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진실.사실.가짜 / Ego sum via veritas et vita / 에스텔 모리스와 퇴계 / Dona nobis Pacem! Pax vobis! Pax huic domu! / 복습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88) _ 2020년 11월 16일
진실. 사실. 가짜.
서양 사람들은 보통 개인적이며 사교적 성격의 모임에서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피한다고 합니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인하여 피차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심할 경우엔 아예 원수 처럼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남자들의 단골 이야기 거리는 군대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둘을 빼고 나면 화제거리가 없을 지경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남자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 군대가 공통된 경험이며 재미있는 추억임으로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접착제 같은 것이어서 군대 이야기는 퍽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허지만 정치이야기는 자칫하다간 서로 다른 견해나 입장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심할 경우엔 원수처럼 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나니 조심하거나 피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실제 그런 케이스가 비일비재합니다. 동창회나 친목회나 교회 같은 데서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가 서로 얼굴 붉히고 같이 식사도 않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서로들 다른 정치적 생각이나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들에게 정치적 정보와 그에 따른 견해를 갖게 해 주는 제 1차적 쏘스는 매스 미디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그 어떤 정치적 생각이나 입장을 갖게 만들어 주는 언론들이란, 사실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 객관적 사실이나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신문에 나고 TV에서 방영되었으면 그것은 ‘진짜’고 ‘사실’이고 ‘틀림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언론들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입장에 따라 정보와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크고 작게 편집하고, 심할 경우엔 조작하고 해석된 것들을 객관적 사실이요, 진실인 양 우리들에게 전달합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세계의 주류 언론들, NBC, ABC, CNN, CBS, FOX, NEW YORK TIMES, WASHINGTON POST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호주나 한국의 미디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사실 (Fact)과 진실 (Truth)을 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거개가 언론과 언론기업들이 지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교묘하게, 우리같은 독자나 시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짓도 사실로 만들어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우리들에게 주입합니다.
그냥 쉽게 예를 들게요. 우리 가운데 한국의 KBS나 MBC, SBS를 주로 보시는 분들과 TV조선이나 채널A, JTBC를 주로 보시는 분들은 같은 뉴스를 보고 들으시는 게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해석된 뉴스, 심지어는 조작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조중동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 를 보시는 독자들과 한겨레나 오마이뉴스를 보시는 분들은 전혀 딴 세상에서 사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수많은 유튜브 방송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드니 같은 작은 한인사회에서 나오는 각종 종이신문이나 온라인 소식들도 거의 다 똑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주로 보고 듣느냐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세계 등 세상 돌아가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다른 이해, 다른 생각, 다른 신념, 다른 태도를 지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들 끼리 정치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CNN과 FOX,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대리인들로 서로 언쟁하고 다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만은 확실하게 해 둡시다. ‘우리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듣는 매스 미디어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매스컴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과 권력이 있다’ 그러니 괜히 우리끼리 정치문제 가지고 얼굴 붉히고 싸우지 맙시다. 우리가 뭐 할일 없이 한국 언론사의 시드니 특파원 노릇이나 하는 사람들입니까?

헥터 맥도널드 (Hector Macdonald)가 쓴 ‘만들어진 진실’ (Truth : How the Many Sides to Every Story Shape Our Reality)은 그 부제가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입니다.
이 책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더 진지하게 ‘사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도록 촉구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실과 진실은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맥도널드는 이 책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4가지 진실이 있다고 하면서 이를 아주 자세히 설명합니다.
1) 부분적 진실 : 우리는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부분을 전체인양 착각하게 만드는가?
2) 주관적 진실 : 우리는 주관적 진실을 객관적 진실인양 믿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주관을 객관으로 둔갑시키는가?
3) 인위적 진실 : 우리는 인위적으로 만든 진실도 처음부터 실재해 온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인위적으로 만든 진실과 본래적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요?
4) 밝혀지지 아니한 진실 : 우리는 아직도 가려져서 알 수 없는 진실도 이미 확실하게 밝혀진 진실인양 조급하게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 입니다. 왜, 도대체, 어떻게 신념이 사실로 변하는 것일꺼요?
우리는 가짜와 진짜, 허위와 사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기가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 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특히 약 4년 전 미국의 새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그리고 그 즈음 한국의 새 정부가 꾸려진 이후부터, 정치 권력자들은 이전 보다 더 자주 ‘가짜뉴스’를 말해왔습니다.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는 어떻게 다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우리 편에게 불리한 뉴스는 가짜뉴스이고 당신과 당신 편에 불리한 뉴스는 진짜뉴스다’
헥터 맥도널드는 이 책에서 제발 ‘진실은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진실은 보는 사람이나, 보는 시대나, 보는 나라나, 보는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사실 (fact)도 여러 개의 진실들 (truths)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책 내용을 더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는 우리에게 부탁합니다.
1) 계속해서 의심하십시오.
2) 계속해서 자꾸 물어보십시오.
3) 계속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요구하십시오.
저자는 그의 책 곳곳에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조심하라’고 일러주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추려보겠습니다.
1)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
2)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
3) 역사를 선택적으로 설명하는 사람.
4) 맥락을 끊어버리고 말하는 사람.
5) 핵심을 누락시키는 사람.
6) 통계나 숫자를 크게, 혹은 작게 만드는 사람.
7) 추세를 의미있는 사실인양 말하는 사람.
8) 연관성이 별로 없는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사람.
9) 특별한 케이스를 가지고 일반화하려는 사람.
10) 중립적인 사람을 자기 편 혹은 반대편으로 갈라치는 사람.
11) 어떤 말에다 맞추어서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
12)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하는 사람.
13) 거듭된 설명을 통하여 신념을 형성시키려는 사람.
14) 종교적 경전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사람 등등 입니다.
끝맺으면서 다시 한번 더 씁니다.
‘계속해서 의심하십시오. 아무 말이나 무조건 믿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꼿치꼿치 물어보십시오. 질문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지마시라고 말씀하십시오. 잘못을 만류하지 않는 것은 그의 잘못에 나도 동참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추천도서 : 만들어진 진실, 핵터 맥도널드지음, 이지연 옮김, 흐름출판, 2018.
좋은 한 주간이 되시길 빌며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50가지 말’ – 이 아침도 크게 읽으시는 것으로 시작해 보십시다.
라틴어 인문학 (59) _ 11월 17일
Ego sum via veritas et vita.

(에고 숨 비아 베리타스 에트 비타)
Ego sum via veritas et vita.
ego, 나, 나는, 영어 I, Ego, egoism
sum, 이다, 있다, 영어 be, is, am, are
via, 길, 도로, 영어 way, road
veritas, 진리, 영어 truth
vita, 생명, 목숨, 삶, 영어 life
Ego sum via veritas et vita.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실제 라틴어에는 정관사 the가 없습니다. 훗날 언어학자들이 번역과정에서 첨가한 것입니다. 물론 라틴어 뿐만이 아니라 고대 언어는, 중국의 한자까지 포함하여,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이 소문자나 필기체나 . , ? ! 등 부호들이 없었습니다. 이것들은 대부분 훗날 언어학의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져 오늘날 보태서 넣은 것입니다.)
Ego sum via veritas et vita.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분들도 많이 알고 있는 성경귀절로 신약성서 요한복음서 14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적 전통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로마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 요한복음서가 기록된 때는 AD 1세기말, 혹은 2세기 초로써 이미 신흥종교인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영역을 벗어난 시기로, 당시의 세계적 중심지인 로마를 배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길’이란 말, via도 당시엔 로마세계에만 있던 개념입니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와 로마의 유리우스 카이사르가 군사도로를 만들면서 via, 즉 도로개념이 만들어졌지 그 시대 갈릴리나 예루살렘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는 via, 길이라는 것이 있질 않았습니다.
Veritas, 즉 ‘진리’라는 개념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로마의 시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개념입니다. 오히려 히브리적 전통에서는 ‘지혜’라는 말을 더 선호했습니다. 히브리성서, 흔히 기독교인들이 구약이라고 부르는 책, 잠언, 시편 등에서는 주로 ‘지혜’에 대하여 가르치지 ‘진리’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의 요지는 ‘인문학적 라틴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오늘의 글귀인 Ego sum via veritas et vita 란 유대적 표현과 그리스-로마적 표현이 합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이는 ‘헤브라이즘’ (Hebrism)과 ‘헬렌이즘’ (Hellenism)이 함께 어울려가며 상호보완하기 시작한 것이 신약의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요한복음서의 특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Ego sum via veritas et vita.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쓰다보니 이 3개의 단어, via, veritas, vita ‘길, 진리, 생명’이 모두 v로 시작되는 것이 흥미로워서 라틴어 사전을 펼쳐 v로 시작되는 단어들 몇 개를 추려보았습니다.
viva, 만세! 영어도 viva! 만세!
victoria, 승리하다, 이기다. 영어, victory
vinum, 술, 포도주, 영어 wine
virtus, 덕, 도덕, 용기, 힘, 영어 virture
villa, 별장
visio, 보다, 직관하다, 영어 vision
voluntas, 뜻, 의지, 자발적, 영어 voluntary
vox, 소리, 음성, 영어 voice
vocatio, 소명, 부르심, 영어 vocation
valor, 가격, 가치, 영어 value
verbum, 말, 언어, 발음, 영어 verbal
victima, 희생, 희생제물, 제사, 영어 victim
virgo, 처녀, 동정녀, 영어virgin
사진을 찍을 때, 요즘은 하트도 그리고, 손가락을 세 개 모아 ‘사랑합니다’라고 표시하지만 전엔 주로 V자를 크게 그렸습니다. 그 때 우린 ‘이겨라’, ‘이긴다’, ‘victory’를 주로 상징했댔습니다. 앞으론 사진을 찍으실 때, 똑같이 V자를 크게 그리면서 다른 상징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을 향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오늘도 다시해 보세요.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행복해 지니까요.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89) _ 11월 18일
에스텔 모리스와 퇴계

에스텔 모리스 (Estelle Morris) – 우리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진 분은 아니지만 기억하시는 이들도 계실 것입니다. 영국 버밍햄 (Birmingham)지역구 출신으로 십 수년간 하원의원을 지낸 정치인입니다. 2002년 10월 토니 블레어 (Tony Blair) 총리 내각에서 교육부 장관을 하던 그녀가 장관재임 1년 6개월 만에 사임을 했습니다. 내각책임제를 하는 나라에서 장관 한 사람이 물러나는 일이 뭐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겠습니까만, 가끔 에스텔 모리스라는 한 여성 장관이 다시 생각나는 것은 당시 그가 블레어총리에게 밝힌 사직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능력이 모자란 사람입니다’ – 그녀가 블레어총리에게 보낸 사직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친애하는 토니, 저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나는 무엇을 잘하고 또 무엇을 못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저는 주어진 문제를 처리하고 일선교사들과 소통은 비교적 잘 해온 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 거대한 정부안에서 교육부가 추진해야 할 장기적이며 전략적인 운영은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일국의 장관으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적 능력이 아주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총리인 당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능율적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하루만 더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 여기서, 제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선택은 이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전날 블레어 총리는 모리스 장관을 개인적으로 만나 1시간 이상이나 만류했지만 그녀의 뜻을 꺽지 못했습니다. 블레어 총리는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에스텔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장관직을 떠남으로 자신의 품위와 성실성을 지켰습니다”
BBC는 이런 보도를 했다고 합니다. “She was too nice for politics”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을 향하여 ‘이런 사람을 좀 보라’고 빗대어 이야기하고 싶어서만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인격과 삶의 태도는 지어먹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인간성의 훈련, 사람됨의 훈련이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저희 인문학 친구들도 안동의 도산서원을 찾았댔습니다만, 잘 눈여겨보질 못했는데, 그곳 사립문에는 “유정문”이라는 목판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그 뜻은, 여러 차례에 걸쳐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사양하다가 드디어 완전히 물러난 퇴계가 ‘은둔하지만 게을리 살지는 아니한다’ ‘뒤로 물러나 나를 돌아본다’는 의미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도산서원에서 퇴계는 자주 후학들에게 이리 말했다고 합니다. ‘권력은 책임이지 영달이 아니다’

실로 조선 역사에서 퇴계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판단한 지성 중 한분이며 ‘물러남의 미학’을 아름답게 보여준 선현 중 한분으로 꼽힙니다.
물러나는 것이 나아가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확실합니다. 이는 인생의 예지와 겸손과 사람됨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퇴계’라는 이황선생의 호 자체가 ‘물러설 퇴’에 ‘시내 계’ ‘골짜기 계’ ‘계곡 계’로써 ‘나는 계곡으로 골짜기로 시냇가로 물러나서 살리라’는 뜻 아닙니까? ‘물러남’을 자신의 호로 만든 퇴계는 물러남으로 나아감 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동양의 선현들이 일러준 교훈들을 되새겨 봅니다.
“물러나기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 처음부터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때 물러나는 것은 군자의 태도이고 가장 나쁠 때 물러나는 것은 소인의 자세다”
“시작 보다 오려운 것은 끝을 맺는 것이다. 그러니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노력하여라”
“모든 물러섬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적절한 때, 박수쳐 줄 때 물러나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부끄럽고 욕된 마침이 온다”
“등산 할 때 보다 하산 할 때 더더욱 조심해야한다. 내려올 때 미끄러지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인문학교실을 함께 해 오고 있는 저도 가끔 물러날 때를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 까지’가 나의 일이고, 나의 한계임을 깨달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버지나 어머니의 일과 첵임이 너무 크고 어렵다고해서 부모됨을 그만둘 수는 없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가 너무 어렵다고해서 인간됨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도 않되지요. 분명 우리에겐 힘들고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일 처럼 느껴져도, 그래도 그 자리를 피해서는 않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근본적 삶의 원칙들과는 달리,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깨달으면 그 일과 그 자리를 떠나 ‘퇴계’ 해야 할 일이나 역할 또한 있습니다.
실로 버리지 말아야할 일은 성실과 진심으로 헤쳐가야 할 것이로되, 떠나야 할 일과 자리는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는 아침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50가지 말’ 중에서 오늘 아침은 어떤 말이 그렇게도 좋으십니까?
라틴어 인문학 (60) _11월 19일
Dona nobis Pacem! Pax vobis! Pax huic domu!
(도나 노비스 파쳄 <빠쳄>! 팍스 보비스 팍스 후이크 도무!)
dona, 원형 dono, 주다, 선물하다, 기증, 기부하다. 영어 donate, donation, give, grant.
nobis, nobiscum, 우리에게, 우리와 함께, to us, with us
pacem과pax는 둘다 평화, 평안, 평온, 화평. 원형은paco, pacator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 peace – maker,
vobis, 너희에게, 너희와 함께, 여러분에게, 여러분들과 함께, to you, with you.
huic, 원형 huc, 여기로, 이리로, 이곳으로, this
domu, 원형 domus, 집, 가옥, 가족, 고국, 고향
Dona nobis pacem!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Give us peace!
Grant us peace!
가톨릭교회의 미사곡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에서 반복되는 가사로써 그레고리안 챤트에서 부터 오래 불러온 기도송입니다. 유튜브나 구글에서 꼭 찾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쉽게 따라서 부르실 수 있습니다. 끝부분에 Domine (주님!)를 덧붙여도 좋습니다.

Pax vobis!
여러분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Peace to you!
Peace with you!
불가타 성서, 루카 24:36절, 요한 20:19, 21, 26절에 거듭 나오는 말씀이며 가톨릭 미사 중에 사제와 성도 간에 서로 나누는 인사요, 축복입니다.
Pax huic domu!
이 집에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이 가정에 평화가 깃들지어다.
Peace to this home!
Peace with this house!
같은 불가타성서 루카복음서 10:5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흔히 사제가 성도들에게 내리는 강복 가운데 한 구절이기도 하고 가정이나 사업체를 방문했을 때 드리는 축복의 말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이 귀절을 한글로 나무나 액자에 써서 걸어놓은 집이나 가게도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의 라틴어를 변형하거나 첨가하여 여러가지 인사와 축복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Dona nobis pacem !
Dona nobis amor !
Dona nobis gratia !
Dona nobis beatitudo !
Dona nobis delicia !
Dona nobis vita !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소서 !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소서 !
우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옵소서 !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옵소서 !
평화부재의 시대 – 모든 것은 다 있는데 평화만 없는 시대라고 아파합니다.
사랑부재의 시대 – 사랑의 노래와 말은 차고 넘치는데 진정한 사랑은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평화와 사랑, 행복과 기쁨을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도드립니다.
Dona nobis pacem !
Dona nobis beatitudo !
Dona nobis delicia !
Dona nobis amor !
Dona nobis gratias !
Dona nobis viva !
그리고 축복을 나눕니다.
Pax vobis !
Pax huic domu !
Gratia vobis !
Delicia vobis !
(오늘 이런 라틴어 인사와 축복으로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나누어온 ‘인문학 라틴어’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그간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내일 아침 다시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이 아침도 많이 바쁘셔도 꼭 읽고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90) _ 11월 20일
복습
Repeat와 Review는 다르지요.
Repeat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것이지만, Review는 했던 말을 또 하는듯 하지만 그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코로나가 계속되었던 오던 지난 7개월, 90개에 이르는 잡문들과 60여개의 ‘라틴어 인문학’을 써서 보내드렸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 인문학 교실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저와 우리 모두를 Review해 보고 싶습니다.
‘리뷰’ – Review란, 글자대로는 ‘다시 봄’, ‘되돌아 봄’, ‘다시 살펴봄’입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검토’, ‘복습’, ‘평론’ 같은 뜻이 되고, 학술적으로는 ‘고찰’, ‘총론’으로도 이해되며, 법률적으로는 ‘심리’, ‘재심’이 됩니다. 비지니스에서 리뷰라고 할 경우엔 ‘소비자들의 제품 평가’가 된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어려운 한해를 보내면서 거의 끝이 다가오는데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스스로를 진솔하게 리뷰해보는 것도 퍽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Review 중에는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지식-문화 잡지 ‘에딘바라 리뷰’ (Edinburgh Review)를 칩니다만, 오늘날은 리뷰잡지들이 참 많습니다. 각종 문화리뷰들을 비롯하여 독서리뷰, 영화리뷰, 게임리뷰, 음식리뷰, 화장품리뷰, 쇼핑리뷰, 여행리뷰, 잡지리뷰를 비롯하여 군대에서 발행하는 ‘밀리타리 리뷰’ (Military Review), 종교단체가 만드는 크리스챤리뷰, 기업체가 발행하는 기업리뷰, IT 계통에서 만들어내는 클라우드 리뷰들이 차고 넘칩니다. 김리뷰라는 분이 지은 ‘세상의 모든 리뷰’ (RHK, 2015)는 일상생활 – 공부, 일, 사업, 가정, 말, 생각, 행동, 청춘, 늙어감, 질병, 취미 등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 같은 책이기도 합니다.
2017년 2월 2일, 린드필드 한글사랑도서관에서 처음 ‘시드니 인문학교실’을 시작하던 날 ‘우리는 왜 인문학을 하려고 하는가?’ 하는 물음에서 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첫날 제가 쉽게 예화를 드렸던 이야기들 중에서 한 두 가지를 다시 리뷰해 봅니다.
1) 황희 정승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머슴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머슴이 정승에게 와서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방은 틀렸고 자기가 옳다고 말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다 듣고난 황희는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상대방 머슴이 또 정승을 찾아와 오전에 나리를 찾아왔던 녀석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하소연을 하면서 자기는 결백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 말도 옳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황희는 그에게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네 말도 맞구나!’ 그 머슴이 나간 후 정승 곁에서 종일 책을 읽던 조카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큰아버님, 아침에 찿아온 머슴말도 맞다 하시고, 오후에 찾아온 머슴말도 맞다 하시니 참 이상합니다. 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듣고보니 네말도 맞구나!”
2) 1920년대 독일 막스 프랑크 연구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이젠베르크를 중심한 연구팀은 ‘빛’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리학에서 광학은 대단히 중요한 연구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일한 실험실에서, 동일한 연구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실험을 하는데도, 빛이 어떤 경우에는 ‘입자’ (cubic)로 나타나는가 하면, 또 다른 때는 ‘파동’ (wave)으로도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빛은 입자다’ ‘아니다. 빛은 파동이다’ 하는 두 가지 가설이 팽팽하게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은 거듭된 실험과 논쟁과 충돌을 거친 후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불확정설’ (The Theory of Uncertainty, The Uncertainty Principle) 입니다. ‘빛은 입자이기도하고 파동이기도하다. 빛은 한가지로만 정의되지는 않는다.’ 사실 그렇습니다. 1+1=2가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1+1=1이 되기도 합니다. ‘둘이 합하여 하나를 이룰지니라’라는 결혼 선포문이 그런 케이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고야의 ‘벌거벗은 마야’는 예술인가? 외설인가? 마네의 ‘올랭피아’는 예술인가? 외설인가? 문학 작품이나, 미술, 음악 등에서는 얼마든지 달리 볼 수도 있고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내 생각, 내 견해, 내 신념, 내 주장, 내 믿음에 동의해 주기를 바라면 않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전체주의, 획일주의로 끌고가게 합니다.
인문학의 목적을 리뷰해 봅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너는 틀렸다고 말해서는 않된다”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중 하나는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린 것’으로 보려는 경향성 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 자기 신념, 자기 입장은 늘 옳고 선하고 바르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과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관용과 용납, 이해와 너그러움, 그리고 더 나아가 겸손과 양보, 나눔과 협력을 통해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보자는데 우리의 목표가 있습니다. 세상은 다른 생각, 다른 주장, 다른 정치적 견해, 다른 세계관, 다른 문화, 다른 종교들이 서로 서로 평화스럽게 어울려질 때, 더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공원에 갔는데 온통 한 가지 나무에, 한 종류의 꽃만 피어있다면 얼마나 멋이 없겠습니까? 식탁에 앉았는데 덜렁 한 가지 음식만 놓여 있다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거리에 나섰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군복이나 교복처럼 한 가지 옷만 입고 있다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랄 수 있겠습니까? 사랑까지는 못해도 미워하진 말고, 서로 싸우거나 다투지 않으면서 같이 어깨동무하고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문학친구들이 또 한해를 보내는 다짐이며, 꿈이며, 리뷰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아침마다 잡기장 못 보내 드려도 꼭 읽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감사, 사랑, 기쁨이 더해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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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부족한 사람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 ‘시드니인문학교실’이 정상적으로 모이지 못하게되자 지난 4월 말 부터 7개월 동안 글같지도 않은 잡문들과 익숙하지도 못한 라틴어를 가지고 인문학이랍시고 우리들의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잡기장 90개, 라틴어 인문학 60개, 합해서 150개의 단편적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왔습니다. 마침 이번주는 평상시 우리 인문학교실이 년말 방학을 시작하는 때인지라 저도 오늘로써 방학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내년 2월에는 어떤 방법과 형태로든 우리들의 모임이 다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인문학친구 여러분들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아는 것도 별무한데다, 생각의 폭 조차도 좁아터진 저같은 사람에게 읽고, 쓰고, 생각하고, 자신을 살펴볼수있는 기회를 주셨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형편없는 글을 인내심을 갖고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잘 것 없는 생각을 함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 반응이 없으셨던 무언의 친구들의 응원에도 감사드립니다.
다듬어지지 아니한 생각과 글이지만 주변의 다른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전달해 주셔서 함께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제 2의 인문학 친구들이 되게 해 주신 분들과 , 이를 기꺼히 받아주신 인생의 또다른 길동무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라틴어 인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 말씀드린 대로, 따로 노트를 만들어 매일 같이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문장씩 써오신 클라라 사모님이나 이길남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성실함과 진지함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크리스천 라이프와 그 발행인이신 임운규 목사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크리스챤 라이프의 온라인판을 통하여 수많은 숨겨진 독자들에게, 짧은 생각은 물론이지만, 오자, 탈자로 가득한 이 부족한 글들을 잘 다듬고, 보충보완 하여, 여러가지 추천도서 소개까지 덧붙여 매일 발송해 주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정 이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밖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랑과 격려와 함께해 주심이 늙은 사람을 지난 7개월 동안 붙잡아 주셨습니다.
몸은 강건하시고,
마음은 평안하시고,
나날의 삶은 여유와 기쁨,
감사와 너그러움으로
아름답게 수놓여지시길 빕니다.
2020. 11. 20
홍길복이 드립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