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것은 / Suaviter in mode, fortiter in re / 헝가리의 문호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열정‘ / Vulnerant omnes, ultime necat / 자화상 (Self-portrait)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3) _ 8월 3일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것은”

똑같은 백두산에서 떨어지는 물도 동쪽으로 흐르면 두만강을 거쳐 동해로 가고, 서쪽으로 흐르면 압록강을 거쳐 서해로 갑니다. 허지만 동해와 서해로 나누어진 바닷물도 더 넓은 대양, 태평양에서는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저희 부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저희를 예로 들어서 세계와 역사와 인간을 보고, 이해해 보려는 하나의 틀이라 할 수 있을 겝니다.
여느 가정에서든 쉬이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저희 집에서도, 저와 제 아내 사이에는 크고 작은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옳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른 것입니다.
우리 사이에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인간과 역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저의 아내 이길남은 거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정의와 진리가 이기고, 사랑이 승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나쁘게 보여도, 그래도 선한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 보다는 숫자도 많고, 영향력도 크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성 속에 있는 탐욕이라는 본성도 이성과 지성, 그리고 사랑과 나눔으로 결국은 이길 수 있는, 선한 천사의 힘이 더 강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제 아내는 이상적입니다. 기대하는 세상이, 벌어지는 현실을 극복해내는 날이 반드시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아내는 아무리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이 엉망진창이고 위태하게 보여도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는 데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마도 그가 갖고 있는 신앙, 곧 종교적 확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반대입니다.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가인 이후 하나도 변한 것이 없고, 인간은 사피엔스가 아니라 탐욕과 이기심의 노예라고 봅니다. 역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사이고, 죽고 죽이는 전쟁사이며, 모든 사람은 이리의 본성을 지닌 존재로써, 경우에 따라 위장하고 숨길 뿐이지 그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정치가는 선하고, 또 어느 정치인은 악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 정치가들을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저는 인간이란 직업이나 신분, 성별이나 나이, 국적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악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저는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삶의 현장에서 펼치어지는 모든 불의와 악들은 인간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인간은 자신의 그 탐욕적 본성을 스스로 극복하고 구원해 낼 능력이란 전혀 없다고 믿는 것이 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가 이렇듯 인간과 인간 역사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다다른 결론 중 하나는 저 역시도 제 아내와 똑같이 종교적, 특히 신학적 영향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종교, 비슷한 윤리와 도덕, 비슷한 철학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보는 눈이 다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떻게 하나의 종교와 비슷한 도덕적 기반 위에 서있는 사람이 이렇게 180도 다른 시각과 이해를 갖을 수 있을까 의아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그런 사람입니다.
어는 주장이나 입장이 옳고 틀린 것이 아니라 이는 단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우린 서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차이에 근거하여, 역사와 세계, 인간과 인생을 다양하게 볼 뿐입니다. 우리는 이 긍정과 부정의 다른 시각이 모든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걸 받아드립니다. 헤겔이 말한 정과 반, 반과 정을 통하여 위를 향해 올라가는 ‘지향’ (Aufheben)을 믿고, 그리워합니다.
Carpe diem!
Bonam fortunam!
라틴어 인문학 (29) _ 8월 4일
Suaviter in mode, fortiter in re.

(수아비테르 인 모데, 포르티테르 인 레)
suaviter, 부드럽게, 온화하게, 유쾌하게, softly
mode, 태도, 방법, 방식, 외양, 영어도 mode
fortiter, 용감하게, 꿋꿋하게, 영어의 fortitude
Suaviter in mode, fortiter in re.
태도는 온화하게 하되, 일처리는 확실하게 하라.
외양과 방법은 부드럽게 하고, 행동과 일처리는 용기있게 하라.
신념과 입장은 확실하게 하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온유하고 따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내용은 별것도 없으면서 말과 태도만 과장되고 과격한 정치인이나 유튜버들을 보면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설득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는 꼭 반대로 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Suaviter in re, fortiter in mode.
행동은 과격하고, 일처리는 미적지근하게 하라.
이게 아닌데 많이 안타깝습니다.
Suaviter in mode, fortiter in re.
태도는 공손하게, 일은 확실하게 !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Carpe diem!
Bonam fortuna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4) _ 8월 5일
헝가리의 문호 산도르 마라이 (Sandor Marai 1900 – 1989)의 소설 ‘열정’ (Die Glut)를 읽으면서 밑줄친 귀절들에다 제 느낌을 첨부한 잡문입니다.

(열정, 산도르 마라이, 김인순 역, 솔, 2016)
(1)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 잃게 마련입니다.
(2) 사람들은 이기심 없는 우정을 갈구하지만 그러나 세상에 이기심 없는 우정이란 없습니다.
(3) 예의바른 청중들은 알고 있습니다. 음악이란 사실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4) 그들은 서로 좋아했기 때문에, 한쪽이 가진 부, 다른 한쪽이 가진 가난을 서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5) ‘인간에게서 무엇을 알고 싶으세요?’ ‘진실이요’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아니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알고 계시잖아요?’ ‘현실은 진실이 아닙니다.’
(6)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어! 십년, 이십년을 지나보면 사실 커다란 사건들은 사람의 내면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7) 끝이 가까이 오면 처음 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네.
(8) 일부를 주는데 받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를 달라고 그런 것이네.
(9)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어 하는 것, 그건 가장 고통스런 소원이네.
(10) 참아야하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릴 사랑하지 않아도 참아야하네. 배반도, 신의를 지키지 않아도, 그리고 나보다 인품이나 지성이 뛰어난 사람을 보아도 참아야하네!
(11) 의도가 죄야! 모든 행위는 의도의 결과잖아!
(12) 외적인 힘은 인간관계를 조금도 변화시킬 수가 없어요.
(13)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일이란 없습니다. 죽음 까지도.
(14) 세상만사는 답답할 정도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15) 단번에 늙지는 않아! 서서히 눈, 귀, 다리, 심장이 단계적으로 늙어가네. 그러다가 별안간 늙는 게 있어! 영혼이야!
(16) 차츰 세상이 이해되기 시작하면 그럼 죽을 때가 된 거야!
(17) 이미 죽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산 사람들은 다 배반자야! 목숨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범죄야! 형법서에는 없지만 우린 알아!
(18) 우린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질 모르면서 한 평생을 살다 가는거야!
(19) 그런 체제 속에서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 체제를 승인해주는 것이야!
(20)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 – 마라이는 이런 글을 남기고 망명지 California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생각을 깊게 하도록 도와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오늘도 뜻있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
라틴어 인문학 (30) _ 8월 6일

Vulnerant omnes, ultime necat.
(불네란트 옴네스, 울티메 네카트)
vulnerant, 상처를입히다, 상처주다, 상처를 받다. 영어 wound
omnes, 모두에게, 전체적으로
ultime, 결국은, 마침내는 영어,ultimately
necat, 죽인다, 해친다.
Vulnerant omnes, ultime necat.
모든 인간은 상처만 주고받다가 마침내 죽게 된다.
인생이란 살아있는 동안엔 쉬지 않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생길에서 우린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물질도, 시간도, 마음도 피차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상처’도 있습니다. ‘상처없는 자작나무는 없습니다’ 상처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사실 죽음이란 살아가면서 주고받은 모든 상처와 부상과 아픔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처, 특히 치명적인 큰 상처는 우리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육신 까지도 일찍 숨을 거두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거나 주는 상처는 우리가 모르거나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들로 부터 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상처는 늘 가까운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 아는 이들로 부터 받거나 주게 됩니다.
인생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상처, 아픔, 쓰라림, wound, hurt, scratch, scar 는덜 주고 덜 받으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상처가 크고 깊으면 일찍 죽으니까요!
Vulnerant omnes, ultime necat.
오늘도 이 라틴어 한마디를 마음에 새기면서
상처 덜 주고, 덜 받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Carpe diem!
Bonam fortuna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5) _ 8월 7일
“자화상” (Self-portrait)
유명한 화가들 가운데 자신의 자화상을 가장 많이 그린 이는 흔히 빈센트 반 고흐와 렘브란트를 꼽습니다.
고흐는 약 40여 개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귀를 짜른 자화상’은 ‘진정 당신이 어찌 제 마음을 알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 듯합니다. 고흐는 너무 가난해서 모델을 살 수 없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평생 자기를 그림으로 자신을 추구한 위대한 예술가였습니다.
렘브란트의 본래 이름은 퍽 깁니다.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 렘브란트 하르멘손 판 레인 – 라인강가 마을 하르멘손의 아들 렘브란트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유화와 소묘와 에칭을 포함하여 모두 2천여 개 쯤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그의 초상화만도 100여 점이나 됩니다. ‘빛과 그림자의 화가’, ‘성서 화가의 대가’로 불리우는 렘브란트는 700여 점에 이르는 성서화와 신화와 역사와 풍경들을 그렸지만 특히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자화상은 그의 내면의 일기’라고들 합니다.
웃고 있는 자화상, 선술집의 탕자, 왕자같은 풍모, 비틀거리는 거지, 깃발을 든 노동자, 청소부, 성스러운 사도 바울, 돌아온 탕자의 모습들은 거의 다 그 자신의 인생 일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화상 속에 그려진 렘브란트는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카멜레온 처럼 수시로 변하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렘브란트는 자주 거울을 들여다 보며 자신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다양한 소품과 장신구들로 치장을 하면서 또 자기를 들여다보며 자화상을 그렸다고 합니다.
왜, 무엇 때문에 렘브란트는 마치 배우처럼 다른 모습에 다른 옷을 입고 웃고, 성내고, 찡그리는 등 다양한 감정을 지닌 자기의 모습을 그렸을까요? 렘브란트는 진정한 자아를 찿기 위해 자신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고 봅니다.
그는, 화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가?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오늘 우리는 셀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저마다 셀카를 누릅니다.
그런데 진정 셀카를 찍는다고 자신의 정직한 모습이 나타날까요?
여느 집과 비슷하게 저희 집 거실에도 제 얼굴이 들어간 여러개의 사진들이 놓여있습니다. 저는 가끔 제가 들어있는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묻곤합니다.
“너 진짜 홍길복 맞아?”
Carpe diem!
Bonam fortunam!
(어느 분이 고흐와 렘브란트의 자화상 그림을 모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