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샌드라 오커너 / Similia similirus curantur / 이카루스 / 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 / 노인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49) _ 8월 17일
“샌드라 오커너”
(Sandra Day O’Connor)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쁨니다”
위의 문장을 다시 한번 더 천천히 읽으신 후 다음 글로 가 주시길 바랍니다.
이 말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말입니다.
그녀는 1981년부터 25년간 진보와 보수로 팽팽히 맞선 미국 대법원에서 ‘중도의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법율적, 사회적 균형추 역할을 잘 수행했던 유명한 대법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그 법관의 자리를 굳게 지켜왔던 오커너는 당시 유명한 변호사였던 그녀의 남편 John O’Connor가 알치하이머에 걸려 어려워지자 2005년 그 명예로운 종신직, 대법관의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병든 남편 곁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은퇴를 결정한 것입니다.
“당신이 50년 동안 저를 보살펴주었으니 이젠 제가 당신을 보살펴드리라고 하나님이 이런 병을 주신 겁니다”
처음 그녀는 남편을 데리고 대법원 사무실로 출근하기도 했지만 차츰 치매 증세가 심해지자 미련없이 사표를 냈습니다.
“이제 우린 정상에서 내려올 시간입니다. 올라갈 때는 따로 따로 갈 때도 좀 있기는 하지만 내려 올 때는 둘이 손잡고 잘 내려와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토록”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존은 점점 더 기억력을 잃어가더니 마침내는 5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 샌드라 마저도 몰라보는 중증에 접어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존을 요양원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침마다 요양원에 출근하였다가 저녁마다 퇴근하는 일상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 조차도 알아보질 못하던 남편이 요양원에 입원해있던 다른 여성 환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낯모르는 여자를 만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키스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샌드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른 여자와 손잡고 산책하며 입을 맞추는 남편이 하나도 미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미워지기는 고사하고 행복해졌습니다. 남편과 키스하는 그 여자에게도 질투나 미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샌드라는 오히려 남편에게 행복과 웃음을 가져다주는 그 여자가 고마웠습니다. 애기 같은 그들을 볼 때마다 샌드라는 안심이 되었고 자신도 행복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샌드라의 아들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 같았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빠를 보면서 아버지가 마침내 정서적 안정을 갖게 되었다고 너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항상 자살 이야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누군가를 좋아하시고 부터는 행복해진 모습을 보면서 진짜 행복해지신 분은 엄마예요”
지금의 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샌드라의 사랑을 임상심리학자 메리 파이퍼 (Mary Pipher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나의 글로 세상을 1미리미터라도 바꿀 수만 있다면’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어서하는 사랑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사랑이고 황혼이 되어서 하는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당신만 행복하다면 그때 저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성숙한 사랑입니다”
청춘의 사랑, 황혼의 사랑
뜨거운 사랑, 은근한 사랑
순간의 사랑, 이어지는 사랑
미완의 사랑, 성숙해진 사랑
사랑엔 형태와 종류가 많지요.
누가, 누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사랑은 제각기 다른 얼굴로 나타나지요.
지금 당신은 몇 살짜리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33) _ 8월 18일
Similia similirus curantur.
(시밀리아 시밀리루스 쿠란투르)
similis, 닮은, 비슷한, similia는 주격, similirus는 목적격. 영어 similar, similarity, similartude
curantur, 고치다, 치료하다, 돌보다, 바로잡다, 영어 cure
Similia similirus curantur.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으로 고치거나 치료한다.
영어로 흔히 Like dissolve like.
비슷한 라틴어 문장으로는 Clavum clav expellere.
못은 못으로 뽑는다.
우리말에 이열치열, 이한치한과 비슷합니다.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서는 뜨거운 삼계탕을 먹어야한다든가 차가운 냉면은 추운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라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영어에 Fight fire with fire, 불은 불하고 싸워야 한다는 말도 같은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물질도 비슷한 끼리 잘 섞이고 용해가 되고, 사람도 비슷한 사람들 끼리 잘 모이고 섞입니다. 원래 Simlia similirus curantur라는 말은 의학에서 쓰이던 말입니다. 18세기 독일의사 하네만(Samuel Hahnemann)이 동종료법 (Law of similars)을 주창했다고 합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으로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통증은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습니다.
인문학적으로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형성은 생활환경의 동질성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나 생각도 비슷해야 하지만 환경이나 삶의 조건도 비슷해야지 서로 이해하고 받아드리기가 쉽습니다. 우리 같은 경제적 환경에서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피차 친구가 되기 쉽지 억만장자들과는 생각도, 말도, 사는 방식도 다 다르기에 서로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생활감정의 동질성’이 인간을 치료합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우산을 씌워주기 보다는 그냥 말없이 나도 함께 곁에서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 주는 것이 바로 Similia similirus curantur,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으로 고친다는 말에 해당이 된다고 봅니다.
기독교에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치료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하느님 되심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을 치료하셨다는 교리입니다. 하느님도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으로 고친다’는 것, Similia similirus curantur를 아시고 실천하셨던 모양입니다.
지난 세기 벨기에 출신의 선교사 다미엔 (St. Damien)이 하와이 군도에 한센병 환자들을 모아놓은 몰로카이 (Molokai) 섬에 가서 나병환자들을 위해서 선교활동을 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곳, 의사 하나 없는 버려진 고도에서 진심으로 그들의 상처를 싸매고, 고름을 짜주며 같이 먹고, 같이 자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천형자들인 나환자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신부는 건강하니까 그렇지 뭐!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릴 진정으로 알 수 있겠어!’
그들 끼리하는 이런 말을 들은 후 다미엔 신부는 하느님께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이 남아있습니다.
“하느님 저에게도 나병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도 저들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후 다미엔 신부는 그의 기도대로 응답을 받아 나병에 걸려, 몰로카이에서 숨을 거두어 거기 묻혔습니다.
Similia similirus curantur.
비슷한 것만이 비슷한 것을 돌보고, 고치고, 치료합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50) _ 8월 19일
“이카루스” (Icarus)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인문학 여행은, 실재하지는 않지만 꿈의 섬인 ‘그래도’로 가보자는 제안이 있습니다만, 지난 해 인문학여행 중에 우리는 에게해 남단, 지중해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크레타섬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제일 큰 관심은 이 섬 출신의 소설가요, 인문학자인 니코스 카자차키스와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또 한 사람의 크레타 출신,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테네에서 야간 페리를 타고 온 우리는 아침 일찍 지중해와 에게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위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자유다’ 우리도 그를 따라 자유, 해방, 무욕,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평화를 다짐하면서 크레타에서의 두 번째 방문지인 크노소스 궁전 (The Palace of Knoses) 터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스문명의 원형이고 출발 지점이라고 하는 미노아문명 (The Minoan Civilization)이 바로 크노소스 궁전에서 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2천년 전에 조성된 크노소스궁전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70미터에 이르는 정방형에다가 방이 천 여개도 더 되는 거대한 궁궐이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도 없이 복잡한 구조여서 사람들은 이 궁을 흔히 ‘미궁’ (Lybyrinth)이라고 부른곤 했습니다.
이 거대한 크노소스궁전은 미노아문명을 꽃피운 미노스왕 (Minos)이 당대 가장 위대한 건축가 다이달로스 (Daedalus)를 시켜서 완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미노스왕은 자기 아내인 왕비 파시파에 (Pasiphae)가 소와 간음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조사하던 중, 이 소행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고하지 아니한 건축가 다이달루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그들이 만든 미궁 속에다 가두었습니다. 다이달루스는 자기가 만든 궁궐이었지만 그 내부가 너무나 복잡하여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가 만든 덪에 걸리게 된다는 교훈은 여기서 나온 렛슨입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왔습니다. 그 복잡한 미궁 속으로 수많은 새떼들이 날아 들어와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이달루스와 이카루스는 그 새들이 물어와서 만든 둥지에서 열심히 새의 깃털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깃털들을 밀랍으로 붙여서 마침내 날개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만든 날개를 자기들의 어깨에 달아매고 날아드는 새떼들을 따라 날개를 펴고 미궁을 벗어났습니다. ‘성공이다! 자유다! 해방이다!’ 그들은 미궁을 벗어나 날개를 흔들면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이달루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잊지 말아라. 이 날개는 밀납으로 만든 것이다. 너무 바다 가까이로 내려가면 습기가 져서 날개가 무거워져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높이 날아서도 않된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태양열에 밀납이 녹아내려 날개가 떨어져 죽게 된다. 조심해라. 죽지는 않겠지만 너무 낮게 날면 떨어지게 되고, 너무 높이 날면 높은 곳에서 떨어짐으로 반드시 죽는다. 조심, 조심, 절대 조심해라. 높이 나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철없는 아들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냥 감옥같던 미궁에서 벗어난 것만 너무 신나고 흥분이 되어 하늘 높이, 자꾸만 더 높이 오르다가 마침내 뜨거운 태양열에 밀납이 녹아버려 날개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리하여 이카루스는 에게바다 (Aegean Sea)로 추락하여 시체도 건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너무 낮게 내려가서도 않되지만 너무 높이 올라가면 정말 않된다. 그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적당히 해라! 제발 적당히 해라!’
크레타섬에서 크노소스 궁전 터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우린 다시 이카루스의 교훈을 되새겼습니다. 절제하지 않는 인생은 반드시 추락합니다. 이건 몇몇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냥 학교 선생님만 해도 좋았을 텐데 무슨 장관까지…
그냥 사업만 하거나 변호사만 하실 걸 무슨 대통령까지…
그냥 목회만 해도 좋을 분이 무슨 총회장까지…
너무 높이 올라가면 밀납은 녹아 내리고, 그 아래엔 깊고 푸른 바다가 기다립니다.
겸손과 중용 !
오늘도 저는 저를 돌아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34) _ 8월 20일
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
(아미쿠스 케르투스 인 레 인케르타 케르니투르)
amicus, 친구, 동료, 벗, friend, helper, attendant
certus, 확실한, 틀림없는, 영어의certain
incerta, 불확실한, 의심스런, 영어 incertitude
cernitur, 상태, 상황, 코너, 궁지, 곤경, 영어로 corner, condition, context
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
불확실한 상황 (일, 사태) 속에서 확실한 (틀림없는) 친구.
어려울 때 친구가 틀림없는 친구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When it is difficult, a friend is real friend.
인간은 누구든지 고난, 고통, 어려운 일을 당해 보아야지 그 때 그의 본성이 들어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것은 동물적 본능입니다. 인격을 다듬는 것은 이런 원초적 본능을 이겨보려는 훈련이라 하겠습니다. ‘감탄고토’ – 인심은 야박합니다. ‘토사구팽’ – 사냥개로 토끼를 잡은 후에는 그 사냥개를 잡아 먹는 것이 인간성이라고 합니다.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는 것입니다. 인심은 야박하고 천박하여 믿을 것이 못됩니다. 좋을 때 좋은 사람은 많아도 어려울 때 좋은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잘 나갈 때, 성공, 출세하여 감투쓰고, 요직에 오르고 돈 생기면, 접근해 오고 아부하지만, 실패하고 좌절, 낙심하거나, 돈 떨어지고 병들면 하나씩 살아져 버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주식형제 천개유’이나 ‘금난지붕 일개무’란 명심보감 교우편에 나오는 사자성어 입니다. 좋은 때 술 마시고 밥 같이 먹는 친구는 천명이나 되어도, 어렵고 위급한 일 당하면 함께하는 친구 하나도 없구나!
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When it is difficult, a friend is a real friend.
어렵고 힘들 때, 불확실하고 불안정할 때, 그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참되고 확실한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 한 사람은 있으십니까?
아니 나는 그런 친구가 되어 주고 있나요?
점점 더 군중 속에서 고독하고 외로워지는 개인주의 시대 속에서 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When it is difficult, a friend is real friend. 를 새기며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건행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51) _ 8월 21일
“노인”
‘항구를 떠났다. 풍풍우가 몰아쳤다. 배는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똑같은 자리에서 빙빙돌며 표류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 고생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인생의 승리자라고 칭찬한다.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인생의 길고 긴 항해를 잘 마쳤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노인은 자신을 잘 안다. 자기는 인생의 승자가 아니라 그냥 오랫동안 죽지 않고 잘 버텨왔을 뿐임을’
세네카가 남긴 말입니다.
노인도 여러 종류로 나눕니다.
법률적 노인, 신체적 노인, 정신적 노인, 종교적 노인 등등 입니다.
사실 인간이란 누구든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 듯이, 사는 것이나, 가는 것도 자신의 의지나 계획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이를 우리는 운명, 팔자, 하늘의 뜻, 혹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다 불완전하고 어딘가 다 부족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력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지나치게 완전해 지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도 병이라면 병입니다. 마지막 까지 그냥 부족한대로 살다가, 부족한 모습으로 죽는 것도 순리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일생을 통하여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은, 성공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게 아닙니다. 나는 진짜로 힘들게 하는 것도 남이 아닙니다. 배우자나 주변의 이웃이나 친구나 사회나 대통령이 아닙니다. 나에 대한 최대의 원수는 나 자신입니다. 자신의 성격이나 습관 하나도 콘트럴 못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인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변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늙으면 변하는가? 책 많이 읽고 공부 많이 하면 변하는가? 수양을 많이 쌓거나 종교에 깊이 침잠하면 변하는가? 아닙니다. 젊어서부터 성격이 급한 사람은 늙어도 급하고, 젊어서부터 느린 사람은 늙어도 느립니다. 젊어서부터 깔끔한 사람은 늙어도 깔끔하고, 젊어서 지저분한 사람은 늙어도 지저분합니다. 말하는 태도와 방식, 책임성, 성실성, 돈쓰는 것 등 거의 모든 것이 나이 듦에 따라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지나친 기대나 바람은 접는 것이 현명합니다. 자식들, 친구들, 사회, 종교단체, 정치 돌아가는 것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배우자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어떤 가능성이나 기대는 가능한 한 최대로 접고, 버리고, 잊는 것이 노인의 지혜입니다.
둘째, 풀어버리고 사는 것도 현명한 인생 태도입니다. 맺힌 것은 풀고, 화해하며,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미쳐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이해 못할 일이란 하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의 한’을 이제 이 나이가 되면 풀고 용서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됩니다.
셋째, 나누고 베풀며, 감사하며 사는 것이 노년의 지혜입니다. 살아 있을 때 주는 것은 주는 것이지만 죽은 후에 주는 것은 뺏기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늙어서도 움켜쥐면 추하게 보입니다. 늙어서도 기분 좋게 사는 법은 말끝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평생 자기 힘으로만 산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살이 감사치 못할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는 인생을 넉넉하고 행복하게 만들지만, 불평과 불만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하여튼 버려야합니다. 욕심, 한, 서운한 것, 그리고 자기 자신 까지.
늙어도 화장실에 들어가선 안에서 문을 잠글 것, 입냄새, 몸냄새에 각별히 신경써서 자주 이 닦고 향수를 뿌릴 것, 지나간 이야기 자주하지 말 것 등 참 여러가지 일러주는 이야기가 많이 있네요.
추천도서: 어른의 의무, 아마다 레이지, 김영주옮김, 북스톤, 2016 /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수업, 안광복, 어크로스, 2016 / 죽음 앞의 삶 삶 속의 인간, 박이문, 미다스북스, 2016 / 나이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고광애, 바다출판사, 2016 /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2008.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