞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함께 도산서원을 향해 가는 동안 김 선생님은 안동의 역사를 아주 해박하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9시 반 경부터 11시까지 우리는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을 방문했다. 유머러스한 해설가의 설명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인문학자 퇴계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역사는 흘러간 어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이다. 국학연구는 지금도 이어진다. 한국학의 큰 흐름 중 하나인 퇴계의 유학사상과 그의 이기론을 다시 듣고 새기면서, 동시에 퇴계의 인간됨을 배운다. 전통을 통하여 다시 엮어지는 미래, 퇴계를 배우면서도 퇴개를 넘어서는 창조적 내일을 다시 그려보면서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을 내려왔다.
퇴계 사상의 핵심은 주자학이다. 그는 Logos가 Pathos를 앞선다는 플라톤적 사상을 지닌 분이었다. 理가 氣를 다스리고, 이끌어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지녔던 분이었다. 理는 선하고, 완전하고, 불변한다는 이데아의 우월성을 지지했던 분이다. 그는 사단칠정을 가지고 이 이기론을 풀어 나갔다. 사단이 곧 理다. 그것이 근본이고, 원인이고, 원칙이다. 측은지심, 사양지 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이 인간과 우주와 만물의 기본이라는 공명의 틀과 원칙을 굳게 지켰다. 그에 반해 7정인 희노애락을 포함하는 의-기뻐함, 노-분노함, 애-슬퍼함, 愛-사랑함, 오-미워함, 욕-욕심, 구-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등 모든 인간의 감정은 반드시 理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할 하위 개념이라고 보았다. 그는 동양의, 특히 한국이 플라토니즘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퇴계는 바로 이런 원칙 위에 서서, 수신십훈-인간이 지녀야 할 몸가짐 10가지를 가르쳤다. 立志-뜻을 세워라. 경신-몸의 태도를 바르게 해라. 치심-마음을 다스림. 독서-글을 읽어라. 발언-말은 바르게 하라. 제행-행동은 곧게 해라. 거가-가정을 도덕화 해라. 접인-사람을 신의로 대하라. 처사-일을 정의롭게 해라. 웅거-최선을 다해 준비해라.
아름다운 도산서원을 내려왔다. 시간에 쫓겨 이육사문학관에는 들리지 못했다. 마침 월요일이어서 문도 닫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유명한 안동 하회마을에 와서 안동식 닭을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안동찜닭과 배추 전이 특별했다. 그후 우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을 위시하여, 하동 고택과 삼신당 신옥과 기타 북촌과 남촌 등을 돌아, 낙동강 물줄기가 돌아가는 하회마을을 일주했다. 참 좋은 대청이었다. 참 귀한 배움이었다. 병산서원은 가까이 갔지만 볼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냥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 모든 일정은 다 끝이 났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이번 여행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나눴다. 모두들 감사해 했고, 또 유익한 좋은 여행이었다고 말씀했다. 나도 그 동안의 모든 일정과 함께함과 협력에 감사드리면서 그동안 썼던 여행일기 중 지난 월요일 이후, 한 주간의 일기를 읽어 드렸다. 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소에서 함께 서둘러 저녁을 요기하고, 강남, 종로2가, 광화문, 3곳에서 각각 나눠 헤어졌다. Ibis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은주엄마랑 셋이서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일주일 동안 서울 여행을 하게 되었다. 모두들 열심히 단톡방에 사진과 여러 가지 소식과 감사의 인사를 나눈다. 여기에서 나의 지난 두주, 만 14일 동안의 그리스-터키-한국 인문학여행기는 마치고 이후엔 예전처럼 간단 간단한 일지만 남겨 놓는다.
<제 1차 인문학여행 후기 P.S>
– 여행을 마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다듬어 본다 –
1. 인류의 역사는 공동체이든, 개인이든 자유를 향하여 나아간다. 여행은 우리에게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유를 맛보게 해주고, 자유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2. 짧은 여행이 모이면 하나의 인생이 된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고, 인생은 여행의 확대판이다.
3. 지난 역사 속에서는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이 이미 잉태되어 있다.
4.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아무데서도 배울 수가 없다. 우리 앞서간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앞에 무너져 있는 돌덩이 조차도 우리의 선생님이다.
5. 여행은 인생과 자아를 돌아보게 한다. 역사의 폐허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게 해 준다. “지금 너는 누구냐?”
6.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순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가장 큰 렛슨은, 감사하는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7.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그 다음 또 다른 여행이 우리를 기다린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